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훔칠 필요가 없다고요!”

훔치지 않았다. 친구의 목걸이보다는 그 친구가 더 좋았다. 그깟 목걸이 하나보단 친구가 더 소중했다. 잃어버렸다는 그 목걸이보다 훨씬 비싼 목걸이를 생일 선물로 사달라고 했어도 기꺼이 사줄 수 있을 만큼 좋아하는 친구였다.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할 거라는 말을 들은 친구가 자신도 나가 보고 싶다는 말에 같이 나가서 선의의 경쟁을 펼쳐 보자며 진심으로 응원해 줄 만큼 좋아하는 친구였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 모든 소동은 학생회장 선거에서 그녀에게 진 거라고 생각하는 친구가 꾸민 일 같다는 거다. 어제 주아네 집에 초대를 받아 갔었다. 그때 주아 목걸이가 정말로 갖고 싶어서 훔쳤다면 보육원으로 돌아가자마자 어딘가에 꽁꽁 숨겼을 것이다. 바보가 아니라면 그 목걸이를 가방에 넣어 둔 채 학교에 오진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서린은 그사이 엄마까지 부른 반 친구 주아를 할퀼 듯 쏘아보았다.

“방주아.”

서린은 친구라고 믿었던 방주아를 배신감 어린 목소리로 불렀다.

“너는 아니었어도 나는…… 나는 널 친구라고 생각했어.”

진심이다. 진심으로 서로 값진 경험과 추억을 나눈 친구라고 생각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혼자만 대단한 착각을 한 모양이다.

“교장 선생님, 사실 저는 저 애가 고아 주제에 언감생심 학생회장 자리를 넘볼 때부터 싹수가 노랗다는 걸 일찌감치 알아보긴 했어요.”

선함을 잃어 가던 서린의 눈동자가 주아에서 주아 엄마에게로 옮겨 갔다. 주아 엄마는 학생회장 선거 유세 중 딸을 위해 온갖 핑계를 대며 파티를 열어 주곤 했다. 반 친구들 전부 한 번씩은 그 파티에 초대받아 갔을 정도다. 그러나 서린은 단 한 번도 그 초대에 끼지 못했다. 그런데 딱 한 번 서린도 초대를 받았다. 바로 어제 딸아이 반에서 전교 학생회장이 나온 것을 축하해 준다며 주아 엄마가 서린이까지 초대를 해준 것이다. 서린은 너무 좋아서 전날 잠까지 설쳤었다.

“고아는 학생회장을 하면 안 된다는 법 조항이라도 있나요, 아줌마?”

드센 보육원 오빠들하고 싸워도 절대로 지지 않는 그녀다. 그런 서린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착한 얼굴로 비꼬았다.

“고아라고 불쌍해서 내가 대신 축하 파티까지 열어 줬는데……. 어쩜 이럴 수가 있어요, 교장 선생님!”

주아 엄마는 고아라는 단어를 끊임없이 강조했다. 서린은 자신이 고아란 사실이 얼마나 서러운 일인지 선명하게 와 닿기 시작하자 눈물 대신 독기가 피어올랐다.

“저는 어려서 잘 몰라요. 하지만 아줌마는 어른이시니까 법에 고아는 찍소리도 내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게 있는 걸 잘 아시겠죠.”

“저것 보세요, 교장 선생님! 고아라서 그런가? 어른한테 하는 말버릇도 정말 못돼 처먹기가 이를 데가 없네요.”

주아 엄마는 서린을 향해 삿대질을 해댔다.

“교장 선생님? 도둑년한테 학생회장 자리가 가당키나 하다고 생각하세요? 정말로 저런 막돼먹은 고아한테 학생회장 자리가 어울린다고 생각하시냐고요.”

학교 일이라면 뭐든 참견하고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나서길 좋아하는 주아 엄마는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교장을 몰아붙였다.

“우리 딸이 피아노 대회에서 1등을 해서 기념으로 해준 목걸이라고요! 그런 뜻깊은 목걸이가 저 애 가방에서 나온 걸 같은 반 아이들이 다 봤다고 하잖아요. 선생님? 선생님도 애들한테 똑똑히 들었다면서요?”

주아 엄마는 애들 싸움에 끼어들고 싶어 하지 않는 투가 역력한 교장을 대신해 이번엔 담임을 물고 늘어졌다.

