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뺏기다''''“다녀오겠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남들보다 이른 시간에 나가는 은교는 신발을 구겨 신으면서 현관에서 인사를 했다. ' “은교야 밥 먹어야지, 한 숟가락만 먹자. 응?” ' 숟가락에 밥을 가득 담아서 은교에게 달려오는 큰엄마. 매일 아침마다 있는 일이라 은교는 어린애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는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정숙은 한 숟가락 가득 밥을 떠서 반찬을 올리고는 은교의 입에 넣어 줬다. 꾸역꾸역 한 숟가락을 입에 넣고는 큰 눈이 안보일 정도로 웃어 보이며 정신없이 뛰어가는 은교를 못내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 봤다.' “은교는 또 일찍 나간거야?” ' 신문을 들고 안방에서 나오시는 큰아빠를 향해 눈에 잔뜩 힘을 주고는 오늘도 한소리를 하셨다. ' “차 한대 사주면 좋잖아요. 매일 애가 밥도 못 먹고 나가는 거 가슴 아파 죽겠어요.”' “아침 한 숟가락 먹이려다 사고라도 나면 그땐 어쩔 거야? 난 아침을 굶더라도 건강하게 아무 사고 없이 오래 옆에 두는 게 더 좋아. 그리고 면허도 없는 애한테 차는 무슨.”'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해요. 그리고 면허는 따면 되죠.”' 벌써 21살이나 된 은교지만 두 분에게는 아직도 어린아이로만 느껴져서인지 은교의 일이라면 아직도 토닥거릴 일이나 걱정할 일이 많은 분들이었다. 항상 아침, 저녁으로 조금이라도 차를 덜 타기 위해서 그녀는 시간이 되는대로 걸어 다녔었다. 하지만 식구들이 그녀가 걸어가기 위해 항상 일찍 나가는 걸 안다면 당연히 못하게 할 게 뻔하기 때문에 그녀는 아침에 일찍 가야 좋은 자리를 맡아서 수업을 들을 수 있고 조금이라도 공부를 할 수 있다고 거짓말을 했었다.'' 점점 더 여름이 길어지고 날이 더 무더워져 이제 6월로 접어든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아침부터 후덥지근해 걷는 게 힘겨워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많이 걸으면 수업을 듣는데 지장이 있어서 보통 두 세 정거장 정도만 걷곤 했다. 나무 밑을 지날 때마다 그늘에서 느껴지는 잠깐의 시원함이 청량음료를 마시는 것처럼 가슴을 시원하게 파고들어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버스를 탈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시원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답답하게 가슴을 짓누르는 형체를 알 수 없는 고통이 느껴지곤 했다. 6살에 부모님을 모두 잃고 큰댁에서 지금까지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자랐지만 은교는 차만 타면 항상 마음 한구석이 이유도 없이 저려오곤 했고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그때의 사고가 꿈에서 되풀이 되 악몽을 꿨고 뜬 눈으로 밤이 지나 밝은 새벽이 오기를 기도했었다. 하지만 식구들이 혹시라도 눈치를 챌까 봐 절대 내색하지 않았기에 아무도 그녀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상처가 시시때때로 그녀를 괴롭힌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