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다연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남자를 따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을 모르는지 남자는 그녀와 달리 환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말하기에 바빴다. 어떻게 해서든지 여자의 마음을 잡기 위해 애쓰는 남자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일 지경이었다. 다연은 남자와 눈이 마주칠 때면 간간히 억지 미소를 흘렸지만 초지일관 따분한 표정이 그녀의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 고급스런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저녁식사를 하고 간단하게 와인을 마시며 남자와 앉아있긴 했지만 역시 이 남자는 따분 그 자체였다. 다연은 우아하게 와인을 마시면서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자신을 숭배하다시피 보는 남자를 대충 훑어보았다. '그녀의 집안보다는 못하지만 꽤 상류층 집안의 자제인 남자는 도화병원 원장의 둘째 아들로서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유능한 의사였다. 외모도 그다지 못생긴 얼굴이 아닌, 오히려 어느 정도 준수한 편에 속하는 편이었고, 몸매도 그 다지 나쁘지는 않았다. 조건만 본다면 꽤 괜찮은,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킹카였다. 하지만 다연의 눈에는 그저 부모 잘 만나서 고생이라고는 전혀 모르며 큰 그저 그런 남자로만 보일 뿐이었다. '‘역시, 재미없어. 결국 이 남자도 다른 남자들과 다를 바 없잖아. 내일 지나 결혼식에 데리고 좀 갈까 해서 지금까지 만나긴 했지만 더 이상 못 참겠어.’ '“…… 저, 다연 씨. 사실 할 이야기가 있어서 이런 자리를 마련했습니다.”'다연이 이 남자와의 만남을 이쯤에서 정리하자고 마음먹었을 때 남자의 말이 그녀의 귓가에 들어왔다. 다연은 물끄러미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예의상 미소를 흘려주었다. 그녀의 매혹적인 미소에 남자의 얼굴이 살짝 빨개지더니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에 다연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다연은 속마음을 겉으로 표현할 만큼 우둔한 여자가 아니었다. '“어떤 말씀을 하시려고 하시는지 궁금하군요. 실은 저도 할 말이 있었는데 잘 됐네요.”'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는 화려한 그녀의 얼굴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매력적인 목소리가 그녀의 입안에서 나른하게 흘러나왔다. 그녀의 목소리에 감격을 한 듯이 남자가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다연 씨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다연 씨 같은 여자는 제 평생 처음입니다. 이런 말씀드리는 것이 좀 빠르다는 것 알고 있지만은 다연 씨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다연 씨, 저와 결혼해주십시오.”'이 남자의 말도 다른 남자들과 별다를 바 없는 똑같은 레퍼토리였다. 너무나 많이 들어서인지 지겹다 못해 짜증이 났다. 다연은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긋 웃었다. '“이런, 전 아직 어느 누구와 결혼할 생각이 없는데 어떻게 하죠? 아까 제가 드릴 말씀이 있다고 했죠. 우리 그만 만나요. 예전에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이제야 말씀드려서 죄송하네요.”'“다, 다연 씨.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그녀의 일방적인 통보에 새하얗게 질린 남자의 얼굴이 그녀의 눈 안으로 들어왔으나 다연은 전혀 동요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냉정하고, 이성적인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