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임신입니다.”''의사의 말이 아득하게 들려왔다. 산부인과에 올 때까지만 해도 설마하며 그렇지 않기를 바랐었는데. ‘임신’ 이라는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은영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생리가 예정일을 지나도 소식이 없을 때도, 약국에서 산 임신테스트기에서 양성반응이 나왔을 때도, 은영은 아닐 거라며 고개를 저었지만, 병원에 와서 확인한 이상 더 이상 피할 곳은 없었다. ''“내가 보기에는 학생인 것 같은데, 수술하실 건가요? 수술하려면 보호자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부모님께 말할 수 있겠어요?”''다정한 인상의 의사는 아무래도 그녀를 고등학생으로 보는 듯했다. 누가 보기에도 그녀의 모습은 고등학생 이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어깨너머로 내려오는 긴 생머리에 목이 올라오는 티셔츠, 그리고 짙은 회색의 카디건.''하지만 은영은 의사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은영은 그저 창밖으로 떨어지는 눈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봐요 ! 유은영 씨!” ''의사가 크게 소리치자 은영은 힘없는 표정으로 의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벌써 9주째 접어들었어요. 지금 시기 놓치면 수술도 힘듭니다. 아직 어린 것 같은데.”''의사의 말이 다 끝나기 전에 은영은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 그에게 찾아가서 내가 임신했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은영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에게 임신 사실을 알릴 수는 없었다. 병원을 나서는 은영의 어깨는 힘 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은영은 한 달 전 그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돈으로 마련한 지하 전셋집으로 발길을 옮겼다.''방은 너무 추웠다. 오히려 눈 내리는 바깥이 오히려 따뜻한 것 같았다. 은영은 코트를 입은 채로 이불을 펴고 자리에 누웠다. 더 이상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자기 뱃속에 그의 아이가 있다는 것 말고는.'점점 머릿속이 아득해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