“이서린. 일단 여기 와서 앉아 있어. 곧 보육원에서 원장님께서 오실 거야.”

금방이라도 주아 엄마한테 달려들 것처럼 악에 받쳐 있던 서린의 얼굴이 원장님이란 말에 순간 비 맞은 강아지처럼 초라하게 풀이 죽어 버렸다. 혼자만 외딴섬에 고립된 듯 서 있던 서린을 부르던 담임은 안쓰러운 마음에 가슴이 아팠다. 우연찮게 서린을 3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담임을 맡았던 박 선생은 미약한 자신의 힘을 느끼며 자신의 직업에까지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서린은 영특하고 뭐 하나 흠잡을 데 없이 반듯한 아이였다. 단지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보육원에서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당하는 차별이 억울할 뿐이었다. 보육원에서 많은 아이들과 함께 지내려면 어쩔 수 없이 의젓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었다. 그래도 가끔은 그 나이답게 행동해도 되었다. 그러나 이서린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어른스러웠고 책임감 또한 남달랐다. 그것이 담임의 가슴을 아리게 만들었다. 그때 똑똑하고 노크 소리가 들렸다. 담임이 교장을 대신해 문을 열었다.

“죄, 죄송합니다.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차가 너무 막혀서……. 베로니카!”

은혜로운 집 원장 최상철이 사람 좋은 순박한 얼굴로 들어오다 말고 벌 받는 아이처럼 꼿꼿하게 서 있는 서린을 보고 소리쳤다. 이서린이 세례를 받을 때 대부가 되어 주었던 최상철의 얼굴이 순식간에 험악하게 구겨지면서 붉으락푸르락 변해 갔다.

“베로니카…… 아, 아니. 서린아! 선생님한테 전화 받았어. 서린아, 나는 네가 훔치지 않았다는 걸 알아. 너는 그럴 애가 아니! 넌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고개를 푹 숙여 놓은 서린을 덥석 끌어안은 최상철이 다 안다며 그녀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신부님, 나는 훔치지 않았어. 누가 내 가방에 일부러 넣은 거야. 이런 상황을 만들 필요가 있는 누군가가.”

“이런 상황이 필요했던 연놈들 지금 이 방에 있어?”

“……응.”

다른 사람들을 의식해서 서린은 예의 바르게 네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신부님이 자신을 믿는다고 하자 목이 콱 막히면서 평소처럼 투정하는 말버릇이 튀어나왔다.

“알았다. 나머지는 날 믿고 다 맡겨! 너는 그만 교실로 돌아가 있어.”

“집에 갈래……. 다시는…… 다시는, 이 학교에 안 다닐 거야. 반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다 내가 훔쳤다고 생각했어. 모두가 고아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눈치였어. 아무도 내게 와서 누명을 썼을지도 모른다는 말 같은 건 해주지 않았어.”

홀로 의심받는 상황을 견디고 있느라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되자 대부 최상철의 눈 속으로 시뻘건 분노가 스며들었다.

“네 생각이 정 그렇다면, 책가방 챙겨서 차에 가서 기다리고 있어. 갈 때 가더라도 마무리는 지어야지. 이런 사소한 소문이 부풀려져서 찬란할 네 미래의 발목을 잡게 둘 순 없지.”

그동안 새로운 학교에 잘 적응한 줄 알고 안심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이럴 줄 알았으면 3년 전 서린이를 이 학교에 보낼 때부터 학교에 찾아와 볼 것을 그랬다. 그런 후회가 최상철의 이성을 박살 내고 있었다.

“금방 갈게. 차에서 기다리고 있어, 우리 베로니카?”

분노가 차오른 주먹이 덜덜 떨렸지만 서린의 대부는 서둘러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내 그녀의 작은 손에 꼭 쥐여 주었다.

“어딜 가라는 거예요! 아직 이야기가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도둑년을 그냥 보내면 어떡해요.”

대부가 어서 가라며 서린의 등을 문 쪽으로 떠밀자 벌떡 일어난 주아 엄마가 소리를 질렀다. 서린이 나간 것을 확인한 최상철은 귀청 따갑게 짖어대는 여자 쪽으로 슬그머니 돌아섰다.

“아따 기차 화통을 삶아 드셨나. 목소리 한번 겁나 크네요. 그짝 바깥양반 귀청은 멀쩡한지 모르겠소.”

