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사실 그 애를 처음 봤을 때 나의 첫 느낌은 애처로움이었다.'소아과 병동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던 계집아이는 몸 여기저기에 기다란 줄 같은 것을 주렁주렁 매달고 죽은 듯이 누워있어서 무섭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그때 난 떨어질 듯 말 듯 안 떨어지는 여름감기 때문에 엄마와 병원에 주사를 맞으러 왔었다. 엉덩이 주사 맞는 것이 무서워 갖은 엄살을 피워댄 내 자신이 창피해질 정도로 계집아이는 그 작고 가는 팔목에 무시무시한 링거주사를 꽂은 채 잠들어 있었다. 엄마는 여자애의 아빠인 듯한 사람과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나는 잠든 계집애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뽀얗고 말간 피부에 솜털이 보송보송 난 얼굴이 아픈 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예뻤다. 이렇게 예쁜 아이가 아프다니 하나님은 지금 분명 화장실에 가고 안계신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어째서 이런 작고 어여쁜 아이가 아파야 하는지, 거기다 저 무서운 주사까지 맞고 있어야 하는지 어렸음에도 사나이 가슴에 슬픔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차라리 얄미운 큰형이 나를 괴롭힌 벌로 이런 주사를 한 백 개쯤 맞아야 옳다고 생각했었다.'바로 그때 여자애의 작은 손가락이 잠결에 움찔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것이 마치 내게는, 아픈 나를 위해 내 손 좀 잡아줘 하는 신호로 보였다. 그저 보기에도 한 겨울 호빵처럼 보드랍고 따뜻해 뵈는 손이 사나이 순정을 애잔하게 자극해서 나는 그 애의 손을 향해 내 손을 뻗었다. 어쩐지 덥석 잡기에는 작고 약해 보여 힘없이 오그려진 여자애의 손아귀 안에 둘째손가락 하나만 길게 펴서 가만히 밀어 넣었다. 역시나 생각한대로 따뜻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여자애는 폐렴으로 죽을 뻔 하다가 살아난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그때 내가 느낀 따뜻함은 생기발랄한 온기라기 보단 아파서 몸에서 나는 열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린애에 불과했던 내가 그런 것을 어떻게 가려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그저 계집애의 작은 손아귀 안에서 느껴지던 그 사랑스런 온기가 내 손가락을 통해 전달되는 것에 나름대로 감동하고 있었다. 마치 작은 천국과 교신하고 있는 착각에 빠져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바로 그때 힘없이 늘어져 있던 계집애의 힘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아주 센 악력으로 내 손가락을 꽉 움켜쥐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내가 얼마나 놀랐던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직면하고 보니 이런 저런 생각할 겨를 없이 몸이 먼저 반응을 한 것이다. 놀라는 바람에 계집애 손아귀에 잡힌 내 손을 확 빼버린 것이었다. 그 여자애가 내 손을 얼마나 세게 잡고 있었으면 내가 손을 빼는 힘에 이끌려 그 애의 손도 덩달아 허공중에 떠올랐다가 침대 위로 툭 떨어졌다. 그러고 나서 눈을 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병원의 하얀 천장이었을 것이고 그 다음이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