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루화_눈물의 꽃 2권
지은이 | 최량
펴낸곳 | 신드롬
정 가 | 4,000원
ISBN | 9791171356133
투고처 | syndromebook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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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목차
#44. 진실과 침묵 사이
#45. 좁혀진 거리
#46. 그냥 들킬래
#47. True
#48. 반복된 생
#49. 어릴 때 들려준 이야기
#50. 청루화, 그 첫 번째 이름
#51. 질투
#52. 지금 우리 둘뿐이야.
#53. 버려야 하는 마음
#54. 아쿠라네아
#55. 꼭꼭 숨어라
#56. 지금은 안 되겠다
#57. 뒤돌지 마
#58. 시험
#59. 협박
#60. 아직 늦지 않았어
#61. 나 밀어내지 마
#62. 부탁이 있어
#63. 반은 맞고 반은 틀려
#64. 당신도 예외는 아니다
#65. 거짓말
#66. 들리지 않아
#67. 책에 없는 이야기
#68. 가려진 화가
#69. 같이 잘래?
#70. 인어의 눈물
#71. 낯선 기척
#72. 붉은색
#73. 선우가 사라졌다
#74. 홍배가 나타났다
#75. 믿어봐요
#76. 날 안아줘
#77. 널 지키려고
#78. 미련하게
#79. 오랜 친구
#80. 차량 소유주
#81. 침묵하는 피리
#82. 두 인간과 하나의 인어
#83. 혼자 작별 인사
#84. 스위트 룸
#85. 내가 한 선택
#86. 안녕
#44. 진실과 침묵 사이
 조금씩 안개가 걷히자, 버려진 빨간 우산이 눈에 확 들어왔고 가까이 다가가 확인한 순간, 선우의 것이 아니라는 걸 확인했다.
 “하, 얘는 대체 어딜 간 거야.”
 버려진 우산을 향해 몇 걸음 안 되는 순간에도 그 감정이란 지금까지 형사 생활하면서 느껴보지 못한 공포였다.
 혹시, 빗길에 미끄러져 물에 빠진 건 아닐까 해서 나오지 못하는 건 아닌가. 조심스럽게 선명하지도 않은 물속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선배님! 거기서 뭐 하세요?”
 “수현아, 하리가 사라졌어! 너도 얼른 찾아…!”
 “선우야!”
 그때였다. 수현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에서 하리의 목소리도 같이 들렸다.
 “너…!! 어디 있었어.”
 “응? 나, 잠깐 뭐 확인 할 게 있어서….”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이렇게 분노했던 적이 없었는데, 정확히는 겁에 질려 터져 나온 분노였다.
 여자를 향해 이런 감정을 쏟아낸 건, 처음이라 당혹스러움과 허탈감이 교차했다.
 “선배, 괜찮아요? 얼굴 안색이…. 비 맞아서 그런가?”
 “나 찾는다고 밖에 돌아다닌 거야? 지금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지금 제 심경이 어떤지, 두 사람 모두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그저 어이가 없어 약한 웃음이 터져나왔다.
 옆에서 조용히 다가온 최우혁이 수건을 건네자, 선우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수현아, 오늘 질문 다 했으면 이만 돌아가자.”
 컨디션이 안 좋아 일찍 돌아가자는 줄 알고 수현이 얼른 차를 앞으로 가져왔다.
 하리는 옆에서 미안했는지 우산 손잡이를 비틀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선우야, 정말 괜찮아? 미안해, 말하고 가야 했는데.”
 “아냐, 나 혼자 착각한 거야. 무사하면 됐어.”
 그래, 그녀가 무사하면 됐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사건보다 그녀의 안위가 먼저인 자신을 깨닫는 순간, 선우는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답답함을 느꼈다.
 ***
 
 “응? 뭐야, 둘 다 왜 이렇게 젖었어. 우산 없었어?”
 “저는 괜찮은데, 선배님이 비를 많이 맞았어요. 저 잠시 따뜻한 것 좀 사 오겠습니다!”
 수현이 뛰어나가고, 선우는 휘청거리며 책상 가장자리를 겨우 붙잡았다. 
 하리가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급히 다가와 옆을 지켰다.
 “상태가 영 아닌데, 너 얼른 집에 들어가라. 하리 씨. 내가 택시 불러줄 테니까, 선우 좀 부축해 줄 수 있어요?”
 기껏 휘청거린 거에 놀랄 팀장님이 아닌데, 안색이 안 좋아 보이긴 했는지 다급하게 퇴근하라고 호통부터 쳤다.
 잠시 앉아 있으면 괜찮다고, 괜히 유난 떨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야 하는데,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아까부터 심장에서 느껴진 뜨거움이 온몸으로 퍼져버려 버틸 힘이 없었다.
 “선우야, 가자. 내가 잡아줄게.”
 
