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옷깃에서 피어나는 강렬한 살기. 날렵한 몸에서 흘러나온 푸른 살기가 옷자락을 조각낼 듯 거칠게 일렁거렸다. 살갗을 찢을 정도로 싸늘한 기운이 식도를 조여들자, 방금까지도 기세등등하던 무사는 오금이 저린 표정으로 어깨를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죽음이 두려운가.”'높낮이 없는 물음이 들려왔다. 강한 기에 떠밀려 발을 물리던 무사는 어금니를 씹어가며 자세를 겨우 다잡았다. 적당한 기회를 틈타 사내의 정수리를 환도로 내려칠 생각이었지만, 무사는 지금 제대로 된 공격은커녕 똑바로 서 있는 것조차 힘에 겨운 처지였다. 뺨이 으깨지는 듯한 통증을 이겨내고 겨우 고개를 든 무사는 눈앞에 서 있는 백의의 사내를 흘깃 쳐다보았다.'‘제길!’'사내의 느긋한 표정을 확인한 무사가 인상을 찡그렸다. 이렇듯 강렬한 살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뿜는 것으로 보아, 저자는 분명 엄청난 경지에 이른 초고수임이 틀림없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내빼고 싶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도망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이대로 꼬리를 내리는 것은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제법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내를 쏘아보던 무사는 손에 쥔 거대한 환도를 호기롭게 치켜들었다.'“허튼수작 말고 어서 덤벼라!”'자신 있게 외쳤지만 무사의 음성은 두려움에 떨리고 있었다. 그런 무사의 마음을 이미 꿰뚫은 듯, 무표정하게 굳어있던 사내의 입매가 차갑게 끌려올라갔다.'“무모한 용기는 죽음을 앞당기지.”'자만 가득한 표정으로 비소를 날린 사내가 부채모양으로 생긴 하얀 철선을 펼쳐 들었다. 그 모습을 주시하던 무사가 눈썹을 비틀었다.'설마 저 작은 부채로 환도의 칼날을 받아내겠다는 말인가? 대체 어느 경지에까지 이른 자이기에 저러한 여유를 부릴 수 있단 말인가!'경계태세를 더욱 갖추어 잡은 무사는 백의의 사내가 펼쳐든 철선을 유심히 바라보았다.'‘뭐야. 아무리 봐도 그냥 평범한 부채잖…… 허, 허억!’'무엇에 그리 놀랐는지, 철선과 백의의 사내를 번갈아보던 무사는 뻣뻣이 굳은 표정으로 그만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활짝 펼쳐진 선면에 어지러이 새겨진 백호의 얼룩무늬. 쭉 뻗은 쇠살마다 예리하게 박힌 은빛 칼날. 쇠살 사이사이에 맺혀 작렬하는 시퍼런 살기. 저러한 철선을 지니고 다니는 자는 몽환국에서 오직 단 한 사람뿐이었다.'“서, 설마, 네가……”'피리리릭-'무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살기를 흘리던 은빛 철선이 그의 목을 향해 일직선으로 쏘아져 나갔다. 터걱!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힘 잃은 무사의 몸뚱이가 바닥에 쓰러졌다. 그 후 무사의 음성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식어가는 무사의 육신을 무표정하게 내려다보던 사내가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흑풍마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