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아이돌 18권
신의 아이돌 18권
신의 아이돌
18
박굘
신의 아이돌 18권
차례
Chapter 01. 보고 싶었어, 서강우.
Chapter 02. 사랑은 피고 또 지는 타 버리는 불꽃 - 1
신의 아이돌 18권
Chapter 01. 보고 싶었어, 서강우.
[안녕하세요! 데일리 연예 뉴스 시청자 여러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아기자기한 핑크빛 소품들로 꾸며진 거실. 벽걸이 TV에서 잔뜩 흥분한 여자 진행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핑크색 고양이가 그려진 천이 덮인 소파 위에는 한눈에 보아도 범상치 않은 자태의 소녀(?)들이 고양이들인 양 뒤엉켜 있었다.
[그럼 시청자 여러분들께 힌트를 드리겠습니다!]
TV 속 여자 진행자는 높은 텐션만큼이나 얼굴부터 목까지 발갛게 물이 들어 있었다. 대체 무슨 소식이길래 이렇게까지 들떠 있는 것일까? 고양이들처럼 널브러져 있는 소녀들의 시선이 TV 화면으로 향했다.
[자…! 그럼 보시겠습니다!]
여자 진행자의 과장된 손짓과 함께 VCR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유명 SF 영화에서 따온 웅장한 배경음은 덤이었다.
202X 빌보드 뮤직어워드 톱 듀오&그룹
202X 빌보드 뮤직어워드 톱 소셜 아티스트상
202X 빌보드 뮤직어워드 톱 셀링 송상
202X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올해의 투어상
202X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페이보릿 소셜 아티스트
202X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팝/록 그룹 부분
3년 연속 수상.
검은색 배경 화면으로 하얀색 자막들이 줄지어 올라갔다 사라지기를 잠시, 다시 여자 진행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시청자 여러분들 보고 계시죠? 그러면 다음 수상 내역도 살펴볼까요?]
202X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레코드
202X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
202X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노래
202X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뉴 아티스트
202X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202X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월드 뮤직 앨범
[네! 그렇습니다! 시청자 여러분들께서 보셨듯이 이 믿기지 않는 수상 내역을 기록한 5명의 청년들이 있는데요! 바로 우리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건실한 청년들! 신아입니다! 한국 시각으로 이틀 전, 신아는 미국 진출 3년여 만에 그래미 어워드에서 무려 6개 부분을 석권하는 기염을 토해 냈는데요…! 이는 유색 인종 차별 논란으로 뜨거웠던 그래미 어워드에서 이루어 낸 쾌거로 우리 대한민국을 비롯한 전 세계 음악 팬들의 큰 열광과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TV 화면 속 여자 진행자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와아…? 이제 신아는 월클이라는 표현도 부족한 것 같아.”
동그란 얼굴에 순한 눈매, 그리고 커다란 안경의 오수정이 질렸다는 듯 중얼거렸다. 3년 전 미국에 진출을 선언한 ‘신아’는 첫해부터 파란을 일으키다 못해 근 3년여간 전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올해에는 유색 인종의 무덤이라 불리는 그래미 어워드마저 점령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신아’의 위상은 단순히 수상 내역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최근에 발표한 신곡 ‘파라노이드’가 신아의 공식 활동 종료 선언 이후에도 연일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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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기록 파괴자라 불려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아이스크림 먹을 사람…?”
문득 주방 쪽에서 중성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초함과 보이시한 매력을 모두 갖춘 성희연이었다. 매끈하고 기다란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 나오던 성희연이 소파에 누워 있는, 둘도 없는 친구이자 앙숙을 발견한 즉시 주저 없이 허리 쪽으로 사뿐하게 안착했다.
“윽….”
“응? 이게 끝인 거야? 지금?”
반응이 영 미지근했다. 평소였다면 눈을 치켜뜨고 간지럼을 태우든, 아니면 역으로 공격하든 전투적으로 나왔을 텐데, 둘도 없는 친구이자 앙숙은 세상을 잃은 듯한 권태로운 표정을 머금고 있었다.