사투리는 쓰지 않는 최상철이 걸쭉한 말투로 주아 엄마에게 핀잔을 줬다.

“뭐, 뭐 그짝이요? 어머머 기막혀!”

“으메으메 기막힌 쪽은 우리지요. 우리 서린이가 어딜 봐서 도둑년으로 뵙니까?”

가슴을 들썩거리며 기막혀하는 주아 엄마를 상대로 최상철은 쥐를 가지고 놀 듯 살살 약을 올렸다.

“우리 딸 목걸이가 고아인 저 도둑년 가방에서 나왔다고요! 아시겠어요!”

“그람 경찰을 불러야지 왜 교장실에서 이러고 있답니까?”

최상철은 정말 모르겠다며 머리를 갸웃거리다가 핸드폰을 꺼내 112를 눌렀다.

“아, 거기 경찰서죠? 아이고, 노고가 많으십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제 딸이 반 친구의 목걸이를 훔쳤다네요, 글쎄? 그래서 신고합니다. 제 딸 좀 잡아가 주세요. 예예, 여기가 어디냐 하면요 제이 아파트 앞에 있는 호암 초등학교 교장실입니다. 예예, 기다리죠.”

통화를 마친 최상철은 빙그레 웃다가 어깨를 한번 으쓱 차올렸다. 경찰까지 부를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던 주아 엄마는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지 하는 얼굴로 대부를 바라봤다.

“바라시던 대로 경찰을 불러 드렸으니까, 경찰 선생님들께서 알아서 다 해결해 주시겠죠. 아차차, 실례지만 전화 한 통만 더 하겠습니다.”

최상철은 다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연결되었는지 목을 큼큼 풀고는.

“잔다르크! 아, 아니, 정희야! 나야 상철이. 많이 바쁘지? 그럼 용건만 간단히 말할게. 네가 호암 초등학교에 급식소 건물을 기부해 줘서, 오늘부터 공사 들어간 그 건물 말이야. 그거 중단해!”

최상철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목청을 높였다.

“호암 초등학교 학생회장인 우리 베로니카를 두고 어떤 무식한 여편네가 친구 집에서 친구 목걸이나 훔치는 고아 년이라지 뭐냐?”

최상철은 상대방을 한 줌 죄로 만들어 버릴 만큼 대로한 눈빛으로 주아 엄마를 똑바로 쳐다봤다.

“나는 우리 베로니카가 당연히 학생회장이 될 걸 알아서, 우리 베로니카가 선거 공약으로 내건 급식소 건물 보수를 해주는 대신 아무도 모르게 새로 지어 주려고 했는데, 그만둬야겠다.”

그때서야 사태 파악이 된 교장이 사색이 된 얼굴로 헐레벌떡 달려왔다.

“……지, 지금 막 공사를 시작한 그 급식소를 원장님께서 기부해 주신 거라고요?”

교장은 대부의 양팔을 꽉 붙잡고 비굴해 보일 정도로 고개를 굽실거렸다.

“아닌데요.”

최상철은 새침하게 딱 잡아뗐다.

“내가 아니라 우리 베로니카 돈으로 짓든 아니지, 지어 주려고 했죠.”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교장은 다소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물었다.

“크게, 아주 많이 크게크게 금융 사업을 하는 내 친구가 우리 베로니카를 엄청 예뻐하지 뭡니까. 그 친구 자랑을 하는 건 절대로 아니지만. 얘가 또 큰돈 장사를 하면서 머리까지 비상해서 말이죠.”

최상철은 능청스럽게 큰 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나쁜 놈 하나 정도는 쥐도 새도 모르게, 어쨌든! 내 친구가 돈이 없으면 오늘처럼 개무시를 당한다면서 엄청, 엄청 예뻐하는 베로니카한테 공이 한 열 개쯤 들어간 통장을 만들어서 줬지 뭡니까?”

대부는 교장실에 있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양팔을 들어 엄청 많이 예뻐한다는 말을 커다란 원을 몇 번씩이나 그리면서 설명했다.

“아, 물론 종잣돈은 제가 대 줬지만……. 그게 뭐 중요합니까? 베로니카한테 돈이 아주, 아주 많이 있다는 게 중요한 거죠. 안 그렇습니까, 교장 선생님?”

최상철은 스리슬쩍 교장을 역습했다.

