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르륵. '자동유리문이 열리는 소리에 승표는 읽고 있던 신문을 내려놓고 파티션 너머로 살짝 고개를 들었다. 그 청년이었다. 며칠 전부터 전당포 앞에서 서성거리며 뚫어지게 건물을 바라보던. 건물 바로 앞까지 망설이며 다가왔다가 돌아가기를 반복하고 있던 그 청년이, 오늘은 비장한 각오를 한 듯 주먹을 움켜쥐고 전당포로 들어섰다. '왜 저 청년이 눈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훤칠하게 큰 키에 어울리지 않게 껑충하고 작아 보이는 낡은 코트를 입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청년의 착해 보이는 까만 눈망울 때문이었는지. 긴장한 듯 꽉 쥔 주먹이 추위에 발갛게 얼어있었다.'“어서 오십시오.”'입구에서 들어서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청년에게 미숙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시강은 자신이 상상했던 전당포의 이미지와 너무 다른 공간에 들어서자 건물을 잘못 들어섰나,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두컴컴하고 곰팡내가 퀴퀴한 공간에 쇠 철창이 있고 그 철창 너머로 고약하게 생긴 노파나 노인네가 앉아 있을 줄 알았는데. '전당포 안은 마치 명품매장 같았다. 우윳빛 대리석으로 꾸며진 매장과 화려한 할로겐 조명이 눈부셨다. 한눈에 보아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온갖 명품가방과 보석과 시계들이 백화점처럼 전시되어 있었고 반질거리는 까만 대리석 카운터는 상담고객을 위한 은행의 로우(low)카운터 같았다. 더구나 깔끔한 상아색 유니폼을 입고 인사를 하며 다가오는 여자는 마치 광고에 나오는 항공사 승무원처럼 보였다.'“저, 여기 강남 전당포 맞죠?”'“네. 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날씨가 많이 춥죠? 뭐 따뜻한 음료라도 드릴까요?”'화사한 여자의 미소를 멍하니 바라볼 뿐, 시강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낡은 코트 주머니 위로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며 망설일 뿐이었다.'“오 대리, 강남 경찰서와 서초 경찰서 장물 DB 리스트 정리 좀 해주세요. 여기 손님은 내가 맞을 테니.”'고급스러운 유리파티션 너머로 들려오는 우아한 바리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중년의 남자가 대리석 카운터를 지나 천천히 다가왔다. 미숙은 승표의 갑작스런 등장에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네, 사장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