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2062년 9월의 어느 오후 ''''''황금룡 한얼은 마시고 있던 찻잔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그리고 주위의 작은 속삭임을 흘려들으며 오후의 나른한 햇살을 음미했다. 어느덧 불꽃과도 같았던 여름 햇살은 서늘한 가을빛으로 바뀌려 하고 있었다. ''벌써 가을이 오고 있는 건가? 황금룡 한얼은 눈부신 햇살 사이로 눈을 가늘게 뜨고 창 밖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정오를 훨씬 지난 태양은 비스듬히 그들이 있는 방을 비추고 있었다. 청룡관의 너른 정원의 나무들이 곧 시작될 가을예감에 몸을 떨고 있었으며, 은행나무는 벌써 잎을 노랗게 물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드넓은 청룡관의 정원에 가을이 오면 단풍으로 나무들은 본래의 제 색을 낸다. 여름 한철 입었던 푸른 교복을 벗고 가을에 사복을 갈아입는다. 기념관 광장 앞의 은행나무 길엔 황금빛 은행잎이 바람에 날려 온 주위를 황금빛으로 물들일 것이다. ''가을의 운치를 즐기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겠지. 식구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황금룡 한얼은 소란스런 가을을 예감하며 다시 미소를 지었다. 몰래 변장을 하고 그들 틈에 섞여 그들의 즐거운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그의 아버지인 청룡은 참으로 희한한 취미생활이라고 했지만 한얼은 떠들썩한 것이 좋았다. 아직 어려서 그렇다고 하지만, 어린 나이엔 어린 나이답게 즐길 수 있는 건 즐겨야지 않은가. ''그의 나이는 13살이었다. 아직 13살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10살, 그 보다 더 어린나이에 황금룡의 계승자가 되어 성인취급을 받아야했다. ''다른 평범한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서 음정, 박자 무시하며 ‘우리 유치원～’ 노래 부를 때 그는 용족 선생을 앞에 두고 용족의 역사를 배워야 했고, 그 시간이 끝나면 인간 선생을 앞에 두고 인간의 역사를 배워야 했다. '어릴 때 받는 교육은 참으로 잊혀지지 않는가 보다. 그때 배운 지식들이 아직도 머리 속에 박혀있는 걸 보면. 아니면 자신이 인간이 아닌 용족이라서 그런가? ''뭐, 아무튼 그건 상관없는 일. 배우고 익혀야한다기에 그는 군소리 없이 배우고 익혔다. 그러다 보니 어린나이에 애늙은이 같다는 소리를 듣고 있지만. 그렇게 만든 사람이 누군데 그런 소리를 하는지. ''10살에 황금룡을 승계하자 그에게 자유가 주어졌다. 그전까지는 용족 마을 결계 속에 갇혀 지내야 했다. 그가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그에게 거는 모두의 과도한 기대에 숨이 막혔다. 그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성인이 되어야 했다. 어리광은 통하지 않았다. ''다른 평범한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가서 동요를 부를 때 그는 연주회에 가서 모차르트, 멘델스존, 안익태 등등의 곡들을 들어야했다. 연주회가 끝나면 지휘자에게 가서 정말 멋진 연주였다는 감상의 말도 해야했다. ''지쳐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참 용하지. 스트레스로 아직 미치지 않은 걸 보면 확실히 그는 용족이 맞는 것 같았다. 인간이 아닌 용족! ''황금룡 한얼. 그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하는 호칭이었다. 또래의 친구들과 노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 이름. 청룡관 앞 기념관으로 소풍 오는 아이들을 보며 부러운 내색 짓는 걸 허락 받지 못하는 존재. 그들 틈에 끼여 또래에 맞는 놀이를 같이 하고 싶어도 못하는 존재. 동요도 같이 부르지 못하는 존재. 