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땟국물이 뚝뚝, 떨어지는 누더기 옷을 걸친 노파(老婆)가 저잣거리의 구석진 곳에 웅크려 앉아 있었다. 그녀는 쌕쌕, 숨찬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이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한참을 물 흐르듯 훑던 눈길이 어느 한 곳에 가 머물렀다.

시골에서 보기 드문 비단옷을 곱게 입은 부인이 어린 딸의 손을 잡고 노파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으음, 쯧쯧쯧…… 겹겹이 액운(厄運)이 들었구나.”

노파는 제 앞을 지나쳐 가는 부인을 보며 들리듯 말듯 읊조렸다.

“……뭐라 하였느냐?”

부인…… 기씨는 발걸음이 우뚝, 멈춰지며 고개가 옆으로 돌려졌다.

“…….”

노파는 목에 힘이 없는지 머리를 떨며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길은 기씨를 아래위로 짧게 훑어보고 옆으로 옮겨갔다.

예닐곱으로 보이는 말간 얼굴의 여자아이는 그저 신기한 눈으로 노파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기씨는…… 크륵…… 일찍 혼인을 못 할 겁니다.”

“뭐라?”

기씨는 심히 거슬리는 가래가 끓는 목소리에 미간을 찌푸리며 노파를 노려보았다.

“뭐, 그것이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스물을 넘어 혼인을 해야 과부 팔자를 벗어 던질 수 있으니까요. 크륵…….”

“뭐, 뭐…….”

기씨는 너무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왔다.

아직 어린 제 딸에게 ‘과부’를 운운하다니. 이 썩을 할망구 같으니.

“헌데 아기씨는 혼인이 문제가 아닙니다.”

노파의 흐릿한 회색빛 감도는 눈동자가 다시 기씨에게로 향했다.

“아기씨는 스물을 넘기지 못하고 단명(短命) 할 것입니다.”

“…….”

기씨는 단명이라는 말에 이제 몸 전체가 굳어져 버렸다.

“어머니…….”

영아는 불안스러운 눈빛으로 기씨를 올려다보다 노파를 보았다.

“허나…… 막을 방도(方道)가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노파는 저를 보는 영아를 향해 씨익, 웃었다.

“아기씨의 스무 살 생일날에 첫날밤을 보내시면…….”

“어디서 망발을 하는 것이냐! 수작 부릴 것이 없어 어린아이의 앞날을 갖고 장난치려 하는 것이냐.”

기씨의 귀에는 노파가 이르는 방도가 들어오지 않았다.

“…….”

“영아야, 가자.”

한순간도 더 머물고 싶지 않은 듯이 기씨는 딸의 손을 이끌며 걸음을 빠르게 움직였다.

“…….”

영아는 엄마의 손에 의해 몸이 이끌러 가면서도 눈길은 노파에게 향해져 있었다.

“……꼭 스물 생일에 첫날밤을 보내야 합니다. 아기씨…… 크륵…….”

노파의 회색 눈빛은 밝고 초롱초롱한 영아의 눈동자를 오랫동안 잡아두고 있었다.

**

“아가씨.”

발이 별당 문간을 들어서기도 전에 점순이의 목소리는 성질 급하게 별당 마당을 지나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목소리만큼이나 큰 발걸음 소리도 마루를 쪼로록 달려와, 문이 벌컥 열리는 동시에 방으로 들어왔다.

“안 넘어졌느냐?”

영아는 경상 앞에 방정맞게 풀썩, 앉는 점순이를 보았다.

“아이 참, 아가씨도. 제가 맨날 넘어지는 것도 아닌데…….”

급한 성정 때문에 생각보다 말이 먼저 나오고 말보다는 행동이 먼저인 점순이는 늘 몸이 고생이었다.

그래서 늘 무릎에 멍 자국이 사라지질 않았다. 얼굴에 점이 많아 점순이인데 멍순이라 해도 될 것 같다. 하지만 오른쪽 뺨 정중앙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는 커다란 점의 존재감은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 오늘을 무엇 때문에 신이 난 거야?”

영아는 빨간 염료(물감)를 붓에 적셔 화선지로 가져가며 물었다.

“김 참판 댁에서 사주단자를 보내왔어요.”

“…….”

들뜬 점순이 목소리에 붓을 잡고 있는 영아의 손이 멈칫했다.

허나 이내 붓은 꽃잎에 붉은색을 물들어 나갔다.

“이제 정말 아가씨 혼인이 실감 나요. 히.”

점순이는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모양이다.

“넌 내가 시집가는 게 그리 좋으니?”

“그야 뭐…… 아가씨께서 집을 떠나시는 건 좋지 않지만 저는 아가씨 따라갈 거니까…… 아가씨는 좋지 않으세요?”

