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오늘도 그 여잔 책상머리에 앉아 커다란 유리창 밖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다.

EKG모니터 소리만이 가득한 ICU(intensive care unit:중환자실)에서는 이따금씩 즐기는 휴식조차 날 선 긴장을 품은 비상대기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아주 가끔 그간의 노고에 대한 보상처럼 느슨한 시간이 찾아들 때면, 그녀는 꼭 커피 한 잔을 책상에 올려두고 턱을 괴고 앉아 버릇처럼 허망한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곤 했다.

언뜻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는 것 같았지만 고요한 눈동자 속에 스며든 그것은 눈물조차 메말라버린 건조한 고독에 가까웠다.

마치 떠나버린 첫사랑을 떠올리는 사람처럼 돌아오지 않을 누군가를 기다리듯, 그녀는 무척 쓸쓸한 눈빛으로 창밖을 습관처럼 응시하곤 했다.

“차 한 잔 줘요. 녹차로.”

툭 던지는 말투로 남자가 딴죽을 걸 때면 그녀는 언제나 그랬듯 턱을 괸 채로 낭창하고 성의 없는 대답을 건넸다.

“차는 셀픕니다아…….”

그녀의 무신경한 시선과 마주할 때마다 남자는 마치 동생을 괴롭히려다 만 심술궂은 형의 표정이 되어 허탈하게 등을 돌리기 일쑤였다.

남자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는 모른다.

여자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남자는 여자를 오래도록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가 환자를 보살필 때에도, 죽어가는 환자를 보며 눈물을 글썽일 때도, 직원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에도, 허망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에도.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 그 끝에 겹쳐진 또 하나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그곳엔 늘 남자의 시선이 머물러있었다.

ICU를 지키는 그녀, 한미사.

그녀는 알고 있을까?

오늘도 그 남자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기울어져 있음을.

“안 따라올 겁니까?”

그가 회진을 하겠다는 듯 ICU 안쪽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느슨히 앉아있던 그녀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서며 환자 차트를 챙겨들고 그에게로 다가갔다.

ICU 깊숙이까지 들어선 그는 어느새 잰걸음으로 자신보다 앞서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담담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김지향 환자분.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BST가 낮아서 음료 섭취 도와드리고 상황 지켜보는 중입니다. BP는 120에 70…….”

가장 안쪽 침대 앞에 우뚝 선 미사가 해당 차트를 착실하게 내밀고 환자 상태를 설명했다.

빠르지만 귀에 쏙쏙 박힐 만큼 또박또박한 목소리도 귀에 들지 않는 듯,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옆에서 열심히 재잘거리는 그녀를 넌지시 바라보기만 했다.

‘한미사.’

너. 대체 뭐야…….

ICU의 그녀, 한미사.

남자는 자꾸만 그녀를 향하게 되는 자신의 시선을 원망하며 가슴에서 치미는 갑갑한 한숨을 조용히 속으로 삭였다.

#1. Hemorrhage

헤어짐은 불시의 출혈처럼 갑작스럽다

준비실에서 수술 도구를 챙기는 박 간호사의 손길은 무척이나 정교하고 조심스러웠다.

수술에 필요한 겸자와 메스를 개부바트에 담던 박 간호사는 때마침 안으로 들어서는 정 간호사를 반가운 얼굴로 맞이했다.

“어마? 정 선생님도 OP(operation:수술)있어요?”

“응. 40분 뒤에 2번에서. 맹장이라 간단하게 끝날 거야.”

“부럽다. 우린 캔서(cancer:암)라서 오래 걸릴지도 모르는데.”

“부럽긴? 간단한 수술이어도 2년차 레지가 집도해서 약간 조마조마해. 그나마 장 교수님이 참관하시니까 든든하지.”

“장 교수? 아아, 전에 선생님이 말했던 그 훈남 교수님?”

“응. 요즘 같은 팀으로 일하니까 매일이 행복한 거 있지? 우리 짱 교수님은 도대체 빈틈이 없단 말이야? 얼굴도 짱 잘생겨, 키도 훤칠한데다 성격까지 짱 시원시원하지, 게다가…….”

짧게는 한 시간, 길게는 열두 시간이 넘는 수술을 어시스트해가며 사전 준비를 비롯해 뒤처리까지 소화해야만 하는 수술실 간호사들은 일반 병동 간호사들이나 외래간호사들과는 근무체계가 확연히 달랐다.