 기껏해야 167cm의 작은 어깨가 185cm인 체구를 버텨내려 애썼다.
 하필 밖에는 비까지 내려 혹시라도 자신 때문에 그녀가 물에 미끄러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선우는 이를 악물고 스스로 버티려 했다.
 
 택시를 타는 곳까진 팀장님이 부축해주었지만, 집에 도착한 뒤로 그 역할은 오로지 하리의 몫이었다.
 그녀 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가쁜 숨에 짧은 호흡을 일부러 길게 붙잡았고 어질어질한 정신을 그녀의 어깨에 기대질까, 돌담 벽을 꽉 붙잡았다.
 “…하, 이제 됐어. 너 …먼저 들어가.”
 “무슨 소리야! 너 혼자 두고 어떻게 들어가.”
 더 이상 버텨낼 힘도, 몸에 남은 에너지가 지금까지 버텨온 모든 순간이 부질없게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혼자 들어가지 않겠다 고집부리는 그녀를 두고 힘겹게 한 걸음 움직였다. 
 “우산, …똑바로 써야지. 비 맞으면… 안, 돼.”
 털썩-.
 부축하는 하리의 어깨에 닿은 피부가 왠지 거칠다는 느낌을 끝으로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
 집 앞까지 간신히 부축해 온 선우가, 결국 현관문 앞에서 쓰러지고 그로부터 이틀이 지났다. 
 그날, 쿵 하는 소리에 놀라 뛰어나온 아저씨가 선우를 업고 방 침대에 눕혔다. 
 다행히, 그가 오기 전 물기를 닦아 내 피부에 돋아났던 비늘은 가릴 수 있었지만, 하마터면 선우에게 진짜 모습을 보일뻔했다는 사실이 아직도 진정되지 않는다.
 설령, 그가 정체를 알고 있다고 해도, 그냥 아는 것과 보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이기에 끝까지 숨길 수만 있다면 결코, 보여주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안, 돼, 안돼. 그러지 마, 제발.”
 
 이틀 내내 신음을 뱉어낸 선우는 무슨 꿈속에 머물고 있는지, 마음 같아선 그 꿈속에 들어가, 선우를 괴롭히는 모든 기억을 지워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속이 계속 타들어 갔다.
 결국,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의 손을 잡아주는 것뿐이었다.
 “하리 씨, 내려와 밥 먹어. 어차피 약 들어가서 좀 더 자야 할 거야.”
 아픈 선우를 위해, 집안으로 의사들이 찾아와 그를 진단하고 주사를 꽂았다. 
 그들은 단순 감기라고 했지만, 첫날엔 높은 고열과 힘겨운 듯한 그의 신음이 집에 있는 모두를 절절 끓게 했다.
 “괜찮아요, 저 선우 일어나면 같이 먹을게요.”
 몇 번이고 식사를 권하던 선애는 끝내 굽히지 않는 하리엘의 고집에, 알겠다며 문 옆에 물만 두고 나갔다.
 남겨진 방 안, 하리엘은 그의 손을 꼭 잡은 채 속삭였다.
 “선우야, 얼른 일어나….”
 ***
 
 비 오는 날 하리의 부축을 받아 집까지 온 기억은 있는데, 그러나 그다음부터 선우의 시야에 펼쳐진 건 끝없는 바다였다.
 끊임없이 가라앉고 가라앉는 순간에도 공포보다 평온함이 깃들어 있는 걸 보니 이곳이 꿈이라는 걸 직감했다.
 바닷속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태양인지 달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 그저 암흑 속에 손전등 불빛 같았다.
 그리고 저 멀리, 이쪽을 향해 물살을 가르며 반짝이는 푸른 빛은 계속해서 다가오려 했지만, 결코 닿을 수 없었다.
 그게 무엇이든, 닿을 수 없는 선우에게 다가오려 할수록 힘겨워하는 게 보이는데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가슴을 저몄다.
 힘들게 그러지 말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바닷속에선 제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가 가야 해.’
 시간의 개념 따윈 없는 이곳, 문득 저 앞의 빛으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안에서 흘러나왔다.
 내가 가면 저 빛에 닿을 수 있는 걸까.
 공포의 이름으로 쓰인 물 앞에 처음으로 용기 내어 손을 뻗자, 차가운 물살이 팔을 감싸더니 이어 다른 팔도 내밀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 드디어 마주하게 된 것은.
 ***
 
 “…너였어.”
 이틀 동안 물만 마신 채 힘없이 버티고 있던 하리엘은, 드디어 가장 듣고 싶던 목소리를 들었다.
 “선우야!”
 드디어 눈을 뜬 선우를 보고 반가움에 벌떡 일어나 아주머니와 아저씨를 부르러 나가려는 순간, 손목을 당기는 힘에 이끌려 그대로 선우의 품에 안겼다.
 “선, 우야? 왜 그래?”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긴 잠에서 깨어난 선우는, 무슨 사연이 그리 사무쳤는지 하리엘을 꼭 껴안은 채 한참을 구슬프게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