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序.

“빨리! 빨리, 천을 더 가져오너라!”

사내의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는 닦아내는 의원의 손보다 더 빠르게 번져 나왔다. 붉게 물든 천들이 내뿜는 피비린내가 장막 안을 짙게 물들이고 있었다. 의원은 피가 번져 나오는 상처 위에 지혈제를 쏟아부었다.

“왜 피가 멈추지 않는 것이냐?”

죽은 듯 창백한 얼굴을 내려다보는 사내의 얼굴이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다.

“쇠뇌의 위력에 상처가 너무 깊습니다. 그것도 심장 가까이라 이대로는…….”

생사를 오가는 사내를 지근거리에서 그림자처럼 따르는 부관 장재하(張在廈)의 호통에 군의관의 눈빛, 손과 목소리가 전부가 떨렸다.

“그게 무슨 소리냐! 장군께 무슨 일이 생기면 네놈이 무사할 듯싶으냐!”

재하의 호통에 군의관의 손이 더 크게 떨렸다. 알기에 두렵고 또 두려웠다. 생사를 오고가는 사내의 운명에 따라 그의 운명도 결정될 것이기에 눈앞이 노랬다.

“멈춰라!”

“누구냐?”

장막 밖의 소란에 재하가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무슨 소란인 게냐!”

“한 발 더 다가서면…….”

결국 재하는 밖으로 향했다. 입구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는 검은 외의(外衣)를 입은 사람과 약롱(藥籠)을 짊어진 사내가 창을 세운 병사들과 대치 중이었다. 그들이 여기까지 어떻게 들어왔는지 생각할 사이도 없이 날 선 물음이 튀어나왔다.

“누구냐?”

그의 물음과 동시에 검은 외의 사이에서 하얀 손이 튀어나왔다. 그 손이 쥐고 있는 건 ‘설(雪)’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금패였다. 금패의 의미를 머리가 인지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모두 무기를 거두고 물러서라!”

재하의 명에 군사들이 일제히 창과 검을 거두며 물러섰다. 재하는 즉각 부복해 머리를 조아렸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병사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상황을 주시했다.

“용서하십시오, 공…….”

하얀 손이 그의 말을 막았다.

“내가 온 것은 함구하거라. 아무도 몰라야 한다. 그 ‘아무도’에는 장군도 포함해서다. 알겠느냐?”

재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건(巾)을 깊이 눌러쓴 여인은 이곳에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어의를 보내 달라 파발을 띄운 것도 반나절 전이었다. 궐에서 어의가 도착하기까지 빨라야 이틀이었다. 그런데 마치 보국(保國)대장군 설시강(卨豺罡)의 간두지세(竿頭之勢)를 예상이라도 한 듯 등장한 여인에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 마주한 상황이 현실인가 싶었다.

“뢰(顂), 뭘 하느냐.”

“예.”

여인의 재촉에 뢰라 불린 사내는 재빠르게 장막 안으로 들어섰다. 여인의 뒤를 따르던 재하가 군의관에게 물러서라는 눈짓을 보냈다. 재빨리 약롱을 내려놓은 뢰는 침상 옆 더운물에 손을 씻고는 생사를 오가는 사내를 살피기 시작했다.

“어때?”

낮은 물음에 사내가 계속해서 피를 뿜어내는 상처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심장을 가까스로 비켜 갔습니다. 피가 멈추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살릴 수 있는 거지?”

간절함이 실린 물음에 돌아온 답은 담담했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뢰는 군의관을 봤다.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예? 예. 어떤 방법을 쓰실 겁니까? 온갖 지혈제를 다 써 봤습니다.”

군의관이 서둘러 다가섰다.

“상처를 봉합해야겠습니다.”

“예?”

흔치 않은 방법에 놀라는 군의관에 아랑곳하지 않고 뢰는 말을 이었다.

“그 후에 서각(犀角)을 써서 지혈을 할 것입니다.”

“서우(犀牛)의 뿔이라면 엄청 귀할 텐데…….”

군의관의 놀람을 뢰가 빠르게 잘랐다.

“일단 물을 끓여 주세요. 바늘과 은사(銀絲)를 끓여야겠습니다.”

“예.”

“무얼 하는 게냐. 서둘러 돕지 않고.”

여인의 낮은 호령에 정신이 번쩍 돌아온 재하는 서둘러 군의관을 따라나섰다. 그러자 여인이 가쁜 숨을 내쉬는 사내를 굽어봤다.

“괜찮을까?”

“저와 아신이 왔으니 괜찮을 겁니다.”

“뢰, 이번 생에만큼은 이 사람의 죽음을 보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꼭 살려.”

무겁디무거운 눈이 가쁜 숨을 몰아쉬는 얼굴을 눌러봤다.

‘왜 또 이러고 계신 겁니까?’

