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여우군은 자신의 굴에 나와 몸을 쭉 폈습니다. 기지개를 켠 것이지요. 간밤에 노느라 무리를 좀 했거든요. 한참 몸풀기 체조를 한 여우군은 어슬렁어슬렁 발걸음도 가볍게 숲으로 향했답니다. ''살랑살랑. 부드러운 바람이 여우군의 아름답고 탐스런 털을 간질였습니다. 여우군의 황금빛 털이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렸습니다. 기분 좋은 바람에 여우군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람요정의 장난에 몸을 맡겼답니다. ''킁킁. 바람요정이 향기로운 꽃향기를 전해주었습니다. 그제야 여우군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었던지 생각이 났어요. 장난꾸러기 바람요정과 같이 여우군은 숲으로 들어갔어요. 바람요정은 여우군이 자신을 상대를 해주지 않자 토라졌는지 저만치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렸어요. 하지만 여우군은 개의하지 않았어요. 바람요정이 내일도 자신을 찾아오리란 걸 알고 있었거든요. ''네, 맞습니다. 여우군은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습니다. ''잘 생긴 외모, 황금빛으로 나부끼는 털, 우아한 걸음걸이, 자신보다 덩치가 큰 동물에게도 달려드는 용맹성까지. 여우군은 그런 자신이 무척 흡족했습니다. 자신의 걸음걸이마다 다른 동물들의 감탄에 찬 시선이 따라다닌다는 걸 여우군은 잘 알고 있었어요. 사실 여우군은 그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척하면서도 내심 즐기고 있거든요.''보세요. 오늘도 그의 우아하고 세련된 모습에 반한 동물이 여우군을 부르고 있잖아요. ''“여우군, 여우군. 오늘도 무척 멋지네요. 어딜 그렇게 가세요?”''여우군은 자신을 부른 동물을 찾아 고개를 휘휘 돌렸어요. ''“여우군, 여우군. 여우군의 옆에 있는 나무 위예요.”''고개를 들어 나무를 쳐다보니 참새 아가씨들이 그를 내려다보며 조잘거리고 있었어요.''“안녕, 참새 아가씨? 오늘은 날개치장이 아주 예쁘군.”''그는 살짝 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떴답니다. 그의 뒤로 참새 아가씨들의 재잘거림이 전해져 왔어요. 당연히 그를 칭찬하는 소리였죠. ''“어쩜, 저 우아한 자태…….”''“어머, 나 숨넘어갈 것 같아. 저 섹시한 목소리…….”''“학식은 또 어떻고? 너네들도 얘기 들었지?”''“당연히 듣고 말고. 동물과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S대 황새 교수를 물먹였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났잖아.”''“아직도 황새 교수, 충격으로 못 일어나고 있다면서?”''“체력은 어떻고? 암흑회 조직장인 흑표범과 한판 떠 이겼다며?”''“꺄악! 너무너무 멋져!”''“여우군의 품에 안겨봤으면…….”''“나도…….”''“나도…….”''그녀들의 황홀한 재잘거림이 그의 귀를 괴롭혔지만 항상 있는 일이라 생각하며 급히 그 자리를 벗어났어요. 이런 일을 너무 많이 겪다보니 이제 식상해졌죠.''숲이 깊어질수록 숲이 내는 향은 여우군을 도취시켰답니다. 그가 걸어가는 길에 만난 모든 동물들이 그에게 인사를 보내왔어요. 여우군은 적당히 맞장구치며 앞으로 앞으로 걸었답니다. ''숲이 점점 깊어질수록 동물들은 드문드문 나타났어요. 결국 여우군 혼자 숲을 걸어가게 되었어요. 드디어 그가 가고자 했던 장소에 도착했어요. 오직 그만이 아는 비밀스런 장소지요. 여우군은 흔쾌한 미소를 지으며 종종걸음으로 그곳을 향해 갔어요. ''멈칫. 여우군은 발걸음을 멈추어야 했어요. 여우군의 비밀스런 장소에 다른 방문자가 있는 걸 감지했기 때문이지요. ''누구야? 누가 감히 나의 신성한 장소에 침범한 것이야? ''여우군은 기분이 엄청 나빠졌어요. 그는 쿵쿵거리며 자신만의 장소에 다가갔어요. ''누군지 잘 걸렸다. 감히 내 것을 넘봐? 오늘이 네 제삿날이다.''그곳은 숲이 만들어낸 작은 공간이었어요. 작은 샘 주위로 이끼가 무성하게 껴있으며 그 샘 주위로 자그마한 공터에 화려한 색깔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어요. 나무에 가려 힘을 못 쓰던 햇살이 이곳에서만 쏟아지고 있었어요. 여우군은 우연히 이곳을 발견하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여긴 그만의 휴식과 사색의 장소가 된 것이지요.''