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교황에게 고하노라
[유저 전체 BEST]
[1위 - 여포 (LV. 800) 마신]
- 캐 만들고 한 달 만에 800렙 실화인 부분?
- 폭렙 지리네 캬!
- 이야, 저 지금까지 헛살은 듯ㅋ
- 레알 극혐 핵쟁이 xx들은 뚝배기 깨야 됨.
- 저기요 제가 진짜 급해서 그러는데요, 마신 전직할려면 뭐하면 되죠? 누구 좀 알려주3 뿌잉뿌잉.
- 위에 할재요, 그거 어느 시대 말투? 척추 서요?
- 마신 까짓거 한 달 만에 800렙만 찍으면 됩니다. 참 쉽죠?
- ㅋㅋㅋㅋㅋㅋㅋㅋ 나 이 겜 2년 x빠지게 했는데 딸랑 280렙 히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ㅠㅠ
- x나 허무하네,,,x발,,,개발사,,,일 안 하냐,,,확 마,,,
“공식 게시판의 상황은 지금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딸각──
프로젝트가 꺼졌다.
실내가 밝아졌다.
새하얀 회의실.
20여 명의 남녀가 앉아 있었다.
바로 가상현실 판도라의 운영팀 직원들이었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심각했다.
랭킹 정보가 업데이트되었다.
듣도 보도 못한 여포라는 닉네님의 유저가 800레벨을 찍고 전체 유저 랭킹 1위로 등극했다.
한데 그 유저, 캐릭터 생성일이 한 달도 되지 않았다.
즉, 생성한 지 한 달도 안 된 캐릭터가 무려 800렙을 찍어 버린, 전대미문의 해킹 사태가 일어난 것이었다.
“덕분에 오늘 아침부터 비난의 화살이 우리 운영팀을 향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누군가가 핵 프로그램으로 엄청난 폭렙을 하고, 랭킹 1위를 차지해 버렸습니다. 평범하게 레벨업과 성장을 위해 노력해 온 유저들은 배신감과 허탈감을 느꼈겠지요.”
GM(게임매니저) 팀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핵쟁이 하나 못 막는 게임사.
그것이 유저들의 비난이었다.
GM 팀장이 팀원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거의 모든 방송사에 이번 사건이 특집으로 나갔습니다. 물론 회사 주가도 떨어졌고, 우리 운영팀도 단체로 모가지가 날아갈 위기에 처했겠죠? 그러니 자아, 이제부터 대책을 한번 세워봅시다. 이 과장님?”
“옙.”
그의 부름에 운영팀의 만년 과장, GM 성진이 대답했다.
“아까 부탁했던 조사, 다 됐습니까?”
“네, 그런데 그게 좀 이상합니다.”
“이상하다니, 뭐가요?”
“조회가…… 안 됩니다.”
“뭐라고요?”
“말 그대롭니다. 그 여포라는 놈, 회원 정보 조회가 안 되더라구요.”
GM 성진이 난감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저도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냥 통째로 정보 차단이 걸려 있습니다. 그것도 그냥 차단이 아니라…….”
“아니라?”
“보안등급이 S클래스더라구요.”
“뭡니까. 그게 말이 돼요?”
GM 팀장의 입이 쩍 벌어졌다.
S등급 보안.
그건 일반 회원에겐 부여될 수 없는 보안등급이었고, 회사 최고 경영진의 만장일치 동의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 여포라는 놈, 대체 뭐 하는 놈이지? UN 총장 아들이라도 되나?’
팀장의 머릿속이 바빠졌다.
순식간에 800렙을 찍은 희대의 핵쟁이.
한데 회사 최고 경영진의 보안등급을 보유한 핵쟁이.
어쩌면 단순한 핵쟁이가 아닐지도 모른다.
뭔가가 더 있을 것이다.
그런 예감을 받으며 팀장이 물었다.
“그 인간 사용 캡슐은요? 조회해 봤습니까?”
“아뇨, 그건…….”
“해보세요. 지금 여기서, 당장요.”
그의 재촉에 GM 성진의 손이 바삐 움직였다.
이윽고 프로젝트에 큼지막한 문구가 떠올랐다.
[조회하신 번호는 등록되지 않은 캡슐입니다.]
[접속 장소 추적 불가]
“헐.”
GM 성진과 팀원들의 표정이 굳었다.
미등록 캡슐이라니.
이것 또한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비상식이 엄연히 눈앞에 현실로 드러나 있으니 부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GM 팀장의 표정이 굳었다.
‘비정상적인 레벨업, S등급 보안, 미등록 캡슐…… 어떡해야 하지?’
뭔가 섣불리 건드리기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하나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법.
그가 팀원들을 돌아보았다.
