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군주 카리스 13권
대군주 카리스 13권
대군주 카리스
13
소락
대군주 카리스 13권
차례
Chapter 01. 카라쿰마 연방
Chapter 02. 다가오는 운명
Chapter 03. 첫 대면
Chapter 04. 남북 전쟁
Chapter 05. 붉게 물든 강
Chapter 06. 배신에는 배신으로
Chapter 07. 급변하는 정세
Chapter 08. 결전
Chapter 09. 단 하나의 카라쿰
Chapter 10. 그리고 끝나지 않은 투쟁
대군주 카리스 13권
Chapter 01. 카라쿰마 연방
마침내 카리스가 기대하던 기차가 시운행을 위해 모습을 드러냈다. 주 동력원이 되는 마력 기관은 글로인 상단이 보내준 마법사들이 만들었지만, 기차 자체를 만들어 내는 것은 카라쿰마 구성원이 큰 공헌을 했다.
“오크의 기술도 무시할 수는 없겠어.”
카일은 순수하게 감탄사를 토해냈다. 그가 감탄하는 것은 기차 자체를 제작한 재료 때문. 놀랍게도 황갈색의 기차 본체는 가죽으로 만들어졌다.
흐물흐물한 가죽을 여러 약물에 담그고 주술적 처리를 마치자 그야말로 딱딱한 철판과 비슷한 성질을 갖게 되었다. 딱딱해진 가죽을 몇 겹으로 겹쳐 기차 본체를 만들어 냈다.
원래는 아티팩트를 막아낼 튼튼한 방패를 만들고자 연구되었던 것이 엉뚱하게도 기차 몸통을 만드는 데 쓰인 것이다.
결과는 대만족. 만약 쇠로 만들었다면 그 무게로 인해 기차를 움직이는데 엄청난 마력이 소모되었을 것이다. 추가로 짐이나 병력을 실어 날라야 한다는 것을 살핀다면 기차가 제대로 운행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시간이 걸릴지 몰랐다.
그러나 일단 기차 본체의 무게가 덜어지자 바퀴와 몇몇 부위만 금속을 사용하게 돼서 금세 기차를 완성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카라쿰마의 기술력은 올라갈 거다. 지금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지식이지만, 한곳에 모여 제대로 정리만 된다면 급격한 발전이 있을 테니까.”
카리스의 말에 카일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오크답지 않게 음흉하단 말이지…….’
카일은 곁에서 기차만 응시하고 있는 카라쿰을 힐끔거리며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카리스가 오크의 흩어진 지식이 모이면 큰 발전을 이룰 거라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그가 말하지 않은 것 또한 카일은 알고 있었기에 음흉하다고 웃은 것이다.
고블린의 손재주와 인간의 기술, 거기에 카리스가 가지고 있는 지식까지 더해진다면 카라쿰마는 그야말로 기술 혁명이라고 불러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발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카일은 예측하였다.
“오~. 시작하기 전에 카라쿰이 한마디 할 시간이군. 얼마나 닭살 돋는 말을 할지 기대되는걸?”
카일의 호들갑에 카리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마련된 단상 위로 올랐다.
“그동안 카라쿰마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모든 형제와 도움을 준 손님들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 카라쿰마는 저 타마와 함께 쭉쭉 뻗어 나가게 될 것이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형제들이여! 카라쿰마를 위하여!”
카라쿰마를 위하여!!
모인 모든 이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외쳤다.
뿌~우~~!!!
카리스의 손짓에 미리 기다리고 있던 오크가 크게 숨을 들이켠 뒤 뿔나팔을 크게 불었다.
“우와~~! 카리스. 움직인다, 움직여! 나 저거 탈 거다.”
말리기도 전에 자샤크는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기차를 향해 달렸다. 물론 기차라는 말은 카리스만 알고 있는 것. 빠르게 달리는 몸통이 긴 초원의 짐승의 이름을 따와 모두 타마라고 부르고 있었다.
