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에 시달리다 잠에서 깬 해윤은 이마에 번진 식은땀을 훔치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꿈에서 얼마나 몸을 웅크리고 있었던지, 온몸의 근육들이 뻐근하게 뭉쳐 팔을 올리는 것도 힘겨울 지경이었다. '매일 밤이면 되풀이 되는 악몽에 이젠 잠자리에 드는 것도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너무 큰 집에 살아서 적응이 안 되는 거라고 치부하기엔 변명이 옹색했다. 몇 달이 지났으니 적응할 시간은 충분했다.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저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서 함께 살기만 하는 타인들에 대한 그녀의 거부반응이리라. 그나마 아무도 모르게 혼자만 겪는 게 다행이라 여기면서, 해윤은 힘들다 말하지 않았다. '“하아…….”'어스름한 새벽빛에 그녀의 새하얀 한숨이 흘러 들어갔다. '보드라운 이불을 걷고 침대에서 일어난 해윤은 창밖을 힐끔 돌아보고 밖으로 나갔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나는 삐걱거리는 소리뿐, 집 안엔 정적만이 가득했다. '매끈한 실크 잠옷이 그녀의 발목에서 춤추듯 흔들렸다. '2층 거실에 켜진 흐릿한 조명이 굳게 닫힌 태후의 방문에 긴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잠깐 해윤의 걸음이 멈춰졌다. '저녁을 먹고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다 잠자리에 들 때까지도 태후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었다. 잠이 들고 한참 후 설핏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던 것도 같았지만, 확실하진 않았다. '몇 시인지 보기 위해 옆으로 고개를 돌렸던 해윤의 시야에 테라스에 서 있는 태후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그리고 살랑거리는 바람을 따라 그의 머리 위로 흐느적대며 올라가는 하얀 연기.'드르륵.'무슨 마음에서인지 그녀는 테라스 문을 열고 그가 있는 곳으로 발을 들여 놓았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태후가 고개를 돌렸다.'“뭐야?”'낮게 가라앉은 그의 음성이 시린 바람처럼 그녀를 훑었다.'“날라리.”'“뭐?”'해윤은 입을 꾸욱 다물고 태후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테라스 끝에 몸을 기댔다.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린 바람이 뺨을 타고 얇은 잠옷 속까지 들어왔다. '“마음에 안 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