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커다란 돌담을 따라 한 여자아이가 남자의 손에 거의 끌리다시피 걷고 있었다. 한없이 이어진 돌담이 아이에게는 거대한 성벽처럼 보였다. 얼마를 걸었을까. 아이의 숨이 턱에 찰 무렵, 남자는 커다란 대문 앞에서 멈춰 섰다. '아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담 안쪽에서 뻗어 나온 담쟁이넝쿨이 아이의 눈에 띄었다. 손을 내밀어 넝쿨을 잡으려던 아이는 남자에 의해 얌전히 대문 앞에 세워졌다. '남자가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자 인터폰에서 중년 아주머니의 말소리가 들렸다. 마냥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는 아이의 손을 잡고 남자는 열린 문으로 아이를 밀어 넣었다. 뒤따라 들어온 남자에 의해 철커덩 닫힌 대문소리가 유난히 아이의 귀에 크게 들렸다. '아이의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동화책에서나 본 동글동글 작은 나무들 사이로 나 있는 돌계단이었다. 계단에 올라서니 운동장만큼이나 넓은 잔디밭과 예쁘게 다듬어진 나무들이 한눈에 보였다. 아이는 동화책 신데렐라에서 보았던 왕자님이 사는 궁궐 같은 곳이 정말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동화를 상상하며 걷던 아이는 같이 온 남자를 따라가다 헛발을 디뎌 넘어졌다. 얼른 일어나 무릎을 털던 아이는 흙이 묻지 않은 것에 안심을 했다. 하얀 원피스와 타이즈 무릎에는 흙 대신 잔디의 풀물이 들어 있었다. '아이는 몰랐다. 흙보다 풀물이 더 지지 않는다는 것을.'넘어졌다 일어서는 아이를 바라보던 남자는 한걸음에 다가와 아이를 안았다. 어른의 큰 보폭을 따르기엔 아이의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것을 미처 생각지 못한 미안함이 남자의 얼굴에 스쳐 갔다. 아이를 안아 든 남자는 움츠린 작은 어깨를 토닥이며 아이의 아픔과 무안함을 달래 주었다. '남자의 품에 안긴 아이는 높은 곳에 올라 넓어진 시야로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정원 한쪽에 위치한 큰 나무가 눈길을 끌었다. 그 나무에는 그네가 매여 있었다. '아이는 낯선 집에 들어와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미풍에 흔들리는 그네가 아이의 등장을 환영하는 듯했다. '그네를 향한 조급한 마음에 꼼지락거리던 아이는 문득 느껴지는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아름다운 정원에 걸맞게 으리으리한 이층 저택이 아이의 숨을 앗아갔다면, 그 이층 유리창에서 밖을 바라보던 소년과 눈이 마주친 것은 아이의 몸을 얼어붙게 했다.'어린 나이에도 느낄 수 있는 차가운 눈빛, 소년은 그렇게 아이에게 새겨졌다. 남자의 품에 안겨 저택에서 조금 떨어진 별채에 들어가기까지 아이는 소년의 시선을 느껴야 했다. 무심하면서도 차가운 눈빛은 처음 보는 아이를 놓아주지 않았다. '별채에 들어선 아이는 자신을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소개되었다. 박유나. 낯선 외삼촌 가족과의 첫 신고식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