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내 이름은 안, 행 복

“걱정이 돼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회사 사정상 올해 더 이상 정규직 채용은 없습니다. 하지만 특별채용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주의를 하셔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제 말을 오해 없이 들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안행복 씨께서 성실하신 것도 잘 알고요. 다만 이렇게 말하는 것이 불편한 마음이 들지만 우리 부서 운영상 말씀을 드려야 하는 상황이 생기네요. 업무시간에 개인 용무 자제하세요.”

“네. 앞으로 더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부서에서 그나마 제일 인간다운 김 대리가 행복을 불러 세워 놓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

은행에 다녀왔다. 카드 값 연체로 막혀버린 은행 계좌를 다시 갱신하려고 은행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점심시간에 밥도 못 먹고 잠깐 나갔다 왔는데, 시간이 20분 지체되어버렸다. 은행에 다녀온 것으로 사람을 일도 안 하고 먹고 노는 인간으로 만들어버리는 이 스킬. 꼬투리 잡을 것 없는지 지켜보다 걸려들었다는 듯 기쁘게 날 향해 돌진해 와서 정규직 운운하며 조심하라는 김 대리의 뒤집혀진 그 입술을 보면서, 참 겉과 속이 일치되지 못 된 인간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한다. 못된 인간 같으니라고!

뉴스에서는 삼복더위라 하던데, 그래서 아까 은행가는 길목마다 사람들이 삼계탕 집에 줄이 그리 길게 섰나 보다. 벌써 중복이 지나갔다니, 아직 해 놓은 것이 없는데 말이다. 그 흔한 삼계탕 하나도 못 먹고 이러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인턴, 비정규직, 임시직만 5년, 벌써 자신의 나이가 스물아홉이라는 사실에 행복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행복의 시간은 처절하리만큼 안, 행복하게 흘러가고 있다.

“과장님! 다음 주 토요일 마케팅부에서 소비자 만족도 조사를 실시한다고 하는데요. 저희 부서에 인력지원요청이 왔습니다.”

“안행복 씨 남자 친구 있어요?”

지나간 유행의 빛바랜 초록 셔츠와 후줄근한 넥타이를 매고서 비스듬하게 나를 바라보는 이 과장의 휑한 정수리가 오늘따라 더 비위 상하게 돋보인다.

“무슨 말씀이신지······.”

“남자 친구 없는 거 다 아는데 뭘, 행복 씨가 토요일에도 일하면 되겠네.”

“······.”

“주말에 일하면 돈도 벌고 좋지 뭘, 안 그래? 나 정도 되니까 자기 챙겨주는 거야.”

“감사합니다···. 과장님.”

싸이코 이 과장, 허여멀건 이빨을 드러내고 연신 자리에 앉아서 주식이나 챙겨보는 식충이 같은 인간. 사람들 앞에서는 얼마나 자상한 척, 인자한 척, 세상에 있는 척 없는 척은 다 하는 인간.

행복은 현재 자신은 인턴이란 이름으로 고분고분하게 화를 다스리고 지내야 하지만, 정규직이 되는 순간 이 인간의 비열함을 회사 홈페이지에 도배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세상엔 두 분류의 인간이 있다. 하나는 싸이코, 나머지 하나는 개 싸이코. 온통 세상은 싸이코들의 천국이다. 인간인 척하며 살고 있는 이 싸이코들에게 행복은 그동안 받아왔던 폐부 깊숙이 박힌 팩트라는 이름들의 상처들을 기필코 되돌려 줄 날이 학수고대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생긴 것 자체가 정신 줄 놓은 것 같은 이 과장이나 꼬투리 잡을 것이 없는지 눈에 불을 켜고 나를 감시하는 김 대리. 그래도 이들은 싸이코와 인간의 사이 경계선에 있는 인물들이라고 행복은 스스로에게 인지시키며 그들이 자신에게 시킨 과도한 업무들을 하나하나 격파하며 정규직을 향해 걸어갔다.