그는 13년 세월동안 그리 지내왔다. ''간혹 변장을 하고 그들 틈에 끼여 놀지 않았다면 그는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제 성질 가는 대로, 제 마음대로 이 지구의 신수 황금룡을 풀어 지구인들을 공포에 떨게 했을 것이다. ''황금룡. 그를 가두는 족쇄. 황금룡을 받아들인 지 벌써 3년이나 되어가지만 그는 봉인만 했지 황금룡이 가진 그 힘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쓸 수 없었다. 아마 그가 좀더 나이가 들고 힘이 더 생긴다면 황금룡을 자신의 뜻대로 조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먼저 스트레스로 폭주를 하지 않는다면. 한얼을 싱긋 미소를 지었다. 폭주하는 황금룡을 보는 것도 재밌을 것도 같았다. 너무 사악한 생각인가? '그의 갑작스런 미소에 옆에 앉아있던 청룡왕이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한얼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뜻으로 고개를 살짝 저으며 방안을 훑어보았다. ''''''방안엔 그와 청룡왕을 제외하고 10명이 더 있었다. 그의 부모와 작은아버지들과 작은어머니들, 그리고 가라한과 경휘 아저씨. ''그의 부모님과 작은아버지네들은 매 달 한번씩 만나 서로의 친목을 도모한다. 그가 태어나서 황금룡의 계승의식을 받기 전까지는 만나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당시의 한을 풀려는 듯 매달 적어도 한 번은 꼭 만난다. 오늘이 바로 모임날. 오늘은 특별히 그와 청룡왕까지 이 모임에 초대받았다. ''청룡왕 박가림. 한얼은 자신의 옆에 앉아 무심한 얼굴로 차를 마시고 있는 청룡왕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곁에 있어줬던 사람이다. 성역의 수호자인 자신의 다섯 가신 중 한 명으로 부모님과 같이 지낸 시간보다 청룡왕인 그와 같이 지낸 시간이 더 길었다. 오죽 했으면 청룡왕이 자신의 아버진 줄 알았을까. ''갓난아기였던 자신을 돌봐줬던 사람이자 한얼에게 있어서 가장 든든하고 믿음직한 존재인 청룡왕. 그가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그 생각만 해도 오싹 소름이 돋았다. ''아버지인 청룡으로부터 용족의 지배자이자 성역의 수호자 지위를 물려받았을 때 사실 참 막막했었다. 하지만 청룡왕인 가림이 있었기에 지금껏 아무런 사고 없이 꾸려나갈 수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어버린 청룡왕이었다. ''요즘 청룡왕은 무척 바빴다. 지구총사령관으로서의 임무까지 대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인 청룡이 요즘 자신의 모든 권한을 아들인 그에게 넘겨주고 그의 어머니와 제2의 신혼을 즐기겠다는 사악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아들에게 서서히 권력을 이양하겠다나. 물론 그 아들인 자신은 일 할 생각이 요만큼도 없지만. 결과적으로 청룡의 원대한 포부에 희생양인 된 인물이 바로 청룡왕이었다. ''그가 일을 하지 않으니 직속가신인 청룡왕이라도 일을 해야지, 큭큭큭. 놀기에도 바쁜데 일은 무슨 일? ''세상에, 13살짜리 아들에게 지구총사령관의 직위를 물려주려는 아버지가 제정신인가? 물론 아버지 자신은 12살 때부터 이 일을 해왔다고는 하지만 그 당시 상황은 비상시였고 지금은 평화시이지 않은가. 하여튼 못 말릴 노친네라니까. ''한얼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자신의 일을 가림에게 다 맡겼다. 그로 인해 청룡왕의 업무가 폭주했지만, 청룡왕은 싫은 소리 한번 못하고 묵묵히 받아주었다. 그런 청룡왕을 보면서 한얼은 참 믿음직하다고 생각했다. ''한얼은 청룡왕에 대한 주위의 평을 떠올렸다. 냉혹, 냉정, 엄격, 근엄의 화신이라 평가되어지는 청룡왕. 그의 아버지의 젊었을 때의 모습과 완전 판박이라고 하던데, 믿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저 아버지가 청룡왕처럼 저랬다구? 팔푼이 같은 행동만 하는 아버지가 냉혹, 냉정, 엄격, 근엄의 화신이었단 말이지? 믿기지 않아.''아들인 한얼이 보기에도 그의 아버지는 살짝 맛이 간 게 아니라 아주 많이 맛이 갔다. 