응급상황에 대비해 24시간 대기해야 하는 것은 물론, 담당 닥터의 호출이 있으면 언제든 OP스탠바이를 해야 했기에 본인에게 배정된 팀원들 외에 다른 팀에 소속된 스텝들의 얼굴까지 일일이 꿸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박 간호사가 장 교수의 존재를 아는 것은 그가 한성대학병원 최연소 교수라는 사실과 이따금씩 간호사들끼리 그를 두고 입방아를 찧어대는 것을 들은 적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 간호사는 장 교수의 얼굴을 실제로 볼 기회가 없었기에 정 간호사의 호들갑을 이해할 수 없단 듯이 쳐다보았다.

“그렇게 잘생겼어요? 늙수그레한 교수님들 사이에 젊은 분이 껴있어서 잘생겨 보이는 거 아니에요? 듣기론 되게 산적 스타일이라던데.”

“산적이라니? 그렇게 섹시한 분한테. 자기가 몰라서 그렇지, 그런 걸 바로 남성미라고 하는 거야.”

“에이, 뭐야. 결론은 산적 스타일이란 얘기잖아요, 그 말이.”

“글쎄 아니라니까? 자기, 수술방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장 교수님 얼굴 제대로 본 적 없지? 아마 자기도 실제로 보면 놀랄걸? 얼마나 남자답고 멋있는데.”

장 교수를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지, 정 간호사는 두 눈을 반짝이며 입가에 수줍은 미소까지 내걸었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살짝 궁금하긴 하네요.”

“궁금하지? 딱 보면 자기도 우리 짱 교수님 팬으로 등록될걸? 뭐, 가끔 스텝들 야단칠 땐 미친개처럼 보이긴 해도 엄연히 생명을 다루는 일이니까. 이따 수술 시작 전에 우리 방 살짝 건너다봐. 박 선생도 우리랑 같은 시간이지 않아? 3번 방이지?”

“그러고 보니 옆방이네요? 에이, 그래도 수술 시간에 딴짓은 좀. 오늘 수술이 좀 심각하기도 하고…….”

“아! 소문 들었어. 오늘 3번 방 OP환자 말이야. 독사 어머님이시라며?”

좀 전까지 들뜬 목소리를 흘리던 정 간호사가 비밀스러운 소문을 접한 사람처럼 톤을 낮추고 속삭였다.

‘한독사’라는 별명에 걸맞게 일할 때 독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한미사 책임간호사를 거론해서인지, 정 간호사의 표정은 사뭇 조심스럽기까지 했다.

박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유터린 캔서(uterine cancer:자궁암) 환자인데 복강경 수술이 아닌 걸 봐선 전이가 꽤 된 것 같기도 하고. 자세한 건 들어가 봐야 알 것 같아요.”

“그럼 개복한단 말이야? 듣자니 연세도 꽤 있으시던데. 굳이 무리하게 OP할 필요가 있나?”

“요즘엔 70대도 젊은 층에 속한다잖아요.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여겼겠죠. 저도 첨엔 연세만 보고 한 선생님 할머님인 줄 알았는데 모친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게다가 한미사 선생님 말이에요, 우리 앞에선 엄청 독하게 굴더니 어머니 일이라면 완전 끔찍이 챙기시더라고요. 지난번엔 모가지 잘릴 거 각오하고 스탠바이 직전에 수술실 밖으로 뛰쳐나갔다니까요? 그날 갑자기 어머니가 쓰러지셨거든요. 곧장 우리 병원 ER(emergency room:응급실)로 오셨구요.”

“그래? 어휴, 어쨌든 독사도 참 안됐다. OP하는 동안 쉬지도 못하고 밖에서 꼼짝없이 대기할 텐데. 기다리는 내내 얼마나 맘 졸이겠어?”

“오늘 직접 스크럽(scrub) 선다던데요?”

“독사가 직접 들어간다고?”

정 간호사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수술실 책임간호사인 한미사는 수술을 집도하는 동안 의사에게 필요한 기구를 전달하거나 석션을 하는 등, 수술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스크럽 간호사를 맡고 있었다.

나이에 비해 책임자 자리를 빨리 얻어낸 한미사의 능력이야 한성대학병원에서 최고의 스크럽으로 불릴 만큼 손에 꼽힌다지만, 문제는 오늘 수술을 받게 될 환자에게 있었다.

수술을 앞둔 환자는 자궁암.

환자는 70세 노인으로 체구가 작고 왜소해서 수술이 장시간 무리하게 진행될 경우 위험에 처해질 수도 있었다.

수술실에서 일하다 보면 돌발 상황이 비일비재했기에 각오할 일이었지만, 정 간호사가 놀란 이유는 당장 암 수술을 앞둔 환자가 이번 수술에 직접 참여하는 한 간호사의 모친이라는 점이었다.

