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막의 장''''''달도 별도 없는 그저 한없이 무겁고 어두운 밤이었다. 그날 밤 성내는 유난히도 긴장된 분위기로 감싸여 깨어 있는 자들은 그 공기에 눌려 질식할 정도였다. 누군가 일부러 모든 것을 감추고 보여주지 않겠다는 의도로 거대한 검은 장막을 둘러친 듯 느껴질 정도였다.''“아직, 아직도 멀었느냐?”''비단 장포를 두른 한 장년의 사내가 하인으로 보이는 이에게 추궁하듯 물었고 돌아온 그의 대답은 혹시나 했던 그의 마음을 더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아아악!''순간 허공을 가른 여인의 날카로운 신음성은 그의 이마에 내천자를 만들었고 좌중의 분위기는 더욱 암울해져 갔다. 벌써 이틀째인가. 성주의 부인이 아이를 낳기 위해 몸부림친 게 언제인데 아직도 아이는 나올 생각을 아니 했다. 성내의 유명하다는 산파란 산파는 죄다 불려왔고 의원이란 의원들은 모두 달려왔지만 지독한 난산 탓에 모두들 손을 놓다시피 하고 있었다.''“아이는, 아이는 또 낳으면 된다지만. 안사람은 어찌 될 것인가…….”''성주는 사랑하는 부인의 고통을 어찌해 줄 수 없다는 자괴감에 고통스러워했지만 아랫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다 풀어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저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었다.''''''어느 결에 산모도 산파도 깜빡 졸았던가 보다. 황촉불이 은은히 실내를 밝히고 있는 가운데 꿈결인 듯 아련히 산모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고 그 소리는 너무나 가냘파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했다.''“산파할멈…, 아이가, 아이가……. 아아…….”''산파는 소스라쳐 정신을 가다듬었다. 간신히 태어난 아이를 받아 안아 자세히 살펴보곤 그만 눈을 감아 버렸다. 틀렸다. 이 아이도 산모도 너무 지치고 쇠약해 금방이라도 명을 달리할 것이 확연했고 산파는 누구에게도 차마 아기를 낳았다는 말을 알릴 수 없었다. ''땀과 피비린내가 가득한 산실에 일순 솨아아 소리를 내며 향기로운 바람이 일었다. 산파는 눈을 뜨려 했지만, 손발이 묶인 듯 꼼짝할 수 없었다. 누군가의 부드러운 손길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 순간, 품안이 허전해졌다. 아기씨를 빼앗기는구나 하는 두려움에 산파는 소리를 지르려 했다. 그러나 잠시 후 눈을 뜬 그녀는 놀라움으로 말을 하려 해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고 순간 머리를 굴려 이대로 이런 사태를 모른 척하기로 마음먹었다. ''아기는 너무나 예쁘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힘차게 울어대고 있었다. 산파의 늙어 둔해진 머리로도 아이는 분명 살아 있어야 했다. 이미 회생의 기미가 없는 아이의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이제 곧 홀아비가 될 것이 분명한 인자하기 그지없는 성주님을 위해서라도 그녀가 지금 본 것은 잊어야만 했다. ''“아주 예쁘고 건강한 아기씨입니다, 마님.”''가물거리는 눈을 들어 간신히 아이가 자지러지게 우는 모습을 확인한 아이 어미는, 그만 기력이 다했는지 눈을 감고 이승에서의 명을 달리했다. 그날 매야성에서는 한 생명의 죽음과 한 생명의 탄생이 교차했고 그 가운데 어떤 비밀이 있었는지 그 늙은 산파를 빼고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태어난 아기는 여자아이로 그 아비인 제백성주에 의해 채현이라 명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