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그때 사람들이 번식하고, 아름다운 딸들이 태어났다.'' 하늘의 아들인 천사들이 그녀들을 보고 탐을 냈다. 그리고 ‘우리가 내려가서 아내를 맞고, 우리 자녀들을 낳자.’고 말했다. '' 그들의 두목인 세미아자가 ‘너희가 이런 일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나 혼자서라도 큰 죄의 대가를 치루겠다.’고 말했다.'' 그들이 ‘이 계획을 완전히 실현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맹세하고, 저주로 우리를 한데 묶어두자.’라고 말했다. '' 그들이 맹세했고, 저주로 서로 묶었다. '' 그들은 2백 명이었는데, 헤르몬산의 꼭대기인 아르디스로 내려갔다. 그들의 주요 지도자들은 세미아자 이외에도 우라키바, 라미엘, 코카비엘, 타미엘, 다니엘, 에제키엘, 바라키엘, 아사엘, 아르마로스, 바트니엘, 아나넬, 자키엘, 삼시엘, 사르타엘, 투리엘, 요미엘, 아라지엘 등이었다. '' 그들이 각각 여자를 골라서 아내로 삼았다. 그리고 여자들과 몸을 섞고, 부적과 주문을 가르쳐 주었으며, 나무와 뿌리 자르는 것을 보여주었다. '' 여자들이 임신하여 엄청난 거인들을 낳았는데, 거인들의 키는 1천 큐비트(cubit: 고대 이집트나 바빌로니아의 길이의 단위. 1 큐비트가 17～21인치에 해당되며 1천 큐비트는 457미터)나 되었다. '' 거인들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먹을 것을 모조리 먹어버려서, 사람들은 바칠 것이 없었다. 그리고 거인들은 사람들을 잡아먹었다. 그들은 또한 새, 짐승, 파충류, 물고기를 잡아먹었고, 자기들끼리도 잡아먹고 그 피를 마셨다. '' 땅은 그들의 잔인무도함에 불평했다. '' 아자젤이 사람들에게 장검과 단검과 방패와 흉갑의 제조 기술을 가르쳤다. 그리고 팔찌와 장신구들을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눈 화장술과 눈썹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기술도 가르쳤으며, 보석과 보석류와 각종 염료의 선택법도 알려 주었다.'' 그래서 세상이 변했다. 불경스러운 짓과 간음이 범람하고, 사람들이 그릇된 길로 들어서고, 타락했다. '' 그들은 사람들의 파멸을 소리쳤는데, 그 소리가 하늘에 닿았다.'' 가장 높으신 분이 아르시알랄리우르를 라멕의 아들에게 보내서 대홍수를 예언하도록 했다. 그리고 라파엘에게는 아자젤을 묶어서 두다엘에 있는 사막 밑의 암흑 속에 가두라고 지시했다. 또한 가브리엘에게 감시의 천사들이 간음해서 낳은 거인족을 멸망시키라고 지시했다. '' 거인족들이 서로 싸워서 자멸하도록 만들라고 했다. 그들은 영원히 살기를 바라겠지만, 5백년 밖에는 살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그는 또한 미카엘에게 세미아자와 다른 천사들을 묶어서 70세대 동안 땅 속에 가두라고 지시했다.'' - 구약성서 위전 「에녹 제 1서」 중에서'''''''제 1 장 '''''' 아자젤(Azazel)'''' 신의 군대에 의하여 사로잡힌 아자젤은 오리온 좌로 보내진 후 거꾸로 매달리는 형벌을 받았다. 이미 그와 동조했던 다른 천사들은 유폐되었고 이제 남은 것은 오직 그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고분고분하게 신의 처벌에 따를 생각이 전혀 없었을 뿐더러, 오히려 신을 거역하는 마음을 품고 말았다. 아자젤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오는 원망과 억울함과 분노의 불길은 점점 더욱 거세게 활활 타오르며 이미 검게 변한 마음의 색의 농도를 더욱 짙게 만들었다. '' 바로 그 때 신께서 위대한 영광을 품고 태양보다 찬란한 모습으로 나타나시어 아자젤을 바라보셨다. 신의 시선을 느낀 아자젤은 고개를 들어 눈에 원망을 가득 담아 신을 마주보았다. 이미 그에게는 신에 대한 외경심은 사라진 지 오래였으며 남은 것은 원통함뿐이었다. '' 신은 그런 아자젤을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 “아자젤아, 너는 어찌하여 거룩하고 영원한 하늘을 떠나서 사람의 딸들과 잠자고 스스로 몸을 더럽혔으며, 그 여자들을 아내로 삼았느냐? 