제아무리 베테랑인 한미사라 해도 개복된 어머니의 몸을 직접 본다는 것은 감당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

곧이어 수술실에서 맞닥뜨릴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는 듯, 정 간호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참 독하다 독해. 수술실 경험 쌓다 보면 사람 배 가르는 것쯤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버린다지만, 그래도 핏줄인데 어떻게 그걸 다 지켜보겠다는 건지. 한독사가 괜히 독사는 아닌 모양이야. 그나저나, 아무리 베테랑이라도 환자 보호자인데. 병원에서 오늘 스크럽 허락해준 것 자체가 도무지 이해 불능이다, 불능이야.”

“뭣들 하고 섰어? 지금이 잡담 시간이야?”

불현듯 들리는 호통소리에 정 간호사가 화들짝 놀라 주춤거렸다.

덩달아 놀란 박 간호사가 준비실 입구에 성난 표정으로 서 있는 수간호사를 보고 얼른 고개를 숙였다.

“여기가 동네 커피숍인 줄 알아? 왜들 이러고 있어? 수술 준비 안 할 거야?”

“죄송합니다! 지금 합니다! 죄송합니다!”

“잡담하느라 침 튀었을 텐데 오염된 기구들 수술방에 들이려고? 제정신이야? 당장 손 세척부터 하고 기구 세팅 다시 하도록 해!”

수간호사의 호통에 얼굴을 붉힌 두 사람이 손 세척을 하기 위해 서둘러 준비실을 빠져나갔다.

* * *

빳빳한 솔로 손톱과 손가락 사이를 씻어내는 손길에 평소보다 더한 긴장감이 서렸다.

여리고 하얀 손등이 새빨갛게 쓸려 살갗이 벗겨지지는 않을까 염려될 즈음, 느릿하게 동작을 멈춘 미사가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거울에 비친 뽀얀 얼굴에 짧은 사이 많은 감정들이 교차했다.

그것을 애써 감추려는 듯 미사는 얼른 평소의 무표정으로 단단히 무장했다.

그간 수많은 환자들의 수술을 경험하며 무던히 굳혀진 감정이었지만 오늘은 특별히 마음을 더욱더 단단하게 다잡아야만 했다.

하지만 열 번, 백 번, 그것도 모자라 천 번의 다짐 끝에서도 초록색 스크럽복을 입고 수술실을 향해 걷는 미사의 발걸음은 쇠사슬에 걸린 듯 천근만근 무겁기만 했다.

“6월 8일 AM 10시. 김옥주 환자 OP 스탠바이!”

창백하리만치 밝은 빛을 쏟아내는 무영등이 켜지자, 의료진과 미사가 둘러싼 수술대 위에 초록색 소공포로 몸을 가리고 축 늘어져 누운 옥주의 모습이 환하게 조명되었다.

수술대에 누운 환자를 내려다보는 지금 이 순간이 미사에겐 늘 주어진 일상처럼 낯익지만 한편으론 몹시도 낯선, 낯선 만큼 두렵기까지 한 장면이었다.

마스크를 낀 채 곤히 눈감은 엄마의 얼굴을 염려스레 바라보던 미사는 이내 긴장감을 털어내듯 어깨를 똑바로 곧추세웠다.

“한미사.”

메스를 손에 쥐고 본격적인 개복에 들어가기 전, 집도의가 조용히 미사의 이름을 불렀다.

“괜찮겠어?”

“괜찮습니다.”

“마지막이다. 의미 없는 짓이란 거 알지?”

“의미, 없지 않아요.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습니다.”

“말했다시피 다시 덮을 확률은 99퍼센트다.”

“단 1퍼센트라도 좋습니다. 희망에 걸겠습니다.”

“그래. 좋아. 대신 긴장해야 할 거야. 정신 바짝 차리라고.”

“네.”

“알았으면 어금니 꽉 깨물어.”

“네!”

용기와 독기를 불어넣는 집도의의 강압적인 목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날카로운 은빛 칼날이 옥주의 피부를 망설임 없이 갈랐다.

그 시각 2번 수술실에서는 2년차 레지던트가 장지혁 교수의 감독 하에 무사히 충수돌기를 제거하고 근육과 피부를 봉합하는 중이었다.

“저어, 옆방에 스탠바이했나 본데요?”

참관하고 있던 1년차 레지던트가 2번 수술실과 3번 수술실 사이에 드리워진 문짝의 상단 유리를 흘낏거리며 말했다.

“그래?”

