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차를 타고 수목원으로 향하는 차 안은 고요를 넘어 적막하기만 했다. 각자 생각에 빠진 두 사람의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도 딱히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그녀도 곁에 있는 그를 잊을 정도로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 빠르게 스치는 바람 소리와 시야 뒤편으로 사라지는 모든 사물들이 그녀에겐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자식을 잊어버리는 어미도 있나? 얼핏 본 화면속의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아이의 모습이 계속하니 그녀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아이라니……. 그가 말하는 모든 것이 진실이라 믿어도 될까? 그녀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시간들을 그는 알고 있을 거라, 그에게 물으면 다 이야기해 줄 거라 그렇게 믿고 싶었고 확인하고 싶었다. ' “효주는 누구에요?”' “……생각나는 게 한 가지도 없나?”' 오랜 침묵 끝에 그녀의 입이 열렸다. 그는 전혀 생각지도 않은 질문에 씁쓸함을 느꼈다. 그의 어머니 입을 통해 수없이 들었을 이름. 처음부터 어머니는 그녀를 동생의 이름으로 불렀는데……, 그것도 그녀의 기억 속엔 남아 있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실망하지 말자고, 천천히 가자고 그렇게 다짐했는데도 불구하고 야속한 마음이 앞서기 시작했다. 그녀를 다그치고 싶었다. 어떻게 그렇게 깨끗하게 잊을 수 있느냐고 원망 어린 말을 쏟아낼 것 같아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모든 게 뿌연 안개 속에 싸인 느낌이에요. 바람결에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가 들려요. 나를 향해 고운 미소를 지어 주는 어떤 분이 있었어요. 그 미소를 보면 가슴이 따스해지고 아픈 심장을 다독여 주는 것처럼 포근함을 느꼈던 것도 같아요. 그런데 그 얼굴이 생각나지 않아요.”' 그녀의 작고 차분한 목소리가 그의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그는 묻고 싶었다. ' ‘난, 나는 기억나지 않아? 조금도?’' “우린 어떻게 만났나요?”' 그녀는 그를 향해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듯한 질문을 던졌다.' “……주웠지.”' “뭐라고요? 주워요?”' 그녀는 생각지도 못한 장난스러운 그의 말에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 자기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라도 된 듯 낙엽 속에 죽은 듯 숨어 있는 걸 주웠어.”' 그의 입가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그녀가 삼림욕장에 쓰러져 있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녀를 처음 품에 안았던 그 느낌이 고스란히 그의 팔과 가슴에 남아 있는 듯했다. 그날부터였을까? 그녀가 그의 마음속에 파고든 것이…….' “근데 왜 자꾸 반말해요?”' “예전에 네가 내 여자가 된 후로 계속 반말했어. 아! 물론 그것도 잊었겠군.”' 운전석 쪽으로 몸을 틀고 그를 바라보는 그녀를 룸미러를 통해 흘끗 쳐다보았다. 조금 전까지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내 여자. 그의 입을 통해 들려온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심박수가 최대치로 뛰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홧홧해지는 느낌에 서둘러 고개를 모로 돌렸다.' 끼이익.' 그가 차를 고속도로 갓길에 급하게 세웠다. 비상깜박이를 켜고 안전벨트를 푼 그는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놀란 그녀가 그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 “……왜?”' 한 손은 핸들을 잡고 다른 손은 그녀가 앉은 보조석의 헤드를 잡은 그가 고개를 돌려 그녀의 입술을 머금었다. 조급하게 굴지 말자던 다짐도 다 소용없었다. 붉어진 그녀의 얼굴이 얼마나 가슴 떨리게 예쁜지 달싹이는 그녀의 입술이 얼마나 매혹적인 전혀 모르는 그녀에게 화가 났다. 그를 완벽하게 잊은 그녀에게 자신을 각인시키고 싶었다. 이렇게라도 해서 그를 기억하게 할 수만 있다면……. ' 달콤했다. 몇 년 동안 잊으려 애를 썼던 그녀의 보드랍고 향기로운 입술을 마음껏 맛보고 헤집으며 안도감을 느꼈다. 그의 앞에 그녀가 있다. 그녀의 혀를 세차게 빨아 당기고 그녀의 입속으로 그의 혀를 밀어 넣었다. 채워지지 않는 강렬한 욕망이 급속도로 커져갔다. 갖고 싶다. 그녀의 안에 자신을 묻고 그녀가 그에게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 그녀의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의 키스에 응답하며 조금씩 반응을 보이는 그녀가 반가웠다. 혀를 내밀어 부드럽게 그녀의 입술을 핥자 거칠어진 숨결이 느껴졌다. 그는 이번엔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그녀의 입안에 혀를 밀어 넣었다. 그녀의 뜨거운 혀와 입안 모든 것이 그의 오랜 기억 속의 것과 똑같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점점 깊어지는 그의 입술과 혀의 움직임에 지유가 한 손을 들어 그의 뺨을 감싸 안았다. 그녀의 아래, 위 입술을 번갈아 빨아 당긴 그가 그녀의 타액을 남김없이 삼켜 버릴 듯 강하게 그녀를 몰아붙였다.' 한참 만에 그녀의 입술에서 아쉬운 듯 입술 뗀 그가 그녀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대었다. 그는 키스로 채워지지 못한 욕망을 밀어내고 거칠어진 호흡을 정리한 뒤 시동을 걸며 입을 뗐다. ' “사과할 생각은 없어. 널 다시 본 그 순간부터 이렇게 하고 싶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