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 승용차는 멋들어지게 미끄러져 한 옷가게 앞에 멈췄다. 운전석에서 남자가 내리자 직원들은 너도나도 문 앞으로 줄을 섰다. 깔끔한 정장 차림의 남자는 펄럭이는 넥타이를 감싸 잡으며 뒷좌석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곧이어 문을 열자, 곱고 매끈한 다리가 땅을 딛는다.
“이나야, 어서 내리자.”
먼저 내린 여자의 손을 잡고 나온 그녀. 그들은 한눈에 봐도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오늘도 아름다우시네요.”
“고마워요.”
옷가게의 점장까지 나와 환대를 받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들의 우아한 행동과 고급스러운 옷차림, 수려한 외모는 직원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오늘은 어떻게 오셨어요?”
“오픈 행사가 있어서요. 우리 딸 옷 좀 골라 줬으면 하는데.”
“따님이 예쁘셔서 어떤 옷도 잘 어울리실 것 같아요. 이리 오세요.”
직원들은 딸이 이것저것 옷을 입어 보는 동안에도 기다리는 중년의 여성을 가만두지 않았다. 서비스 음료는 물론 손 마사지에 두피 마사지까지 온갖 정성을 쏟았다. 그도 그럴 것이 범상치 않은 이 모녀는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DO 그룹의 안주인과 외동딸이었기 때문이다. 입이 쩍 벌어질 만한 자산 소유는 기본이었고 DO 그룹의 우람한 자택은 텔레비전에까지 소개된 적이 있다.
“엄마. 나 이거로 할래!”
“예쁘네! 괜찮다.”
“안목이 정말 좋으세요! 최근에 나온 신상품이거든요.”
“이거로 할게요.”
0의 숫자가 여럿 모여 뛰노는 가격에도 주저 없이 카드를 꺼내는 모습에 직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계산하는 엄마의 옆에서 딸은 거울을 보며 몸을 이리저리 틀어 보았다.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는 몸을 움직일 때마다 살랑살랑 그녀의 어깨를 스쳤다.
“이나야. 가자.”
“다음에 또 올게요. 언니!”
싱긋 웃는 눈인사를 전하고 가게를 나와 차에 올랐다.
“엄마 고마워. 잘 입을게.”
“가서 잘해야 해. 알지?”
“그럼! 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자리가 한두 번인가 뭐.”
고작 해봤자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딸은 긴장하는 엄마완 달리 평소의 그녀 성격대로 밝음을 잃지 않았다.
그렇게 도착한 오픈 축하 행사장. 딸은 꽃을 머금은 듯한 미소를 그리며 엄마에게 팔짱을 꼈다. 그런 딸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입장하는 그들. 만약 그날 그곳에 참석하지 않았더라면…….
그로부터 3년 후 2013년 8월의 어느 날.
훤칠한 키와 보기 좋은 체격을 자랑하는 강현은 면접을 위해 종이에 받아 적은 주소를 찾아갔다. 고졸밖에 안 되는 자신에게도 기본 450을 준다는 것이 의아했지만 강현은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찜찜한 마음을 안고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그는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종이에 제멋대로 흩날려 쓴 주소는 그 유명한 DO 그룹의 자택이었던 것.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이곳을 모를 이가 누가 있으랴. 강현은 서둘러 옷과 머리를 정돈한 후 큰 대문 앞에 섰다. 그러자 벨을 누르기도 전,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그는 또 한 번 놀랐다. 드높은 푸른 소나무가 담을 따라 늘어져 있었고 넓은 잔디밭 가운데로 대리석의 길이 빛났다. 그리고 고개를 올려다보면 본 자택이 위풍당당한 오라를 풍기며 자신을 맞이한다. 자택은 네모난 3층 건물이었는데 창문마다 발코니가 나와 있었고 맨 위는 보이지 않지만 아마 텔레비전에 나왔듯이 옥상의 수영장을 가리는 거대한 지붕 덮개가 있으리라. 강현은 위축되는 마음을 다잡고 대문만큼이나 큰 현관 앞에 다다르니 웬 젊은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은강현 씨 맞으신가요?”
“네.”
“회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따라오세요.”
마른 목에 침만 꿀꺽 삼키며 집 안으로 발을 들였다. 높은 천장에 달린 고급스러운 샹들리에가 잔뜩 긴장한 강현의 뒷덜미를 더욱더 잡아 주었다.
“은강현 씨?”
“아, 네!”
그녀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가자 뉴스에서만 보던 DO 그룹의 회장 진성의 모습에 숨이 턱 막혔다.
“자네가 은강현인가?”
“처음 뵙겠습니다. 은강현이라고 합니다.”
소파에 앉아 강현을 쳐다보는 진성의 눈빛은 굳세고도 흔들림이 없었다.
“반갑네. 이리 앉게.”
강현은 소파에 앉아 애꿎은 손만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긴말 하지 않겠네. 내 딸을 경호해 주었으면 하는데 월급은 말한 대로 450. 잘해 주면 더 올려줄 테니 해볼 텐가?”
“그런데 한 가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그래.”
“저는 경호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고졸밖에…….”
“말이 경호지 감시를 하라는 거야. 이곳에서 보는 것 듣는 것 그 어떤 것도 외부에 발설해서는 안 될 것이고. 아침 7시까지, 밤 10시 퇴근. 어떤가?”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가 보게.”
진성은 자신의 할 말을 끝냈다는 듯 아직 나가지도 않은 강현을 뒤로하고 책상에 앉아 서류를 펼쳤다. 강현은 무거운 분위기에서 벗어나고자 서둘러 나오려는 순간 진성은 그의 등 뒤에 말을 던졌다.
“내 딸이 예민하게 굴어도 참아 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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