4년 전 2003년 2월의 어느 날.'앞뒤 정원과 마당까지 합해야 40평이 될까 말까한 이 집은 도시의 중심가를 벗어나 인적이 드문 외곽에 위치한 단층의 전원주택이었다. 이지는 진우와 함께 새로 들어와 살 집을 청소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미 외벽은 하얀 색 페인트를 칠하고 실내 벽에는 실크벽지로 도배를 했다. 알록달록하니 레이스가 듬뿍 달린 커튼을 창마다 달고 조그마한 화분들을 창가에 죽 늘어놓았다. 신혼침실로 사용할 방에는 퀸 사이즈 침대와 화장대를 들여놓고 나니 공간이 없었다. 진우는 아까부터 서재에서 좀 전에 그의 작업실인 오피스텔에서 옮겨 온 낡은 중고 야마하 피아노를 손질하고 있었다.'“진우 씨 이리 와 봐요. 진우 씨!”'이지는 거실에 아직 자리를 정하지 못한 소파와 평면의 벽걸이 텔레비전을 보며 소리 질렀다. '“진우 씨!”'하지만 그는 무반응이었다. '“아이 참.”'그가 나오길 기대하던 이지는 서재 쪽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정말, 나 혼자 결혼해서 이 집에서 살아? 사람도 별로 안 사는 곳에 신혼집을 꾸미자고 할 때 알아챘어야 해. 가장 넓은 방을 침실로 사용하자고 해도 서재로 한다고 벅벅 우기고 나보다 피아노가 좋단 말이지? 나하고 결혼하는 거야? 피아노랑 결혼하는 거야?”'그녀는 투덜거리며 당장이라도 싸울 기세로 서재로 갔다. 인상을 잔뜩 쓰고 방으로 들어선 그녀를 보자 진우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그대 내게 다가와 내 눈을 멀게 했어요. '그대 내게 다가와 내 마음을 가져갔어요.'그댈 원망했어요.'그댈 미워했어요.'내 눈을 멀게 한 당신! '내 마음을 가져가버린 당신!'이젠 그대뿐이에요. 오직 그대!’''울려 퍼지는 소리와 그의 모습에 넋을 잃고 진우와의 한판 전쟁을 포기하고 피아노 앞에 놓인 편안한 소파에 슬그머니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노래가 끝났다.'“왜 또 저기압이야?”'진우가 이지에게 물었다.'“몰라서 물어요? 뭐예요, 어제도 그 피아노 때문에 나 혼자 여기서 침대, 소파,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다 들여놓게 하더니 나하고 결혼하는 거예요? 피아노하고 결혼하는 거예요? 그럴 거면 피아노 하고 살아요.”'“왜 또 그래? 이리 와.”'이지가 불평하자 진우가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며 웃었다.'“싫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