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세 운동 하던 그 남자가 21세기에 오게 된 사연

1919년 경성.

어느 초봄이었다. 두 달 전 새벽, 이태왕 (일제가 상왕인 고종을 이르던 말)께서 서거하셨다는 비보가 전해지면서, 조선 전역이 애통에 눈물 젖었다.

고종, 이는 조선인들에게 있어 손끝에 박힌 가시처럼 아리고 애달픈 이름이었다.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셨으나, 부친인 흥선대원군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을미년에 원비 민씨가 일본 낭인들에 의해 무참히 시해되었고, 나라는 열강들의 침탈에 맥없이 와해되다 종국에는 국권까지 일제에 빼앗기고 말았다.

일국의 왕이 이토록 굴곡진 생을 살다 가신 예가 또 있을까. 나라를 잃고, 연이어 왕까지 잃었으니 조선인들이 느끼는 비통이란 깊고도 암울한 것이었다.

언제부터인가는 왕의 붕어에 관한 괴소문까지 퍼지기 시작하여 민심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어가던 참이다.

“글쎄, 수라에 독이 들었을 까봐 몇 날 며칠을 날달걀만 자셨다는구먼.”

“사망 시각까지 속여서 발표를 했다지 않나. 막말로 그 놈들이 그보다 더한 짓은 못해? 전에도 한 번 왜놈들 횡포 피해서 아라사 공사관에 1년이나 피신해 계셨었잖아.”

“남의 땅 쳐들어와서 낮이고 밤이고 들들들 볶아대니, 어디 그게 사람 살라는 얘기겠어. 주상이 아니라 누구여도 오래 못 버티지.”

“아니, 그런 쳐 죽일 놈들이 다 있나!”

급작스런 왕의 죽음에 의문을 표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만 갔다. 저자에서도 분분하게 말이 돌았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총독부에서 매일 신보를 통해 독살설을 일축하는 해명 기사를 내보냈어도, 이미 연기처럼 자욱하게 퍼진 의심을 바로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만연해진 동요는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일제에 대한 조선인들의 적개심과 의기가 소리 없이 들끓고 있었다.

그러한 혼돈이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 뜨겁게 폭발하고 만 것은 3월의 첫날이었다.

“우리는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앳된 얼굴의 청년이 탑골 공원 중앙에 설치된 단상 위로 뛰어올라가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자, 주위에 모여 있던 수천의 학생들이 호응하여 쓰고 있던 검은 모자를 하늘 높이 내던졌다. 일시에 뱉어내는 ‘대한 독립 만세’가 천둥소리처럼 조선 천지를 쾅쾅 울렸다.

시위는 종교와 나이, 성별을 가리지 않는 수만의 군중을 불러 모았다. 목청 높여 조국의 해방을 부르짖는 염원이 들불처럼 번졌다.

사람의 발길이 닿는 속도로, 열기는 금세 전국 각지에 퍼져나갔다.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위세를 불려가던 만세 운동이 오늘로써 딱 열흘째 되던 날이었다.

학생들의 주도하에, 시위대는 남대문 역에서 탑골 공원을 지나 종묘를 향해 행진해가고 있었다. 태극기며 독립 만세기, 붉은 깃발 같은 것들을 양손에 꽉 움켜쥔 채였다.

바다의 조류처럼 휩쓸려가는 인파 속에 서준이 섞여 있었다. 평소에는 단정하게 가르마를 타 빗어 넘기는 검은 머리칼이 오늘은 조금 흐트러진 모양새였다. 반듯한 이마의 정중앙은 손톱으로 찍어 누른 듯 흠이 팼다.

진한 눈썹과 눈매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유려한 선을 그리고 있었으나, 날선 콧대 아래로 굳게 다물린 입술이 못내 초조한 기색을 드러냈다.

흰 무명 한복 차림이 주를 이루는 시위 현장에서 훌쩍 키가 큰 양장 차림은 제법 눈에 띄었다. 갈색 프록코트 안에 허리선이 잡힌 검은 베스트는 서준에게 꼭 맞춤한 것이었다. 셔츠 칼라의 단추를 한 개 풀어놓았어도 단정한 느낌이 드는 것은 서 있는 자세가 올곧은 까닭이었다.

무언가를 애타게 찾고 있는 사람처럼, 서준이 좌우를 날카롭게 주시했다. 뒤섞인 군중 속에서 시야가 한 뼘은 높은 서준이 겅중겅중 뜀걸음을 했다.

“이렇게나 많은 이들이…….”