이 사내의 생과 사를 지켜본 게 몇 번째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때마다 빌고 또 빌었다. 제발 이 사내에게 하얀 백발과 주름 가득한 죽음을 허해 달라 피를 토하며 애원했지만, 언제나 하늘은 늘 비웃기라도 하듯 그녀의 바람을 외면했다. 그래서 이번 생에는 하늘을 거슬러서라도 이 사내를 지키기로 결심했다.

‘이번 생에는 반드시 당신을 지킬 겁니다. 반드시…….’

방 안으로 숯이 활활 타는 화로가 들어오고 그 위에 작은 무쇠솥이 걸렸다. 물이 끓자 뢰는 바늘과 머리카락만큼이나 가는 실을 끓여 소독하고 손을 다시 뜨거운 물에 씻었다.

“의원님.”

“예.”

“제가 상처를 감싼 천을 치우면 다시 피가 뿜어져 나올 겁니다. 시야 확보가 관건이니 빠르게 피를 흡수해 주세요. 그것만 해주시면 나머지는 제가 감당할 겁니다.”

군의관이 비장한 얼굴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시작합니다.”

뢰가 피를 머금은 천을 거둬내자 상처는 또다시 새로운 피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의원이 피를 닦아내자 뢰가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그는 흉측하게 찢어진 상처를 능숙하게 갈무리했다. 고통이 따를 법도 한데 창백한 얼굴과 몸은 어떤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생과 사를 오가는 사내는 깊은 무의식 속을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단 한마디가 그 어둠을 흔들었다.

-아신.

그 이름이 귀에 꽂히는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다. 안 그래도 타들어 가는 심장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뜨겁게 달군 가는 쇠줄이 심장을 칭칭 동여매는 것 같았다. 너무 뜨거워 심장이 조각조각으로 흩어지는 것 같은 고통에 숨이 막혔다.

“으으, 흐으.”

시체처럼 미동도 없던 사내의 갑작스러운 발작에 모두가 놀라 당황했다.

“장군!”

“으윽, 으으흑.”

“붙잡아요! 조금만 더 하면 됩니다.”

그 순간, 나선 것은 여인이었다. 여인은 사내의 머리를 품에 안으며 나직이 속삭였다.

“쉬이, 쉬. 괜찮아요, 장군.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달래는 속삭임에도 뢰가 손을 멈출 만큼 발작은 점점 더 거칠어졌다.

“장군!”

“마비산을 쓰는 게…….”

의원의 제안에 뢰가 즉각 반발했다.

“안 됩니다. 지금 장군은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상태입니다. 이미 의식이 없는데 마비산은 최악의 결과를…….”

뢰의 우려가 채 끝나기도 전에 여인은 발작적인 호흡이 터져 나오는 입술을 덮었다. 그리고 자신의 숨을 천천히 밀어 넣었다. 온기가 사라진 채 맞닿은 입술 사이로 사내의 거친 호흡이 천천히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그사이, 뢰는 지혈제를 듬뿍 바르고 면포로 상처를 감았다. 군의관은 건이 벗겨지며 나타난 여인의 얼굴에 놀라 숨이 턱 막혔다. 여인의 얼굴이 드러난 순간, 미인도 한 폭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여인은 감출 수 없는 귀태(貴態)가 흐르고 있었다. 처음부터 평범한 여염집의 여인이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그늘 아래 숨겨진 얼굴은 태어나 처음 보는 경국지색(傾國之色)이었다.

“의관께서는 이 처방대로 탕약을 준비해 주시겠습니까?”

군의관은 자신과는 다른 수준의 의술을 보여주는 사내가 내미는 처방전을 공손히 받았다.

“예, 예.”

“장 부관.”

“예.”

“그대는 주변 경계를 더 강화하거라.”

“예.”

재하는 빠르게 밖으로 향했다.

“이제 괜찮은 거야?”

“큰 고비는 넘겼습니다. 맥도 많이 안정되었습니다. 노옹(老翁)께서 천랑성(天狼星)이 흐려지는 걸 발견했기에 다행히 때를 놓치지 않았네요.”

“그만 다쳤으면 좋겠는데…….”

대장군 설시강은 4년째 북방을 지키는 중이었다. 크고 작은 상흔들이 수두룩한 상체를 보는 단아한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그 반흔(瘢痕)들은 그가 살아온 시간들이 얼마나 치열했나를 보여주는 방증이었다.

“곧 있을 혼례 때문에 도성으로 부름을 받았으니, 장군도 이제 좀 쉴 수 있을 겁니다.”

“그래, 그렇겠지. 많이 고단했으니까 지금부터라도 그 아이 옆에서 평안했으면 좋겠어.”

사내의 평안을 바라는 진심은 눈빛만큼이나 애틋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많은 의미를 함축한 질문에 말간 눈이 고통으로 어지러운 얼굴을 향했다.

“응. 이 사람의 삶이 평안하다면 나는 그걸로 됐어.”

