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캄캄한 골목, 그곳에는 키스하느라 정신 팔린 한 남자와 너무 열렬하게 키스를 하는 남자 친구 때문에 힘겨워하는 여자 하윤이 있었다. 자신 말고는 애인을 단 한 번도 사귀어 본 적이 없다고 했던 남자 친구의 능숙한 키스에 하윤은 당황스러웠다. 역동적으로 혀를 움직이는 그와는 다르게 하윤은 경직된 상태로 눈만 깜빡거렸다. 참다 참다 그녀가 그에게 포개어져 있던 입술을 떼어냈다. 한창 열중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입술을 떼어낸 하윤에 진욱은 인상을 찌푸렸다.

“왜 떼?”

“나 너무 힘들어서 못 하겠어. 아니, 싫어.”

“가만히 있었으면서 뭐가 힘들어? 힘들어해야 하는 건 네가 아니라 솔직히 나 아니냐? 그리고 날 정말로 사랑한다면 그 정도는 참고 해줄 수 있는 거 아니야? 너 날 사랑하긴 해?”

다른 남자라면 몰라도 진욱은 이해해 주고 그냥 넘어갈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했던 반응과 다른 진욱의 태도에 하윤은 당황스러웠다.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말이 없는 하윤에 진욱이 머리를 거칠게 넘기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날 정말로 사랑하면 힘들어도 꾹 참고해!”

“지, 진욱아, 갑자기 왜 그래? 나 너무 무서워. 그러지 마.”

“무섭다고 하지 마. 여자 친구라면 이런 지랄 같은 모습조차도 사랑해 줘야 정상이야. 내가 지금 사귀고 있는 다른 여자들은 나의 이런 모습을 더 좋아해.”

“다른 여자들? 그게 무슨 소리야? 너 바람피웠어?”

“응. 그러니깐 그냥 닥치고 있어. 너 때문에 슬슬 짜증 나기 시작하니깐. 이번에도 먼저 떼기만 해봐. 가만 안 둬.”

진욱이 하윤의 입술을 급하게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하윤은 진욱이 자신의 입술을 어떻게 하든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가 내뱉은 ‘바람’이란 단어에 온 신경이 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윤은 진욱이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정말로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태껏 보지 못한 그의 다른 모습에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바람도 바람이었지만, 하윤은 무엇보다도 자신을 사랑한다고 해주던 남자 친구의 모습이 가짜였다는 것이 더 큰 충격이었다.

어느새 하윤의 눈가에는 눈물이 떨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맺혀 있었다. 그녀는 이런 쓰레기 같은 남자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예고도 없이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탓에 너무 아파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결국, 그녀의 눈가에 그렁그렁 맺혀 있던 눈물이 뚝 하고 떨어져 내리고 말았다. 하지만 진욱은 그런 그녀를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으며, 하윤의 입술에 계속해서 집중했다. 그러다 자신과 다르게 혀의 움직임이 없는 하윤에게 성질이 난 진욱이 입술을 먼저 떼어냈다. 너무 짜증이 난 그가 그녀를 시멘트벽으로 세게 밀쳤다. 덕분에 하윤이 앓는 소리를 내뱉으며,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불쌍해서 더 놀아 주려고 했는데, 네가 네 복을 차는구나? 싫으면 말아. 나랑 하고 싶은 여자들 수두룩하니까. 아, 그리고 모르는 것 같아서 말해 주는 건데. 너는 지금 가시밭길에서 벗어날 기회를 놓친 거야. 평생 가시밭길에서 후회하며 살아. 너한테는 그게 잘 어울리니깐. 크큭. 그럼 나는 날 진심으로 좋아해 주는 누나들 만나러 이만 가보련다.”

그 말을 끝으로 진욱이 음침한 골목에 하윤을 버려두고 가버렸다. 하윤은 골목을 빠져나가는 진욱을 붙잡을 수가 없었다. 어두운 곳에 혼자 남겨진 하윤은 서럽고 무섭고 아팠다. 서러웠던 것은 재활용도 하지 못할 쓰레기에게 1년이란 시간을 투자한 것 때문이었고 무서웠던 것은 이 골목이 소름 끼칠 정도로 고요하고 캄캄했기 때문이었다.

또, 마음도 아팠지만, 진욱이 벽에 세게 밀친 것 때문에 등과 허리도 으스러진 것처럼 아팠다. 다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하윤은 그 상태로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윤은 힘겹게 점퍼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위치 정보 공유와 함께 문자를 보냈다.