“너 어디 아픈 거야?”
무설탕 아이스크림을 내려놓은 성희연이 살짝 진지한 얼굴을 했다. 그러고는 친구이자 앙숙을 살펴보았다.
친구이자 앙숙의 정체는 바로 ‘소녀혁명’의 센터이자 국민 여동생으로 불리는 신비, 그러니까 신지혜였다.
“왱…?”
“가만있어 보라니까?”
성희연의 두 손이 신비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화장기 없는 생얼이었지만 친구이자 앙숙은 같은 여자가 보아도 참 예뻤다. 어떻게 보면 청순하기도 했고 또 어떻게 보면 요염하기도 했고 또 한편으론 귀엽고 깜찍스럽기도 했다. 자칭 팔색조라는 표현이 과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고양이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버린 친구이자 앙숙, 신지혜는 요즘 의욕도 없어졌고 패기도 사라져 버렸다. 본래 톡톡 쏘는 길고양이 같은 매력이 포인트였는데, 꼭 살찌고 게을러진 고양이 같다고나 할까? 아무튼 요즘 여러모로 이상했다.
“아니지. 신지혜, 넌 늘 이상하긴 했었어.”
“야…? 성희연? 죽을래? 냥냥 펀치 한번 맞아 볼래?”
꿈틀꿈틀, 신비가 허리를 차지하고 있던 성희연을 소파 옆자리로 밀어 냈다. 그러곤 두 주먹을 굳게 쥐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에휴. 재미없어….”
신비가 굳게 쥐고 있던 주먹을 내려놓더니 다시 축, 늘어졌다. 그 모습에 성희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것 봐. 너 진짜 이상해.”
“맞아! 이상해!”
“우리 지혜 이상해!”
옆에서 성희연의 무설탕 아이스크림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쌍둥이 자매 카나와 히나도 근심 가득한 얼굴을 했다. 요즘 신비가 풀이 죽어 있으니 통 재밌는 일들이 없었다.
그때였다.
거실 벽에 걸려 있는 TV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한 ‘신아’ 멤버들의 기자회견 영상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늘 그렇듯 이번 입국 기자회견에서도 올 블랙 슈트 차림을 한 신아 멤버들은 수많은 취재진들과 ‘신소’들 사이에 파묻혀 있었다.
“니 남친 나온다. 신지혜.”
성희연이 신비를 불렀다.
“웅?”
신비의 고개가 물끄러미 TV로 향했다. 이윽고 TV 화면으로 ‘신아’의 센터이자 천재 프로듀서라 불리는 케이의 얼굴이 잡혔다.
[핫 매거진에서 나왔습니다! 케이 씨! 세계 활동을 끝내고 6개월 만에 한국으로 입국을 하셨습니다…!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들이 있으시면요?]
[뭐… 집에 가서 도순 씨가 해 주는 저녁밥 좀 먹고… 잠 좀 푹 자고 싶은데요.]
기자회견장으로 웃음이 터졌다. 세계적인 보이 그룹의 핵심 멤버이자 천재 아티스트치곤 소박하기 그지없는 희망 사항이었다.
[혹시… 신비 양과의 데이트 계획도 있으십니까?]
꺄아아! 와아아! 기자회견장으로 ‘신소’들의 비명과 함께 시민들의 환호성이 동시에 터졌다.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큰 관심과 인기를 모으고 있는 커플이 바로 ‘신아’의 케이와 ‘소녀혁명’의 신비 커플이었다.
각각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남돌, 여돌 그룹으로서 그 인기와 팬덤의 규모는 세계적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 두 그룹의 핵심 센터 멤버들이 3년 넘게 열애를 이어 오고 있었으니 당연히 전 세계적으로 관심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아아아! 사방에서 안타까움의 탄식이 쏟아졌다. 취재진들도 안타깝다는 듯 애꿎은 카메라만 만지작거렸다.
[…….]
그러거나 말거나 TV 화면 속 케이는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강우는 참 변함이 없네.”
“그러니까, 희연아.”
