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아침부터 계속되어 온 두통에 자꾸 어긋난 일정, 무리한 소속사의 강행군,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공연시설까지 루크의 기분을 해소시킬 만한 것들은 하나도 없었다. 거기에 그가 며칠 투숙하게 된 호텔 앞까지 끈질기게 쫓아온 파파라치와 극성팬들의 존재는 그의 기분을 더욱 불쾌하게 만들고 있었다. 몇몇 극성팬들은 그의 일정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꽤나 비싼 숙박료를 물어야 하는 이 호텔에 아예 미리 투숙해있었다. 그러고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싶어 했다. 지금도 그가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호텔 bar 안에는 극성팬이 분명한 여자들이 상기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녀들은 어떻게 한번 말을 붙여볼까 궁리하며 자꾸 그가 앉아 있는 곳을 흘끔거리고 있었다. 즉 바꿔 말하자면 3일 전부터 시작된 순회공연 때문에 그는 느긋하게 술을 마실 수 있는 시간마저 잃어버린 것이었다. '“제길!”'그는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루크․데이브․마이어. 연예계에서는 루크․마이어로 알려진 그는 결코 좋은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물론 이미지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연예인이기에 기분이 내키면 집 앞에까지 와서 진을 치고 있는 팬들에게 웃는 낯으로 사인을 해주는 서비스 정신 정도는 있었다. 그러나 그의 기분이 잔뜩 다운되면 그 누구도 그를 말릴 수 없었다.'“루크, 내일을 위해 이제 그만 마시는 게 좋겠어.”'그의 매니저 닉․존슨이 루크의 손목을 붙잡았다. 바텐더에게 술을 더 주문하려던 루크는 닉을 노려보았다. '“이때까지 혹사만 당했는데, 술도 마음대로 못 마신다는 거야? 웃기는군.”'“널 위해서야.”'닉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목소리가 커진 루크에게 주위의 시선을 좀 감안하라는 듯 두리번거렸다. '“날 위한다면 조금이라도 날 가만히 내버려두라고. 술이라고는 몇 잔 마시지도 않았어.”'평소 루크의 주량을 감안한다면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3잔 정도 마셨다고 해도 사실 그리 과음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내일 저녁에도 버밍엄의 스타디움에서 공연을 해야만 했다. 닉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루크를 잡은 손의 힘을 빼지 않았다. 데뷔시절부터 줄곧 함께 해온 닉의 고집을 알기에 루크는 더 이상 바텐더에게 술을 달라는 요구를 하지 않았다. 그는 거칠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젠장! 좋아. 술은 더 이상 하지 않을 테니 잔소리꾼 엄마처럼 설교를 늘어놓을 셈이라면 이쯤에서 그만두라고. 무엇보다…….”'그 순간 그의 에메랄드빛 눈동자는 때마침 문을 열고 들어온 여자에게 향했다. 여자는 변덕스러운 날씨의 희생자가 되어 비에 흠뻑 젖은 몰골을 하고 있었다. 비 때문인지 하얗게 질린 얼굴과 묘하게 대조를 이루는 붉은 입술을 하고 있었다. 그 입술을 조금 벌린 채 무언가를 찾듯 bar 안을 둘러보는 모습이었다. 보나마나 여전히 bar 안에서 자신을 힐끔거리고 있는 극성팬들 중 하나가 추가된 게 분명하다고 그는 심드렁하게 생각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여자는 현재 이 안에서는 유일한 동양인이라는 것 정도였다. 일부러 염색이라도 한 것처럼 짙어 푸른빛까지 감도는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 아무렇게나 얼굴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얌전한 디자인임에 분명한 파스텔 톤의 얇은 여름 원피스는 짓궂은 날씨 탓에 원래의 의도와는 달리 여자의 속옷과 몸매의 곡선을 아슬아슬하게 비추고 있었다. 아담한 체구에 비해 봉긋 솟아오른 가슴과 여성스럽고 연약해 보이는 둥근 어깨 선, 그리고 날씬한 허리에까지 시선을 미끄러트리던 그는 한쪽 입술 끝을 치켜 올렸다. '“그러니 또 하나의 즐거움까지 빼앗아 갈 생각은 하지도 마, 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