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님, 황실에서 기별이…….”'“…….”'“저어, 공주님께서 걱정을 하십니다. 위중하신 건 아닌지…….”'“…….”' 샤를로즈 발렌티노 공작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평소라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야 할 시간에도 공작은 입을 다문 채 공허한 눈동자로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리도 카리스마를 풍기고 싸가지를 부리며 있는 대로 존재감을 흘렸던 발렌티노 공작은 마치 딴사람처럼 변해있었다.'' 6개월. 지난 6개월은 정말로 악몽이었다.'발렌티노 공작가의 하인들은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리는 기억을 지우기 위해 저마다 고개를 흔들고는 각자의 일에 몰두했다. 하지만 그들은 내심 저렇게 무기력한 공작을 보느니 차라리 예전 같은 살벌한 욕설이나 듣는데 낫다는 생각까지 했다.'' 처음 넉 달은 긴장의 연속이었다.'공작은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성난 야수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렇게 일이 밀려있는데도 어딜 그렇게 나다니는지 외박을 밥 먹듯이 하며 집 없는 아이처럼 여기저기를 수소문하고 다녔다.' 제국공주의 생일파티에서 들려오는 소문으로 보아 약혼녀가 생겼다던데 하인들은 금시초문이었다. 그런데 그 얼굴도 모르고 존재도 몰랐던 약혼녀는 바로 다음날 실종되었다. 성질 더럽기로 소문난 공작에게 약혼녀가 있는 것만도 놀랄 일인데 그 행방까지 묘연해 발렌티노 공작가는 피가 마르는 긴장감에 휩싸여 다들 공작의 심기를 건드릴까봐 전전긍긍했다.'' 다섯 달째는 공작의 광기가 빛이 났던 달이었다.'공작은 머리도 빗지 않고 씻지도 않고 옷도 잘 갈아입지 않은 채 미친 사람처럼 칼질만 했다.' 사업이 개판이 되던 황실에서 사람이 와서 부르던 집사가 걱정하던 신경도 안 쓰고 하루 종일 녹초가 될 정도로 검만 휘둘렀다.' 무의미한 칼질이었다.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 연습했을 때의 성장이 무색하게 하루 종일 검을 쓰는데도 도무지 나아지지 않는다며 저건 단순히 화풀이에 불과하다고 공작의 검술스승인 호위가 말했다.' 그렇게 한달을 공작은 광기에 차서 검만 붙잡고 있다가 저녁이 되면 지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얼굴은 윤기라고는 하나도 없고 말라서 광대뼈가 보일 정도였다. 그리 독하게 몸을 굴렸으니 살이 안 빠지고 배기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