어찌 되었든 간에 이 과장과 김 대리는 싸이코임에는 틀림없다. 그래도 행복은 아직 개 싸이코를 만나지 않은 것만으로 감사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해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 더 이상의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이 더운 날, 주말에 뙤약볕에서 일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다리에 힘이 풀린다. 참, 세상은 행복에게 너무 녹록지 않았다. 그리고 상대방이 행복의 이름을 정색을 하고 부를 때, 특히 행복의 성과 이름을 함께 부른다면, 그것은 일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안행복 씨!”

“음료수가 시원하지 않잖아요!”

폭염특보가 내린 주말 오후, 신제품 이온 음료를 명동 한가운데서 시음행사가 진행 중인 시간. 늘씬한 모델 언니들이 신나는 음악에 맞춰 가볍게 몸을 흔들며 음료수를 지나가는 남녀들에게 건넬 때 재빨리 뒤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조달하는 역할을 맡아 충실히 배달에 임하고 있는 행복이었다. 그러나 냉장 처리된 음료수가 바닥 난 것을 자신보고 어쩌란 말이냐. 귀를 찌를 것 같은 매미 같은 울음소리의 노처녀 신 차장이 행복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었다.

“시원한 음료수는 이미 다 시음행사에 사용되었는데 어쩌지요?”

“이 상황에서 안행복 씨가 책임자로서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우선 시원한 제품들은 다 사용했으니 남아 있는 미지근한 음료 제품이라도 시음행사에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도 기존 계획했던 양이 부족하다는 것은 이번 시음행사가 성공적이었다는 반증 아닐까 생각합니다.”

더운 날씨에 온몸이 땀으로 젖은 상황이지만 그래도 행복은 나름 보람이 있었다고 자부하며 대답했다.

“시음하는 음료 제품의 양은 누가 결정했나요?”

“그건, 차장님께서······.”

“뭐라고요? 안행복 씨가 시음 판촉량을 계획해서 나에게 올렸고 나는 안행복 씨가 정확하게 일을 처리 했을 거라고 신뢰했던 것인데, 이렇게 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건가요?”

“그게 아니라, 차장님께서 작년 기준으로 시음 판촉량을 정하면 된다고 하셔서 작년 기준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최종 결제에서도 차장님께서 별말씀 없으셨고요.”

“안행복 씨! 일기예보도 안 봐요?”

“네?”

“이렇게 더운 날은 음료 판촉량이 더 많이 나갈 것을 예상했어야지요. 작년 기준이라는 것에서도 작년 시음행사 상황도 함께 고려하고 총체적으로 판단했어야 하지 않나요?”

“······.”

“아무튼, 지금은 방법이 없으니, 아이스박스에 얼음을 채워 오세요. 당장!”

“네······.”

노처녀 신 차장의 표독스러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행복은 근처 재래시장으로 달려가 스티로폼 상자에 얼음을 잔뜩 담아 가지고 행사장으로 다시 돌아와 시음행사를 계속했다. 시음행사는 다행히 성공적이었다. 행사를 마친 후 신 차장은 뒷정리를 행복에게 맡기고 쏜살같이 가 버렸다. 떨어진 음료수 캔, 현수막 등등을 치우면서 마음을 다독였다. 그러나 행복의 몸과 마음은 그야말로 만신창이였다.

‘그래, 이런 날엔 그냥 집에 들어가면 안 되지. 치맥으로 나에게 상을 내리노라!’

그렇게 서러운 비정규직 인턴으로서의 행복의 시간은 잘도 흘렀다. 서양에서는 결혼을 하면 남편의 성을 따라간다던데, 여긴 한국이니 성을 바꿀 수도 없고, 엄마에게 아빠를 바꿔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여전히 행복은 자신의 이름처럼 ‘안 행 복’ 하게 지내왔다.

뙤약볕 아래에서의 시음 판촉은 여름 내내 지속되었고, 겨울이 되자 추운 명동거리 한복판에서 신제품 캔 커피를 들고 겨울을 보냈다. 고급스러운 한류스타들의 화장품 광고 화면들이 즐비한 거리 아래에서 행복의 처량한 모습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그 누구에도 보이고 싶지 않을 만큼.

