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믿을 리 없는 일이었으나 그것은 진실이었다. 나와 란은 친구였다. 사는 세계도, 시간도 달랐지만 시공을 초월해서 우리는 친구였다. 눈을 감고 잠에 들면, 그녀는 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확연히 이 세계의 것이 아닌 의상을 입고. 처음에는 인형인 줄 알았다. 그녀는 그렇게 아름다웠고, 또 이질적이었다. '어떠한 이유에서 꿈속에서 만나게 되는지는 몰랐으나, 우리는 열 살 때부터 밤마다 서로를 보게 되었다. 그녀는 아란티아 대륙의 아란티아 제국이라는 나라에서 살고 있었고, 나는 지구의 한국에서 살고 있었다. 그녀는 귀족이었고, 나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소시민이었다. 그녀의 세계에는 마법사와 기사, 황제가 존재했지만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는 과학자와 무도가, 그리고 대통령이 존재했다. '란의 세계는 유럽의 중세시대를 닮아있었다. 그녀는 귀족답게 꿈속에서도 언제나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매일 꿈속에서 만나는 우리는 잠들기 전까지 서로에게 있었던 일들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15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서로의 하루를 가감 없이 주고받았으니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었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혈연인 가족보다도 친밀했다. 가족에게 할 수 없는 말도 서로에게는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서로가 다른 세계에 있었기에, 같은 세계에서 살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솔직함이었다. 란은 곧 아란티아 대륙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나였고, 나는 지구에 존재하는 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