어머니께 아양떠느라 온갖 푼수 같은 짓을 하고 있는 아버지. '그가 그의 아버지와 직접적으로 만난 것도 10살 황금룡을 승계할 때였다. 그 이후로 그는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사이에 놓고 피 튀기는 혈전을 벌여야 했다. 자기 자식에게까지 반려자가 관심을 갖는 것을 못 보는 용족의 더러운 성질머리 때문이었다. ''누가 용족을 위대한 종족이라 했던가? 위대하긴 뭐가 위대해? 자신의 운명의 상대에겐 눈멀고 귀머는 존재인데. 운명의 상대가 세상을 원한다면 세상을 고이 갖다 바치지만 운명의 상대가 자신 외에 다른 것에 신경을 쓰면 그걸 못 참아 난리를 치는 종족이었다. 용족의 운명의 상대인 사람들, 그것이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용족의 뭣 같은 성질머리에 괴로워한다. 그의 어머니가 괴로워하듯. ''가슴아픈 것은 그도 용족이란 사실이었다. 어머니를 닮아 인간으로 태어나기만 했어도 그가 이런 괴로운 일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통 아이들과 같이 유치원도 가고 초등학교도 가서 해저물때까지 놀았겠지.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유전을 고스란히 이어 용족으로 태어났다. 운명의 상대를 만나지 못하면 늙지도 죽지도 못하는 용족. ''그가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된다면 그 역시 다른 용족과 같이 자신의 반려자를 오롯이 자신의 것만으로 만들기 위해 주위의 모든 것을 파괴할 것이다. 그것이 용족의 세포 유전자에 새겨져 내려온 숙명이었다. ''''''한얼은 시선을 가라한 아저씨에게로 돌렸다. '20대의 준수한 외모를 자랑하고 있는 용족이었다. 어머니와 처음 만났을 때는 40대로 변장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변장을 풀고 지금은 용족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가라한 아저씨는 어찌 보면 변태다. 남 좋은 꼴을 절대 못 보는 변태다. 그는 부모님이 무드를 잡고 있을 때 꼭 나타나 ‘솔로는 외롭다네’, ‘내 운명은 어디에 있을까’, ‘닭살 커플을 추방하자’ 라는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에 꼭 초를 친다. 이전에는 그의 그런 행동에 아버지가 무척 화를 내셨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엔 한 아저씨가 나타나면 더 진한 행동을 해서 ''가라한 아저씨의 염장을 지른다. ''‘니들이 이 맛을 알어?’ ''뭔 뜻이냐구? 그의 아버지 청룡이 운명의 상대자를 만난 용족의 만족감을 숨기지 않고 비웃음과 측은함을 가득 담으며 아직 운명의 상대를 만나지 못한 용족, 가라한에게 이렇게 눈빛으로 말한다. 그 눈길 한 방에 가라한 아저씨는 난리부르스를 춘다. ''아직 운명의 상대를 만나지 못한 그대가 운명의 상대와 함께 하는 이 즐거움과 만족스러운 이 맛을 알기나 해? 이게 정확한 해석이다. ''그의 나이 13살. 아직 어리지만 그 역시 부러웠다. 나이가 많든 적든 운명의 상대를 향한 갈망은 용족인 이상 똑같다. ''내 앞에 운명의 상대가 나타난다면? 그렇다면 그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써서 운명의 상대를 자신의 품에 안을 것이다. ''흠…, 운명의 상대를 찾으러 돌아다녀 볼까? 가만히 앉아 있는다고 만나지는 것이 아니니까 말야. ''이참에 전국일주를…….''''''쪼르르륵.''차를 따르는 소리에 그는 생각을 멈췄다. 그의 비어있는 찻잔에 차를 따라주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서경휘 아저씨. 40대 넘은 중년의 근사한 로맨스 그레이로 중년의 남자를 좋아하는 젊은 여인들의 타깃이 되어 종종 그로 인해 골머리를 앓는 아저씨였다. 또한 그의 아버지의 개인보좌관으로 신기록 달성을 한 사람이기도 했다. 10년 넘게 그의 아버지인 청룡을 보좌하고 있으니. ''아버지를 음으로 양으로 돕고 있는 사람. 아버지가 가장 신뢰하고 있는 인간. 