그리고 왜 사람들이 하듯이 자녀들을 낳았느냐?”'' 아자젤은 신의 분노를 짐작하고 있었으나 이대로 잘못을 시인할 생각은 전혀 없었기에 신의 말씀에 당장 반박하고 나섰다. '' “신이시여, 전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물론 제가 인간과 결혼한 것은 옳은 일이 아니었습니다만 인간들은 저희로 인해 지식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인간들에게 결국 좋은 일이 아닙니까?” '' 신은 아자젤의 말을 들으시자 칼날 같은 분노를 밖으로 드러내셨다. '' “네 어찌 너의 잘못을 모른 채 그런 망발을 입에 담는 것이냐? 보아라, 너희가 저지른 죄악으로 인하여 신음하는 땅과 인간들의 모습을. 그들이 울부짖으며 내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느냐? 이는 감시의 천사들이었던 너와 너의 무리가 인간들에게 사악한 것들을 가르쳐서 일어난 일이다.” '' 아자젤은 신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고 오히려 원독(怨毒)을 가슴 속 깊은 곳에 품고 말았다. 그는 신에게 더욱 대들었다. '' “하지만 저희들은 무지한 인간들에게 지식을 전했습니다. 그것이 어찌 죄가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당신께서 그토록 인간들을 사랑하신다면 그들에게도 지식을 전수해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당신께서는 인간들이 그 지식을 가지고 당신의 전지(全智)를 갖는 것이 두려우셨습니까? 아니면 에덴의 동산에서 지혜의 나무와 같이 자라고 있던 생명의 나무 열매를 인간이 먹는 것을 두려워하신 것입니까? 그렇다면 결국 그것은 당신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하신 것이 아닙니까?” '' “닥쳐라! 넌 아직도 너의 죄를 깨닫지 못하겠느냐? 너희 감시의 천사들은 하늘의 비밀들을 모르고 다만 한 가지 쓸모 없는 비밀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이미 죄로 마음이 완고해진 너희는 이 신비를 인간들에게 가르쳐 주었고 인간들이 지상에 악을 전파한 것이다. 이 모두가 너희의 탓이다.” '' 신의 노여운 음성이 아자젤의 전신에 내리쳤다. 그 분노는 너무나도 엄청나서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숨죽이며 몸을 떨어야 했다. 신의 말씀은 계속 이어졌다. '' “네가 한 일을 보아라. 저 음탕한 짓거리는 너와 너의 무리들이 저지른 짓이다. 그래놓고 그런 궤변으로 누구를 기만하려 드는 것인가?” '' 아자젤의 독기 어린 시선은 아래로 점점 내려앉았으나 내심은 아직도 분함과 억울함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신의 말씀은 아자젤의 그런 심기에도 불구하고 냉랭하기가 서릿발과 같았다.'' “너는 지상의 암흑보다 더 진한 어둠 속에서 네 죄를 뉘우쳐야 할 것이다. 또한 그 흉악한 마음에 걸맞은 모습으로 변하여 그곳에 영원히 매달려 있어야 하리라.” '' 신의 말씀은 그것으로 끝을 맺었으며 그 분은 곧 그 곳을 떠나셨다. 신의 거룩한 모습이 사라진 후 아자젤의 모습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거인보다도 큰 키와 인간과 비슷한 용모를 지니고 과묵한 표정을 짓던 그의 모습은 일곱 개의 뱀 머리와 열 네 개의 얼굴과 일곱 쌍의 날개가 달려 있는 흉측한 괴물의 형상으로 탈바꿈하고 말았다. '' 아자젤은 변화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비탄에 잠겨 울부짖었다. 그는 당당한 신의 천사였으나 더 이상은 아니었다. 그는 천계에 마련된 천사 전용 유폐소인 제5천 마테이(Mathey: 7층으로 이루어진 천계 중에서 죄를 지은 감시의 천사들이 유배당한 곳)에서 황야의 산과 타오르는 불과 함께 영원히 갇히게 된 것이다. 아자젤의 처절한 비명이 공기 중에 멀리 울려 퍼졌다. '' “신이시여, 이럴 수는 없습니다. 당신께서 절 이렇게 버리신다면 저 역시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겁니다. 