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시간째.'온몸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은 새끼손가락이 잘린 아픔을 하찮게 만들었다. 태양열을 받아 달아오른 차의 뒤 트렁크는 열 살이라 해도 또래보다 키가 큰 그가 갇혀 있기엔 너무 작은 공간이었다. 도망갈 엄두조차 낼 수 없게 무서웠던 건 트렁크에 갇히기 전이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제발 엄마와 아버지가 그를 구해 주길 기도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어쩌면 죽을 수도 있다고 스스로를 준비시키며, 차가운 물과 신선한 공기만을 원했다. 가물거리는 의식 속에서 살이 썩는 냄새가 났다. 잘려 나간 왼손의 새끼손가락 마디였다. 수화기를 통해 그가 무사한지 알아야겠다고 절규하는 엄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잘린 손가락. 그는 가까스로 힘을 내어 왼손을 움직였지만 잘려 버린 끝마디가 간단한 움직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흐흑.”'그는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렇게 몸의 끝부분부터 서서히 굳어져 결국 죽고 말겠지. 공포가 목을 죄어 왔다.'“엄마, 아빠…… 태진 형, 태경 형. 제발…… 제발…… 나 살려 줘요.”'그의 입에서 울음 섞인 애원이 구슬프게 흘러나왔다.'“나 여기 있어요. 엄마, 나 여기 있어…… 살려 줘요…….”'귓가에 메아리치는 애원을 들으며 태우는 눈을 떴다. '꿈이다. 결코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암흑 속에서 절망하는, 그래서 언제나 그의 평화를 산산이 깨고 마는 꿈이다. 그는 천장을 보고 반듯하게 누운 자세에서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그저 눈만 떴다. 지난 22년 동안 지겹도록 꾸었던 꿈이기에 새삼 놀랍거나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꿈이 남기는 여파는 무시할 수가 없었다. 습기와 땀으로 끈적끈적하게 달라붙는 옷처럼 들러붙어 그를 괴롭혔다.'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은 뒤, 그는 누운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가로 다가가 블라인드를 걷어 버렸다. 그러자 눈부시게 환한 빛이 마구 쏟아져 들어왔다.'“휴…….”'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올려다본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숨 막히게 덥던 한여름이 지나고 풍요로운 여름의 끝자락이 시작되려나 보다. 태우는 잠시 눈을 감고 태양빛을 쬐어 그를 좀먹던 어둠이 사라지게 했다.'이마에 땀이 맺힐 지경이 되어서야 방에서 나온 그는 냉장고에서 생수 한 병을 꺼내 거실 소파에 앉았다. 차가운 물을 마시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늘은 스케줄이 빡빡해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일정을 모두 소화해 내지 못할 수도 있었다. 소파 테이블 위에 놓아둔 다이어리를 보는데 전화벨이 울렸다.'“네."'[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