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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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즌 새롭게 리버풀에 영입된 아드리앙 마세는 일종의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포지션은 오른쪽 풀백.
반대편 왼쪽 풀백으로 뛰고 있는 파소스 역시 올해 처음 합류한 선수이기에 둘은 비교 대상이 되기 쉬운 상황이었는데, 파소스의 활약이 너무 뛰어나다는 것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경쟁하는 관계도 아닐뿐더러 동료의 활약은 기꺼이 박수를 쳐 줄 수 있는 일이지만, 스포트라이트가 파소스 쪽에 치우쳐 있다는 사실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사실 리버풀 합류 전 몸값도, 이름값도 높은 쪽은 마세 본인이었다.
프랑스 리그1에서는 동 포지션에서는 손꼽히는 풀백이었으며 프랑스 국가대표의 일원으로도 활약하는 중이었으니까.
반면 파소스는 브라질 리그에서만 뛰었으며 유럽 경험은 일천하다는 것. 국가대표도 아니기에 처음 들어보는 선수였다.
국대는커녕 연령별 대표로도 뛰어 본 적이 없으며 나이 어린 유망주라는 것을 제외하면 딱히 주목할 게 없는 커리어였다.
'리버풀 스카우터가 유능한 건가?'
파소스의 공개된 몸값은 상당히 저렴했는데, 지금까지의 모습만 놓고 보면 거의 후려쳐온 수준이었다.
준수한 수비력은 기본이며, 브라질리언 특유의 개인기에 빠른 측면 돌파와 크로스가 일품이었다.
똑같은 풀백이라 해도 공격적인 성향의 선수가 더 많은 주목을 받는 건 일반적인 일. 그런 면에서 보면 마세 본인보다 파소스가 더 언론에 노출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신경은 쓰인단 말이지!’
수비적으로는 어떤 풀백과 비교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프리시즌과 커뮤니티 실드, 그리고 지난 1라운드 경기까지 마세는 안정적인 측면 수비를 보여 주고 있었다.
“마세!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거야? 계속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던데.”
참 신기하게도 이 한국인의 영어는 꽤 유창했다.
영국에 온 지는 1년밖에 안 됐다고 들었는데.
“아니, 뭐 딱히. 내 얼굴은 원래 이렇거든.”
“그래? 그럼 다행이고.”
“보보. 그런데 너 몇 살이라고 했지?”
“스물둘.”
“기가 막히군. 나보다도 어린 선수였다니.”
사실 이 한국인이 풍기는 분위기는 뭔가 백전노장의 느낌이다.
아직 많이 겪어보진 못했지만 말과 행동 그리고 필드에서의 모습까지 모든 면에서 여유가 넘쳐 보였다.
그래서 왠지 그냥 의지하고 싶어지는 선수였다.
“마세! 너의 측면에서의 안정감은 다들 인정하고 있어. 파소스랑은 또 다른 느낌으로 환상적인 풀백이라고나 할까?”
“……응?”
마세는 순간 마음이라도 읽힌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도 계속 측면을 든든하게 지켜 줘.”
“……어 ……뭐. 그래야겠지.”
그리고 이 한국인의 말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마세, 공격으로 나갈 땐 너도 끝내주잖아? 빠르고 폭발적이라는 거 잘 알고 있어. 특히 역습으로 나갈 때 말이야.”
마세는 멍하니 이규보를 바라보았다.
평소 대화를 해 볼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이 녀석이 자신을 이렇게까지 인정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냥 립서비스라 해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오늘 경기에서 기대해 볼게.”
“어.”
삐이익-
그리고 경기 시작.
마세의 귓가엔 이규보의 말이 계속 맴도는 것 같았다.
‘환상적인 풀백이라…….’
브렌트퍼드를 맞아 리버풀의 맹공은 계속되고 있었다.
두 팀의 전력 차이는 여실했다.
점유율은 일방적이었으며, 슈팅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공격 진영에서는 언제라도 선취득점을 뽑아낼 것만 같은 기세였다.
퍼어어엉-
하지만 이번에도 아쉽게 빗나가 버린 슈팅.
가끔씩 이런 경기가 있다.
골이 터질 듯 터질 듯하면서도 한 끗 차이로 계속 터지지 않는.
그러다가 어느 순간 리버풀의 패스가 중간에 차단되며 브렌트퍼드의 역습이 시작되었다.
이미 많은 선수들이 상대 진영으로 올라가 있는 상황.
마세는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했다.
계속 공격을 퍼붓다가 상대의 역습 한 방에 무너지는 그림은 축구판에서는 아주 흔히 있는 일이다.
지난 시즌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유일한 1패를 당했던 브렌트퍼드전에서 어떤 식으로 실점을 당했는지를.
‘이런 식이라고 했었지!’
상당히 빠른 역습.
심지어 돌파까지 허용하며, 리버풀은 공간을 훤히 내주는 상황이었다.
브렌트퍼드의 공격수 리차드슨은 공을 쭉쭉 몰며 들어오고 있었다.
뻐어어엉-
그리고 측면에서 중앙 쪽으로 쇄도하고 있는 로웬을 향해 쓰루패스.