가는 동안 몇 번이나 구두 앞코를 밟혔지만 밟는 사람도 밟힌 사람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이런 소란 속에서는 누구 하나 밟혀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보다 서준은 예상보다도 더 많은 인파가 몰린 것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경술년 국치일 이후, 망극하게도 경복궁 앞마당에 떡하니 조선 총독부가 들어섰다. 대낮에도 총칼을 찬 헌병 경찰들이 저잣거리며 대로를 들쑤시며 횡포를 부리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조선인들끼리 조금만 붙어 있으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와 폭력을 행사하고 욕을 해댔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조선의 땅이며 물자며 죄다 빼앗아가는 통에 조선인들의 삶이 근 십 년 새, 말도 못 하게 팍팍해졌다.

일제 치하의 조선인으로서 겪게 된 설움을 서준이라고 피해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려서 전염병으로 부모를 여읜 서준은 지금껏 작은 아버지의 양자로 입적해 살아왔다. 대대로 문신을 배출한 선비 집안이었으나, 조부는 망국의 비통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관직을 버렸다.

비록 조실부모하기는 했어도 돌아가신 조부와 작은 아버지 슬하에서 서준은 성리학과 신학문을 고루 배울 기회가 있었다.

“작금의 조선에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올바른 민족성과 자주정신을 가르칠 곳이 필요하다.”

을사년 이후 나라의 어두운 앞날을 미리 내다본 작은 아버지는 새로이 학당을 세웠다. 그곳에서 서준은 작은 아버지를 도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학생 수가 서른에 미치지 못하는 작은 학당이었으나, 배움을 바라는 아이들은 참되었고, 가르치는 스승들은 정성스러웠다.

아이들이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라고 있는지, 학당의 사정은 어떠한지 서로가 훤히 꿰고 있어서 학당의 모두가 한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매년 더해가는 적자를 교사들의 근면과 절약으로 메꿔가며 착실하게 꾸려오던 학당이 결국 일제의 일방적인 퇴교 조치를 받아 문을 닫게 된 것은 개교 후 오 년이 채 되지 못 해서였다.

학당이 끝끝내 폐지되던 날, 아예 독립군에 합류할 작정으로 경성을 떠날 결심을 마친 작은 아버지가 서준을 앞에 앉혀두고서 일렀다.

“상해에 독립을 준비하는 이들이 있다고 하니, 나 역시 가산을 처분해 그들과 뜻을 같이 하려 한다.”

“저도 따르겠습니다.”

“너에게는 이 집과 땅문서를 남길 테니, 가문의 명맥을 잇도록 해라.”

“하지만 숙부님…….”

상해라면 이곳 경성에 비할 바 못 되는 혹한의 외지였다.

더욱이 독립운동을 하다 잡히면 3대가 모조리 엮여, 애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고문을 받고 죽임을 당한다고들 했다.

가더라도 늙은 숙부보다야 스물넷 창창한 서준이 가야 옳을 일이었다. 그러나 숙부는 서준에게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나야 조국을 위해 투신한다 한들 무엇이 아깝겠느냐. 그러나 조선의 청년들은 이 땅을 지키며 이 안에서 너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온당할 것이다.”

“학당까지 문을 닫은 마당에 제가 여기서 할 일이 또 무엇이 있겠습니까?”

애석하게도 서준에게는 숙부와 같은 수준의 애국심은 없었다. 선뜻 상해로 따라나서겠다 말한 연유도 애국심보다는 거두어 키워주신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는 부채감과 일제에 핍박받는 식민지인으로서의 박탈감이 적절히 뒤섞였을 따름이었다.

먹는 것, 입는 것은 물론이고 교육과 일자리에서까지 극심한 차별을 받는 조선인이었다. 남아로 태어나 조국에서 입신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광복을 위해 몸 바치는 것도 좋으리라.

“이 땅에서 나서 다시 이 땅에 묻힐 아이들이다. 필히 이 나라의 역사와 말을 배워야 할 것이다. 서준이 네가 교육자에 뜻이 있다면, 마땅히 그것을 네 사명으로 삼아라.”

마치 그러한 서준의 심중을 빤히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이, 숙부는 서준에게 살아갈 목적을 대신 일러주었다. 그러고는 이튿날 혈혈단신으로 경성을 떠났다.

이후 숙부의 소식을 영영 알 수 없게 되어버렸으니, 그것이 부모나 다름없었던 숙부의 마지막 당부이자 유명인 셈이었다.

오늘 서준이 이곳까지 나온 까닭도 바로 그러한 숙부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서였다.

멀리서 웅웅대는 소리로 누군가 크게 연설을 하고 있었다. 말씨는 불분명했어도 그 어조 안에 담긴 분연함이 듣는 사람의 마음까지 들썩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지방에서 상경한 수많은 인파까지 더해져, 경성 바닥이 한순간 푹 꺼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많은 대중이 운집된 현장이었다.