자샤크만 신이 나서 타마에 달라붙은 것은 아니었다. 다른 오크 인간 할 것 없이 서서히 움직이는 타마에 타기 위해 호들갑을 떨었다.
고블린들은 이미 타마를 타고 으스대며 아래를 내려다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땅굴에서 생활하기에 밤눈이 밝은 고블린에게 타마를 운행하는 임무를 맡긴 카리스다. 물론 고블린이 꼭 타마 운행에 필요한 것은 것은 아니지만, 천천히 그들을 카라쿰마의 진정한 일원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타마가 시운행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카라쿰마에 놓인 철도를 달리기 시작하자 많은 이들이 구경하러 나와서 신기해했다. 특히나 철도를 놓느라 고생한 오크들은 언제 불평을 했느냐는 듯 자신이 타마와 철도를 홀로 만든 것처럼 으스댔다.
타마와 함께 생활에 유용한 아티팩트가 본격적으로 시장에 선을 보였다. 이러한 변화를 재빠르게 감지한 상인들은 카리스를 만나기 위해 카라쿰마의 수도로 선포된 카라쿠마루(옛 카리프 왕성을 허물고 거대한 도시로 만든 뒤 카라쿠마루라는 이름을 붙였다.)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카리스는 특정 상단에 독점권을 주지 않았다. 글로인 상단의 도움을 받아 적당한 규모의 상단을 추린 뒤 유통권을 일정 비율만 나누어 판매했다.
아직은 카라쿰마 내의 상단에만 유통권을 풀었지만, 카리스는 곧 타국의 거대 상단이 자신에게 접촉해오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카라쿰마가 내부 성장에 여념이 없을 때 북방은 그야말로 한 폭의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었다.
모두가 드라쿨이 제국에 원한을 품고 있다고 여겼지만, 이는 큰 오산임이 드러났다. 제국의 단단한 방비를 본 드라코의 오크들은 무리하지 않고 제국이 원하는 대로 서남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드라코는 전쟁 국가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구조였다. 북방을 완전히 석권했음에도 생각보다 오크들의 머릿수는 크게 늘지 않았다.
그래도 카라쿰마의 오크 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이기도 했다. 다만 드라코의 오크 수는 일정 수로 불어난 뒤 자연의 섭리에 성장이 가로막혔다.
자연은 스스로 여러 생명체의 개체 수를 조절한다. 오크들로 인해 북방의 발 달린 짐승은 거의 씨가 마른 상황. 드라코도 뒤늦게 인간들을 흉내 내어 농사를 시작하긴 했지만, 그야말로 원시적인 수준에 머물렀기에 생산량은 처참한 수준.
아직도 주 식량 공급원이 수렵에 머물러 있었기에 연합군과 전쟁을 치르고 일 년 동안 참고 있었던 것만 해도 식량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크들의 남하는 생존을 위해 혹한의 대지를 벗어났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드라쿨 또한 전쟁만으로 오크들을 번성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당장 전쟁을 멈출 수는 없다. 때문에 드라코의 약점을 해결하고자 제국과의 싸움을 피하는 대신 만만한 나라를 노린 것이다. 드라쿨은 제국이 먼저 자신들을 공격하지 않는 이상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남쪽에 있다는 오크들을 자신의 휘하로 끌어들여 드라코의 약점을 메운 뒤 제국을 집어삼킬 속셈이었다.
카라쿰마를 집어삼키면 문신 부작용이 없는 강건한 오크를 부하로 들이게 된다. 그리고 인간이 세운 나라를 공략하며 부족한 식량을 채우며 천천히 오크의 문명을 발전시킬 계획.
