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저 앞에서 내려다오.” '“안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아니, 그냥 내려다오. 조금 걷고 싶으니까.” '봉사활동을 하러 가는 소망원까지는 아직 조금 더 가야 했으나 걷고 싶었는지 유미가 내려달라고 말을 했다. 지성은 어머니 유미의 얼굴을 보다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동생 지민의 일로 신경을 써서 그런지 어머니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지성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유미가 꼿꼿하게 몸을 폈다. 그럼에도 연약함은 다 감춰지지 않고 있었다. 피곤하고 힘들다는 눈빛을 전부 숨기지 못한 유미의 얼굴이 지성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들게 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여왕처럼 도도하고 거칠 것 없던 유미였던지라 요즘 간혹 보이는 어머니의 이런 모습은 조금 낯설기도 했다. '지성은 연약한 어머니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예전의 어머닌 결코 이런 표정을 내비치지 않았고 내비칠 일도 없었다. 세상의 중심이 당신을 위해 돈다고 생각했을 만큼 모든 것을 지닌 분이었으니까. '“오늘은 그냥 쉬실 것을 그랬어요. 무척 피곤해 보이시는데.” '2년 전 지민은 교통사고를 당한 사고 후유증으로 간질과 퇴행성 정신장애라는 병을 얻었다. 갑자기 쓰러져 간질발작을 일으키거나 어린아이처럼 난폭하게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는 지민으로 인해 집안은 늘 살얼음판이었다. 어제 지만은 발작을 일으켰다. 그 때문에 유미는 물론이거니와 지성조차 꼬박 밤을 새워야 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 움직이는 것이 좋아. 또, 내가 집에 없는 것이 지민이도 더 마음 편해 하는 것 같고.” '유미는 정말 피곤했다. 하지만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녀는 더욱 등을 반듯하게 폈다. 행여 그녀의 연약함이 노출될까 봐 유미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아들이라 해도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것이다. 그녀는 눈에 들어오는 사람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차창을 내렸다. '“저런! 얘야, 잠깐만 차 좀 세우련.” '지성이 차를 세웠다. 유미는 슈퍼에서 막 나오고 있는 루아를 바라보았다. 또 다! 바보같이 오늘도 혼자서 심부름을 나온 모양이었다. 루아가 자신의 몸무게보다도 무거워 보이는 꾸러미를 양손에 힘겹게 들고 있었다. '“새댁.” '유미의 부름에 고개를 돌린 루아가 아주 엷은 미소를 그녀에게 보냈다. 루아는 항상 이만큼만 웃었다. 입가가 살짝 올라가는 아주 작은 웃음이었다.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사모님.” '“뭘 그리 샀어요?” '“아기들 분유요.” '“무겁겠네, 배달시키지 그 많은 것을 왜 직접 들고 가요?” '“슈퍼가 바빠 바로 배달이 어렵다고 해서요. 아기들 우유가 다 떨어진 것 같아 마음이 급해서요.” '“타요. 같이 들어갑시다.” '“아직 살 게 남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