그런 아버지에게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으며 지금도 입고 있는 불쌍한 사람. ''자신이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자 경휘 아저씨는 한 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눈에 의문을 띄웠다. 그런 그를 향해 그는 배시시 웃음을 던졌다. 경휘 아저씨가 왜 라는 입모양을 그렸다. ''“아무 것도 아니에요, 아저씨. 제가 다 마신 것도 몰랐네요. 따라주셔서 감사합니다.”''나직한 속삭임에 경휘 아저씨의 표정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사실 경휘 아저씨는 10년 넘게 보좌관을 해 오면서 몇 차례 사표를 던졌다고 했다. 하지만 그 때마다 그의 어머니의 만류로 사표 수리가 되질 못했다.''“경휘 오빠! 오빠가 사표내면 난 어쩌구? 난 오빠가 없는 거 싫단 말야. 오빠가 계속 곁에 있어 주라, 응? 자기야, 경휘 오빠 사표 수리하면 그 날부터 자기랑 말 한마디도 안 할거야!”''“경휘야, 들었지? 수련이가 싫다고 하잖아! 잔 말 말고 사표봉투 가져가!”''주먹 쥐고 휘두르는 아버지의 설득을 가장한 협박에 경휘 아저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보좌관 일을 계속 할 수밖에 없었다 한다. 요 몇 년간은 경휘 아저씨의 팔푼이 상관의 간악한 농간에 빠져 상관의 일을 상당 부분 아저씨가 처리하고 있었다. ''“경휘야, 수련이랑 용족 마을에 며칠 갔다 올게. 이 서류 부탁해.”''그 며칠이 몇 주가 되면 경휘 아저씨의 허파는 뒤집어 지고 심장은 타 들어간다. 그러면 다시 경휘 아저씨는 사표를 쓴다. 물론 그 사표는 반려가 되고. 악순환의 연속이지. 그러다 보니 우주총사령관으로서의 일은 상당부분 경휘 아저씨 선에서 처리되고 있었다. ''경휘 아저씨의 소원은 황금룡인 자신이 어서 자라 지구총사령관의 직위도 물려받는 거다. 그걸 위해 경휘 아저씨는 황금룡 한얼의 다섯 기둥 중 한 명인 기린을 훈련시키고 있었다. 아니 적룡왕과 백룡왕을 후려쳐 잡고 있다(청룡왕 20세, 적룡왕 16세, 백룡왕 15세, 기린 13세). 잘 키워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과중한 업무를 그들에게 다 떠넘기자. 그게 경휘 아저씨의 소원이다. ''''''한얼은 세 분의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를 둘러보았다. 남자들은 한 쪽에서 쑥덕거리고 있었고, 여자들은 뭐가 좋은지 연신 웃으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주로 육아문제와 주변에 일어났던 이야기들이었다. 수시로 통신을 하면서 무슨 할 말이 저렇게 많을까? ''남자들이 만나지 못했을 때에도 여자들끼리는 만나 우정을 나누었다고 했다. 4명이서 만나 서로의 애로 사항을 나누며 위로를 했다고 한다. 하기야 처한 환경이 특수하다 보니 자연히 동병상련의 슬픔을 나누었겠지. 한 마을의 수장 부인의 역할이 좀 어려웠을라구. 그래도 그의 어머니보단 나았겠지. ''그의 어머니는 어린 나이에 강탈당하듯 시집을 와서(결혼 얘기만 나오면 수련은 이를 갈며 용족 전체에 대해 싸잡아 욕을 퍼부었다) 그를 낳았다. 그리고 그를 키우느라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용족의 지배자이자 성역의 수호자인 그의 아버지 청룡의 아내로서 그의 동등한 파트너 역할이 힘에 많이 부쳤을 것이다. 그런 고통을 내색도 못 하셨겠지. 한얼은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여인들의 웃음소리가 왁자하게 들려왔다. 그 웃음소리에 남자들 모두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그의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들은 자신의 아내를 사랑스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흐뭇한 미소를 띄며 가라한과 경휘 아저씨가 지켜보고 있었다. ''한얼은 전부터 궁금했던 어떤 일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래서 질문을 했다. ''“흑룡 작은아버지?”''그의 부름에 그들 모두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모두의 시선에 조금 부끄러워졌다. ''“왜 그러냐, 한얼?”''