드라쿨의 야심만만한 계획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제국이다. 만약 제국이 대대적으로 군대를 일으켜 반격한다면 어떻게든 남쪽의 오크와 연락을 취해 손을 잡고 함께 제국을 도모할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제국은 어떻게 된 일인지 움직이지 않았다. 드라쿨은 내심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남하를 멈추지 않았다. 남쪽의 오크를 만나기만 한다면 제국이 어떻게 나오든 상대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크의 남하로 인해 제국 서북 방향에 위치한 나라들은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황급히 각국의 분쟁을 멈추고 오크와 상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일기 시작했다. 더는 제국을 믿을 수 없었기에 이러한 의견은 힘을 얻기 시작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연합이 이루어질 때는 이미 나라 두 개가 드라코에게 짓밟힌 뒤였다. 한 나라는 소국이었기에 힘없이 밀렸다지만, 나머지 한 나라는 그리 호락호락하게 무너져서는 안 되는 규모였다. 그러나 그들은 아티팩트를 쓰는 오크들을 막아내지 못해 힘없이 무너져야 했다.
그동안 인간들과 무수히 많은 전쟁을 치르며 드라코의 오크들은 아티팩트를 제법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껏 아티팩트를 사용한 적은 없었다. 사용법도 잘 모르는 데다가 알려줄 이도 없었기에 사용할 수 없었던 까닭도 있었지만, 이는 진정한 이유는 되지 못했다.
실상은 드라쿨의 지시로 인한 것. 드라쿨은 아티팩트를 연구해 주술로 비슷한 효능의 물품을 만들어내고자 모조리 거둬가 주술사들에게 연구를 지시했다.
생각보다 큰 성과는 없었지만, 나름 아티팩트를 흉내 내 몇몇 물건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자 드라쿨은 전리품으로 들어온 아티팩트를 드디어 전쟁에 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인간들에게 그야말로 재앙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성과 요새를 방패 삼아 아티팩트의 위력으로 오크의 남하를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아티팩트를 손에 든 오크들이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성으로 돌격하고 투석기로 오크들을 날려대자 버텨내질 못한 것이다.
게다가 인간들은 적당한 나이의 남자들을 징집시켜 전쟁을 치렀지만, 드라코는 달랐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아예 구성원 전체가 남하해 전투에 참가하니 애초에 인구수와 병력이 비슷한 상황.
말도 안 되는 계산법이지만, 오크들은 이를 해냈다. 그야말로 전쟁 국가다운 잔인하면서도 위력적인 인해전술 앞에 많은 나라가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 * *
“카라쿰. 가이아 평의회를 통해 치코쿠 국왕의 친서를 전해왔습니다.”
카리스는 자신에게 접견을 청하지 않고 가이아 평의회로 접촉해왔다는 미하일의 말에 호기심을 드러냈다.
“치코쿠? 그런 나라도 있었나?”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있습니다. 소국이라 대륙에 그리 이름이 알려지지는 않아서 잘 모르실 겁니다.”
“군사적 도움을 바라는 건가?”
“그게 맞기는 한데, 다른 나라와는 조금 다릅니다.”
“조금 다르다?”
“네. 우리의 속국이 되기를 청했습니다.”
너무 뜻밖의 말에 카리스는 미간을 모으고 행간을 읽기 위해 고심했다.
“아마 치코쿠 국의 사정을 들으시면 이해가 될 겁니다.”
“사정? 다른 나라의 압박을 벗어나고자 우리의 속국을 자청하는 게 아니란 말인가?”
“그건 맞습니다. 하지만 보통 오크들이 주 지배층인 나라에 속국을 자청할 정도면 상당한 억하심정이 있지 않고서야 힘들지 않겠습니까?”
히죽 웃으며 치코쿠 국이 현재 처한 상황을 간략히 설명하는 미하일이다.
“그러니까 절색의 왕비를 노린 이웃 나라의 협박에 치코쿠 왕이 눈이 뒤집혔다는 거군.”
“맞습니다.”
“고작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신하들이 반발하지는 않았을까?”
“고작 그런 이유라니요. 그전까지 이웃 나라의 수탈이 꽤나 심했답니다. 하다 하다 이제는 왕비까지 노리니 신하들도 옥쇄를 각오하고 전쟁을 하자는 쪽으로 완전히 기운 겁니다.”
“그 이웃 나라가 우리와 국경이 접해 있나?”