“내 친구 정희도 아직 미혼이지만, 미혼인 몸으로 사고로 부모를 모두 잃고 홀로 남은 도빈이라는 조카를 키우고 있어서 그런지, 우리 베로니카를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 많이 아니, 엄청 많이 남달라서 말입니다.”

최상철은 주먹으로 교장실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것보다 돈이 행사하는 위력이 더 무섭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누구 들으란 듯 돈 많은 친구 자랑을 쭉 이어 나갔다.

“우리 베로니카가 회장 선거 때 물이 새는 급식소를 보수해 달라는 요구를 학교에 할 거라니까, 우리 베로니카를 엄청, 엄청 예뻐하는 내 친구가 그까짓 것 베로니카 줄 돈에서 지어 주겠다고 해서 짓던 중인데…….”

최상철은 몹시 아쉬운 듯 한숨을 풀썩 내쉬었다.

“도둑년이 학교 급식소를 지어 줬다고 소문이라도 나면 학교 평판에도 몹시 안 좋고 하니.”

최상철은 다시 한 번 더 땅이 꺼져라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아쉽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우리 베로니카가 그 많은 돈을 놔두고 그깟 친구 목걸이 하나가 탐나서 도둑질을 하지 않습니까? 아차차!”

갑자기 큰일이 난 것처럼 최상철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요 학교 앞에 짓고 있는 건물도 우리 베로니카 거라고 제가 말씀드렸나요? 어떤 돈 많은 사장님께서 그 건물을 사서 대형 마트를 하고 싶다면서 두 배를 줄 테니까 팔라고 하도 매달리는 통에 귀찮아 죽겠습니다.”

교장은 사색이 되다 못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최상철의 넉넉한 허리를 양팔로 꽉 끌어안고 신음을 흘렸다.

“아이고, 원장님! 그렇다고 급식소 공사를 중단하라고 그러시면 안 되시죠. 우리 이서린 학생이 원장님의 친구분의 사랑을 그토록 많이 받고 있는 줄도 몰라보고, 괜한 일로 오시라고 한 것 같습니다.”

나이도 잊고 비굴해 보일 만큼 상냥해진 교장은 대부의 팔을 억지로 잡아끌어 소파에 주저앉혔다.

“베로니카가 부모들이 학교에 들락거리는 거 끔찍하다고 하도 펄쩍 뛰어서 그간 나도 조용히 살았는데. 오늘 저 여자를 보니 앞으론 나도 좀 들락거릴 생각입니다, 교장 선생님.”

“암요, 암요! 그러셔야죠, 그러셔야 하고말고요! 오늘 일은 뭔가 단단히 오해가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학생회장인 우리 이서린 학생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건 누가 봐도 중상모략이 틀림없습니다! 박소희 선생?”

“네, 교장 선생님.”

의욕 하나 없어 뵈던 교장이 살벌한 눈초리로 만들고는 서린의 담임을 불렀다.

“당장 가서 그 집에 초대받아 갔던 아이들 전부 한 명씩 따로 불러서 면담 시작하세요. 어떻게 친구 목걸이가 이서린 학생 가방에서 나오게 된 것인지 당장 가서 알아 오라고요! 아이들이 끝까지 잡아떼면, 아이들 부모님도 부르고. 그래도 범인이 안 나오면 내가 내 손으로 직접 경찰을 불러서 누구 짓인지 반드시 밝혀내고 말 거라고 했다고 가서 분명하게 전하세요!”

다소 흥분한 교장의 음성이 살벌하다. 3년 동안 줄곧 담임을 맡고 있던 박 선생님은 믿고 맡겨 달라는 비장한 얼굴로 대답한 후 교장실에서 뛰쳐나갔다.

“아이고, 놀라서 그런가? 몇 년 전에 수술했던 심장이 다시 아프려고 하네요. 흠흠! 목이 좀 마른데 물 한잔 얻어 마실 수 있을까요, 교장 선생님?”

최상철은 누구 때문에 놀라서 병이 도진 것 같다는 엄살을 부리며 소파 등받이를 향해 몸을 뉘었다.

“아이고, 원장님! 물이 다 뭡니까? 6년 근 홍삼차 정도는 드셔야죠.”

화들짝 놀라는 얼굴로 대답한 교장은 서둘러 본인이 먹던 홍삼을 꺼내 물에 타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주아와 주아 엄마는 점점 잊혀 가고 있었다.

“내 딸 베로니카한테 도둑년이라고 하신 그짝 어머니?”