곱슬거리는 머리를 짧게 자른 흑룡이 얼굴 가득 미소를 띄었다. 검은 색의 긴 유의 하얀 끝동에는 금방이라도 꿈틀거리며 뛰쳐나올 듯한 흑룡의 모습이 섬세하게 수 놓여져 있었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차분한 눈. 흑룡이 내뿜는 기세를 접하면 언제나 마음이 먼저 가라앉는다. 그런 시린 눈빛으로 흑룡이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전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요?”''“응?”''“저기……, 작은어머니와 어떻게 만나셨어요?”''그의 질문에 갑자기 그들이 조용해지더니 좀 있어 폭발적인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와 청룡왕은 당황했다. 자신의 질문이 그토록 이상한가? 그는 웃음소리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이상한 질문인가요? 왜 다들 웃으시는 거죠?”''웃음기를 가득 머금은 목소리로 흑룡이 말했다. ''“별로 그렇지는 않아. 알고 싶어?”''끄덕 끄덕.''“좋아, 말해 주지. 내가 그 당시 백두산 산 속에 있는 자그마한 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단다. 온천욕으로 온몸에 쌓인 피로를 풀고 나오려 할 때 너의 작은어머니가 불쑥 나타났지. 내 옷을 숨기며 결혼해 주지 않으면 옷을 돌려주지 않겠다고 하더군. 너도 생각해 봐라.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지, 내가 어떻게 알몸으로 흑룡마을로 내려가겠냐?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결혼하겠다고 맹세를 했지.”''선녀와 나무꾼 이야기가 이상하게 바뀐 거 같다? 이거 백두산판 선녀와, 아니지, 선남과 여나무꾼 이야기인가? 그가 흑룡의 말을 듣고 당황할 때 강력한 코웃음이 들려왔다. ''“흥! 뭐? 옷을 숨겨 결혼을 강요했다구요? 순진한 아이 놀리지 말아요, 당신!”''분한 듯 쌍심지를 켜고 있는 작은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그럼 그렇지. 저리 상냥하고 우아한 작은어머니가 아무려면 그랬을라구. 그는 의문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작은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너의 작은아버지 말 믿지마, 한얼. 내가 저 인간 알몸 한 번 본 죄로 요 모양 요 꼴이 되었어. 내가 그 때 길만 잃지 않았어도……. 그 때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린다, 치가 떨려!”''한얼은 더 어리둥절했다. 알몸을 본 죄? 대체 누구의 말이 사실이지?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부모와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리자 흑룡 작은아버지 내외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 웃음에 동참을 했다. 가라한 아저씨는 소파를 부여잡고 웃고 있었고, 경휘 아저씨는 바닥에 주저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고 미친 듯이 키득대고 있었다. ''사건의 진상은 저 제정신이 아닌 듯 웃고 있는 저들만이 알고 있다!''''''제 1 장 그녀의 사정''제 2 장 그의 사정''제 3 장 엽기적인 그녀''제 4 장 전화 vs 화상통화''제 5 장 궤도수정''제 6 장 술(酒)''제 7 장 교활 혹은 순진?''제 8 장 아, 이것이 질투로구나!''간 주 곡 흑룡의 일기''제 9 장 화장실 사건''제 10 장 연인이 되다(?)''제 11 장 화상통화 vs 전화''제 12 장 오해는 오해를 부른다''제 13 장 혼란''제 14 장 자각''제 15 장 사랑과 전쟁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써도 욕 안 들어먹는다?''제 16 장 전화 vs 화상통화''에필로그''외 전''작가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