고귀하던 감시의 천사인 저희들은 이제 타락 천사로 낙인 찍혔으며, 저희의 아내들 역시 마녀로 낙인찍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 다른 이들과 달리 순순히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절대로 이대로 있지 않을 것입니다. 신이시여,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당신의 권능에 흠집을 내고 말 것입니다.”'' 아자젤의 피맺힌 절규가 공기 중에 떠돌며 끝없는 메아리를 형성했다. 그때 아자젤의 전신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악한 검은 그림자가 하나의 구(球)의 형태를 이루며 천천히 접근했다. 그 미지의 존재를 아자젤이 알아채자 그 구에서 너무나도 사악한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목소리가 은근하게 흘러나왔다.'' “그 말이 사실인가, 아자젤? 진실로 지금 한 말에 대해서 맹세할 수 있겠나?”'' 아자젤은 갑자기 들려오는 음성에 놀라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의 몸이 경악으로 인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미지의 침입자의 능력에 대한 공포이기도 했다. '' 누가 감히 이 곳을 자신의 집처럼 드나들 수 있단 말인가? 이곳은 평범한 곳이 아닌 천계였다. 그런 천계를 마음대로 드나들며 이 마테이를 지배하는 천사인 산달폰(Sandalphan)의 예리한 눈을 피할 수 있는 능력자가 과연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아자젤은 흔들리는 마음을 감추며 겨우 입을 떼었다. '' “누구냐? 누가 나의 말을 엿듣는 것이냐? 어서 네 정체를 드러내라!”'' “후후후…, 내가 궁금한가?”'' 놀리는 듯한 그 감미로운 음성에 아자젤은 적잖이 당황하고 말았다. 그런 그의 심기를 알고 있다는 듯 미지의 음성은 말을 이었다. '' “나는 이전에 이미 그 빛나는 권능을 가지고 있던 자…. 빛을 발하는 자란 명칭을 지닌 자이지.” '' 그 음성이 뜻하는 바를 아자젤은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그의 눈가에 파르르 경련이 일었다. '' “루시퍼?”'' 아자젤의 대답에 화답하는 작은 웃음소리가 검은 구 속에서 흘러나왔다. '' “그래, 나를 아는군. 아자젤, 나와 손을 잡지 않겠나? 나나 그대나 이미 타락천사라는 이름으로 추락하지 않았나? 또한 그대와 나의 이름은 신의 거룩한 권능에서 가장 멀어진 이름들이지. 난 이전부터 그대의 그 엄청난 능력을 잘 알고 있었지. 그런 힘의 소유자인 그대가 지닌 능력으로 나와 손을 잡는다면 그대의 복수와 나의 천계 지배가 함께 맞아떨어지지 않겠는가? 어떤가 그대의 생각은?” '' 루시퍼의 음성은 너무나도 유혹적이었고 그의 제안 역시 귀에 솔깃한 것이었으나 아자젤은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그는 루시퍼의 제안을 이것저것 따져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 루시퍼라면…, 그라면…. 그는 천계에 있을 때 신으로부터 가장 사랑 받은 존재였다. 그의 이름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 ‘빛을 내는 자’, ‘새벽의 샛별’이 아닌가? 그것은 그만큼 그의 존재가 드러내는 광휘가 찬란했다는 말과도 같았다. 반면에 또한 그는 황금으로 빛나는 신의 옥좌를 탐낸 천계의 반역자이기도 했다. '' 루시퍼의 지력은 신의 감탄을 자아낼 정도였기에 점점 그의 마음속에서 오만이란 놈이 싹을 틔웠다. 그가 신에게 반기를 들었을 때 천사의 삼분의 일이 루시퍼의 편으로 돌아섰다. 어쩌면 모든 천사를 통솔하던 직책을 가졌던 그였기에 가능한 반역이기도 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아자젤은 생각을 잠시 멈춘 후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 “그게 무슨 말이지? 구체적으로 설명을 들어야겠네. 나와 손을 잡는 것이 당신의 천계 지배와 무슨 연관이 있는가? 