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환
4권
겨울버들잎 장편소설
87화. 한 그릇에 다섯 냥
돼지머리 구이 옆에 놓인 작은 칼을 들어 고기를 한 조각 베어 입에 넣자 위한의 미간이 즉시 펴지기 시작했다. 고기는 향기롭고 물리지 않았으며 다채로운 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맛있으세요?”
성삼랑이 식탁 옆에 서서 침을 꼴깍 삼키며 묻자 위한은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아무 말 없이 먹기만 하는 위한을 바라보며 성삼랑은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맛있다는 거야! 제발 구체적으로 말해주면 좋을 텐데.’
“성삼, 아직도 주방으로 안 돌아가셨네요.”
자격이 없다고 여겼음에도 무의식적으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점장이 성삼랑에게 주의를 시키었다.
‘점원이 손님 옆에 서서 그렇게 침을 흘리고 있으면 어째!’
하지만 성삼랑은 점장의 잔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위한에게 말을 건넸다.
“생이가 만든 돼지머리 구이를 드신 첫 번째 손님이시네요.”
이에 위한은 칼질하는 손을 멈추지 않은 채 낙생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가 낙 낭자가 만든 돼지머리 구이를 먹은 첫 번째 사람이라고?’
결국, 계산대 옆에 앉아서 쉬고 있던 점장도 미소 지으며 말을 얹었다.
“전에 오셨던 손님들은 모두 비싸다고 그냥 돌아가셨거든요.”
그녀의 말에도 위한은 아무말 없이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돼지머리 구이를 맛보는 데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이를 성삼랑과 석염이 계속해서 침을 흘리며 부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때 조 상서가 임등과 함께 음식 내음을 맡으며 주점 안으로 들어섰다.
이어 조 상서는 성삼랑과 석염에게 가려져 돼지머리 구이를 먹는 데 몰두한 사람이 위한이라는 것을 주점 안으로 들어와서야 알아차렸다.
“…왕야?”
조 상서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위한에게 다가갔다.
‘이런, 설마 낙 대도독이 개양 왕까지 가짜 손님으로 데려온 건가?’

그는 서신을 전해준 금린위로부터 이곳이 낙생이 연 주점이라는 사실을 미리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이 그녀가 연 주점인 줄 모르고 따라왔던 임등은 주점 안으로 들어가기를 망설였다.
이어 조 상서가 우물쭈물하는 그를 보며 답답한지 고개를 돌리고 눈치를 주었다.
“임등! 왕야를 봤으면 인사를 올려야지 거기서 뭐 하는 거냐?”
하지만 지금 임등의 머릿속에는 온통 낙생밖에 없었다.
‘낙 낭자가 그때 했던 이야기가 빈말이 아니었구나. 정말 주점을 차렸어. 혹시 낙 낭자가 오늘 당장 수를 데리고 오라고 하면 어쩌지?’
위한은 생각에 잠겨 있는 임등을 슬쩍 쳐다보고서는 눈썹을 찌푸린 채 조 상서에게 물었다.
“조 상서도 술을 마시러 왔는가?”
그러자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일이 너무 바빠서 아무것도 못 먹고 있던 와중에 군침이 도는 향기를 따라왔더니 왕야를 뵙게 되었네요. 저와 술 한잔하시지요. 제가 내겠습니다.”
낙 대도독이 돈을 지불한다 했으니 위한에게는 자신이 사겠다고 생색을 낼 참이었다.
이에 위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지.”
그도 돈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누가 내는 한턱을 얻어먹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에 조 상서가 곧 위한과 자연스레 합석했고 임등도 불러 함께 앉게 되었다.
새로운 손님이 왔지만 성삼랑과 석염은 아직도 침을 흘리느라 정신이 없었고, 홍두와 구월도 낙생 뒤에서 해바라기 씨를 까고 있느라 바빴다.
결국, 점장만이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도 새로 온 손님을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개양 왕? 상서? 다 높으신 분들 아냐? 맙소사, 낙 낭자는 대체 어떤 주점을 운영하려는 거야?’
이어 조 상서가 식탁 위에 놓인 돼지머리 구이를 한 입 먹으려 젓가락을 들자 위한이 이를 제지하며 말했다.
“이건 내가 이미 손을 댄 것이니 조 상서께서는 따로 하나 더 주문하시게나.”
그러자 조 상서는 머쓱해 하면서도 돼지머리 구이를 혼자 다 먹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 임등과 나눠 먹을 생각으로 통으로 하나를 주문했다.
“이보게, 왕야께서 드시고 계신 것과 똑같은 거로 하나 더 내어주게.”
이윽고 새롭게 한 접시가 나왔고 조 상서와 임등은 먹기 시작했다. 한두 점 맛을 보던 조 상서는 이내 접시에 코를 박고 먹는 임등을 보고 추가로 한 접시 더 주문을 넣었다.
“하나 더 주시게.”
***
어두운 밤이 되자 날씨는 서늘해졌고 밤하늘에는 밝은 달이 높이 떠올랐다.
