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 공작님이 내게 너무 다정하다 4권
살인마 공작님이 내게 너무 다정하다 4권
살인마 공작님이 내게 너무 다정하다
4
일리아나함
살인마 공작님이 내게 너무 다정하다 4권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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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 공작님이 내게 너무 다정하다 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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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도 읽어도 통쾌하네. 이렇게 사이다일 수가 있다니.”
다 읽은 신문을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자고 일어나니 칼리스 공작은 범인이 아니었다는 기사가 대서특필 되어 전 공작령에 뿌려졌다.
칼릭스 공작이 비밀 방으로 가져다준 기사를 몇 번이고 읽은 후 그 부분을 가위로 오려 서랍에 잘 넣어 두었다. 어쩐지 기록으로 남겨 두고 싶어서.
기분 좋게 비밀 방에서 나가자 개들에게 간식을 챙겨 주는 칼릭스 공작이 보였다.
“마침 오늘이죠?”
“네. 텔레포트로 오면 금방이니 곧 올 거예요.”
재판 다음 날이라 조금 이른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오늘은 드디어 마탑에서 사람이 나오는 날이었다.
기대된다. 마탑에 있는 마법사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왠지 흰 수염을 길게 기른 할아버지 마법사가 생각났다. 커다란 지팡이나 마법 봉을 한 손에 들고 주문을 외우는 모습도 함께.
기분 좋게 칼릭스 공작과 평소처럼 식사와 산책까지 마치고 나니, 마탑에서 사람이 와서 대응접실로 모셨다고 시종이 알렸다.
“내려갈까요?”
“네.”
칼릭스 공작과 세 개들과 함께 대응접실로 내려갔다. 응접실 안에는 내 예상과는 다른, 젊고 잘생긴 남자 마법사 하나와 어리고 차분해 보이는 여자 마법사 둘이 함께였다.
은발이라니 다른 의미로 신비롭다. 은발에 금안을 한 남자를 보며 생각했다. 마법사여서 그런지 분위기 자체가 남다르다고.
“공작님을 뵙습니다. 마탑주 제프리 이아르입니다.”
앉아 있던 은발 남자가 우릴 보고 일어나 인사하며 말했다.
“칼릭스 피츠앨러딘 공작입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쪽은 제 주치의 엘레나 뷰클러트 님입니다.”
“안녕하세요. 엘레나 뷰클러트입니다.”
“반갑습니다.”
칼릭스 공작의 소개에 따라 인사하자 마탑주가 마주 웃어 주며 인사했다. 마탑의 권력이 신전과 비슷하다고 하니 칼릭스 공작이 존칭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보다 오늘 안구 복지 최고다…. 앞과 옆에 최고 미남이 자리하고 있으니 얼빠인 나에게 이보다 더 좋은 복지는 없었다. 눈이 너무 행복해. 표정 관리를 하는 게 쉽진 않았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자리에 앉은 후 칼릭스 공작이 제프리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쭉 얘기했다.
“호오, 그러니까 여기 계신 엘레나 님이 알레르기인가 뭔가 하는 병에 대한 약을 만들었다는 건가요?”
이야기를 다 들은 제프리는 흑마법사가 아닌 내 이야기에 흥미를 보였다.
“네, 그렇습니다.”
“엄청난 능력이네요. 나중에 같이 약 개발을 해 보고 싶어요.”
제프리가 내게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엥, 그렇게 대단하다고?
신약을 만드는 게 쉽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전생에서도 늘 약을 연구하고 만드는 게 직업이었던 만큼, 그렇게 내세울 만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법적 특수 효과를 약에 인용하면 엄청난 물건이 나올 것 같습니다. 혹시 관심 있으신가요?”
“네? 아, 관심이 없는 건 아닌데…….”
“그럼 언제든 편할 때 마탑으로 와 주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마탑주님, 공작성에 오신 이유를 잊으신 겁니까.”
마탑주의 친절한 말에 칼릭스 공작이 정색하며 끼어들었다.
오, 공작님 주치의 뺏길까 봐 그러신가 봐.
