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군주 카리스 12권
대군주 카리스 12권
대군주 카리스
12
소락
대군주 카리스 12권
차례
Chapter 01. 손을 잡다
Chapter 02. 파도처럼 밀어붙이다
Chapter 03. 사형수를 위한 진혼곡
Chapter 04. 드라쿨의 만행
Chapter 05. 제국의 경고
Chapter 06. 북벌
Chapter 07. 드라코의 반격
Chapter 08. 물량전
Chapter 09. 흔들리는 제국
Chapter 10. 큰 거래
Chapter 11. 눈부신 발전
Chapter 12. 세력 재편
대군주 카리스 12권
Chapter 01. 손을 잡다
카리스는 제국의 후방을 어지럽힐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영역 확장을 단념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제국이 북쪽의 오크들과 드잡이하느라 정신이 없을 때를 노리고 있었다.
브리스톤을 중심으로 인간들을 군대로 끌어들이는 작업 또한 영역 확장을 위한 노림수였다.
오크들이 영역 확장을 할 때 가장 걸림돌은 점령지를 안정시키는 것이다. 같은 인간이라도 전후 처리는 애로사항이 많을 수밖에 없다. 오크는 종족이 다른 데다 안 좋은 편견으로 인해 인간의 저항이 극심했다.
이는 북쪽에서 준동하는 오크의 영향 탓도 컸다. 그들은 인육을 주 식량 공급원으로 삼으며 몸집을 불려 왔다. 인간이 보기에는 북쪽이나 남쪽이나 사는 곳만 다르다뿐이지 오크는 오크였다.
카라쿰마가 처음 인간 영역을 벗어날 때만 해도 북방 오크의 세력이 그리 강성할 때가 아니었기에 그나마 수월하게 자리를 잡은 셈이다.
“확실히 오크와 인간이 한 부대에 섞여 움직인다면 안 좋은 인식이 제법 누그러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미하일은 브리스톤이 징집을 위해 카라쿰마 전역을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카라쿰의 약속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옛 카리프 지역의 사내들은 브리스톤이 군대를 모으는 것을 반겼다. 처음에는 브리스톤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것으로 오해하고 카리프 잔당 세력이 접촉하는 웃지 못할 일도 발생했다.
지금까지 카라쿰마는 오크와 인간을 따로 다스리는 이원적 구조를 취해왔다. 카리스는 이번 기회에 군대 편제를 정비하며 미리 여러 가지를 시험해볼 작정이었다.
그리고 통합 과정이 성과가 있다면 다른 분야에서도 이를 점진적으로 도입하려고 했다.
“우리는 갈 길이 멀다. 정책 하나를 시행하면서도 여러 이득을 취할 수 있는 방안을 선택해야 해. 그러면서도 이로 인해 카라쿰마가 어떻게 변화할 건지 예상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게 대비해야 한다.”
“너무 바라는 게 많으신 거 아닙니까? 지금도 노동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심지어 전 군사학을 공부했지 행정은 관심도, 취미도 없습니다.”
미하일이 툴툴대자 카리스는 소리 죽여 웃었다. 그가 저렇게 불만을 표출하는 것은 브리스톤 때문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
지금껏 우악스러운 오크 틈바구니에서 홀로 안간힘을 써온 미하일이다. 그런데 갑자기 등용된 브리스톤은 별다른 힘들이지 않고 자신만의 부대를 덜렁 갖는 것 같으니 배가 아픈 거다. 당연히 경쟁 심리도 발동했다.
카리스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브리스톤이 옛 카리프 지역에서는 제법 인기가 있더구나. 너도 모병관 노릇을 한 번 해볼 테냐?”
“쳇! 어차피 실질적 전력도 되지 못하는 부대를 이끌 생각은 없습니다.”
“호오~. 그럼 투사들을 휘어잡을 비책은 있고?”
미하일은 카리스의 도발에 히죽 웃었다.
“요새 카라쿰의 변한 모습을 보며 깨우치는 바가 있었습니다. 적당히 어르다가 매를 드는 게 경지에 이르신 것 같습니다. 방법을 몸소 가르쳐 주시는 데 써먹지 못하면 이 짓 그만두어야지요.”
“후후후. 어르는 건 몰라도 매를 드는 건 네게 이른 것 같은데?”
“매를 꼭 제가 들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대신 때려줄 이만 몇 명 잘 구슬려 놓으면 됩니다.”
미하일의 호언장담에 카리스는 피식 웃어버렸다.
* * *
카리스가 오크와 인간의 융화책을 군대에만 적용한 것은 아니었다. 카라쿰마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축제를 기획하라고 비에토에게 따로 지시를 내려놓았다.