“그 캔 커피 공짜로 주는 겁니까?”

“네! 고객님! 이번 겨울 시즌에 맞추어서 새로 선보이는 신제품입니다!”

“하나 줘보세요!”

뜨거운 캔 커피를 잡아채듯 가져가 들이켜듯 마시는 남자의 목젖이 리드미컬하게 움직인다.

“잘 마셨습니다! 반응은 어떤가요?”

“호응이 좋습니다. 고객님은 어떠셨나요?”

“나쁘지 않군요. 판매자분께서는 맛이 어떠신가요?”

시음행사를 수도 없이 해보았지만, 행복에게 시음제품에 대한 맛을 묻는 고객은 없었다.

‘까탈스러운 고객이시네. 우리 제품에 애착이 많으신 고객인가?’

그 남자가 겨울바람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올렸다.

“잘생겼다….”

“네?”

행복은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뱉어 버렸고 키 큰 남자는 당황해하며 행복을 쳐다보았다.

“하하! 저희 음료는 한마디로 ‘잘생겼다’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하!”

“잘생겼다고요?”

“네! 캔 커피 음료에서 수준 높은 커피의 맛과 향을 구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희 제품은 세계 최고 수준의 커피 맛으로 그 어떤 커피 제품보다 ‘잘생겼다’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아…, 네.”

“특히 이번 제품은 갓 재배한 커피 원두를 에디오피아에서 직수입하여 가공 직전에 원두를 로스팅 하여 캔 커피의 단점인 맛과 향을 최대한 농축시킨 제품이기에 맛은 보증드릴 수 있습니다!”

달달달 외운 판촉물 내용으로 행복이 진심을 담아 자신감 있게 설명하자 키 큰 남자가 피식 웃었다.

‘웃는 것도 잘생겼네.’

그의 웃는 모습을 보고 행복은 이번엔 다행히 속으로만 생각하고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좋은 직원이시네요. 제품에 대해서 그렇게 자부심이 있으시다니. 그럼, 잘 마셨습니다.”

빈 캔을 행복에게 건넨 후 가던 길을 가는 남자의 긴 베이지 코트가 차분하게 흔들리며 멀어진다. 참, 근사하고 기품 있게 잘생긴 남자라는 생각이 든다. 순간, 나중에 저런 아들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아들?’

주책도 이런 주책이 없다. 스물다섯 이전에는 근사한 남자를 보면 저런 사람이 남자 친구였으면 했더랬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결혼도 안 한 내가 멋진 남자를 보면 저런 아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서 참, 씁쓸하다 못해 생각이 없다 싶다. 하여간 비정규직 인턴 주제에 결혼도 못 하고 연애도 못 하면서 참 인생 초월적으로 산다.

‘근데 저 남자 눈이 너무 사랑스럽게 생겼는걸···.’

행복은 뒤돌아선 남자의 모습이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바라보았다.

“행복 씨! 오늘 너무 춥다. 우리도 이제 그만 접고 들어가자!”

오늘은 함께 나온 박 대리가 저녁 모임이 있다며 서둘러 퇴근 준비를 한다. 덕분에 행복도 오늘 저녁은 따듯한 방에서 엄마가 차려놓은 저녁을 먹으며 TV를 볼 수 있겠다. 이런 소소한 일만으로도 행복해 하는 자신을 보면 참말로 아빠 엄마가 자신의 이름을 잘 지어 주신 것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래! 내 이름은 ‘행 복’ 이니까!’

***

“안행복 씨! 나 좀 봐요.”

작고 다부진 몸매에 어울리지 않는 킬 힐을 신고 고상한 말투로 행복을 부르는 사람은 한우아 팀장이었다. 행복보다 머리 하나는 없는 작은 키의 소유자라서 공교롭게도 항상 둘이 마주하면 행복이 한참을 내려다보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우리 앉아서 이야기할까요?”

