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밤이 깊었다. 산짐승도 울지 않을 정도로 늦은 시각이었다. 바깥은 이미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시커먼 어둠으로 꽉 차 있었다. 아침부터 흐렸던 날씨는 밤이 되어도 마찬가지였다. 하늘엔 비가 내릴 듯한 먹장구름이 잔뜩 끼었다. 달도, 별도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눈에 보이는 세상은 을씨년스러움으로 가득하였다.

오로지 발끝의 감각만으로 걸음을 옮겼다. 눈을 떠도 감은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앞에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에 무서움이 엄습하였다. 살고자 하는 본능적인 욕망으로 허공을 더듬었다. 계현은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라도 찾는 것처럼 붙잡을 무언가를 찾았다.

“할아버지.”

계현의 덜덜 떨리는 손을 그녀의 할아버지인 유창만이 꾹 누르듯 잡아주었다. 안심이 되었는지 계현의 떨림이 점차 작아졌다. 으스스한 상황에 홀로 남겨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이제 다 왔다.”

“오늘은 여기서 자는 것입니까?”

계현이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고개를 들며 유창만에게 물었다. 아침부터 잠시도 쉬지 않고 걸은 탓에 더는 서 있을 기력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여기서 더 간다고 해도 상황이 지금과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유창만의 다 왔다는 말에 어쩐지 안도감이 들었다.

“조금 더 가야 한다고 했으면 못 가겠다고 떼를 쓸 뻔 하였습니다.”

“시간이 늦었다. 오늘은 이쯤에서 대충 잠을 자고 내일마저 가자구나.”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합니까?”

“지금과 같은 걸음이라면 앞으로 보름은 더 가야 하지 않을까 싶구나.”

“보름이나요?”

“그것도 지금처럼 걸었을 때의 일이다. 네가 거북이보다 더 느릿느릿 걷는다면 한 달은 족히 걸릴 것 같구나.”

“하아.”

“이 늙은 할애비도 아무 소리 안 하고 걷는데 어린 녀석이 엄살이 심하구나.”

“발바닥이 온통 물집 투성이입니다.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발바닥이 부서져 없어져 버릴 것만 같습니다.”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으며 계현이 투정을 부렸다. 더는 걷지 못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이 녀석아. 여기서 주저앉으면 어떡하느냐. 저기까지는 가야지.”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저기엔 뭐가 있는데요?”

계현의 물음에 유창만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살폈다. 하늘과 땅의 경계조차 불분명하였다. 오직 암흑만 있을 뿐이었다.

유창만이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지 계현은 알 수 없었다. 그녀에게 보이는 건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검게 변한 세상이었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큰 나무가 하나 있다. 그 나무 아래까지만 가자. 나무가 크니 비가 한바탕 쏟아져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비가 올 것 같지 않은데요?”

계현이 유창만과 잡고 있지 않은 다른 손의 손바닥을 하늘로 가게 두며 반박하였다. 구름이 끼긴 하였으나 비는 전혀 올 것 같지 않았다. 거기에다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유창만이 한 번도 무릎이 시리다고 하지 않았다. 계현은 제 생각에 더더욱 확신하였다.

“서두르지 않으면 비를 쫄딱 맞을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옷이 젖어도 상관없느냐?”

“그건 싫습니다.”

계현이 고개를 흔들며 질색하였다. 가진 것이라고는 입고 있는 옷 한 벌이 전부였다. 그런 옷이 내리는 비에 젖어버린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던지 계현이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젖은 옷을 입고 비 맞은 생쥐마냥 찝찝하게 거리를 돌아다니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사람들은 두 사람을 불쌍히 바라보았다. 여기서 얼마나 더 사람들에게 동정 어린 시선을 받아야겠는가. 그건 이제 사양이었다. 그만 비참한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지만 할아버지께선 한 번도 무릎이 시리다고 하시지 않았잖아요. 비가 오긴 정말로 오는 겁니까? 괜히 절 겁주려고 하시는 말씀이지요?”

“그런 말도 상황을 봐가면서 해야지. 갈 길이 먼 상황에서 무릎 통증이 무에 대수겠느냐.”

“할아버지…….”

담담한 유창만의 대답에 짠한 마음이 들었다. 괜스레 코를 훌쩍거렸다. 계현은 더는 유창만의 말에 토를 달지 않겠다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다짐은 곧 투정으로 변하였다.

“더는 못 가겠습니다. 그냥 여기서 대충 자면 안 되겠습니까?”

“이 녀석아, 이 나무는 너무 작아서 비를 다 막아주지 못한다고 해도 그러네.”

“보이지도 않으면서 나무가 큰지 작은지 할아버지께서 어떻게 아십니까? 이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그러니 그냥 여기서 자요. 기껏해야 하룻밤 아닙니다. 하룻밤 사이에 비가 내리면 얼마나 내린다고요.”