성희연과 오수정도 TV 속 케이를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예나 지금이나 서강우라는 남자는 한결같았다. 무감정하면서도 오만해 보이는 표정. 그리고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사고까지.
그사이 특집으로 구성된 데일리 연예 뉴스가 끝이 났다. 삑. 성희연이 TV를 껐다.
“신지혜, 니 남친은 아직도 연락 없어?”
“희, 희연아?”
성희연의 돌직구에 오수정이 당혹스러워하며 신비의 눈치를 봤다.
“딸꾹…!”
성희연의 무설탕 아이스크림을 반 통 가까이 비워 낸 쌍둥이 자매들도 얼어붙은 분위기에 딸꾹질을 했다. 그러더니 오수정처럼 신비의 눈치를 살폈다.
“몰라…!”
뾰로통한 얼굴을 하곤 신비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서강우: 대충 공항 사진]
[신비님: 우왕…! ㅈㅁㅌ! 멋있엉! ♥♥♥]
[서강우: 며칠 걸릴 거야. 연락할게.]
[신비님: 웅웅! 아라써! 기다릴겡!]
[서강우: ㅇㅇ]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한 이후 둘 사이에 오간 코코넛 톡은 이게 끝이었다.
“강우 말이야, 사랑이 식은 거지? 그렇지?”
신비가 시무룩한 얼굴을 하곤 ‘소녀혁명’ 멤버들에게 물었다. 한국으로 귀국한 지 어언 4일째. 이 코코넛 톡 이후로 강우로부터의 연락은 없었다.
“이젠 그냥 쉬고 싶은 건가 봐. 그치?”
“3년이나 만났으면 그 정도도 대단한 거 아니야? 듣기로 신아는 하루에 두 시간도 못 잔다는데? 좀 쉴 수도 있지. 네가 이해해. 신지혜.”
성희연은 최대한 좋게 좋게 포장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성희연이 생각하기에도 6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4일 동안이나 연락이 없다는 건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 난 강우가 사랑이 식은 게 아니라고 생각해.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지혜야?”
반면 오수정은 생각이 달랐다. 다른 남자라면 몰라도 오수정이 아는 강우는 여자라면 신비밖에 몰랐다. 무엇보다 서강우란 남자는 애초에 변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 네가 만나든가, 뭐.”
신비가 볼을 부풀렸다.
“그럴까? 지혜야?”
오수정이 흘러내린 안경을 고쳐 쓰며 의미심장한 얼굴을 했다.
“아, 안 돼! 서강우는 내 거야!”
오수정의 장난에 신비가 발끈했다. 그 모습에 성희연이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에휴… 내가 이래서 연애를 안 해. 혼자면 외롭고 둘이면 빡친다는 말이 딱이라니까?”
“우리 강우는 나 빡치게 안 하거든?”
“와아? 너 뭐야? 서운해할 땐 언제고 또 이제 지 남친이라고 편을 드네?”
성희연이 따지자 신비가 민망한 듯 헤헤 웃기 시작했다.
“그럼 어떻게 해? 나라도 편을 들어 줘야지?”
“열녀 나셨네. 열녀 나셨어.”
성희연도 그냥 웃고 말았다.
“에구….”
그사이 신비가 다시 소파에 드러누웠다. 기운 하나 없이 널브러진 꼴이 꼭 쫄딱 비를 맞은 고양이 같아 오수정은 작게 웃었다.
그때였다. 코코넛 톡…! 코코넛 톡…! 핸드폰 알림이 연신 거실로 울려 퍼졌다.
“앗…! 코코넛 톡 왔당!”
그 순간 빛의 속도로 신비가 자세를 바로 했다.
“누구야? 강우야?”
오수정이 슬쩍 물었고.
“강우! 강우!”
“강우야!”
쌍둥이 자매도 신이 났다.
“보, 볼게.”
“이게 뭐라고 떠는 건데?”
성희연은 어이가 없었다. 뒤이어 핸드폰을 확인한 신비의 양 볼에 보조개가 피어올랐다.
“헤헤… 헤헤…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