“네, 팀장님.”

자리에 앉자마자 행복의 온몸의 세포들이 격렬하게 그 한우아를 거부하고 있었다. 단 1분 1초도 함께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

“안행복 씨, 저번 주 수요일에 대구로 신제품 쇼케이스 출장 다녀왔지요?”

“네.”

이 여자가 또 시작이다. 어젯밤 남자 친구와 대판 싸웠는지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나 보다.

“수요일에 몇 시 기차 타고 갔나요?”

“7시 기차를 놓쳐서 8시 기차를 탔습니다.”

“그럼, 대구에는 몇 시에 도착했지요?”

“10시에 도착했습니다.”

“그건, 동대구역에 10시에 도착한 거였겠지요. 대구 지점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몇 시였지요?”

“10시 40분에 도착했습니다.”

“10시 40분? 회사 출근 시간이 10시 40분이었나요?”

“······.”

“대구 쇼케이스 준비 몇 시부터 시작인지는 알고 갔어요?”

“네, 11시부터 시작이었습니다.”

“그래서 11시 시간 맞춰서 갔다?”

“대구지점 과장님께서 오전 11시까지 오면 된다고 미리 말씀해주셨고, 대구지점에서 미리 준비를 해 놓으셔서 제가 할 일은 크게 없었습니다.”

“안행복 씨! 안행복 씨는 지금 자신이 맡은 업무를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거 같네요. 대구지점에서 준비를 해 놓아서 할 일이 없었다고요?”

“제가 가지고 간 신제품 샘플과 제품 설명서 드리고 함께 행사 진행되도록 옆에서 도왔습니다.”

“내가 지금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왜 마음대로 출근 시간을 안 지켰냐는 거잖아. 내가 언제까지 안행복 씨가 퍼질러 놓은 일 뒤치다꺼리해야 하느냐고!”

행복은 스스로 나는 관대하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어놓은 행복의 인내심의 임계치가 점점 다다르고 있었다.

“내가 안행복 씨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임원진들과 상의를 하려고 했는데 이런 식으로 하면 나도 못 도와줘요. 이렇게 성실하지 않은 사람을 내가 뭐라고 해요?”

“팀장님. 제가 10시 40분에 대구에 도착한 것은 저 역시 제 생각이 아쉬웠다고 인정합니다. 하지만 일전에 팀장님과 대전지점 출장 갔을 때도 서울역에서 9시에 출발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안행복 씨도 나처럼 9시에 서울에서 출발했다는 건가?”

“저는 8시 기차를 탔습니다.”

값비싼 화장품으로 장식이 된 한 팀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8시 기차를 탔다? 지금 그게 나한테 할 소리예요?”

“저는 있는 그대로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앞으로는 어디로 출장을 가든지 출장지에 아침 9시에 도착하도록 주의하겠습니다.”

“······.”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보내야 하는 팩스가 있어서요.”

마귀할멈 같은 팀장을 뒤로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이 회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 비정규직 인턴인 행복에게 다가와 화사한 미소로 비정규직의 어려움을 나열하면서 한 가족이 된 것이 기쁘다며 미소 짓던 모습이 가식덩어리였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무실 전체의 팩스를 한 번에 모아 오전 안에 처리를 해야 하는 것이 인턴인 행복의 주된 업무였다. 가지런히 두 손 모아 공손히 놓여진 서류 뭉치들이 자신의 모습같이 답답해서 재빨리 없애버리고 싶었다. 한우아 팀장은 부장과 본부장과 함께 한 손을 입에 갖다 대고 ‘어머나! 호호호!’ 우아하게 웃으며 복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옆에 걸리적거리는 쓰레기통 한번 쳐다보듯이 행복을 슬쩍 보더니 본부장을 향해 말을 건네는 마귀할멈.

“본부장님. 안행복 씨가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하는지 몰라요.”

“그래요? 다행이네. 조만간 정규직 전환되는 명단에?”