“그짝이 아니라 저도 이름 있거든요!”

“그러거나 말거나 그짝 어머니? 우리 베로니카 보고 고아 년이라고 했지요?”

“그럼 아닌가요? 아니면 왜 보육원에서 살겠어요? 제 말이 틀려요?”

주아 엄마는 자신의 말이 틀리면 반박해 보라며 자신만만하게 쏘아붙였다.

“허허참! 이보세요 그짝. 우리 베로니카는 보육원에서 사는 게 아니라 그 애가 세례를 받을 때 대부가 되어 준 나하고 사는 겁니다. 하필 내가 보육원을 운영하고 있어서 그렇게 보일 뿐이죠.”

한때는 성직자의 길을 걸었던 최상철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그러나 열한 살에 부모를 모두 잃은 서린이를 만난 이후 최상철은 주저 없이 신부직을 사직했다. 이제는 정말로 보육원 문도 닫아야 할 때란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주먹을 움켜쥐던 최상철은 서린의 부모님께 맹세하듯 자신에게 다짐했다. 다시는 저런 여자가 베로니카를 업신여기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몇 년 전에 우리나라 신문에서도 외교관 부부 헬기 추락 사망 사고가 대서특필 돼서 웬만하면 다들 알던데, 그 외교관 부부가 바로 우리 베로니카 부모님이란 말입니다.”

최상철은 서린을 대신해 심한 모욕을 받은 것처럼 거칠어진 숨을 뱉어냈다.

“우리 베로니카 엄마는 물론 부부 외교관이셨던 베로니카 아빠까지 유언장에 나를 후견인으로 지정해 놔서 그 많은 친척을 다 놔두고 우리 베로니카가 나한테로 온 거란 말입니다. 모르면 잠자코 있지 누구보고 고아래! 한심한 여편네 같으니라고.”

대부는 서린이 보육원에서 살고 있지만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과 주아 엄마의 천박한 선입견도 함께 꾸짖었다.

“또다시 우리 베로니카를 두고 고아 어쩌고저쩌고하면 방송국에 제보해 버릴까 하는데, 그짝 어머니 생각은 어떠신지요?”

“제, 제보요? 뭘 제보한다는 거예요?”

주아 엄마가 뜨끔한 얼굴로 물었다.

“어찌 그짝 따님께서는 우리 딸이 도둑인지 알고 딱 잡아낸 건지는 알 수는 없지만 우쨌든! 도둑년을 잡은 건 따님이시라니까 자랑스럽게 신문에 기사를 내주겠다고 하는 겁니다. 어떠세요? 같은 반 친구 물건에 손을 댄 도둑년을 잡은 딸을 둔 자랑스러운 어머니로 신문에 얼굴 한번 실려 볼 의향이 있으신가요?”

최상철은 떠보듯 넌지시 물었다.

“겨우 이런 일을 가지고 무슨 방송국에 제보를 해요. 관둬요, 관둬! 무슨 고아 년이 돈이 그렇게 많은 거야.”

주아 엄마에게서는 보였던 기세등등함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오래다.

“억울하면 고아 년이 되어보시든가? 아님, 그짝도 저리 예쁜 딸만 남겨 두고 남편이랑 사이좋게 염라대왕 면담을 하러 가면 우리 베로니카 맘을 알려나?”

“무슨 말을 그렇게 심하게 하세요. 사과하세요!”

주아 엄마는 자신이 남을 무시하는 건 잘못이란 걸 모르면서 자기가 무시를 당하자 싸울 듯 덤볐다.

“사과는 무신! 아니다. 대신 그짝이 학교 급식소를 지어 주면 내 또 생각해 보지요. 치맛바람깨나 일으키고 다니려면 집에 현금으로 한 10억 정도는 갖고 계시죠?”

지기 싫어서 돈이 있다고 말하면 증거를 보여 달라고 할까 봐 주아 엄마는 우물쭈물했다.

“우리 베로니카도 저리 어리지만 통장에 10억은 있는데. 하하하! 진짜 자랑은 절대로 아니지만, 내 친구가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한 사업가들의 머리를 땅바닥에 닿을 듯 조아리게 만드는 큰손이라서 말입니다, 하하하! 그 덕에 우리 베로니카 재산도 자고 나면 불어나고 눈만 한번 깜빡이면 또 불어나 있고.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