물론 나는 당신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알고 있지. 하지만 이미 당신은 신을 반역한 대가로 백년간 유폐되어 있는 몸이 아닌가? 그런 당신과 이렇게 흉한 몰골로 변해버린 내가 도대체 무슨 힘을 낼 수 있다는 말인가?”'' “후후후…, 하하하하.”'' 아자젤의 말이 끝나자 루시퍼의 나른한 웃음소리가 검은 구를 타고 울려 퍼졌다. 그것은 분명 웃음소리였으나 또한 분노이기도 했다. 아자젤은 그 웃음소리 안에서 은근한 살기를 느끼고 급히 입을 다물었다. '' “성질이 매우 급하시군, 아자젤이여. 내가 그대의 복수를 지금 바로 실천하자고 말한 것은 아니네. 그대의 말과 같이 현재 나는 금제(禁制)로 인하여 당장은 이 계획을 실천할 수는 없어. 물론 그대의 의문은 당연한 거야. 하지만 시간은 유구한 것이 아닌가? 난 충분히 기다릴 수 있는 인내를 지니고 있지. 그대 역시 복수가 목적이지 않은가. 신을 상대하려면 보통 힘 가지고는 모자란 것을 잘 알고 있겠지? 내가 그대에게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싶어 지금 머리를 굴리고 있겠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난 그대의 후손을 원하네.” '' “무슨 뜻이지?”'' 아자젤은 루시퍼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감을 잡지 못했다. 자신의 후손이라니? 자신의 후손은 거대한 괴물이 아닌가. 게다가 그들은 이미 제거될 운명을 지니고 있었다. '' 그의 생각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루시퍼의 목소리는 흐르는 물처럼 유연하게 흘러나왔다.'' “그대의 힘을 물려받은 후손들 중 여자 하나를 내게 줄 수 있겠나?” '' 아자젤은 아직 루시퍼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상태였기에 애매하게 답했다. '' “그러나 나의 아이들은 모두가 괴물이야. 그것은 루시퍼 당신도 잘 알지 않나?”'' “쯧쯧쯧.”'' 루시퍼가 딱하다는 듯 혀를 찼다. 그 소리가 묘하게 귀에 거슬린 아자젤은 왠지 자신이 루시퍼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것 같은 불쾌한 느낌이 들었다. 아자젤의 인상이 험악하게 찌푸려진 순간 나긋나긋한 루시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대는 신의 말을 모조리 믿는 것인가? 참으로 어리석군. 그대의 힘을 물려받은 완벽한 후손은 남아 있네. 물론 인간과 천사의 결합은 쉬운 일이 아니지. 그랬기에 대부분이 괴물의 형상으로 태어난 것이지만. 나는 그대의 후손들 중 인간의 모습을 지닌 여인에게서 감시의 천사들의 힘이 잠재해 있는 것을 발견했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그녀는 능력이 불완전해. 지금은 아니지만 세월이 흘러 그녀의 후손들이 계속 번창해 나간다면 그대의 능력을 고스란히 물려받을 인간이 탄생하겠지. 분명 그럴 것임을 난 확신한다네. 나는 바로 그 아이를 원하는 것일세.” '' “그게… 정말인가? 날 놀리려고 하는 말이라면 여기서 그만두게.”'' 아자젤은 루시퍼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그들 감시의 천사들의 후손은 이미 신의 군대에 의하여 제거된 지 오래였다. 그가 알고 있는 사실과 상반된 루시퍼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자젤은 난감했다. 그의 의문을 비웃듯 루시퍼의 조용한 목소리가 아자젤의 머리를 강타했다. '' “역시 그대는 모르고 있었군. 그대의 완벽한 능력을 이어받을 혈손은 이미 내가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켜 놓았지. 당연하게도 그 가증스런 천사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멀고도 후미진 곳으로…. 또 그들을 나만이 알아볼 수 있도록 자네의 후손이라는 흔적을 모조리 지워 없애버렸지. 자, 이제 어쩔 것인가? 선택을 하게. 이대로 신이 내리는 형벌을 받으며 솟구치는 분노를 가슴속에서만 키울 것인가? 아니면 나와 함께 손을 잡고 그대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신에게 복수할 것인가? 