<도와줘.>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정체 모를 사람이 그녀를 향해 뛰어왔다. 순간적으로 하윤은 깜짝 놀랐지만, 익숙한 얼굴인 것을 확인하고 금세 안심했다.

“장하윤! 괜찮아?”

“너, 너무 아파. 나 아무래도 허, 허리 쪽을 다친 것 같아.”

“어쩌다? 그리고 너는 왜 이 시간에 이런 곳에 있는 거야?”

평소 하윤은 이 시간에 병원에 있는 엄마 옆에 있었다. 그런데 하윤이 병원이 아니라 이런 음침한 곳에 있으니 이상하게 생각될 수밖에 없었다. 하윤의 절친한 친구 서연이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평소보다 하윤의 눈은 부어 있었고 충혈되어 있었다. 서연은 도대체 하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궁금했다.

“너 설마 울었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거에 대해서는 가면서 얘기해 줄게. 일단, 병원으로 가자.”

“일어설 수 있겠어?”

“어떻게든. 이, 일어나 봐야지. 어떻게 하겠어. 으윽.”

하윤이 서연의 부축을 받아 자리에서 겨우겨우 일어설 수 있었다. 하윤은 일어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나서도 고통스러워서 연신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너무 힘들어 보이는 하윤이 서연은 걱정이 되었다.

좀 덜 아프게 해주고 싶었지만, 서연은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길이 좁지만 않았어도 차를 이 골목 안까지 끌고 왔을 텐데. 좁은 골목길에 서연은 괜스레 짜증이 났다. 하윤은 서연 덕분에 그제야 소름 돋는 이 골목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윤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서연은 핏대를 세우며 발끈했다.

“진욱이 그 자식 어떻게 그럴 수가 있대? 그렇게 안 봤는데, 정말 쓰레기 같은 새끼네. 하윤아, 감방에 가더라도 진욱이 그 자식 아예 사지를 못 쓰도록 작살 내버릴까?”

“작살을 내더라도 그 전에 병원부터 가자. 나 진욱이 때문에 등이랑 허리가 너무 아파.”

“알았어. 그럼 어떻게 할 건지 병원에서 계획을 짜자고!”

하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윤과 서연이 JH 그룹 재단의 종합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등과 허리 쪽을 다쳐 온 하윤 때문에 응급실 의사들이며, 간호사들의 행동이 다급해졌다.

응급실 의료진들이라 하윤보다 심하게 다치거나 아픈 환자들을 많이 봤을 텐데, 처음 본 것처럼 당황해하는 그들의 행동에 하윤과 서연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다 누군가와 통화를 마친 응급실 의사가 하윤이 누워 있는 침대로 다가왔다.

“뼈에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야 해서 엑스레이 찍을 거예요.”

“네.”

“혹시 등이랑 허리 말고 또, 아픈 곳 없어요?”

“아직 그 부위 말곤 없어요.”

“그래요? 그럼 일단, 엑스레이 찍고 와서 이야기합시다. 누워서 다녀올 거니깐 움직일 필요는 없어요.”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하윤은 누워서 엑스레이를 찍을 수 있었다. 엑스레이를 찍고 와보니 낯이 익은 남자 하나가 하윤의 눈에 들어왔다. 그 남자는 하윤의 엄마 주치의인 정형외과 전문의 한준혁이였다. 준혁은 퇴근하고 다시 병원에 온 것인 듯 의사들이 입는 하얀 가운을 입지 않고 상앗빛 색상의 맨투맨과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의사 가운을 입지 않는다면, 정장이나 니트만 입고 다닐 거라고 하윤은 생각했었다.

그런데, 캐주얼한 옷을 입고 온 준혁을 보며 하윤은 좀 의아스러웠다. 음료수 두 캔을 뽑아 온 서연이 하윤이 누워 있는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하윤아, 우리 말이야. 준혁 쌤. 이런 옷 입는 거 처음 보지 않냐?”

“응. 처음 보는 것 같아. 캐주얼한 옷도 생각보다 잘 어울리시네.”

다른 의료진들과 이야기를 마친 준혁이 차트를 들고 하윤을 향해 다가왔다. 평소와 다르게 안색이 좋지 않은 하윤을 보며 준혁은 좀 신경이 쓰였다. 아무런 말없이 하윤의 얼굴을 유심히 보던 준혁이 커튼으로 침대 주위를 가렸다.

“어쩌다가 다친 거지?”

“그, 그건. 너, 넘어져서요.”

“옷 벗어 봐.”

“네?”

