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품에 안다 3권 (완결)
너를 품에 안다 3권 (완결)
너를 품에 안다 3권 (완결)
13



물건값을 흥정하는 사람들과 열심히 짐을 나르는 사람들이 섞여 활기차게 움직이는 시장의 한구석.

어수룩한 표정의 중늙은이 하나가 작은 상점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식료품, 농기구, 작은 잡화들. 딱히 무엇을 파는 곳이라 말하기 어려울 만큼 상점은 중구난방으로 물건들이 흩어져 있었다.

“어서 오세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중년의 여인 하나가 낮은 진열대로 다가서며 남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마도 상점의 주인인 듯한 그녀는 차분하게 남자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그러나 남자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가게 안에서 과일을 고르고 있는 젊은 여자 하나조차도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필요하신 것이 있으면 말씀을 해보세요. 보시다시피 손님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져다드릴 수 있습니다.”

주인이 턱짓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물건들을 가리키며 남자를 안심시켰다. 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어떤 것이든 가져다줄 수 있을 것 같은 태도였다.

남자는 뒤에 있는 여자가 듣지 못하게 몸을 바짝 진열대 쪽으로 당긴 후 주인에게 속삭였다.

“여기 상점에 가면 좋은 약을 판다고 하던데….”

남자가 제법 간절하다 싶은 표정으로 주인을 보았다. 그러나 주인은 별 관심 없다는 얼굴로 뚱한 대답을 했다.

“어디가 아프시길래 약을 찾으십니까?”

주인의 말에 남자가 인상을 확 찌푸렸다. 그가 어렵게 꺼낸 말을 그녀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니 성질이 난 것이었다.

“어허, 그 왜 있잖소. 먹으면 막 기분이 좋아지고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워지는. 죽은 사람도 일으킨다며.”

남자가 눈을 부릅뜨자, 눈동자에 징그럽게 번진 핏발이 보였다. 주인이 흠칫 몸을 피하며 아까보다는 진지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세상에 그런 좋은 약이 있으려구요. 아무리 제가 능력이 뛰어나도 없는 약을 만드는 능력은 없습니다만.”

간도 쓸개도 빼줄 것 같더니, 앞뒤가 확 다른 태도였다.

“아까는 무엇이라도 구해 준다고 분명히 말하지 않았소!”

투박한 말투로 버럭 화를 낸 남자가 갑자기 머리를 막 쥐어뜯더니 작게 욕설을 지껄이며 가게 밖으로 뛰쳐나가 버렸다. 주인이 뭐라고 한마디 꺼낼 여유도 주지 않은 채였다.

“아니, 거참. 무슨 사람이 저렇게 성격이 급해. 괜찮은 손님 하나 날렸네.”

주인은 허탈한 듯이 몰래 쥐고 있던 약병을 소리 나게 판매대 위에 올려놓았다. 값을 흥정할 때 유리한 위치에 있으려다 손님을 놓친 꼴이 되었다.

“저… 그렇게 좋은 약이 있나요?”

과일이 상처가 날 만큼 오래도록 주물럭거린다 싶더니 젊은 여자는 여기 대화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었다. 주인의 얼굴에 비스듬한 미소가 번졌다.

“뭐… 나쁘지는 않지요. 한번 드셔 본 분들이 다 입소문을 내니까요.”

주인은 손님을 한번 놓친 탓인지 아까보다 훨씬 태도가 공손하게 변했다.

“가격은 어느 정도인가요?”

여자가 물건을 살 것 같은 의사를 내비치자, 주인의 눈이 또록또록 굴러갔다. 또 가격을 올려 돈을 더 벌어 볼 생각을 하는 것이 뻔했다.

“한 병에 10골드랍니다.”

“10골드요?”

여자는 돈주머니를 열었다 닫았다 몇 번 하더니 낯빛이 확연히 어두워졌다. 재치 있는 주인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말고 두 병 사요. 16골드로 값을 확 깎아 줄게요.”