시위를 주도하는 것은 앳된 얼굴의 학생들이었다. 그들이 먼저 “조선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행진하고, 그 뒤로 인파가 따라붙어 거대한 행렬을 만들었다. 그 길이가 남대문 역에서 대한문까지 이어질 정도였다.

인력거를 탄 젊은이들이 양손에 전단을 들고 흩뿌렸다. 급하게 찍은 호외들이 바닥에 두툼하게 깔려 걸을 때마다 발끝에 툭툭 차였다. 종이에 휘갈겨진 글씨들도 이곳을 떠도는 다수의 음성만큼이나 어지러운 모양새였다.

학생들이, 기독교인, 천도교인, 불교인들이, 또 여성과 농민들이 합세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노인과 어린아이들까지 일제의 총칼을 두려워하지 않고 온갖 깃발을 흔들어댔다. 적포를 팔뚝에 묶은 이들도 여럿이고, 개중에는 태극기를 든 이들도 보였다.

경성과 평양 등 대도시에서 지방으로 그리고 농촌으로 신문을 따라, 철도를 따라 시위의 물결은 빠르게 이동했다.

이천만 동포야 일어나거라 일어나서 총을 메고 칼을 잡아서 잃었던 내 조국과 너의 자유를 원수의 손에서 피로 찾아라…….

조국가의 여과되지 않은 자극적인 가사들이 입에서 입으로 옮겨졌다. 머지않아 노래는 서준도 익히 아는 선율로 바뀌었다. 스코틀랜드의 민요인 ‘Auld lang syne’의 연주에 맞춰 부르는 애국가였다.

“어? 선생님이다!”

터져 나오는 소리만큼이나 눈도 귀도 소란스러운 현장이었다. 소음이 방향감각을 앗아간 것처럼 복판에 멍하니 멈춰 서있던 서준이 돌연 뒤를 돌아보았다.

“요 녀석들!”

그의 시야 안으로 낯익은 얼굴들 몇이 쏜살같이 달려 지나갔다. 서준의 반 토막이나 될까 싶은 어린아이들이다.

세 갈래로 머리를 땋아 댕기를 묶은 여자아이도 있고, 소매며 옷깃에 까맣게 때가 탄 개구쟁이 사내아이들도 여럿이었다. 서준은 그러한 아이들의 이름을 전부 외고 있었다. 가르치던 학생들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거뭇거뭇하게 땟국물 묻은 얼굴을 하고 있어도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밤하늘에 뜬 별처럼 반짝반짝 빛이 나는 아이들이었다.

학당이 문을 닫은 이후 오랜만에 만난 것이었으나, 반가움보다도 걱정이 앞선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부모님 허락은 맡고 나왔느냐?”

서준이 발을 재게 놀려 저를 알아보았던 여자아이의 어깨를 간신히 붙들었다. 이제 열두 살 먹은 순애였다. 학당의 몇 안 되는 여학생 중 하나였고, 제법 이름난 한약방 주인인 부친을 닮아 셈을 잘하고 사리에 밝은 똘똘한 아이였다.

부모가 외동딸인 순애를 얼마나 애지중지하는지 알고 있어서, 이 아수라장에서 아이가 뛰어노는 걸 허락했을 리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묻는 질문이었다.

예상대로 뒷짐을 진 채 발끝으로 애꿎은 땅만 후비던 순애가 입술을 쭉 내밀며 대꾸했다.

“그렇지만 다른 애들은 다 나온다고 했단 말이에요.”

결국엔 동무들을 따라서 쫄래쫄래 왔다는 소리였다.

아무 생각 없이 마냥 신이 나 있는 아이의 순진무구함을 호되게 야단쳐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였다. 서준은 고사리손에 쥐어진 태극기를 발견하고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학당의 학생들이 아니더라도 곳곳에 어린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뛰어놀고 있었다. 그래 봐야 태어나면서부터 식민지 조선을 살았을 이 어린애들이 광복이 무엇이고 독립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이해할 리도 없건만.

결국 아이들더러 당장 집으로 들어가라며 훈계를 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기특하다며 칭찬을 해줄 수도 없어, 서준은 갈대처럼 흔들리는 인파 사이에서 아이들을 지키고 섰을 따름이었다.

다만 서준이 걱정하는 것은, 인파가 운집된 이 일대를 담장처럼 둘러싸고 있는 일제의 흉흉한 기세였다.

말을 타고 있는 기마 헌병들 주위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군인들이 이쪽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었다. 강경하게 진압에 나서도 잠잠해지기는커녕 점점 세를 불리고 있는 만세 운동을 총독부에서 날카롭게 예의주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