그곳에 감히 다른 동물이 침범을 하다니. 자신만의 성지가 더럽혀진 느낌이었어요. ''여우군은 나무를 지나 공터로 들어갔어요. 갑자기 쏟아지는 햇살에 눈을 깜빡였어요. 가늘게 뜬 두 눈 사이로 웬 시커먼 물체가 있는 게 아니겠어요? 자세히 보니 자그마한 곰이었어요. 자그마한 곰이 여우군이 온 것도 모르고 샘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멍하니 보고 있었어요. ''여우군은 눈을 크게 부라리고 소리를 빽 질렀어요. 싸움에서 기선제압이 아주 중요하거든요. ''“누구냐?”''화들짝! 자그마한 곰이 놀라 고개를 휙 돌렸어요. ''샤르랑～. 곰이 고개를 틀자 까맣게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털이 살짝 휘날렸어요. ''철렁! 자그마한 곰의 맑은 눈망울을 보자 여우군의 심장이 아래로 내려앉았어요.''이럴수가! 여우군은 입을 딱 벌렸답니다. 왜냐구요? 자그마한 곰이 너무도 귀엽고 앙증맞고 예뻤거든요. 딱 여우군의 취향이었어요. ''두근두근. 아래로 내려앉은 여우군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어요. 겁을 먹어 한껏 물기를 머금은 자그마한 곰의 순진한 눈망울에 여우군은 순식간에 그만 푹 빠져들고 말았답니다. ''“어, 어, 어……. 죄, 죄송……. 딸꾹, 딸꾹.”''저런, 너무 놀라 자그마한 곰이 딸꾹질을 하네요. 왠지 죄를 지은 듯한 느낌에 여우군은 자신을 책했어요. ''저런 여리디 여린 자그마한 곰을 놀라게 하다니. 그것도 아직 어린 여자아이를. 여우군은 곰에게 천천히 다가갔어요. 서슬 퍼렇던 얼굴을 간이라도 빼줄 정도로 상냥하게 고치고선.''“미안해, 곰양. 내가 널 놀라게 했나보네. 여기는 나만 알고 있던 곳이라서 그만 경계를 했나봐. 내가 잘못했으니 그만 놀라렴.”''여우군은 딸꾹대는 곰양의 등을 부드럽게 두드렸어요. 그의 자상한 손길에 진정이 되었는지 자그마한 곰양이 딸꾹질을 멈추었어요. ''둘의 눈이 마주쳤어요. 여우군은 심하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무척 노력했지만 한번 뛰기 시작한 심장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어요. 순진하고 영롱한 곰양의 눈망울을 보니 까닥 없이 멍해져 왔어요. ''“제가 죄송해요, 여우군. 여기가 여우군의 장소인 줄 몰랐어요. 다음부터 안 올게요.”''곰양이 뒷걸음을 쳤어요. 자신을 떠나려한다는 생각이 들자 여우군의 가슴이 죄어오듯 아파왔어요. 여우군은 가슴을 부여잡고 외쳤어요. ''“아니야, 괜찮아! 계속 여기 있어도 돼. 그러니 가지 마!”''자그마한 곰양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활짝 미소를 지었어요. 그 미소에 여우군의 털이란 털은 죄다 쭈뼛 서고 말았어요. 냉철하고 이지적이며 민활하다 여겼던 그의 뇌가 젤리처럼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것 같았어요. 이성은 사라지고 본능만 남았어요. ''여우군은 자그마한 곰양을 먹고 싶었어요. 에이, 아시죠? 여기서 먹고싶다의 의미를?(왜 모른 척 하는 거야? 내숭 떨지마. 다 알면서.) ''입에서 침이 한바가지 쏟아졌어요. ''“여우군, 그럼 나 여기 계속 와도 되는 거야?”''쓰읍. 여우군은 흘러내리는 침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이대로 자그마한 곰양을 보낼 수 없었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자그마한 곰양을 자신의 곁에 두고 싶었어요. ''모두 아실 거예요. 냉정하다 자부하던 동물이 어떤 것에, 특히 사랑에 미치면 그 광기의 강도가 타 동물의 예측을 불허한다는 것을. ''여우군은 가까스로 달아나려는 이성을 붙잡았어요. 의지의 한국…, 아니, 의지의 여우군이죠? ''“여기서 뭘 하고 있었니, 자그마한 곰아?”''자그마한 곰양이 여우군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하네요. 그 모습을 보던 여우군이 또 침을 한 바가지 흘렸어요. ''“물소리가 들려 찾아왔어, 여우군. 퐁퐁 물소리에 세수나 할까 했는데 샘이 너무 맑고 깨끗해 세수를 할 수 없었어.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었어.”''저리 마음이 곱다니. 저리 순수하다니. 저런 심성으로 이 험한 세상을 어찌 살아가려고.''