아자젤, 그대가 후자를 택한다면 그대에게는 신에게 복수 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며, 또한 그대의 후손은 나의 옆자리에 앉아 나와 더불어 온 세상을 지배하게 되겠지.” '' “흠…….”'' 한 가닥 신음성이 아자젤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그 역시 신을 거역했기 때문에 이렇게 처량한 신세로 전락하지 않았던가? 이미 한번 쓴맛을 본 그로서는 쉽게 결정을 내리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시퍼의 제안은 마치 금단의 붉은 열매처럼 그의 마음을 유혹했다.'' 아자젤은 조용히 결정을 기다리는 루시퍼를 보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사실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결정은 이미 나 있었다. '' “루시퍼여, 어찌하여 나의 후손을 바라는 것인가?”'' “내 의도를 의심하고 있는 것인가, 아자젤? 난 그대에게 속인 것이 없다.” '' 아자젤은 대꾸하지 않았다. 사실 진정으로 그를 망설이게 하는 것은 바로 저 루시퍼였다. 그 속을 알 수 없는 자. 보면 볼수록 수렁을 헤매는 기분에 사로잡히게 하는 불길한 자. 루시퍼는 아자젤의 침묵이 가져온 진정한 뜻을 이해하는 듯 했다. 그리고 곧 아자젤의 그런 불안을 해소시켜 주었다. '' “아자젤, 그대는 날 믿지 않는군. 좋아, 사실을 말 해 주겠네. 내가 그대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이유는 바로 그대가 감시의 천사들의 수장(首長) 중 하나라는 사실 때문이지. 감시의 천사들이 어떤 존재들인가? 일반적으로 신을 받드는 천사들과는 달리 그대들은 인간세계에 동화되어 육화(肉化)된 몸을 가지게 되었지. 그랬기에 인간의 딸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 아닌가? 그렇게 태어난 그대의 후손에게는 무한한 힘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그대는 아는가? 그 힘과 나의 능력이 합해진다면 엄청난 위력이 발생할 것이야. 이제 알겠나?”'' 아자젤은 비로소 루시퍼의 진정한 꿍꿍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알고 난 그에게는 선택만이 남은 것이다. 아자젤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결론을 내렸다. 자신의 염원을 이룰 수 있다면, 복수를 할 수 있다면 저 악의 제왕 루시퍼와도 손을 잡을 수 있음을. '' “좋아, 루시퍼. 내 당신의 말대로 하지.” '' “그렇다면 그대와 나의 약속은 정해진 것이다. 이는 번복할 수 없는 계약이라는 것을 잊지 말도록, 아자젤이여. 그대는 이 곳에서 고통을 받겠지만 그대의 후손에 의하여 난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이며 그대의 복수 역시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은 시간이 필요한 것! 그러니 기다리게. 인내의 열매는 달콤한 과즙을 품고 자네를 맞이할 것이 틀림없으니. 때가 되면 우리의 꿈을 맘껏 실현 할 수 있을 것이야.” '' 루시퍼가 말을 마치자 검은 구 속에서 찬란한 광선이 아자젤의 전신을 감쌌다. 아자젤의 전신에 서린 광선이 사라질 무렵 루시퍼는 그곳에서 사라졌다. 단 한마디의 메아리만을 남긴 채.'' “그대와 나의 약속은 정해졌다. 이제 기다리는 일만이 남았을 뿐…….” '' 아자젤은 매달린 채 힘겹게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보았다. 검은 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 “크하하하하하하하하.”'' 아자젤은 매달린 채로 광소를 터뜨렸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루시퍼의 말과 같이 기다림뿐이었다. 오직 기다림만이 복수에 목마른 그의 갈증을 해갈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