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털이 언제부터 자라기 시작했는지, 태어날 때부터 머리털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송희는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전용기(專用機)라는 것을 타 보는 즐거움을 마음껏 만끽하고 있었다.'전용기라 불리기에는 아주 약간 살짝 낡고 초라한 감이 없진 않지만, 출판사 사장에 대학 교수직을 맡고 있으며 이번엔 또 무슨 사업을 하시려는지 이래저래 외국을 나갈 일이 많은 이모가 큰마음 먹고 장만한 것이었다.'비록 경비행기라 고요한 안락함 대신 도저히 잠을 잘 수 없게 만드는 창 바로 옆의 프로펠러 소음이 함께 했지만 말이다. 거기다 난기류를 만나면 작은 기체가 많이 흔들렸다. 그래도 항상 수많은 승객들과 함께 미어터지도록 좌석에 줄줄이 앉아서 가는 좁고 불편한 것보다는 오직 나만을 위한 비행이며 승객이 혼자라는 것은 훨씬 이색적이고 신비한 경험이었다.'정말이지 기분이 끝내줬다. 이 맛에 사람들이 특별대우를 받으려고 하고 너도나도 출세하려 하는구나 싶었다. 겪어보니 그 마음이 이해가 갔다. 돈은 참 좋은 거다. 돈, 좋지.'중간에 잠시 주유를 하기 위해 착륙한 것을 빼면 쉴 틈 없이 오랜 비행시간이 이어졌다. 하지만 송희에게선 피곤한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경비행기가 아니라 거대한 항공사 비행기의 1등석에 앉아 있는 사람 같았다.'하지만 그 즐거움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으니…….'세상 누구보다 바쁘게, 또한 열심히 일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수많은 출판사 편집부직원들이 담당한 작품들을 잡고 있는 마감의 연속이라 도저히 시간을 뺄 수가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전혀 믿음직스럽지 않은 조카를 주인조차 몇 번 타지 않은 전용기에 실어 보낸 송희의 이모이자 ‘한국문학계의 큰손’이라 불리는 송 여사의 확인과 당부를 겸한 전화가 온 것이다.'덕분에 송희는 해롱거리던 표정을 지워내야만 했다.'꼭 로밍해서 가져가야 한다고 신신당부하고도 조카를 믿지 못한 이모 덕분에 직접 로밍 신청까지 해서 손에 꼭 쥐어준 휴대폰이 부르르르 요란스럽게 제 몸을 떨어대자 송희는 미간을 좁히며 전화를 받았다.'[가서 사고만 치지 마라. 응? 그냥 원고만 받아오기만 하면 돼. 딱 그거 하나야.]'끊임없이 반복되는 똑같은 잔소리에 송희의 얄쌍한 눈썹이 이리저리 꿈틀거렸다. 아 정말……. 이렇게 자꾸 사람 의심하면 삐딱하게 나갈 수밖에 없다.'“송 여사님. 이제 그만 좀 하시죠. 하나밖에 없는 이 조카를 그렇게 못 믿으시면 어떻게 해요?”'[하아…….]'말을 다 끝맺기도 전에 들려오는 이모의 바닥이 꺼질 듯한 깊은 한숨 소리에 송희의 눈가에 자잘한 주름이 만들어졌다.'“아, 거참! 한숨은 왜 쉬는 거예요? 잘한다니까? 잘할 수 있다니까? 비위 거스르지 말고, 무조건 원고만 받아가지고 와라. 그 쉬운 걸 못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