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언제부터일까? 수민은 재혁과 함께 있을 때마다 늘 숨이 막히곤 했다. 그는 누가 봐도 킹카라고 할 정도로 너무도 멋진 사람이었고, 부잣집 아들에 장래가 촉망되는 사람이었다.'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 수민은 복학생이던 재혁에게 찍혀 바로 그의 연인이 되었다. 재혁은 캠퍼스 내에서 동경의 대상이었고, 여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사귀어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수민에게는 별로 와 닿지 않는 얘기였다. 너무도 쉽게 다가온 그는 수민에게는 그저 평범하면서도 다정한 연인에 지나지 않았다.'경영학도인 재혁은 장학금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머리가 좋았고, 대학 내 테니스 부 소속으로 아마추어 대회에서 상위 입상을 할 정도로 운동신경 또한 뛰어났다. 하얀색의 테니스복을 입고 라켓을 든 그의 모습은 여학생들에게 찬탄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수민은 그가 경기를 하는 날이면 늘 제일 앞좌석에서 그를 응원했는데, 그는 그때마다 손으로 키스를 날리며 애정을 표시했다. 이 커플은 대학 내에서 유명세를 치르는 만큼 질시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굳건히 애정을 이어나갔다.'사실 수민은 재혁에 비하면 여러 면으로 부족한 편이었다. 집안도 평범했고 외모도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다. 대학은 간신히 턱걸이로 들어올 정도였고, 공부보다는 노는 걸 더 좋아하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여대생이었다. 그런 점 때문인지 재혁이 그녀를 찍은 것은 한동안 캠퍼스를 술렁이게 할 정도로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아무래도 사람을 평가할 때는 외모도 무시하지 못하는 터라 킹카인 재혁이 평범녀인 수민을 찍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화젯거리가 되었던 것이다.'한데 의외로 이 둘 사이에는 그런 차이점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목을 매는 건 재혁이었고, 수민은 그저 그의 애정을 받아 주는 수준이었다. 수민이 그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워낙 그가 그녀에 대한 애정을 과하게 표시하곤 했기 때문이다.'수민은 한동안 그의 애정을 받으며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볼을 꼬집어보곤 했다. 막 고교를 졸업한 평범한 열아홉 살짜리 여자애 앞에 고급 외제차를 몰고 다니고, 근사한 호텔 레스토랑을 데리고 다니는 부자애인이 나타날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한마디로 그녀는 행운아였다.'그녀가 졸업반으로 올라간 해에 재혁은 졸업해서 무난히 대기업에 입사했다. 그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항상 짬을 내어 수민을 만나러 왔다. 잠을 좀 덜 자는 한이 있더라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그녀를 만나러 왔고 전화통화도 잊지 않았다. 처음에 수민은 이런 그가 너무도 고마웠다. 4년 가까이 사귀면서도 그의 사랑은 변함없었고, 그건 여자로서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4학년 2학기 무렵, 수민은 미국 유학이 걸린 디자인 공모전에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출품했다. 재혁은 떨어질 게 뻔한 공모전에 뭐 하러 힘들게 출품하느냐며 만류했지만, 그녀는 몰래 방학 내내 준비를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우수상에 입선을 하는 의외의 결과를 낳았다. '대학생들 뿐 아니라 우수하고 촉망받는 기성 디자이너들까지 참여한 공모전이었다. 한데 미국 유수의 디자인 학교에 2년간 다닐 수 있는 특전이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의 손안에 쥐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