오월의 밤은 한가롭게 산책하기 좋은 계절이었다. 살구가 열린 거리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
그때 한 건장한 사내가 도둑질을 하려는 사람처럼 좌우를 유심히 살피며 거리 위로 나타났다.
거리에는 돼지 내장구이, 만두 튀김, 냉국수 등을 파는 노점상들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고, 가게 앞은 저마다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사내는 그 복잡한 길을 돌아 어느 한가한 주점 앞에 멈춰 섰다.
그곳에는 분명 눈 씻고 찾아봐도 개미 한 마리 보이질 않았으나, 사내는 낮에 점장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발에 힘을 잔뜩 준 채 주점으로 향했다.
‘하하, 오늘은 특별히 돈도 더 넉넉하게 가지고 왔다고!’
그렇게 사내가 주점으로 들어서려던 그때, 그는 문밖에서 나는 냄새에 이끌려 바삐 들어갔고 이내 주점 안의 광경을 보고는 어리둥절해졌다.
‘이게 대체 무슨 냄새지? 그리고 탁자 하나에 사람이 셋이라니, 일행인가?’
주점 안 탁자에는 세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 앞에는 기다란 나무 쟁반 접시가 놓여있었다. 그 음식이 무엇인지는 알아볼 수 없었으나 사내는 곧 입구에서 맡은 냄새가 그 접시 위 고기에서 나는 것임을 직감했다.
사내를 궁금하게 한 것은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앉아 있는 세 사람은 분명 함께 앉아 있었음에도 말없이 먹기만 하고 있었다.
고기 한 입, 술 한 모금, 또 고기 한 입, 술 한 모금. 그들 앞에 놓인 음식들이 빠른 속도로 사라져갔다.
같이 앉아 있지 않았더라면 일행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보다 더 이상한 것은 세 사람 주위를 둘러선 남자 점원 두 명과 여자 점원 한 명이었는데, 그들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세 사람이 먹는 것을 쳐다보고 있었다.
‘설마 손님 한 명당 점원 한 명인 건 아니겠지?’
사내의 인기척을 느낀 점원들은 어렵게 식탁에서 눈을 떼고 겨우 문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하지만 사내를 돌려보내자니 아쉬웠고, 그렇다고 손님으로 받자니 자신들 몫이 줄어들 거라는 생각에 그 어느 쪽도 내키지 않아 그들은 멀뚱히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결국, 낙생 옆에 서 있던 구월이 고개를 저으며 빠른 걸음으로 사내에게 다가갔다.
“안으로 모실게요.”
‘저 인간들을 어찌 믿고 맡기겠어. 내가 나서야지.’
한편 넋이 나가 있던 사내는 자신 앞에 선 구월을 보고 이내 다시 정신을 차렸고, 곧 눈을 반짝이며 생각했다.
‘역시 내 예상대로 일반 주점이 아니군. 그렇지 않고서야 점원들이 이렇게 예쁠 리가 없잖아?’
구월은 이상한 기색을 드러내는 사내를 얌전히 자리로 안내했고, 이내 보조개가 핀 웃음을 띠며 그에게 물었다.
“어떤 것을 드시겠어요?”
사내는 옆자리를 흘끗 쳐다보며 그들이 무엇을 먹었는지 물었다.
“저들이 지금 먹고 있는 게 뭐요?”
“돼지머리 구이예요.”
“나도 똑같은 거로 주시오.”
‘아주 맛있어 보이는구먼. 화려한 도성까지 왔는데 잠만 자고 갈 수는 없지.’
“돼지머리 구이를 통째로 주문하시면 한 접시에 백 냥이에요.”
구월이 가격을 이야기하자 갑자기 사내의 태도가 돌변했다.
“백, 백 냥?”
그는 앞서 있었던 손님들처럼 탁자를 내려치며 외쳤다.
“이거 순 날도둑놈들 아니야?”
그러자 그릇에 얼굴을 파묻고 밥을 먹고 있던 세 사람이 일제히 사내를 쳐다보았다. 그중 위한은 하얀 손수건을 꺼내 입가를 닦으며 생각했다.
‘돼지머리 구이 한 접시에 백 냥 밖에 안 하는데 무슨 날도둑이라고.’
낙생도 계산대 근처에 앉아 이를 모호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어 위한이 그녀를 쳐다보았지만, 그와 시선을 마주하기 싫었던 낙생은 금세 고개를 돌려버렸다.
사실 그녀가 이곳에 앉아 있는 것은 손님들이 자신의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에 보람을 느끼기 위함도 아니었고, 또 대도독부에 있는 것이 무료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손님들이 자신이 주점에 있는 걸 익숙하게 느끼도록 만들기 위해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래야 그녀가 평남 왕을 죽이고 주점에 다시 나타나도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주점은 전부 평남 왕 때문에 열었다고.’
이어 위한은 술 한 모금을 마신 뒤 말없이 낙생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돼지머리 구이에 백주를 곁들이니 목구멍은 불에 타는 듯이 화끈거렸지만, 뱃속에서는 시원한 여운이 남아 날씨와 아주 딱이었다.