“호호호. 그건 조금 더 지켜보시지요.”

행복은 계속해서 재빠르게 팩스를 처리해 나갔다. 물론 보내야 하는 서류 위에 또 다른 내용물을 덧붙여 보내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뚝 뚝 떨어지는 염분 가득한 눈물들과 함께.

***

행복의 근심과 이마의 주름은 광속보다 빠르게 쌓여간다. 행복이 이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는 단어는 [계약직] [비정규직] [인턴]이다. 할 수만 있다면 그 단어들을 모조리 쌈을 싸 먹어 치우고 싶을 정도이다.

“행복아! 돼지불고기에 쌈 싸 먹어 봐. 우리 딸 오늘도 고생 많았어!”

“응. 모조리 다 싸 먹을 거야! 다 부셔서 내 입 안으로 버려버릴 거야!”

“이걸 다 먹는다고?”

식탁 위에는 손이 유난히도 큰 행복 엄마 표 간장돼지불고기가 곰국 솥으로 한가득 담겨 있었다.

“엄마! 이걸 누가 다 먹는다고 또 이렇게 많이 했어.”

“남으면 내일 먹으면 되지. 그리고 너희 아버지랑 오빠도 곧 들어올 거야. 참, 영석이도 먹으러 오라고 했는데.”

“영석이는 왜 불러!”

“부르면 어때! 아까 낮에도 시장에서 오는 길에 내 장바구니 무겁다고 편의점에서 부리나케 달려 나와서 집까지 가져다주었구먼! 야! 너보다 영석이가 훨씬 더 내 자식 같아! 직장만 번듯하면 사위도 삼고 싶다! 영석이가 어렸을 때부터 너랑 결혼한다고 허락해달라고 했었잖아! 지금은 그런 소리 안 하니?”

“엄마! 쫌! 그만!”

초등학교 때부터 행복의 그림자 같은 존재인 최영석. 세상에서 보석 같은 존재는 행복뿐이라며 졸졸 쫓아다니는 진드기 같은 자식이다. 스물아홉이 되도록 반듯한 직장 한번 들어갈 생각도 없이 집에서 글만 쓰는 저세상 텐션의 인간이다. 신춘문예 당선되면 행복한테 청혼을 한다나 어쩐다나. 그나마 영석이 부모님께서 편의점을 하시니 알바를 안 쓰고 그 자식을 활용하셔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 자식이 효자인지 불효자인지는 가늠하기 힘들지만 말이다.

“행복아!”

검은 뿔테 안경 뒤로 헤벌쭉 웃는 영석이의 큰 눈이 개구리 왕눈이 같다. 못생긴 자식.

“행복아. 오늘도 일하느라 수고했어. 우리 행복이 같은 인재가 빨리 정규직이 되어야 회사도 발전될 텐데. 내가 가서 너 유능한 거 이야기해줄까?”

“시끄러워. 밥이나 먹고 얼른 가.”

“헤헤. 지금 왔는데 벌써 가라고 하냐. 서운하게.”

“그래. 행복아. 넌 왜 영석이한테 그리 쌀쌀맞니.”

그 후로 엄마와 영석이의 알콩달콩 대화는 이어졌고 행복은 두통으로 재빨리 밥을 먹고 방으로 들어왔다. 회사에서는 두통이 잦았지만 오늘따라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지끈거리는 두통과 가슴답답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한우아 팀장의 협박 아닌 협박과 그 눈빛이 행복의 목을 조이는 것 같았다.

‘정규직 전환이 불투명한데 조금 더 행동을 조심해야 하지 않겠어요? 안행복 씨 아니더라도 정규직 전환 원하는 인재는 많다는 걸 기억해요.’

행복보다 더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점심시간도 12시 10분에 나와 허겁지겁 밥을 먹고 양치를 한 뒤 12시 50분에 사무실에 들어가 업무를 준비한다. 행복의 업무 이외의 일들도 감사한 마음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우아 팀장은 하루 한 가지 이상 지적사항을 우아하게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