“시라드 지역 바로 위쪽에 있습니다.”
“크레센시아?”
“맞습니다.”
“왜 직접 집어삼키지 않고 그런 식으로 수탈만 하는 거지? 현재 대륙 정세라면 그냥 점령해버리면 될 것을.”
“아직 제국의 눈치를 보는 거겠지요. 그리고 치코쿠 왕실이 제국 황실의 피가 아주 미약하게나마 흐르고 있어서 무작정 집어삼키기는 부담이 될 겁니다.”
제국 주변 나라들은 혼인 동맹으로 인해 복잡한 가계도를 지닌 왕실이 많았다. 치코쿠 왕국 또한 그러한 경우로 지금껏 국력이 대단치 않았음에도 어찌어찌 버텨온 것이다.
“크레센시아 말고 다른 나라도 치코쿠와 연관이 있나?”
“네. 작은 나라 주제에 국경을 접한 나라는 네 나라나 됩니다. 덕분에 위태로운 줄타기를 해올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음…….”
카리스는 고민에 잠겼다. 현재 철도와 아티팩트로 인해 타국의 상인들이 카라쿰마로 점점 몰려드는 상황이다. 그래서 국내 정세가 불안해지면 막 불씨가 피어오르는 상업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치코쿠에서 속국을 자처한다는 것은 카리스가 노리는 연방 국가의 첫발을 내디딜 좋은 기회다.
“놓치기에는 너무 좋은 기회입니다. 가이아 평의회에서도 그러한 말이 나왔고요. 만약 카라쿰께서 결단을 내리신다면 평의회는 곧바로 동의할 겁니다.”
“상황이 애매하다는 게 문제다. 이제 타국의 상단이 하나둘 몰려드는 판국에 전쟁을 일으키면 상업이 위축될 수 있어.”
“저는 그리 생각하지 않습니다. 상단이 생필품만 파는 것은 아닙니다.”
“설마 타국의 군상을 끌어들이자는 소리더냐?”
“맞습니다. 어차피 군상이라고 해도 전쟁으로만 먹고살지는 않습니다. 전쟁이 터졌을 때는 군상이라 자처하고 평화로울 때는 그저 상단이라 우기는 족속이 상인입니다. 차라리 전쟁을 일으켜 타국의 군상을 카라쿰마로 불러들여 우리의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낫습니다.”
현재 카라쿰마에 군상이 그리 필요하지는 않았다. 글로인 상단의 지원을 받아 무기로 쓸 아티팩트는 풍족했고, 식량은 자메나 평야와 카리프의 여러 평야에서 충분히 생산되고 있었다.
내수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물자를 타국의 군상에게 맡기는 것은 어찌 보면 낭비다.
그러나 미하일의 말대로 홍보의 기회로 생각한다면 그리 아깝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자 카리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단 평의회로 가자. 좀 더 토론을 통해 확실한 계획을 세워봐야겠다.”
이미 카라쿰의 마음이 동한 이상 카라쿰마의 군대가 움직이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 미하일은 소리 없이 웃으며 과장된 행동으로 카리스를 안내하는 시늉을 했다.
“제게 카라쿰을 모실 영광을 주십시오. 제가 모시는 이 길이 크레센시아의 왕성으로 가는 첫걸음이 될 겁니다.”
* * *
가이아 평의회는 치코쿠 왕국을 연방의 일원으로 삼는 것에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치코쿠를 시작으로 점차 카라쿰마에 우호적인 나라를 모을 기대감이 평의회에 차올랐다. 만약 카라쿰마가 계속 고립된다면 언젠가는 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공격을 받을 공산이 컸다.
지금에야 북쪽의 드라코로 인해 카라쿰마를 대놓고 적대하는 나라는 없었다. 우환거리를 둘로 늘리고 싶은 이는 없었으니까.
카리스는 앞날을 미리 대비하기 위한 포석으로 치코쿠를 돕기로 결단을 내린 것이다. 꼭 전쟁이 아니더라도 카라쿰마를 압박할 수단은 많았다.