당연히 규모 자체가 차원이 다른 축제라 준비만 해도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 카라쿰마가 재정적으로 그리 풍족한 나라는 아니다 보니 돈 들어갈 구석을 최소화하기 위해 관리들이 몸으로 때워야 할 일이 많았다. 안 그래도 과로로 골골대는 관리들은 비에토를 원망하는 수밖에.
당연히 비에토 입장에서는 억울했지만, 어디다가 하소연할 데는 없었다.
축제 분위기는 카라쿰마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다. 지금껏 전쟁으로 인해 축제다운 축제를 경험한 게 언제인지 기억하기도 어려운 시절을 보냈던 인간들이다. 비록 전쟁에서 지며 나라를 잃었지만, 전보다 삶의 질이 대폭 향상되었기에 오크에 관한 반감은 아주 옅어진 상황.
신분제가 철폐되고 교육의 기회가 아이들에게 균등하게 활짝 열렸다. 이러한 정책 혜택을 가장 많이 입은 것은 평민들이다. 구성원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인간들이 카라쿰마의 치세를 반기니 과거로의 회귀를 바라는 세력들은 점점 힘을 잃었다.
게다가 카리스가 과거 그들을 과감하게 진압하라는 명령을 내린 뒤 카라쿰마에서는 반란 세력이 거의 자취를 감췄다.
오랜 전쟁은 병사들만 지치게 하는 건 아니다. 후방에서 전쟁 소식을 듣는 평범한 백성들 또한 상당한 부담을 느껴야 한다. 지금까지 카라쿰마는 거의 쉬지 않고 전쟁을 치러야 했다.
몇 해 평화를 누리긴 했지만, 피로감을 완전히 털어내기에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
다시 영역 확장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카리스는 이를 알았기에 이번 축제를 통해 분위기를 한껏 올려놓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간 아끼고 아꼈던 재정을 풀어 대대적으로 축제를 선전했다.
그 와중에도 비에토가 훗날을 생각해 드는 비용을 줄여보려고 관리들을 쥐어짜는 바람에 괜한 원성을 샀긴 했지만, 카리스는 이를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한 태도를 은근히 반겼다. 카라쿰마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기에. 비에토 같은 이가 많아져야 카라쿰마가 발전한다.
카리스는 이번 축제가 끝나면 비에토를 포함한 여러 관리의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게 포상을 내릴 결심을 했다.
축제는 장장 일주일이나 지속되었다. 한껏 분위기를 띄워놓았기에 카라쿰마 전역이 시끌벅적했다.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진귀한 물건들이 일시에 시장에 풀렸고 타국에서 몰려든 상단으로 인해 구경거리는 넘쳐났다.
카라쿰마는 상대적으로 문화생활면이 발달하지 못한 나라다. 드라코보다는 사정이 나았지만, 아직도 군사 국가라는 틀을 완전히 벗어던지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축제를 기회로 오크들도 문화생활이라는 것을 체험하며 하나둘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카리스! 나 결심했다.”
자샤크는 축제 마지막 날 카리스와 함께 구경을 다니다가 주먹을 불끈 쥐고 비장하게 말했다.
“무슨 결심?”
“나 연극 할 거다.”
“뭐?”
엉뚱한 자샤크의 말에 카리스는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인간들의 연극을 오크들에게 맞춰 각색한 걸 보더니 푹 빠진 자샤크다.
인간들이 좋아하는 비극적인 로맨스는 오크들의 관심 밖. 그러나 영웅의 일대기는 오크들도 열광했다. 특히 누가 봐도 카리스를 본떠 만든 연극은 오크들이 몇 번이고 다시 관람하는 바람에 암표까지 등장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물론 카리스는 그 연극을 보다 낯이 뜨거워져 중간에 몰래 빠져나왔다.
무작정 공연단에 쳐들어가려는 자샤크를 억지로 끌고 가며 카리스는 이 같은 현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아마 오크들이 연극에 열광하는 것은 다른 이의 감정에 영향을 많이 받는 특성 때문이리라.
지금껏 오크의 놀이는 대부분이 힘을 겨루거나 자연스레 사냥이나 싸움을 배우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하면 자연스레 또 다른 즐길 거리가 생겨난다. 이 같은 현상을 카리스는 오크의 문명이 점점 발전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신호라고 여겼다.
“연극은 아무나 하는 줄 알아?”
“나 잘할 수 있다.”
우기는 자샤크를 보며 카리스는 극단을 경호할 오크를 미리 보내나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샤크처럼 막무가내로 극단에 달려가 연극을 하겠다는 단순한 오크가 한둘이 아닐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었기에.
* * *
카라쿰마 전역이 축제를 한껏 즐기며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구성원 모두가 함께한 것은 아니었다.
