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벌컥 열리며 여자가 뛰어 들어왔다. 길게 늘어진 머리칼이 마치 실크처럼 부드럽게 날렸다. 밖에서 봤으면 샴푸 광고에 딱 맞는 모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다. 여자는 그냥 모델로도 손색이 없었다. 길고 가느다란 몸매는 아름다웠다. 여자는 범생이 10살 더 나이 먹었으면 하고 바란 얼굴 바로 그대로다.
하얗고 티 하나 없는 말간 얼굴. 그리고 그 순수해 보이는 얼굴에 어울리는 커다랗고 검은 눈이 보였다. 그러나 아름답고 청순한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여자는 강렬하고 섹시하게 빛나는 눈빛을 지녔다.
강의 눈에 천천히 반짝이는 빛이 들어찼다. 뒤에서 여자를 쫓아 민수가 놀란 얼굴과 겁에 질린 표정으로 들어와 여자의 팔을 난폭하게 잡아당겼다.
“이! 여자가! 야 여기가 어딘지 알고 들어와! 이 여자야!”
여자의 얼굴은 변함이 없다. 민수는 키도 크고 덩치도 큰, 상당한 근육질에다 얼굴에 조폭이라고 쓰인 그런 인상이었다. 그래서 원만한 여자들은 민수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여자가 민수의 팔을 홱 뿌리치며 냉랭하게 말을 했다.
“여기로 어린애들이 들어가는 거 봤다는 사람이 있어! 못 찾으면 나갈게.”
여자의 깡이 상당하다. 민수의 얼굴을 보면서 저 정도로 말을 하는, 아니 반말을 하는 여자를 본 적이 없는 강이 입술에 호선을 그었다. 그리고 여자는 한 번에 방 안을 쭈욱 돌아보았다. 자신과 남자들을 한 번 돌아본 다음 그리고 아이들을 보았다. 당연히 범생이다. 범생이 짱인 허세꾸러기의 뒤에서 외면하고 서 있는 것을 본 여자가 범생이에게 척척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붙잡아 잡아끌고 나가려 했다. 범생이가 반항한다. 귀엽게.
“놔! 이모가 뭔데? 이제 나도 내 맘대로 살 거야. 이모도 이모 맘대로 살아!”
이모란 여자는 대답이 없다. 단단히 모범생의 팔목을 잡고 그대로 문 쪽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민수가 험악한 얼굴로 문을 막고 섰다. 이사들이 전부 강을 돌아보았다. 말려야 하지 않겠냐는 얼굴들이다. 민수의 싸다구 한 방으로 아마 여자가 앰뷸런스에 실려 가지 않을까 싶은 모양이다. 강이 여전히 호기심이 어린 눈으로 그런 눈빛들을 무시하고 여자를 지켜보았다. 여자가 피식 웃는 것 같았다. 강이 놀라움에 더욱 상체를 내밀었다.
범생이의 손을 놓은 여자가 순식간이다. 테이블에 놓인 맥주병을 잡은 것은. 맥주병으로 민수의 이마를 후려친 여자가 바로 민수의 가랑이 사이를 화려한 니킥으로 올려 찼다. 이사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자신들의 가랑이 사이를 손으로 가렸다. 민수가 신음 소리도 못 내고 꼬부라진 새우 같은 몰골로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여자가 살짝 흐트러진 머리칼과 얌전한 팔부 치마를 정리하고 놀라서 경직된 이사들을 바라보았다.
“더 용건 있는 사람?”
모두들 고개를 저으며 강을 바라보았다. 한강이 상냥하게 웃었다. 그리고 손등을 바닥으로 해서 문을 가리키며 ‘얼마든지 나가세요.'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여자가 강을 한 번 노려보고는 경악해서 얼음처럼 굳은 범생이를 데리고 나갔다.
한강이 입을 벌리고 놀라서 나가는 여자와 범생이를 바라보고 있는 허세꾸러기들에게 소리쳤다.
“안 나가!”
꼬마 계집아이들이 놀라서 허둥지둥 방을 나갔다. 강이 일어서서 아직도 바닥에서 거품을 물고 시체처럼 굳어 있는 민수에게 다가갔다. 이마에서 피가 철철 나서 정말 새빨간 새우 같은 몰골이다. 민수를 발로 이리저리 쿡쿡 찔러 보고 강이 잠시 쭈그리고 앉아서 민수에게 말을 했다.
“이놈아. 척 보면 네 상대가 아닌 것을 알아야지. 하여간 요즘 애들은 상대 파악을 이렇게 못하면서 무슨 조직을 한다고 그래?”
민수가 눈물을 흘리면서 뭔가 중얼거렸다. 죄송하다는 말인 것 같다. 강이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섰다. 이사들을 돌아보며 담배를 꺼내 물고 손을 휘휘 저으며 먼저 가겠다는 말을 했다.
“여기 이놈 병원에 가야 할지 알아보시고, 천천히들 놀다 가세요. 저는 먼저 일어납니다. 잊었던 일이 생각나서. 아무튼 생일파티는 고마웠습니다.”
이사들이 먼저 가시면 어쩌시냐고 인사말은 했지만 강과 같이 노는 것보다는 자신들끼리 노는 것이 더 즐거운 것이 확실한 이상 적극적인 만류는 하지 않았다. 강이 난잡하게 노는 것을 싫어해서 요즘 들어 회식도 하지 않은 지 오래였다.
강이 무표정한 얼굴로 성큼성큼 나이트클럽을 나섰다. 그리고 입구에 서 있는 술 취한 취객들을 지나서 앞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강을 보고 놀란 벤츠의 운전사가 뛰어왔다. 그리고 비서도 같이 뛰어왔다. 한강이 한쪽 모퉁이에서 자신이 찾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운전사와 비서를 보고는 손으로 그냥 있으라는 신호를 하고는 모퉁이로 천천히 다가갔다.
모퉁이 작은 골목에서 여자가 범생이를 향해서 서 있었다. 그리고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녹색 플라스틱 병이다. 가운데 종이는 총천연색으로 농약이라고 멋지게 고딕체로 쓰여 있다.
“어떡할까? 같이 집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이모 말 잘 듣겠다고 할래? 아니면 이 병같이 나눠 마시고 엄마 아빠 따라갈까?”
모범생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고이고이 말을 듣지 않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똥고집을 부리려는 심산인 거 같다.
“이모 왜 학교 그만뒀어? 나 때문이지? 나도 학교 그만둘 거야. 공부에 취미도 없고 취직해서 돈 벌면 돼.”
“뭐? 취직? 너 지금 중3이다. 미성년자는 정식 취직을 못해. 왜 주유소에서 하루 12시간씩 열심히 벌어서 한 달 알바비 40만원이라도 받으면 그 돈으로 이모 명품 쓰레빠 사주게? 어이쿠 눈물이 다 나네?”
구석에서 보고 있는 한강의 입가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떠오른다. 아이구야. 이모 입에 칼이라도 달았나? 시니컬하기는 우주 최강인데?
범생이 울먹이며 소리를 질렀다.
“왜! 다 싫어! 이모도 싫고, 죽은 엄마 아빠도 다 싫어! 죽고 싶다고!”
“그래?”
여자가 녹색 병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모범생을 노려보았다. 한마디 말도 없이 바라보다가 여자가 병을 입에 대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긴장해서 바라보고 있던 범생이가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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