“일단 개발팀에 저 여포인지 쥐포인지 하는 놈 조회신청부터 넣으세요. 다들 밤새워서라도 유저 항의 글에 정중한 답변 달아주시고. 그리고 이 과장님은 캡슐에 좀 누웁시다.”
“예? 제가요?”
“네, 이 과장님이요.”
GM 성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팀장이 한쪽 입술로만 웃었다.
“당장 여기선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으니 별수 있겠습니까? 게임 속에서라도 접근해서 알아봐야죠. 다행히 보안등급이 S클래스라도 게임 내의 캐릭터 위치는 추적이 가능하니까 말입니다.”
“아, 그래서 제가 게임 속에서 그 핵쟁이한테 접근하면 되는 겁니까?”
“네, 그겁니다. 접근해서 관찰하세요. 가급적 로그아웃도 자제하셔서 최대한 긴 시간 동안 많은 걸 알아내시구요.”
“일종의 첩보요원 같은 건가요?”
“그렇죠. 우리 이 과장님, 이해가 빠르시네.”
팀장이 흡족한 웃음을 보였다.
나머지 팀원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며 서류에 고개를 박았다.
진급과는 영 인연이 없는 GM, 과장 이성진.
업무 능력도 그닥에 소심한 사람이었다.
팀장은 그런 GM 성진에게 제일 힘들면서도 고된 업무를 떠맡긴 것이었다.
하지만 물렁한 호인인 GM 성진은 그런 팀원들의 기색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눈빛은 초롱초롱해져 있었다.
‘잠입해서 첩보 활동이라. 멋지잖아?’
매일 책상에 앉아만 있던 것도 지치던 차였다.
은근히 팀장에게 무시만 받아서 서운하던 참이기도 했다.
한데 모처럼 게임 속에 들어가 위험한 핵쟁이에게 접근해서 정보를 캐내라니!
‘이건 모처럼의 기회야. 잘하면 인사고과에 반영될 수도 있겠지?’
그러니 어떤 위험이 도사리더라도 망설임 없이 들어가리라.
지금껏 눌러왔던 용기를 발산하리라!
다짐하며 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럼, 그 여포라는 놈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GM 성진이 기대하며 물었다.
팀장의 대답이 돌아왔다.
“카스가드 대마경요.”
“……예?”
“잘 다녀오세요. 죽지 말고요. 아, 죽긴 하겠네요. 렙따 되도 특별수당은 없으니까 그렇게 아시고 말입니다. 그리고 참, 당분간 퇴근 없이 사무실에서 숙식하셔야 하는 거, 아시죠?”
GM 성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 * *
투두두두두─!
휘날리는 모래 폭풍이 태양을 창백하게 물들였다.
폭풍을 만드는 6개의 발굽이 더욱 힘차게 사막의 모래를 박찼다.
붉은 뼈다귀로 만들어진 유령마, 적토였다.
‘형님, 이 여 아무개, 반드시 형님을 되살려내리다.’
한 손으로 적토를 몰며 여포는 다짐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한 손에 붙들려 있던 사내를 향해 물었다.
“이대로 쭉 북쪽으로 가면 되오?”
“그, 그럴 겁니다?”
“좋군.”
최근 대마경의 바깥 경계에서 만난 사내.
지엠 성진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지닌 자였다.
또한, 자신이 최근 찾고 있던 ‘사제’라는 자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실로 운이 좋았구나.’
문득, 여포는 지난 며칠 동안의 일을 떠올렸다.
마계왕을 주살하고 마신이 된 것이 대략 이레 전.
당시만 하여도 금방 육 형을 되살릴 수 있을 줄로만 알았다.
하나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아니하였다.
육 형을 살리려 무수한 시도를 했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마신이 되어 얻은 스킬을 써도 속수무책이었다.
실로 가슴을 칠 일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하여 달밤을 거닐어도 보았더랬다.
그러던 차에 마계왕의 서고에서 그가 남긴 연구일지를 우연히 발견하였다.
<언데드의 생성과 영혼의 소멸>
[지금껏 이 세상에 군림하며 수많은 언데드 병사를 만들어보았다. 자연히 그들을 살리고 죽이는 이치를 깨닫게 된바,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판도라의 모든 영혼은 다음과 같은 3가지의 단계를 거친다.
1. 살아 있는 생명체
2. 언데드
3. 완전한 소멸
살아 있는 생명체는 죽어서 언데드로 부활할 수 있다. 이것이 2단계다. 그러나 언데드의 상태에서 복구 불가능한 타격을 받아 소멸한다면? 그릇을 잃은 영혼 또한 사라진다. 이때가 바로 3단계다. 3단계가 되면 내가 지닌 어떤 스킬로도 언데드를 되살릴 수 없었다. 그리고 언제나 같은 계시가 머릿속에 울린다. ‘캐릭터가 삭제되어 복구할 수 없습니다’라고.]
캐릭터가 삭제되었다는 잡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