마세는 스피드를 끌어올리며 미친 듯이 달려갔다.
저 패스가 연결되면 곧바로 실점 위기로 직결될 수 있기에.
투욱-
공은 원바운드되며 튀어 올랐고, 브렌트퍼드의 로웬은 빠르게 접근하며 다음 동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중앙으로 쇄도하는 동료에게 리턴 패스를 주는 것도, 자신이 직접 슈팅으로 연결해 보는 것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로웬은 볼을 터치하기 위해 살짝 발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 순간.
타악-

어딘가에서 나타난 아드리앙 마세가 머리를 들이밀고 들어왔다.
로웬의 발보다 마세의 머리가 한 끗 차이로 빨랐다.
퍼어어엉-
그리고 안정적으로 공을 클리어링하는 모습.
로웬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두 팔을 들어 올렸다.
절체절명의 역습 기회가 이렇게 허무하게 날아가 버린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제스쳐였다.
브렌트퍼드의 홈구장에서는 탄식 소리가 새어 나왔다.
저 멀리서 이규보는 마세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고, 마세 역시 같은 동작으로 화답했다.
그리고 약 2분 뒤, 리버풀의 엄청난 골이 터져 나왔다.
후방에서 길게 날아온 볼을 이규보가 공중에서 바이시클킥으로 골문에 꽂아 넣은 것.
이 선취 득점의 어시스트는 빠른 돌파에 이어 정확한 롱패스를 날린 아드리앙 마세였다.
* * *
프리미어리그 2라운드 브렌트퍼드전.
전반전은 3대0으로 마무리 되었다.
골이 터질 듯 터질 듯 안 터지다가 한 번 터지고 나니 연이어 두 골이나 더 추가로 나왔다.
지난 시즌 같은 이변은 나오기 힘든 스코어가 되었으며, 라커룸에서는 다들 여유가 넘치는 표정이었다.
“많이는 안 바란다. 후반전에는 두 골만 더 넣고 와.”
우리의 린 감독은 다섯 골에 꽂히기라도 한 것인지, 5대0을 주문하고 있었다.
골이 무슨 자판기에서 뽑아내는 커피인 것처럼 말이다.
마세는 다시 한번 나를 향해 엄지를 올렸다.
“덕분에 도움 하나를 올렸군.”
그러고 보니 리버풀 이적 후 첫 득점 포인트를 기록한 것이다.
“축하해. 마세.”
“딱히 의도한 어시스트는 아니었는데 말이야.”
“때리기 좋게 올라온 건 사실이니까.”
마세는 안정적인 수비 성향의 풀백이지만, 공격적인 재능도 상당히 뛰어난 녀석이다.
아직 본인은 그걸 충분히 모르고 있는 거 같지만 말이다.
* * *
후반전에는 결국 한 골을 실점하고 말았다.
느슨한 분위기에서 브렌트퍼드의 리차드슨에게 중거리포를 한 방 얻어맞은 것.
지금은 팀빨을 못 받아서 그렇지 좋은 선수이긴 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훗날 중위권 이상의 팀으로 이적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시즌 정도는 득점왕 경쟁을 했던 것도 같고.
회귀를 하고 나니 이게 참 문제다.
전생의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현실에서 FM을 해 보고 싶은 욕망이 불끈불끈 솟아오르는 것.
“집중해, 집중!”
3대1이 되자, 린 감독은 불같이 화를 내며 손가락을 두 개 들어 올렸다.
빨리 두 골 더 넣으라는 건데 결국 우리의 네 번째 골은 뱅크스가 터뜨렸다.
뻐어엉-
소녀슛인 것 변함없지만, 킥의 타이밍과 정확성은 충분히 키퍼를 압도할 만 했다.
그 전에 기안의 패스가 기가 막히긴 했다.
수비를 끌고 다니며 뱅크스로 하여금 공간을 만들어 준 것.
골은 없었지만 오늘도 녀석의 진가는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었다.
<LIV>
└ 우리 팀 공격 미쳤다! 네 골 째야!
└ 뱅크스의 슛도 좋았지만 기안의 드리블이 환상적이었어!
└ 믿고 쓰는 대전산!
└ 이렇게 좋은 선수를 둘이나 내어준 대전에 깊은 감사를!
└ 그런데 기안은 강팀이랑 경기를 해도 이렇게 좋은 활약을 계속 할 수 있는 건가?
└ 오늘 이 클래스를 보고도 이런 의심을 한다고!
스코어는 4대 1로 마무리 될 것 같았다.
브렌트퍼드는 만회골에 대한 의지를 많이 상실했고, 우리 팀도 현재의 스코어에 만족하며 호흡을 조절하는 모습이었다.
여전히 필드를 바라보며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리며 한 골 더 주문하고 있는 건 린 감독뿐이었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나 싶었는데, 경기 종료 직전 크로스가 날카롭게 휘어져 들어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공을 따라가며 땅을 박차며 뛰어올랐고,
빠아아악-
결국 팀의 다섯 번째 골이자 내 두 번째 골을 성공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