고집스레 발을 땅에 박고 서서 버티는 계현이 못마땅하다는 듯 흘겨보던 유창만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방금 깨달은 것이다. 게다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조금 전부터는 무릎을 바늘로 쿡쿡 쑤시는 통증이 허리까지 올라오는 게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는 애써 무시해왔던 통증에 굴복해버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유창만이 서 있던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심어진 나무로 걸어갔다. 드디어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났던지 계현이 토끼처럼 폴짝폴짝 뛰며 따라왔다.

“여기가 좋겠구나.”

나무 주위를 빙글 한 바퀴 돈 유창만이 나무뿌리가 땅 위로 돌출되지 않은 평평한 부분을 찾았다. 괴나리봇짐 속에서 네모반듯한 천을 하나 꺼내 땅 위에 깔았다.

드디어 쉴 수 있단 생각에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계현이 그 위에 두 다리를 곧게 뻗어 앉았다. 이제야 살 것 같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은 유창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리 가까이 와 보십시오.”

“무얼 하려고?”

“잠이 들기 전까지 할아버지 다리를 주물러 드리겠습니다.”

“아서라. 그러고 나서 내일 아침에는 팔다리가 다 쑤신다며 업어달라고 하려고?”

“제가 아직도 세 살짜리 어린아이로 보이십니까? 제 몸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그러는 할아버지께서나 더는 걸어가지 못한다고 연약한 손녀한테 업어 달라고 하지 마십시오.”

못을 박듯 계현이 말하였다. 그러나 퉁명스러운 말투와 달리 다정한 손길로 유창만의 돌처럼 단단한 종아리를 주물러 주었다.

“할아버지.”

“왜 부르는 것이냐?”

그 사이 눈을 감고 잠을 청하던 유창만이 귀찮다는 말투로 대꾸하였다. 그게 몹시 미웠던지 계현이 손가락에 힘을 잔뜩 주고 유창만의 종아리를 꾹 눌렀다.

“이 녀석이 이 할애비를 죽이려고 작정을 하였구나.”

“이 정도로 어떻게 사람을 죽입니까. 할아버지께서야 말로 엄살이십니다.”

계현이 지지 않고 유창만의 말에 대꾸하였다.

“그건 그렇고 왜 부른 것이냐?”

분위기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느꼈던 유창만이 본래의 화제로 돌아왔다. 계현이 절 부른 이유가 궁금하였다.

“이렇게 무턱대고 찾아가도 될까요?”

“가족이 아니냐. 가족이란 자고로 서로 힘들 때 서로 도와야하는 것이다.”

계현은 얼마 전 두창(천연두)으로 부모를 모두 여의었다. 운이 좋아 계현은 두창에 걸리지 않았지만 혼자서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란 쉬운 게 아니었다. 가까이 살던 유창만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계현을 거두었다. 그러나 유창만이 살던 마을에서는 계현을 반기지 않았다. 이미 계현의 부모가 역병으로 죽었다는 소문이 마을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음대로 집 밖을 나갈 수조차 없었다. 사람들은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지 못하고, 계현에게 돌팔매질을 하였다. 자신에게만 그러했다면 어떻게든 견뎠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사람들의 괴롭힘은 강도를 더해갔다. 두 사람이 마을을 떠나오기 며칠 전에는 유창만이 마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몰매를 맞을 뻔한 아찔한 일도 있었다.

그래서 계현은 마을을 떠날 생각을 하였다. 어린 손녀 혼자 둘 수 없었던 유창만이 기꺼이 함께하였다. 본디부터 가진 게 얼마 되지 않았다. 길거리 생활은 빠른 속도로 주머니 속을 비웠고 결국 두 사람은 노숙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가족이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다 잘될 것이다.”

온종일 엉덩이 한 번 제대로 붙여 보지 못하고 내내 걸은 탓일까? 웅얼거리는 말소리가 점점 잦아 들어갔다. 머리가 땅에 닿자마자 유창만은 깊은 단잠에 빠져들었다.

잠든 유창만이 노곤해 보였던 터라 계현은 더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쓸쓸한 눈으로 타다 남은 재 같은 검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계현도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빛바랜 종이처럼 머릿속 기억은 희미하였다. 기억이 조각나 버렸다. 이젠 어머니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머릿속에 그려보려고 해보아도 그려지지 않았다.

그저 면경 속에 자리한 건장한 사내 녀석을 보며 기억나지 않는 어머니의 얼굴을 짐작할 뿐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머니를 쏙 빼닮았다고 하니 실제 어머니의 얼굴이 이렇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런 방법으로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달래 지지 않았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면경을 보고 또 보아도 보고 싶은 마음이 뼈에 사무쳤다. 부르고 불러도 부르고 싶은 그리운 그 이름을 정우는 오늘 마음껏 불러볼 심산이었다. 집에서 부리는 하인 하나만 데리고 첫새벽부터 길을 나섰다.