흐릿한 영아의 얼굴에 점순이는 올라간 목소리를 살그머니 내렸다.

“좋을 것도 없지 않느냐. 네 말처럼 정든 집을 떠나야 하고 지아비 될 사람의 얼굴도 모르고 그리고…… 난 아직 열여덟밖에 되지 않았다.”

‘아기씨는…… 크륵…… 일찍 혼인을 못 할 겁니다.’

영아의 귓가에 노파의 가래 끊는 목소리가 바람처럼 스쳐 갔다.

그때였다. ‘드르륵.’ 문을 열리고 기씨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점순이 넌 부엌일 돕지 않고 예서 뭐 하는 것이야.”

기씨는 옆으로 물러나 서 있는 점순이를 못마땅하게 보며 말했다.

“예? 지, 지금 당장 가보겠습니다.”

점순이는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는 기씨에 후다닥, 방을 나갔다.

“…….”

“…….”

기씨는 예쁘게 물들어가는 꽃을 보다가 영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갸름한 얼굴선에 하얀 살갗 그리고 밤색의 눈썹, 아래로 내려진 눈꺼풀에 한층 길어진 속눈썹…… 덕분에 제일 예쁜 눈이 보이지 않았다. 아담하지만 곧게 솟은 콧대와 무엇에 집중하면 이빨에 깨물려지는 도톰한 아랫입술까지 조화롭기 그지없는 얼굴이었다.

제 딸이라서가 아니라 어느 누가 봐도 꽃처럼 예쁜 용모였다. 거기에다가 성정도 야무지고 예뻤다.

이렇게 어여쁜 딸인데 과부가 말이 되는가? 단명이 말이 되는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불안해 할 것 없다.”

“…….”

붓이 멈춰졌다.

영아는 고개를 들어 기씨를 보았다.

맑은 눈망울에 옅은 먹구름이 덮어 있었다.

“거짓이야. 보아라. 아무 탈 없이 자라지 않았느냐. 앞으로도 넌 무탈할 것이야.”

기씨도 불안하지 않았던 것 아니었다. 그 불안감이 그녀의 발길을 점집으로 향하게 하기도 했다.

허나 가는 점집마다 노파만큼이나 나쁜 점괘를 내놓은 이는 없었다. 스물을 전후에 조심을 해야 한다는 점괘를 내놓은 이들도 있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조심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려주지(모르는 것인지) 않았다. 반대로 앞날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점괘를 내놓은 이도 더러 있었다.

노파의 말이 망발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기씨는 그 뒤로 남편인 이찬호 대감의 질책과 함께 점집에 발을 끊었다.

“열여덟이 빠른 것이 아니다. 이 어미는 열여섯에 시집을 왔다.”

기씨는 영아가 열여덟이라는 나이에 신경을 쓰는 것 같아 옅은 웃음을 담아 말했다.

“…….”

“네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 안다. 신랑 얼굴도 모르고 집을 떠나 낯선 곳에 가 살아야 한다는 게 걱정이 될 것이다. 하지만 곧 적응할 것이야. 시집 식구들도 잘해줄 것이다.”

낯선 환경에 몇 날 며칠을 눈물로 지새우고 나면 호된 시집살이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현실은 나중에 알아도 될 것이다.

더욱이 지금 영아에게는 그런 말이 도움을 주기는커녕 불안감만을 더 심어줄 테니 말이다.

“신랑이 잘났다고 소문이 났더라.”

기씨는 분위기를 바꾸러 신랑이 될 김남수를 슬쩍, 입에 올렸다.

이제 열아홉이라는 김남수는 작년 *식년시(式年試)에 급제(及第)를 하였다고 했다. 그것도 처음 도전하는 대과(大科)란다.

실력이 있다고 해도 대과에서 몇 번은 고배를 마시는 게 다반사인 경우가 많다. 소과를 입격하여도 대과에 급제하지 못한 이들이 허다한 게 사실이었다.

쉰 살이 넘어도 대과에 급제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는 걸 보면 대과가 어렵고 힘든 것임이 분명한데, 그것을 한 번에 해냈으니 그 위세(威勢)가 당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대로 고을의 유지(有志)로서 신망(信望)을 얻고 있는 김 참판 댁의 아들이라는 배경까지 더해져 김남수는 최고의 신랑감으로 떠올랐다. 으레 그러하듯 매파들이 앞 다퉈 김 참판의 댁을 드나들었다.

헌데 김 참판 댁에서 그 많은 혼처(婚處) 자리를 다 물리고 혼처도 청하지 않은 영아의 집에 매파를 보내왔던 것이다.

우의정까지 지낸 영아의 아버지 이찬호 대감 정도 돼야 자기네 사돈으로 격(格)이 맞다, 생각한 것 같았다.