“옷 벗어 보라고. 다친 부위 좀 보게.”

“아까 여자 의사분 계신 것 같던데, 여자 의사분이 제 진료 보면 안 될까요?”

“내과 전문의가 퍽도 진료 봐준다고 그러겠다. 아, 너 다쳐서 혼자 못 벗겠구나? 얘 옷 좀 벗겨 봐.”

하윤을 바라보던 준혁의 시선이 서연을 향했다. 서연은 놀라 휘둥그레진 눈으로 하윤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 이내 하윤이 진료를 꼭 받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그녀의 옷을 벗기기 위해 손을 뻗었다. 서연의 행동에 하윤의 눈도 놀라 휘둥그레졌다. 하윤은 남자에게, 그것도 젊은 남자에게 자신의 몸을 보여준다는 생각에 너무 부끄러웠다. 그래서 자신의 옷을 벗기지 못하게 손으로 막으려 시도했다. 그러나, 허리와 등을 다친 상태였던지라 팔의 힘을 주는 것은 물론이요, 막는 것까지도 불가능했다.

“팔에 힘이 안 들어가나 봐? 꽤 크게 다쳤나 보네. 나 응급실에 올 거 아닌데, 너 진료 봐주러 온 거니깐 시간 지체하지 마. 그리고 너한테 관심도 없으니깐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어. 어서 벗겨.”

준혁의 목소리는 차갑게 내려앉아 있었다. 차갑게 내려앉은 목소리에 하윤이 기분이 나빠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원래 이렇게 차갑고 냉정한 사람이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하윤은 이런 성격의 사람이 무섭고 싫었다.

서연이 하윤이 입고 있는 블라우스의 윗단추부터 하나하나 차례대로 풀기 시작했다. 겉옷은 이미 간호사가 벗겨 놓은 상태였다. 마음 같아서 하윤은 서연에게 벗기지 말라고 하고 싶었지만, 아까 준혁이 했던 말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서연이 단추를 다 풀고 팔까지 옷에서 다 빼자, 곧바로 보인 것은 아기자기한 곰돌이가 그려져 있는 속옷이었다. 빵빵한 가슴을 가진 성인이라기에는 속옷이 너무 유치했다. 서연은 하윤의 곰돌이 속옷에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장하윤. 몰랐는데, 너 취향이 아주 초딩이구나?”

“아, 아니거든? 내 취향 이, 이런 쪽 아니야! 가장 저렴한 거 산 것뿐이야. 민망하니까 그렇게 웃지 말아 줄래?”

“알았어! 알았어! 안 웃을게! 하하하.”

서연이 너무 웃어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고 하윤은 민망한지 눈을 이리저리 굴리기 바빴다. 준혁은 그녀들이 속옷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든 말든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그러다가 똑바로 누워 있는 하윤의 몸을 아무런 말도 없이 뒤집었다. 덕분에 하윤의 입에서는 큰 비명이 나왔다.

“아악!”

“좀 아플 거야.”

말하고 뒤집는 것이 순서인데, 뒤집고 말하는 그의 행위에 하윤은 황당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알 바 없다는 듯 준혁은 하윤의 등과 허리를 바라보았다. 하윤의 등에는 커다란 피멍이 나 있었다. 하윤의 상처를 본 서연은 자기가 다쳐 아픈 것처럼 인상을 찌푸렸다. 반면, 준혁은 하윤의 상처에 헛웃음이 나왔다.

“넘어져서 다쳤다고 했나?”

“네.”

“거짓말하지 말고 솔직히 말해. 어쩌다 다쳤어?”

“거, 거짓말 아니에요. 저, 정말 넘어져서 다쳤어요.”

“이건 넘어져서 난 상처가 아닌데?”

준혁이 하윤의 등에 나 있는 멍을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그러자, 하윤은 조금 전에 몸을 뒤집었을 때와 맞먹는 통증을 느꼈다. 통증 때문에 하윤의 미간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대답이 없는 하윤이 답답했던 서연은 큰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가슴을 쿵쿵 두들겼다.

“어휴. 이 답답한 계집애야! 네가 바람피웠어? 네가 바람피운 것도 아닌데, 왜 말을 안 하려고 해?”

“바람? 그게 무슨 소리야?”

“사실 쟤 남자 친구가 얘랑 사귀면서 양다리 걸치고 있었대요. 또, 그것뿐이게요? 키스도 못 하는 년이라며 벽에 세게 밀쳐서 하윤이 다치게 하고.”