사위가 워낙 조용하였던 탓에 말발굽 소리가 꽹과리를 치는 것처럼 요란법석도 하였다. 시끄러웠으나 말에서 내릴 생각은 없었다. 그만큼 마음은 이미 어머니를 향해 있었다.

“나으리, 아무래도 하늘이 심상치 않습니다. 곧 장대비가 쏟아질 듯하옵니다.”

정우는 말을 달리는 상태 그대로 힐끗 옆을 보았다. 하늘을 바라보던 칠석이 고개를 돌려 정우를 쳐다보았다. 흔들리는 시선 속에서도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맞닿았다.

칠석은 정우의 집에서 부리는 하인 중 하나였다. 신분은 미천하였으나, 어릴 적부터 총기가 남달랐다. 하여 정우가 가까이 두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가르쳤다. 칠석은 흡사 물먹은 솜처럼 정우가 주는 가르침을 그대로 흡수하였다. 말귀를 곧잘 알아들으니 가르침을 주는 게 신이 났다. 그 뒤로 정우는 칠석에게 아낌없는 가르침을 주었다. 노비의 신분이면서도 정우와 나란히 말을 탈 수 있는 것도 다 굄을 받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제법 능수능란하게 말을 몰며 칠석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시선을 정우에게 두고 있었다. 정우는 걱정하지 말란 듯이 고개를 짧게 끄덕여 보이곤 말고삐를 더욱 힘껏 잡아당겼다. 말이 빠른 속도로 앞으로 치고 나갔다.

순식간에 멀리 앞서 나간 정우를 쫓으려 칠석도 말고삐를 있는 힘껏 당겼다. 칠석의 염려에 따라 비가 내리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려면 서둘러야 했던 것이었다.

두 사람은 그 뒤로 한참을 더 침묵 속에서 말을 달렸다. 바람이 빠른 속도로 귀 뒤로 넘어가는 소리만이 귓가를 울렸다.

돌연 정우가 말을 멈추었다. 그를 낳아준 어머니가 묻힌 무덤을 바로 지척에 두고서 일어난 일이었다. 말의 코에서는 연신 성난 콧김이 뿜어져 나왔다. 투레질을 하던 말이 길게 울며 앞발을 허공에 치켜들었다.

뒤따라오던 칠석이 놀라서 눈을 찢어질 듯이 커다랗게 떴다. 그리고 충돌을 피하려 말의 속도를 서서히 줄였다. 그러자 정우의 말 만큼은 아니었지만, 칠석이 타고 있던 말도 성난 울음을 토해내었다.

“나으리, 무슨 일이십니까?”

정우가 어미를 그리워하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아는 일이었다. 그래서 항상 그녀의 무덤을 찾을 때 그는 멈추는 법이 없었다. 늘 전속력으로 앞만 보며 질주하였다. 그래서 무슨 사고라도 나는 건 아닐까 하여 칠석은 한결같이 마음을 졸였다.

그러던 차에 정우가 긴급하게 말을 멈춰 세웠다. 말이 앞발을 치켜들고 허공을 굴렀다. 그가 떨어질 듯 위태로운 모습으로 말에 매달려 있는 걸 뒤따라오면서 보았다. 심장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처럼 쿵쾅거리며 뛰었다. 그에게 변고가 생기는 줄 알고 이마에 식은땀이 다 났다. 다행히 숙련된 솜씨로 정우가 말을 진정시켰다.

“별일 아니다.”

정우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런다고 칠석의 우려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때였다. 칠석의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그동안에는 흥분한 말에 가려 보이지 않아서 몰랐다. 정우가 타고 있는 말 앞으로 겁에 질려 어깨를 오들오들 떨고 있는 노인이 하나 보였다.

“마음이 급하여 미처 앞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였습니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정우가 공손한 어조로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는 노인에게 물었다. 얼마나 크게 놀랐는지 노인은 제대로 된 말을 구사하지 못하였다. 그저 입을 조금 벌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되겠다 싶었던 정우가 결국 말에서 내려 노인과 마주 보고 섰다.

“정말 괜찮으십니까?”

노인이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을 둘러보던 정우가 말의 안장에 묶어 놓았던 호리병을 노인에게 건넸다.

“청주(淸酒)입니다. 한 모금 하시지요. 놀란 속을 달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노인은 처음엔 사양하였지만, 자신의 속이 말이 아닌지라 정우가 건넨 호리병을 입가에 가져갔다. 한 모금뿐이었지만 살짝 차가운 술이 몸속으로 들어가자 몸의 떨림이 눈에 띄게 진정되었다.

“의원에게 가보지 않아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도 노인의 상태가 염려되었던지 정우가 노인과 시선을 맞추며 물었다.

“괜찮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이만 가보겠습니다.”

노인은 비쩍 마른 것에 비하여 목소리엔 무게감이 있었다. 허름한 행색이었으나 예를 아는 사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