“근데 여우군? 병에 걸린 거야? 왜 침을 흘려?”''갸웃갸웃 물어오는 자그마한 곰의 물음에 여우군은 급히 흘러내리는 침을 수습했어요. ''“아니, 아니야. 난 병에 걸리지 않았어. 널 보니 침이 흐르네.”''“그래? 이상하네. 왜 날 보니 침이 흐르는 거지?”''“그건 네가 맛있……, 아니 네 뒤에 있는 물 때문일 거야. 물을 보니 물이 마시고 싶어져서…….”''“응, 그렇구나. 자, 비켜줄게. 물을 마셔.”''말도 안 되는 여우군의 대답에 수긍을 했는지 자그마한 곰이 얼른 샘에서 몸을 비켰어요. 아쉬운 입맛을 쩝쩝 다시며 여우군은 샘으로 다가갔어요. 샘에 초롱초롱한 눈빛을 한 자그마한 곰의 얼굴이 비쳤어요. 여우군은 씨익 음흉한 미소를 지었어요. 여우군은 샘에 비친 곰양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대고 씁 마셨어요. 곰양의 얼굴이 파문으로 흔들렸어요. ''이 자그마한 곰을 자신의 곁에 둬야하는데……. 차가운 물에 닿으니 민활한 머리, 일명 잔머리가 돌아왔어요. 저 순진무구, 순수무공해 곰양을 어떻게 하면 다른 동물이 접근하지 못하게 할 것인가? 그리고 홀랑 쓱싹할 수 있을 것인가? 여우군의 잔머리가 맹렬히 돌아가기 시작했어요. ''꼬르륵. ''이 소리는? 여우군은 고개를 돌려 곰양을 바라보았어요. 곰양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어요. 빨갛게 변한 얼굴을 보니 또 다시 입에 침이 가득 고이는 게 아니겠어요. ''꿀꺽. 여우군은 한가득 고인 침을 삼키며 물었어요.''“배가 고파?”''“응. 조금. ……아니, 많이.”''“그래? 배가 많이 고파 어쩌지?”''여우군은 일부러 측은한 눈빛을 했어요. ''“괜찮아. 물을 마시고 숲을 가다 나무열매를 따 먹으면 돼.”''여우군은 자그마한 곰에게 타이르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물을 마시는 건 좋은데, 곰아. 나무열매는 아직 익지 않았을 거야. 아주 시고 떫어.”''“그, 그래? 그럼 어쩌지?”''순진한 곰양, 교활한 여우군의 말을 믿는군요. 지천에 열린 게 나무열매인데. 그것도 아주 달콤하게 익은 나무열매가 곰양 옆에 열려 있는데. ''“내 집에 갈래? 작년에 말린 나무열매와 꿀이 한가득 있거든.”''“꿀?”''곰이 꿀 좋아하는 거 아시죠? ''“그래, 꿀. 아주 달콤해. 나무열매를 꿀에 절여놓은 것도 있어.”''이제 곰양의 입에서 침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어요. ''“그, 그래도……. 울 엄마가 함부로 낯선 집에 가지 말라고…….”''그럼, 그럼. 곰양, 이성을 지켜야죠. 어른들 말씀 잘 들어 나쁜 일 없어요. ''“괜찮아, 곰아. 네 엄마도 이해하실 거야. 다른 동물 붙잡고 물어봐. 내가 누군지. 난 마음 착하고 정의롭다 소문이 자자한 여우란다.”''“정말이야?”''“그럼. 그러니 내 집에 가자. 바삭바삭 튀긴 튀김도 있단다.”''“헤…….”''저런, 저런……. 순진한 곰양이 그만 여우군의 교활한 화술에 넘어가려 하고 있죠? 어머나, 어쩜 좋아요. ''“네가 원한다면 매일매일 마음껏 먹게 해줄게.”''곰양의 표정이 황홀해 지네요. 그런 곰양을 보던 여우군이 흠흉한 미소를 몰래 짓고 있네요. ''“그, 그래도 돼?”''“그러엄. 그래도 되고 말고. 잘 익은 과일로 만든 음료수도 있단다. 그것도 마시게 해줄게.”''음료수? 알콜이 들어간 음료수? 황홀한 표정을 짓던 곰양이 고개를 끄덕이네요. 여우군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곰양의 머리를 쓰다듬었어요. ''“자, 이제 내 집으로 가자.”''“응.”''먹을 것에 혹한 곰양은 그게 지옥으로 가는 입구인 줄 모르고 여우군을 따라갔습니다. 여우군의 간악한 흉계에 걸린 곰양은 어찌 될까요? 그건 저도 모르겠네요.'''''''제 1 장 여우, 제 1단계 작업 들어가다''제 2 장 여우, 곰 약올리다''제 3 장 여우, 하이에나와 만나다''제 4 장 여우, 곰 방해하다''제 5 장 여우, 늙은 사자와 만나다''제 6 장 여우, 스스로를 고문하다''제 7 장 여우, 죽 쒀서 개 주다?''제 8 장 여우, 글발신의 제물이 되다''제 9 장 여우, 늑대와 흑표범 사이에서 외줄을 타다''제 10 장 여우, 물밑작업 들어가다''제 11 장 여우, 작업에 들어가다''제 12 장 여우, 혼란에 빠진 곰을 돕다(?)''제 13 장 여우, 만리장성 밖의 오랑캐(?)를 만나다''제 14 장 여우, 고백하다''에필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