모처에서는 이번에 입대한 신병들이 입에서 단내를 토해내며 힘든 훈련을 받고 있었다.
놀랍게도 훈련병들은 인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건장한 육체의 오크들 또한 인간들과 섞여 훈련을 받고 있었다. 오크가 인간에 비해 힘이 세다고는 하나 지구력까지 압도적으로 좋은 것은 아니다. 체구가 크다 보니 그만큼 열량 소모도 심하다.
훈련병들에게 주어지는 식사량은 극도로 제한되어 배급되는 상황. 이 모든 게 훈련의 일환이라고 몰아붙이니 다들 환장할 노릇이다.
몇몇 오크가 발끈해 대들었다가 곤죽이 될 정도로 얻어맞고 난 뒤에야 다들 체념한 상태였다.
인간들이야 모두 자원했지만, 오크들은 거의 반강제적으로 이 훈련소로 입소했다. 이들의 정체는 각 부족에서 재능있는 이들만 가려 뽑아 족장들이 내어놓은 젊은 투사들이었다.
카리스가 저번 회합에서 족장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 젊고 재능있는 오크들에게 가르침을 베풀겠다. 그들을 카라쿰마의 정예로 삼아 미래를 대비하고자 한다.
무려 카라쿰의 가르침이다. 족장들은 부족에 돌아가자마자 평소 눈여겨보았던 젊은 오크들을 뽑았다. 그들 중에는 족장 자신의 혈육까지 포함된 경우가 많았다.
만약 인간이었다면 인질이 될 걱정을 해 쭉정이들만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오크에게는 인질이라는 개념이 희박하다. 수틀리면 죽음을 불사하고 달려드는 판에 인질을 잡아봤자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 그렇기에 족장들은 카라쿰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았다. 본디 오크는 가르침에 인색하지 않다. 오히려 카라쿰의 이러한 제안을 족장들은 반겼다.
그들 또한 카라쿰마에 속한 뒤 서로가 가진 것들을 나누는 게 얼마나 큰 이득으로 돌아오는지 경험했다. 만약 재능있는 오크들이 카라쿰의 가르침을 받아 성장한다면 이는 훗날 부족의 커다란 힘이 될 거라는 기대를 품는 족장들이다.
이런 내막도 모르고 막상 끌려온 오크들에게는 황당한 일만 벌어졌다. 카라쿰의 가르침이라고 해서 얼마나 부푼 가슴을 안고 이곳에 왔는지 모른다.
그런데 웬걸? 당연히 이곳에 있어야 할 카라쿰은 얼굴 한 번 비추지 않았다. 평소 연약한 것들이라 무시하던 인간들과 진흙탕을 뒹굴며 훈련을 빙자한 괴롭힘을 받자니 죽을 맛이다.
이 훈련소의 총책임자는 브리스톤. 그는 젊은 오크들을 진정한 군인으로 만들라는 카리스의 지시를 받았다.
노련한 투사를 군인으로 만들기는 어렵다. 이미 오랜 세월 자신만의 전법을 만들어온 완성에 가까운 무인들이 고만고만한 지휘관의 지시를 따를 리 없다. 그랬기에 카리스는 기존의 투사들은 장점만 살리는 방향으로 이용하고 어린 오크들을 모아 훈련을 통해 완벽히 통제하고자 한 것이다.
재능있는 오크들이라고는 하나 아직 애송이다. 브리스톤이나 훈련소에 교관으로 나와 있는 투사들을 이길 수는 없다. 조금이라도 반항할라치면 날아드는 몽둥이찜질에 오크들과 인간들은 서로의 종족을 잊고 진정한 군인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물론 겉보기엔 넝마가 따로 없었지만, 명령이 내려질 때면 지쳐 널브러진 동료의 팔을 잡아끌고 기를 쓰고 내달리는 모습을 보여 브리스톤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오크들에게 연대 책임이라는 개념이 이 훈련소에서 처음 도입된 결과였다. 카리스는 연대 책임이라는 말 자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크와 인간을 단시간에 하나로 묶을만한 방법은 연대 책임만 한 게 없었다.
그리고 어리숙하게만 보이던 훈련병들의 눈에 독기가 차오르고 움직임이 민첩해졌을 무렵 그들이 까맣게 잊고 있었던 카리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 * *
카리스는 높은 지휘대에 올라 앞에 늘어선 훈련병들을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꼴은 그야말로 빈민가의 거지가 울고 갈 모습이었지만, 그들 몸에서 흐르는 날카로운 기세와 눈에서 쏟아져 나오는 독기는 정예병 저리 가라 할 정도.
일개 부대 하나 정도의 규모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 훈련소는 꾸준히 군인을 배출해 낼 테니 아쉬워할 필요는 없었다.