“이서연. 그게 뭐 자랑이라고 얘기해? 나 창피하게. 선생님은 신경 쓰실 필요 없으세요.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매혹적인 여자가 돼서 진욱이 그 자식한테 복수할 거니깐요. 어차피, 신경도 쓰지 않으시겠지만요.”

하윤은 진료를 마치고 병실로 옮겨졌다. 엑스레이를 찍어 본 결과, 심하지는 않지만, 척추뼈에 살짝 금이 가 있었다. 이 정도만 하길 다행이지 조금만 더 다쳤으면 하윤은 하반신 마비가 되어 앉은뱅이 신세가 될 뻔했다. 척추에는 깁스할 수가 없어 하윤은 의료용 허리 척추 보호대를 착용했다. 보호대 덕에 많이는 아니지만, 조금은 움직이기가 수월했다.

링거를 맞으면서 보호대를 착용한 하윤의 모습을 보는 서연은 속에서 열불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자신의 소중한 친구의 마음과 몸에 상처를 준 진욱을 서연은 절대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까 전부터 표정이 어두운 서연을 쭉 지켜보던 하윤이 걱정하지 말라며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서연아, 나는 진짜 괜찮아. 그러니깐 걱정하지 마.”

“뼈에 금이 갔는데, 그게 괜찮아? 그리고 너 지금 속으로 울고 있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

“내 속에서 열불이 나 가지고 안 되겠어! 그 자식 멱을 따주는 수밖에!”

보호자용 의자에 앉아 있던 서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씩씩거렸다. 하윤은 서연의 말에 깜짝 놀라며 고개를 휘저었다. 서연은 한 번 한다고 하면 하는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하윤이 심하게 학교폭력을 당했을 때, 사람을 시켜 가해자들을 전치 5주로 만들었을까 싶었다. 서연이 재벌 집 딸내미라서 망정이지. 만약 하윤처럼 가난한 집 자식이었더라면 지금쯤 콩밥을 먹고 있었을 게 분명했다.

“서연아, 그러지 마. 진욱이 죽이면 너 이번에는 진짜 교도소 갈지도 몰라. 너희 부모님도 수습하시고 싶으셔도 못 하실 거야. 그러니깐, 지금은 자중해.”

“하지만…!”

“날 정말로 생각하면 그러지 마. 제발 부탁이야.”

“하아. 그럼 어떻게 할 건데?”

서연이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좀 씩씩거리긴 했지만, 서연은 어느 정도 진정된 것 같았다. 하윤이 아까 전보다 한결 자연스러워진 미소를 지었다. 입가는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지만, 눈에는 비장함이 가득했다.

“아까 얘기했잖아. 매혹적인 여자가 돼서 복수할 거라고.”

예전과 다르게 비장함이 가득한 하윤의 얼굴에 서연은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저번처럼 바보같이 당하고 가만히만 있을까 봐 걱정되었었는데, 하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아 서연은 다행스러웠다.

“알았어. 너 믿고 가만히 있어 볼게. 내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알았지?”

“응.”

서연에게 그렇게 확신해서 말하긴 했지만, 하윤은 어떻게 매혹적인 여자가 되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은 복수와 관련해 머릿속이 복잡할 것 같았다. 그러던 그때였다. 하윤의 핸드폰이 요란한 벨 소리와 함께 울리기 시작했다.

서연이 하윤의 잠바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전화를 건 사람은 하윤의 동생 하람이었다. 하윤은 하람의 전화에 자신이 엄마를 두고 잠시 외출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엄마에게 연락한다는 것도 깜빡했다.

“여보세요?”

[누나! 지금 어디야? 엄마가 누나 나간 지 한참 됐는데, 안 들어온다고 걱정하잖아!]

“너 지금 엄마 병실이야?”

[아니, 지금 누나랑 통화하려고 로비로 나왔어.]

“그래? 그럼 누나가 있는 곳으로 좀 와줄래? 누나가 할 얘기가 있는데, 지금 움직일 수가 없는 상황이야.”

[그게 무슨 말이야?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니? 누나 혹시 납치됐어?]

“납치된 거 아니야. 누나가 좀 다쳐서 입원하게 됐어. 자세한 건 이따 얘기해 줄게. 문자로 병실 호수 보내줄 테니까 이리로 와.”

하람이 그녀가 있는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하윤의 다친 모습을 본 하람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이내 놀란 기색을 감추고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하윤에게 다가왔다. 어째서 다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쳐서 하윤의 마음이 불편할 거란 것을 가족이기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많이 놀랐지만, 평상시처럼 행동하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