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사옵니다. 들어갈 수 있게 허락해 주시옵소서.”'“많이 놀란 것이오?”'나직할 뿐,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페르세포네는 더욱 맘이 상하게 됐다. 입술을 꾹 다물어 버리곤 대답하지 않았다.'드러나지 않을 뿐, 놀라긴 그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몰랐다. 모르기 때문에, 자존심이 다쳤다. 아프고, 초라해졌다.'하데스는 물끄러미 바라봤다. 잠시 후 낮고 굵직한 저음으로 입을 열었다.'“좋도록 하오.”'“……”'페르세포네는 말도 안 되는 눈물이 치솟으려 했다. 창피함이었다. 장밋빛 치맛자락을 붙들고 예를 갖춘 뒤, 서둘러 획하니 돌아섰다.'그녀의 눈망울은 이때다 싶게 젖어 들고 말았다. 입술을 꽉 깨물며 흘러내리지 않도록 막아냈다.'그리곤 평소보다 빠르게 움직여갔다. 님프들을 거느린 채, 신전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였다. 한참을 걸어, 신전의 디딤돌 위에 올라섰다. 이제 그의 눈길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당당히 걸어 나왔던 의연함을 잠시 늦춰도 될 성 싶었다.'그녀는 살며시 눈을 감고 숨을 돌렸다. 그때, 갑작스레 팔목을 붙들렸다. 섬뜩하도록 강인한 힘이었다. '페르세포네는 물기가 어린 눈을 키우고 확인을 했다. 그의 감정 없는 눈빛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바들거리는 입술을 비틀리며 시선을 피해 버렸다. '제왕은 소리 없는 한숨을 지었다. '“너희들은 물러가 제나를 돕도록 하라.”'명을 받은 여왕의 님프들은 고개를 수그리고 조심스럽게 움직여갔다.'페르세포네는 미간을 좁히고 고개를 더욱 멀리 돌려갔다.'‘제나라는 그 이름, 부르지 마시어요. 당신의 입으론 듣기 싫습니다.’ '지금 이 순간, 너무도 싫었다. 별 뜻도 없이, 그저 님프들에게 명하기 위함임을 알면서도 싫게만 느껴졌다.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허연 목을 타고 드센 창피함이 밀려들었다.'그녀의 눈가는 더욱 축축해지고 심장은 들썩거렸다. 약한 모습을 들켜 버린 것 같아 참을 수가 없었다. '페르세포네는 입 안의 여린 살갗을 피멍이 지도록 깨물며 손목을 비틀었다. 놓아달라는 몸짓이었다. 그의 차가운 손길을 거부하고만 싶었다.'그는 오히려 더욱 강하게 붙잡았다. 보이지 않게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눈물을 보일만큼 놀랐으면서, 내겐 보이지 않겠단 뜻인가? 왜 그리 날 거부하려고만 드는 것인가? 지금 이런 상황들이 꼭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 하군. 붙잡으려는 나와 붙잡힌 것이 싫어 놓아달라는 그대와. 난 그대의 뜻을 들어줄 수 없다.”'한편, 그의 가슴 안에선 낯선 메아리가 울려났다.'‘내 심장이 말한다. 그대는 나의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