“고된 훈련을 받느라 고생이 많았다. 그대들이 흘린 땀방울이 전쟁에서 흘릴 피를 대신했다고 생각하라! 전쟁은 사냥이 아니다. 훈련이 무의미하다고 생각될 수 있겠지만, 대규모 집단이 맞붙는 전쟁터에서는 조직적인 움직임이 중요하다. 이는 내가 말하지 않더라도 훗날 그대들이 전쟁터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길게 말하지 않겠다. 오늘 그대들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술과 고기를 아낌없이 풀겠다. 오늘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마음껏 즐기도록.”
우오오오오!!!
훈련에 지친 이들의 귀에 술과 고기라는 소리만큼 달콤하게 들리는 말이 있을까? 다들 신이 나서 옆의 동료를 부둥켜안고 펄쩍펄쩍 뛰었다.
오와 열이 흐트러져 엉망이 되는 모습에 브리스톤은 눈살을 찌푸렸다.
“오늘은 그냥 넘어가지. 그간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훈련을 따라온 게 어딘가? 그런데 오크를 어떻게 통제했나?”
인간들은 몰라도 오크들 몇몇은 부족으로 도망치지 않을까 걱정했던 카리스다. 자유분방하게 살아온 오크들에게 억지로 맞지 않는 방식을 강요한다는 건 분명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오크들은 인간을 깔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연약한 인간도 버티는 걸 이겨내지 못하고 이곳에서 도망친다면, 평생 인간만도 못하다는 소리를 들어야 할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도망갈 시도를 하는 오크는 단 하나도 나오지 않더군요.”
카리스는 말 몇 마디에 낚인 오크들이 어떻게 했을지 훤히 눈에 보이는 것 같아 피식 웃었다.
“인간들은 얼마나 낙오했지?”
“이 훈련소에서 단 한 명의 낙오자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응? 그게 사실인가?”
“제가 카라쿰께 실언을 하겠습니까?”
“그거 놀랍군. 인간들은 어떻게 버틴 거지? 오크들도 힘들어하는 훈련을 말이야.”
“인간들의 힘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비록 육체적 능력은 오크보다 떨어질지 몰라도 정신력만큼은 뒤지지 않습니다.”
“음…… 브리스톤 그대의 공이 크다. 단시간에 군대를 조련해 냈어.”
“아직 멀었습니다. 저들이 제 손과 발처럼 움직여 주어야 합니다.”
카리스는 술과 고기에 정신이 팔린 훈련병들을 보며 동정의 눈빛을 보냈다. 아직도 브리스톤의 눈에는 성에 차지 않는 저들의 미래가 왠지 눈에 아른거리는 듯했다.
‘어차피 고생한 만큼 전쟁터에서 생존할 확률이 높아질 테니…….’
카리스는 자유분방한 투사들과 엄정한 군기를 뽐내는 이들이 함께 벌판을 달리는 상상을 하며 흐뭇하게 웃었다. 오늘 카라쿰마는 새로운 무기를 하나 손에 넣었다.
* * *
워낙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다 보니 카리스는 카일의 제안을 잊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억지로 잊기 위해 더욱 일에 몰두했다.
카리스가 보기에 이득만 보는 거래는 없다. 얻는 게 클수록 주어야 할 것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카일의 명분이 사리사욕을 위한 것이 아니기에 거부감이 덜했지만, 조금이라도 그가 욕심을 부린다고 여겼다면 진작 판을 엎었을 것이다.
“카라쿰.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누구지?”
“글로인 상단입니다.”
“음…….”
카리스는 생각보다 일찍 카일이 다시 왔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는 카리스의 생각일 뿐, 오히려 카일은 너무 시간이 지체됐다고 여기고 있었다.
카라쿰마는 현재 차근차근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적당한 눈속임을 했다. 당장 축제의 여운이 끝나지 않아 다른 나라에서도 이 같은 움직임을 전혀 눈치챌 수 없었다.
그랬기에 지금 시기에 글로인 상단의 전폭적인 지원이 더해진다면 영토 확장에 큰 도움이 될 터. 카리스는 카일이 들고온 조건을 면밀히 살핀 뒤 결단을 내릴 결심을 했다.
카일이 집무실로 들어오자 카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후후. 카라쿰이 직접 환대를 해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어.”
“그쪽 신분도 만만치 않은 것 아닌가? 무려 신과 소통하는 대단하신 분 아닌가?”
“이런! 이거 괜히 농담 한 번 던졌다가 된통 얻어맞는군.”
둘은 잠시 서로를 노려보다 동시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의자를 가져다줄까?”
“아니. 그냥 편히 앉지.”
자리에 앉자마자 카리스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래, 알아는 보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