나를 두고 고용 경쟁을 벌이려는 두 사람의 대치는 꽤 흥미진진했다. 이참에 연봉이나 더 올랐으면 싶었고.
“아, 그렇죠. 알고 있습니다. 다만 워낙 유능한 인재를 발견하니 신이 나서 그만. 그 흑마법사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저희가 직접 보고 흑마법사가 맞는지 판단한 후 결정하겠습니다.”
“따라오십시오.”
칼릭스 공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머지 사람도 우르르 일어나 그의 뒤를 따라 응접실을 나섰다.
지하로 내려가자 이미 팔 한쪽이 거의 다 마른 남자가 힘없이 갇혀 있었다. 그간 진통과 항염 효과가 있는 약재를 먹여 왔지만 팔은 나아지지 않았다. 다른 자잘한 외상만 좋아졌을 뿐.
“냄새가 엄청나네요.”
“남자의 팔에서 나는 냄새예요.”
제프리와 다른 두 마법사가 소맷단으로 코를 가렸다. 나 역시 몹시 속이 역했지만 그간 계속 들락거려서 그런지 처음보다는 참을 수 있었다.
칼릭스 공작이 감옥의 철창을 열었고, 세 마법사가 들어가 남자를 자세히 살폈다.
그들은 남자의 마른 팔을 다른 곳보다 더욱 유심히 보았다.
“힐(Heal)”
제프리가 주문을 외우자 남자의 마른 팔 위로 밝은 빛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팔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밝은 빛은 흡수되어 사라지기만 했다.
“흑마법이 맞군요. 증상을 보아 아마도 해당 흑마법을 새긴 마법사와 연결이 끊기면 마르기 시작하다가 죽는 것 같습니다.”
“역시 진범이 정상은 아니군요.”
“보통 놈은 아닐 것 같습니다. 애초에 평범한 사람은 이런 생각 자체를 하지 않으니까요.”
“나중에라도 이 흑마법을 없앨 수 있습니까?”
“팔이 마르기 전이라면 아예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다만 저 정도의 고위 마법사는 돼야 할 겁니다.”
“그렇군요.”
제프리의 말에 칼릭스 공작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입한 상단 직원 괜찮을까. 여전히 잠입해 활동하고 있는 펜파니 상단 직원이 걱정되었다.
“이자는 마탑에서 데려가 처리하겠습니다. 당장 데려가도 괜찮으신지요.”
“네, 괜찮습니다.”
“그럼 구속 마법 시행 후 데려가도록 하겠습니다.”
제프리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세 마법사가 영창을 외웠다. 남자는 괴로워 보였지만 비명 지를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럼 엘레나 님, 언제든 마탑에 오시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가십시오, 마탑주님.”
마탑주는 공작성을 나서는 마지막까지 내게 당부했고, 나 역시 그의 제안이 나쁘지 않아 보여 굳이 거절까진 하지 않았다. 칼릭스 공작이 내게 뭘 물을지도 예상하지 못하고.
배웅을 마치고 돌아서는 찰나였다.
“정말 마탑에 가실 생각이에요, 엘레나 님? 날 두고?”
칼릭스 공작이 뒤에서 날 향해 물었다.
‘날 두고’라니, 마탑에 가게 되면 당연히 혼자 가지 공작님과 같이 갈 수는 없지 않나?
주치의를 뺏기는 게 그렇게까지 겁날 일인가 싶었다. 어차피 가더라도 약 만드는 방법은 인수인계하고 갈 텐데 뭐가 문제지 싶어서.
그래도 뭐, 아직 확정된 건 아니니까. 지금은 당장 눈앞의 고용주에게 잘 보여야 할 때였다.
“당연히 아니죠. 적어도 아직까지는요.”
“그 말은 언젠가는 떠날 거라는 것처럼 들려요.”
칼릭스 공작이 살짝 미소 지은 채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 모습이 쓸쓸해 보였다면 기분 탓일까.
하지만 뭐, 우리가 평생 함께할 사이는 아니니.