“들어갑니다.”

탕약을 든 군의관이 서둘러 들어섰다. 뢰와 군의관은 사내를 일으켜 탕약을 먹이려 애썼다. 하지만 탕약은 사내의 입을 넘어가지 못했다.

“장군, 드셔야 합니다. 열이 내려가지 않으면 큰일 납니다. 그러니 제발.”

뢰의 간절한 애원에도 탕약은 여전히 사내의 입과 탕약 사발 사이에서 맴돌 뿐이었다.

결국, 그걸 지켜보던 여인이 나섰다.

“이리 다오.”

뢰는 묵묵히 탕약을 내밀었다. 그러자 여인은 망설임 없이 탕약을 입에 머금고는 사내의 입을 눌렀다. 그리고 조금씩 탕약을 흘려 넣었다. 사내의 목울대가 움직이고 그렇게 탕약은 비워졌다. 할 일을 마친 여인은 손등으로 입술을 쓱 닦았다. 그리고 깊은 잠이 든 사내를 눌러봤다.

‘괜찮아질 겁니다. 이번 생에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당신을 지킬 겁니다.’

낮과 밤이 지나고 다시 날이 밝았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시강의 상태는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

“상처에 열감도 없고 이제 괜찮을 겁니다.”

“그런데 왜 의식이 아직이야?”

걱정으로 단아한 미간에 미세한 골이 파였다.

“생사를 오갔으니 기다리면 돌아올 겁니다. 그동안 많이 고단했을 테니 이렇게라도 쉬시는 것도 괜찮습니다.”

“이렇게라도 쉬어야 한다…….”

군신(軍神)으로 추앙받는 사내의 평안이 생사를 오가는 고빗사위에서나 이루어지다니 참으로 서글픈 말이었다.

장막의 입구가 열렸다. 그리고 재하가 빠르게 안으로 들어섰다.

“어의가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서두르십시오.”

“가시죠.”

뢰가 빠르게 자신의 물건을 정리하자 여인은 건을 뒤집어썼다. 그리고 여전히 파리한 사내의 얼굴을 흘깃 봤다.

“여기는…….”

“제가 눈치껏 할 테니 어서 가십시오.”

군의관이 손을 저었다.

“부탁합니다. 가시죠.”

뢰가 여인의 팔을 잡고 장막의 뒤로 향했다. 좁은 틈 사이로 두 사람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굳게 닫혀 있던 긴 속눈썹이 무겁게 열렸다.

“장군!”

놀란 의원의 반가운 부름에 재하가 사내와 눈을 맞췄다.

“장군!”

장막 안으로 들어서던 어의와 의관들이 빠르게 침상을 둘러쌌다.

“괜찮으십니까?”

대답 없는 사내의 시선이 살짝 벌어진 장막의 뒤쪽을 향해 미끄러졌다.

#一. 설연궁(雪演宮)의 마녀

“너는 이 옷이 가진 의미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주변의 공기만큼 냉기 가득한 눈빛이 보는 건 군데군데 붉은 얼룩이 묻은 흰 여우 털의 갖옷이었다.

“요, 용서해 주셔요.”

일은 아침나절 외의를 든 침방(針房)의 궁녀와 염료를 든 염방(染房)의 궁녀가 부딪치며 발생했다. 그 순간부터 두 곳 모두 얼음, 그 자체였다. 나이 지긋한 상궁들과 궁녀들이 모두 얼어붙은 장원(場院) 한가운데 모여 있었다. 모든 이는 숨을 멈춘 채 서로의 눈치만 슬금슬금 보거나, 자신이 이 사달의 주인공이 되지 않음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 사태를 진정시킬 유일한 인물이 없는 때에 사고를 친 운 없는 당사자에게 동정 어린 눈초리를 보낼뿐이었다.

“나는 말이지, 용서라는 말 한마디로 모든 걸 때우려는 너희의 그 가벼운 입이 딱 질색이야. 잘못을 했으면 그만큼의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 아니겠느냐?”

망가진 옷을 든 걸음이 물가에서 멈췄다. 그리고 휙, 겨울 냉기를 잔뜩 품은 바람을 타고 너울너울 떨어진 옷이 얼음 위로 내려앉았다. 둥글게 뭉친 덩어리는 언뜻 얼음 위에 소복하게 쌓인 눈처럼 보였다. 호수를 덮은 얼음만큼이나 냉혹한 눈이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을 내려다봤다.

“가서 꺼내 오거라. 그럼 내 너를 용서할 것이다.”

“헉!”

여기저기서 들숨을 삼키는 소리가 거칠게 울렸다.

“공주마마, 고정하시옵소서.”

모두가 머리를 조아렸다. 호수를 덮은 얼음은 아직 사람의 무게를 견딜 만큼은 단단하지 못했다. 한 발을 내딛는 순간, 그 걸음 아래에 기다리고 있는 건 죽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