이 대감으로서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한양이 아닌 이런 작은 현(縣)(이 대감은 몇 년 전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을 했다.)에서 그만한 신랑감은 없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몇 번 만나본 김 참판의 인품이 좋았을 뿐더러 딱 한 번 마주쳤을 뿐이지만 김남수도 예의 바른 젊은이였다.

그렇게 두 집안의 정혼이 성사되었다.

**

아침부터 하늘에서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영아는 여닫이문을 열어 놓은 채 빗소리를 들으며 자수를 놓고 있었다. 기씨가 정해준 요즘 영아의 일과 중 하나다.

“…….”

손과 함께 한참 자수틀에 머물러 있던 눈길이 올려지며 마당을 적시고 있는 빗방울을 바라보았다.

작은 웅덩이에 퐁퐁 떨어지는 빗방울…… 영아는 문갑에 팔을 올리고 손에 턱을 괴고 떨어지는 작은 빗방울을 구경했다.

그때였다.

‘쾅.’

닫혀 있던 별당 중문이 큰소리를 내며 열렸다.

다다닥, 뛰는 발소리…… 작은 웅덩이에 큰 파문을 일으킨 점순이의 발이 섬돌로 올라오기 무섭게 방으로 휙, 들어왔다.

“아가씨!”

점순이는 숨찬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

하지만 바깥으로 향한 영아의 눈길은 돌려지지 않았다.

평소 덤벙대는 점순이기에 그러려니 하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아가씨, 이렇게 한가하게 있을 때가 아니에요.”

점순이는 얼굴을 찌푸리며 영아 곁으로 와 무릎을 ‘쿵.’하고 꿇어앉았다.

그제야 고개를 돌려 점순이를 보는 영아였다.

“무슨 일인데 그래?”

“지금 사랑채에…… 김 참판 댁 사람이 와 있어요.”

“…….”

점점 작아지는 말소리와 함께 방바닥으로 내려가는 눈길에 영아는 얼굴을 숙여 점순이의 표정을 살폈다.

김 참판 댁에서 사람이나 물건이 올 때면 영아 자신보다 들떠 있던 점순이었다. 헌데 오늘은 목소리도 표정도 들떠 보이지 않았다.

“왜? 안 좋은 일이야?”

혼인이 열흘도 남지 않았는데 갑자기 사람을 보내온다는 건…….

“혼, 혼인을…… 다시 생각해…….”

‘쾅.’

“어림도 없는 소리!”

불같은 기씨의 목소리가 문이 열어젖혀짐과 동시에 방 안으로 화르륵, 번져 들어왔다.

기씨는 사납게 걸어와 겁에 질려 엉거주춤 일어서는 점순이를 노려보았다.

“어디서 말을 함부로 하는 게야.”

“송, 송구합니다.”

점순이는 삐죽삐죽 뒤로 물러났다.

문 앞에는 기씨를 뒤따라온 쇠돌네가 문지방을 넘지 못하고 애꿎은 행주치마만 쥐어짜고 있었다.

“어머니 앉으시어요.”

영아는 당장이라도 경을 칠 기세인 기씨를 달래듯 부드럽게 말했다.

“흥, 먼저 정혼 맺자, 할 때는 언제고.”

세운 무릎 위의 손가락이 주먹이 되어 부들부들 떨었다.

“……어쩌자고, 어쩌자고! 내 아무 데서나 입 놀리지 말라, 하였거늘.”

김 참판 댁으로 향하던 화가 문밖 쇠돌네로 휘몰아쳐 갔다.

“쇤네를 죽어주세요. 마님.”

쇠돌네는 차가운 마룻바닥에 주저앉으며 흐느꼈다.

“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영아를 보던 기씨가 눈길을 피했다.

그렇구나. 그 일이구나.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더니…… 하필이면 숙이네가 듣고 말았지 뭐니.”

숙이네…… 몇 년간 집을 드나들고 있는 넉살 좋고, 입 가벼운 방물장수였다.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방물을 파는 그녀는 드나드는 집의 경조(慶弔事)를 훤히 꿰뚫고 있었다. 해서 그 날짜가 되면 어김없이 방물을 잔뜩 이고 걸음을 하였다.

기씨는 그런 숙이네를 통해 김 참판 댁 안주인과 노마님에 대해 듣게 되었다.

김 참판 부인은 곁으로 온순해 보이나 안에 화를 안고 산다고 하였다. 그것이 다 노마님 윤씨의 기에 눌려 살아서란다. 시어머니의 등살에 화를 안에 눌러놓고 쌓아두다가 아랫것에 화풀이 종종 낸다고 하는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하는 숙이네를 보아 가벼운 화풀이는 아닌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