“늙어 죽을 때까지 공작성에서 일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어차피 은퇴는 언젠가 해야 하는 거니까.
“마탑도 대우가 나쁘진 않을 것 같기도 하고요.”
“만약 내가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갈 거예요?”
“…….”
아까부터 왜 저러시지. 질척대는 전남친도 아니고. 치료제로 인해 나름 구원자가 되어 버린 걸까. 그래서 저러시나?
“상황에 따라 다를 거 같아요. 우선은 진범을 잡는 게 먼저지 않을까요? 아직 먼 미래까지 생각할 겨를은 없는걸요.”
“그건 그렇죠. 들어갈까요?”
“넵.”
어색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칼릭스 공작은 평소처럼 웃으며 대답했다.
함께 방으로 돌아오니 잠입했던 직원한테서 편지가 와 있었다.
편지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잠입했던 두 사람 중 한 명은 들켜서 죽었고, 남은 한 명은 저주술을 몸에 새기고 간신히 살아남았다고 했다.
“어쩌죠? 이대로 계속 잠입해 있어도 괜찮은 걸까요?”
“이제 와서 그런 걸 논하기엔 이미 늦은 것 같습니다. 저주술을 없애는 건 교주를 잡고 마탑 측에 의뢰를 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하루라도 빨리 잡아야 할 텐데…….”
절로 마음이 조급해져 방 안을 서성였다. 칼릭스 공작이 다 읽은 편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쪽에서도 서두르는 낌새가 보인다고 하니 뭔가 일이 일어날 것 같군요.”
“이미 제가 죽지 않은 것부터 일이 틀어졌으니 지금쯤 교주는 아마 엄청 화가 나 있겠죠?”
“아마도요. 과거에 희생자가 6명이었던 걸 생각하면 곧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를 계획인지도 몰라요.”
“남자가 심장이랑 보석, 피가 필요하다고 했죠? 그럼 심장 6개가 필요한 걸까요?”
“어쩌면요.”
“보석은 알겠는데 그럼 피는 뭘까요? 헌혈이라도 한다는 건가.”
다른 건 다 알겠다. 하지만 피를 어떻게 구하는 건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잠입한 직원이 쓴 보고서는 너무 한정적이야. 어차피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을 텐데.
“우리가 직접 잠입하는 건 어때요? 상단 직원이 교단의 위치는 알잖아요.”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교주를 잡으려면 어쩔 수 없잖아요. 어차피 한 번은 부딪쳐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교주가 공작성으로 신도를 이끌고 쳐들어오진 않을 것 같구요.”
“…….”
내 말에 칼릭스 공작은 생각에 잠겼다. 그의 입이 다시 열린 것은 한참 후였다.
“일단 필요한 물건 준비부터 할게요. 마탑이 돈 좀 벌겠군요.”
“뭘 얼마나 사시려구요?”
“그냥 필요한 만큼이요.”
칼릭스 공작은 웃으며 대답했지만 난 알 수 있었다. 저 필요한 만큼은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것이라는 걸.
에휴, 자기 돈 자기가 쓰겠다는데 누가 뭐라 할 수 있겠어.
고개를 젓곤 다시 흑마법 책을 집어 들었다.
* * *
어두운 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의자에 앉아 있는 교주가 가면 속에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샤를로 성도, 앞으로 나오세요.”
그러자 사람 속에 섞여 숨어 있던 샤를로가 앞으로 조용히 걸어 나왔다.
홀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숨 막힐 듯 조용했다. 그 누구도 작은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교주는 제 앞에 선 샤를로를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짐짓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다.
“최근 프랑켄과 계속 연락이 되지 않는데 혹시 이유를 알고 있나요?”
“……아, 아니요.”
“왜 모르지요? 그와 연인 관계인 데다가 같이 살고 있잖아요?”
“그게… 저도 모, 모르겠어요. 교단에 간다고 나간 이후로 돌아오지 않아서.”
샤를로의 목소리가 염소처럼 떨렸다. 잔뜩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찾아보기는 했고요?”
“틈날 때마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찾았는데 어디에도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