주인이 징그럽게 씩 웃었다.

“음, 그냥 1병에 7골드 정도로 해주시면 안 될까요?”

여자가 쭈그러든 어깨로 주인의 눈치를 보았다. 돈을 지불하는 것은 여자인데 어쩐지 을이 된 상황이었다.

“뭐 그럽시다. 까짓것.”

주인은 여자 손님마저 놓칠 수 없어서 시원시원하게 7골드에 합의를 보았다.

분명 약을 만드는 사람은 1골드 이상은 받지 말라고 했으나 그런 규칙쯤은 진작에 무시했다. 손에 들어오는 황금을 거부하는 것은 상인의 덕이 아니었다.

시골 촌뜨기가 분명한 젊은 여자는 자기가 덤터기를 쓰는 줄도 모르고 신나는 얼굴로 돈을 세고 있었다.

“아니, 이보시오. 아까는 약이 없다고 하지 않았소.”

문이 쿵 소리가 나면서 열리더니 남자가 다짜고짜 고함을 질렀다. 엄청 난리를 치며 나가더니 고작 문 앞에서 대화를 엿듣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허허허, 손님. 제가 약을 내어드리려고 했는데 손님이 제 말을 듣지 않고 나가셨잖아요.”

주인은 양심에 찔리는 것도 없는지 그저 당당한 태도였다.

“나는 두 병 10골드에 주시오. 아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여섯 병 30골드 주시오.”

주인이 자꾸 기어오르는 입꼬리를 내리누르느라 힘들었다.

이 지역 사람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가격인지 뻔히 알 텐데. 둘 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바보라니.

주인은 돈을 많이 벌 생각에 한 사람에 한 병씩만 판매하기로 했던 규칙을 과감히 깨뜨려 버렸다. 어차피 이방인들이다. 그들에게 사기를 쳐봤자 소문이 날 리가 없었다.

“손님이 그렇게 원하신다니 어쩔 수 없이 내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어디 가서 소문내시면 안 됩니다. 아시겠지요?”

주인은 판매대 뒤쪽으로 난 쪽문을 열더니 두 사람에게 따라오라는 고갯짓을 했다.

얼떨결에 젊은 여자와 중늙은이 아저씨가 주섬주섬 주인의 뒤를 따르게 되었다.

좁은 통로를 빠져나가자 겨우 성인의 걸음으로 한 바퀴 돌면 고작 스무 걸음 정도나 될지 싶은 좁은 마당이 나왔다.

마당의 특징이라면 유난히도 높다란 벽으로 둘러싸인 것이었다. 사람이 죽어 나가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아주 은밀한 담이었다.

“거기 아저씨, 이리 와서 여기 있는 뚜껑 좀 들어 봐요.”

주인이 멀뚱히 서 있는 남자에게 손짓했다. 듬성듬성 올라온 키 낮은 잡초 사이에 주저앉은 주인은 커다란 뚜껑을 들어 올리며 버거워했다.

“거참, 약 하나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든 거요? 땅속에다가 비밀 창고라도 지어 놓았소?”

남자는 주름진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매끈한 손을 내밀며 불퉁한 속내를 숨기지 않고 투덜거렸다.

“이제 그걸 달랑 들어 봐요.”

주인은 숫제 남자를 제 하인 부리듯이 부리며 지시를 내렸다. 남자는 성질을 내면서도 충실히 바닥의 문을 열고 땅속으로 내려가는 통로를 확인했다.

그때였다.

“윽….”

주인이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앞으로 푹 쓰러졌다. 그녀의 등 뒤에 꽂힌 화살 주위로 진한 피가 흘러내렸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주인은 급소를 뚫렸다.

“뭐야, 이거.”

남자가 몸을 잽싸게 옆으로 굴리며 날아오는 화살을 피했다.

“애니, 상점으로 들어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애니가 머리를 감싸 쥐고 재빠르게 방금 나온 통로 쪽으로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