완전히 상반된 식감인데도 완벽하게 어울리는 것이 도저히 사람의 손으로 빚어낸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낙생 낭자가 만든 술 주전자 하나에 서른 냥이면 정말 저렴한 거지.’
위한은 이렇게 맛있는 음식과 술을 빚어준 낙생에게 자꾸만 시선이 갔지만 애써 꾹 참아냈다.
한편 조 상서는 아까 구월이 말해준 가격을 제대로 듣지 못했기에 수염에 양념까지 묻혀가며 열심히 먹어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조 상서와는 달리 아까 구월의 말을 제대로 듣고 난 임등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겨우 고기를 잘라냈다.
그가 갑자기 눈앞에 차려진 음식들을 잘 먹지 못하자 조 상서가 입에 고기를 문 채 그에게 물었다.
“왜 그러느냐?”
‘돼지머리 구이가 이렇게 비싸다니….’
고기를 자를 때마다 그의 귓가에 백 냥! 백 냥! 이라고 환청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살면서 이렇게 비싼 요리는 먹어 본 적이 없었던 임등은 결국 조 상서가 한턱내는 것을 확실히 할 생각으로 그에게 침착하게 말했다.
“제가 감사 인사가 늦었습니다. 어르신께서 이렇게 맛있는 음식과 술을 사주시니 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
이제까지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으나 조 상서가 이렇게나 맛있게 먹으니 그도 이제 음식의 값어치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 상서는 정말이지 쉬지 않고 계속해서 고기를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임등이 술을 권하자, 그들은 곧 서로 잔을 들고 건배하느라 새로 온 손님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한편 성삼랑이 어두운 표정으로 재빨리 사내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희 가격은 정찰제이고 상도를 지키면서 장사하고 있습니다. 비싸다고 생각되면 주문하지 마세요!”
‘개양 왕이 벌써 돼지머리 구이를 세 개나 시켰다고! 이러다가 내가 먹을 것도 없을 것 같은데 비싸면 시키지 말란 말이야!’
석염도 아무 말 없이 싸늘한 표정으로 다가가 그의 옆에 서서 생각했다.
‘내가 아는 주인님은 여기서 적어도 한 개는 더 드셔야 한다고, 안 그래도 음식이 동이 날까 봐 걱정돼 죽겠는데 짜증이 나게 정말!’
그는 마감하기도 전에 음식이 다 팔릴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물론 계산대 뒤에 서 있던 점장은 그 광경을 보고도 뭐라 더 말할 힘이 없어 그저 입을 다물었다.
한편 자신은 미색을 즐기러 온 것이지 싸우러 온 것이 아니었기에, 이내 사내는 잘생기고 풍채 좋은 두 사람 앞에서 작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다른 건 뭐가 있소?”
‘돼지머리 구이가 그렇게 비싸다면 다른 음식이라도 먹어야지.’
구월이 여전히 보조개를 보이며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돼지머리 구이요.”
사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그거 말고 다른 건 없소?”
‘이놈의 주점은 돼지머리 구이밖에는 없는 거야?’
구월이 미소를 지으며 다시 친절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희 주점에는 오늘 준비된 안주가 이것밖에 없어요. 다른 손님이 먹고 계신 걸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음식이 제일 맛있는데 이렇게 까탈스럽게 구시니….”
결국, 사내의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
‘내가 까탈스럽다고? 백 번 천 번을 생각해도 여기가 이상한 거라고!’
“술 한 주전자, 땅콩 한 접시나 주시오.”
“술 한 주전자는 은화 서른 냥이고 땅콩은 없습니다.”
구월이 다시 한번 사내에게 설명하자 그는 화가 나 순간 식탁을 내려칠 뻔했다. 옆에 앉은 손님을 봤을 때 식탁에 놓여있는 술 주전자는 기껏해야 손 한 뼘 정도의 크기였다.
결국, 보다 못한 점장이 구월을 밀치며 다가왔다.
“주점 안줏값이 비싸다고 느껴지시면, 양춘면 한 그릇은 어떠실까요? 담백하고 시원하니 소화시키기에도 좋답니다.”
“양춘면 한 그릇은 은화 다섯 냥이에요.”
구월도 이번에는 굳은 표정으로 말을 덧붙였다.
사내는 그제야 이 주점 자체가 워낙 비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화가 나 탁자를 내려치고 싶었지만, 구월의 눈에 떠오른 경멸하는 기색을 보고 이내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소리쳤다.
“그럼 양춘면이나 한 그릇 내오시오!”
‘흥, 그래도 은화 다섯 냥 정도는 가지고 있다고!’
88화. 할인의 조건
욱하는 성질에 일단 양춘면을 시키기는 했지만, 사내는 지금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은화 다섯 냥이라니… 다른 것도 아니고 고작 양춘면 한 그릇을 다섯 냥이나 주고 먹다니….’
얼마 지나지 않아 성삼랑이 음식을 쟁반 위에 받쳐 들고 나왔다.
“양춘면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