그때까지 수술 상황을 묵묵히 지켜보던 장지혁이 이제 막 무영등을 밝힌 3번 수술실을 쓰윽 곁눈질했다.

마스크 위로 드러난 쌍꺼풀 없이 시원하게 생긴 그의 눈매가 살며시 가늘어졌다.

하지만 그뿐, 지혁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아까부터 입이 근질거린 정 간호사가 옆방의 상황이 몹시 궁금하단 얼굴로 지혁을 쳐다보았다.

“한 간호사님 모친이라는데요? 유터린 캔서 환자인데 개복술을 하신다고…….”

“한 선생? 그, 그 책임독사 한미사?”

정 간호사가 내뱉은 알짜 정보를 듣자마자 1년차 레지던트의 눈동자가 반짝하고 빛났다.

수술실 책임간호사인 한미사는 한성대학병원에서 ‘수술방의 꽃’이라 불리고 있을 만큼 실력으로 인정받는 유능한 간호사였다.

수술실에서 간호사의 역할은 의사 못지않게 중요하다.

촉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닥터가 원하는 도구가 뭔지 재빠르게 예측하고 잡아내는 능력도 탁월해야 할뿐더러, 수술 도중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닥터가 지시하기 전에 어떠한 주문이라도 신속하게 행동으로 옮길 자세를 미리 취하는 것 또한 간호사들의 역량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언제나 준비된 자세로 노련하게 대처하는 한미사는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 능력이 더욱 빛을 발했다.

때문에 펠로우와 교수들은 물론 진료부장들까지도 수술 스케줄을 잡을 때 그녀를 대등하고 입장하기를 희망했고, 그것은 중요한 수술일수록 더욱 당연한 일이 되었다.

그렇기에 병원 내에서 말단 레지던트들은 물론 교수들조차 닥터라는 이유로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옆방 얘기에 정신이 쏠렸던 탓인지, 피부를 봉합하던 레지던트가 니들을 놓쳤다. 당황한 레지던트가 서둘러 겸자로 니들을 집었지만 그것을 놓칠 리 없는 지혁이 눈매를 날카롭게 치켜떴다.

“이 새끼. 정신 똑바로 못 차리지?”

“죄, 죄송합니다.”

“다들 포지션 안 지켜? 구경났어?”

집도를 감독하던 장지혁이 스텝들을 향해 무서운 목소리로 일갈을 날렸다.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3번 방을 곁눈질하던 사람들이 움찔거렸다.

지혁의 호통이 다시금 날아들었다.

“간단한 수술이라서 만만해 보이냐? 너희 같은 것들이 환자 배 속에 메스 처넣고 봉합해서 대형 사고 치는 거야, 이 새끼들아!”

“시정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의사 입장에서 중요하지 않은 수술은 없다. 여기서 나가는 순간까지 절대로 긴장 풀지 마라.”

장지혁의 으름장에 수술을 집도하던 이도, 그것을 보조하던 이들도 모두 엄숙한 표정이 되어 마지막 피부봉합을 이어나갔다.

아무리 작은 수술이라 해도 환자의 몸에 손을 대는 이상 중하지 않은 수술은 없다. 간단하단 이유로 수술 자체를 여사로 여겼다간 언제고 터질지도 모를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가 없게 된다.

평소 수술실에서의 행동 하나하나를 매우 중요시 여기는 지혁이었기에 그는 수술 도중 잡담을 하거나 딴짓을 하는 이들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그것은 수술에 참여하지 않고 단순히 참관만 하는 신참 레지들도 마찬가지.

같은 병이라도 환자마다 증상과 경과가 제각기 다른 법인데, 자주 보아왔던 흔한 수술이라는 이유로 소홀히 봐 넘기려는 낌새가 보이면 지혁은 그 즉시 그들의 조인트를 매섭게 후려갈기기 일쑤였다.

평소 같았더라면 잡담을 늘인 레지던트의 무릎을 벌써 걷어차고도 남았을 테지만, 오늘 그는 정신 차리라는 의미에서 매섭게 호통을 치는 것으로 상황을 매듭지었다. 그 역시 바로 옆방에 무영등이 밝혀지자마자 한순간 신경이 쏠렸던 탓이었다.

비록 같은 팀은 아닐지라도 병원에서 한솥밥을 먹는 동료이기에 걱정과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지사.

이 수술방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도 자신과 비슷함을 알기에 지혁은 더 이상 그들을 닦달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수술은 무모할 뿐이지. 환자 나이를 고려했을 때 수술 자체가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부모인데 어쩌겠나. 희망이 없는 걸 알면서도 강행하는 그 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