주변 나라가 담합해 교역을 끊고 재정적으로 카라쿰마를 압박하기만 해도 큰 부담이 된다. 당장 카라쿰마로 통하는 모든 길을 봉쇄하게 되면 오로지 내수만으로 버텨야 한다. 문제는 아티팩트다. 지금도 글로인 상단이 부지런히 카라쿰마로 실어나르는 중이다. 때문에 카라쿰마가 고립된다는 것은 아티팩트마저 공급받지 못한다는 거다.
게다가 카리스는 드라쿨을 죽여야 한다는 커다란 부담을 짊어지고 있다. 아직 이 같은 사실을 아는 것은 카라쿰마에서 야히타와 무툼바 뿐. 훗날의 전쟁을 생각해서라도 최대한 세력을 불려놓아야 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연방 국가 창설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전쟁을 거듭할수록 병력이 줄어드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렇다면 드라쿨과의 싸움 전에 전쟁을 최소화하고 전력을 보존하는 길은, 힘을 과시해 주변국들이 외교적으로 카라쿰마 연방에 스스로 들어오게끔 유도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이번 기회에 카라쿰마의 힘을 주변에 알리고자 카리스는 처음으로 전면전을 선언했다. 지금까지는 늘 기습적인 침공과 전격전을 전술의 뼈대로 삼아왔다.
그러나 이번 전쟁은 성질이 다르다. 치코쿠 왕국을 연방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그들을 돕기 위한 전쟁을 표방하고 있었다.
크레센시아 왕국의 횡포가 워낙 심해 치코쿠 백성들이 한을 품을 정도. 꾸미기 나름이긴 해도 일단 카라쿰마와 치코쿠에게 명분이 있다고 봐야 했다.
다만 카라쿰마가 선전포고를 하기 전 가장 큰 걸림돌은 제국의 반응. 지금은 문호를 닫고 내실을 다지는 데 여념이 없는 제국이지만, 카라쿰마를 괘씸하게 생각하는 황제의 마음이 바뀐 것은 아니다.
가이아 평의회에 속한 의원 몇몇이 이러한 우려를 제기했지만, 카리스는 단호히 일축했다.
“제국은 오히려 우리가 제국의 서쪽 지역을 점령하는 것 자체를 반길 것이다.”
카리스의 말에 몇몇 이들을 제외하고 놀랐다. 서로 제국의 의도를 토론하느라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저 또한 카라쿰의 생각과 같습니다.”
브리스톤이 일어나 카리스에게 동의함을 밝혔다.
“제가 대신 설명해도 되겠습니까?”
“허락한다.”
카리스의 허락이 떨어지자 브리스톤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인 뒤 낭랑한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했다.
“현재 제국은 드라코의 침공을 받은 나라에 원군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연합군 창설에 손을 보탠 나라였습니다. 그러한 제국의 행위는 현재 많은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덕분에 드라코는 현재 제국의 서북 방향에서 남하하는 중입니다. 왜 제국이 그들을 방치하는지는 우리가 크레센시아를 정벌하면 확실히 드러날 겁니다.”
“설마 북쪽의 오크와 우리를 싸우도록 하려는 건가?”
무툼바의 물음에 브리스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일순간 장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마 제국은 우리와 드라코가 싸워 공멸하기를 바랄 겁니다. 한쪽만 남아도 제국 입장에서는 이득. 상처 입은 맹수를 사냥할 기회를 노리는 형국입니다.”
“드라코도 오크가 만든 나라다. 우리와 말이 통하는 것도 이미 확인되었지. 양 측이 손을 잡고 제국을 공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하비카의 물음에 카리스의 얼굴에 난처한 미소가 걸렸다. 이미 드라쿨과는 양립할 수 없는 사이가 된 카리스다. 그러나 아직 이들은 그러한 사실을 몰랐다.
‘어차피 그러한 사정이 아니라도 손을 잡긴 어려울 테지만, 저들에게 모든 사실을 밝힐 수 없다는 게 미안하긴 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