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자정이 훌쩍 지난 궁은 을씨년스러웠다.

아치형의 창문이 길게 이어진 복도 저 끝에서부터 또각또각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둠과 고요함을 깨트리며 나타난 발소리를 따라 벽에 기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림자를 이끌며 다가온 여자의 뒤로 푸른 망토가 펄럭였다. 여자는 늘씬한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는 새하얀 제복을 입고 있었다. 높이 올려 묶은 금발 머리카락이 걸을 때마다 흔들렸다.

빅토리아 드 레테오스.

찬란하게 빛나던 프레센의 공주지만, 그녀는 누군가의 충직한 개였다.

빅토리아는 아무도 없는 길고 어두운 복도를 홀로 지났다.

중문을 통과하기 직전 빅토리아의 걸음이 잠시 멈췄다. 갑자기 덜컹거리더니 타닥타닥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창밖을 돌아보니 굵은 빗줄기가 미친 듯이 창문을 내리치고 있었다. 거센 바람과 비에 창문은 금방이라도 깨질 것같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빅토리아의 푸른 눈이 빗물로 일그러진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유난히 새까만 밤이었다.

아무래도 엄청난 폭우가 올 듯했다.

창밖에서 눈을 뗀 빅토리아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또각또각.

작은 소리가 고요한 복도를 요란하게 울렸다.

중문을 통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발소리는 길게 깔린 붉은 카펫에 스며들었다.

“오셨습니까, 공주님.”

붉은 카펫 맨 끝 가장 안쪽에 자리한 침실 문 앞에 서 있던 기사 둘이 빅토리아에 대한 예를 갖추었다. 허리를 반듯하게 편 채 경례를 하는 기사를 향해 빅토리아가 짧게 묵례했다.

하지만 어쩐지 평소와 다르게 빅토리아가 그들과 시선을 주고받고 있었다. 마치 모종의 거래라도 한 듯.

한 기사가 눈을 내리감았다 떴다. 그제야 빅토리아의 시선이 떨어졌다.

“들어가 보십시오.”

옆으로 비켜선 기사 하나가 문을 열어 주었다. 느리게 열리는 육중한 문틈으로 빅토리아의 몸이 빨려 들어갔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기사들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주위를 살피다가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텅 빈 침실 문 위로 불빛만이 아슬아슬하게 자리를 지켰다.

***

번쩍이는 황금과 화려한 무늬가 새겨진 중문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리자, 안쪽에서 작은 소음이 새어 나왔다. 절정에 다다른 음란한 신음이었다. 비릿하고 역겨운 냄새와 땀 냄새가 뒤섞여 토기가 치밀었다.

반듯하던 그녀의 미간에 미세한 주름이 새겨졌다가 사라졌다. 미칠 듯이 올라오는 구역질을 누르고, 자세를 바로 하며 혐오와 경멸로 일그러지려는 얼굴을 무표정으로 굳혔다.

탁.

빅토리아가 부러 소리를 내며 문을 닫자, 삐걱거리는 소리와 절정에 달해 가던 신음이 뚝 끊겼다.

빅토리아는 말없이 소파 너머 천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침대를 바라보았다. 휘장 너머에 두 사람의 실루엣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바스락거리던 이불 소리가 멈추고 잠시 뒤, 한 남자가 침대를 빠져나왔다.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침대를 빠져나오는 남자의 상체가 땀으로 번들거렸다.

“오셨습니까.”

묘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는 남자와 시선을 맞추며 빅토리아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피식, 남자가 소리 없는 미소를 흘렸다. 빅토리아는 웃지 않았다. 그저 그의 강렬한 시선과 미소를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응시할 뿐이었다.

남자는 철저하게 빅토리아에 의해 교육되어 카트리나의 정부가 된 자였다. 뒷골목에서 몸을 팔던 그는 카트리나의 눈에 들기 위해 몇 년의 세월을 고생해서 훈련했다. 그 끝에 카트리나가 아끼는 정부 중 제일 위에 자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남자는 마지막 임무까지 잘 수행해 주었다.

아주 열정적으로.

“왔나요, 공주.”

어느 정도 열기를 가라앉힌 카트리나가 휘장을 들추며 나왔다. 자연스럽게 빅토리아에게서 시선을 돌린 남자가 카트리나의 볼에 입을 맞추고 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를 집어 들었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세요.”

대충 옷을 껴입은 남자는 두 여자에게 차례대로 허리를 숙인 뒤 밖을 나가 버렸다. 남자는 이 길로 궁을 빠져나가 쥐도 새도 모르게 모습을 감출 것이다.

거기까지가 남자의 임무였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그때까지 문 앞에 서 있던 빅토리아가 한참 뒤에 카트리나에게 다가섰다. 카트리나는 땀과 열기로 젖은 나체로 서서 제게 다가오는 빅토리아를 쳐다보았다.

빅토리아의 얼굴을 훑는 카트리나의 눈매가 날카로웠다.

단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샅샅이 살피는 카트리나의 눈길에 익숙한 빅토리아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카트리나가 벗어 놓은 하얀 네글리제를 집어 들 뿐이었다.

벗어 던진 옷가지를 입혀 주며 당신의 개처럼 구는 게 다라는 듯, 허튼짓 따윈 할 생각 없다는 듯 빅토리아가 무표정으로 다가섰다.

“흠.”

살며시 고개를 기울이며 눈썹 한쪽을 치켜올리던 카트리나의 눈매가 한층 풀어졌다. 그렇다고 온전히 풀어진 건 아니었지만.

일단은 접어 두겠다는 뜻이었다.

한 걸음 더 다가선 빅토리아가 들고 있던 네글리제를 카트리나에게 입혀 주었다.

조심스러운 빅토리아의 손길을 느끼며 카트리나가 나른하게 눈을 감았다가 뜨자, 기다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속눈썹 사이로 보이는 붉은 눈동자엔 아직 식지 않은 열기가 보였다. 조금 전까지 열띤 행위를 했다는 걸 알려 주기라도 하듯, 카트리나의 하얀 피부 또한 열기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허리끈까지 묶은 뒤 빅토리아가 멀어지자, 카트리나가 옅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그녀의 숨결을 따라 목덜미에 흘러내린 머리카락 몇 가닥이 팔랑거렸다.

“어찌 되었나요, 공주.”

자신이 명령한 일에 대한 결과를 묻는 카트리나를 향해 고개를 숙인 빅토리아의 눈빛이 일순간 가라앉았다.

그녀의 머릿속에 든 자들은 아닐 테지만, 지금까지 조용한 걸 보면 모두 체포되었을 거였다.

빅토리아가 무덤덤하게 답했다.

“모두 포위했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빅토리아의 대답에도 카트리나는 바로 웃지 않았다. 조금 전보다 더 날 선 눈으로 빅토리아를 빤히 쳐다보았다.

숨기는 게 있는지. 쓸데없이 내게 거짓을 고해 또 벌을 받으려는 건 아닌지.

뱀같이 들러붙는 그녀의 시선에도 빅토리아는 무덤덤하게 카트리나와 눈을 맞추었다.

나는 당신의 개.

발을 핥으라면 핥을 것이고, 죽으라면 죽을 것이고.

죽이라고 명하면 그게 누구든 죽일 것이오.

그렇게 다짐했던 어린 날의 빅토리아와 같은 눈이었다.

한참 만에 카트리나가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하긴, 빅토리아 네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내 발밑에 엎드리는 것밖에 없지.

“이쪽으로 앉으세요, 공주.”

카트리나는 말끝에 공주를 붙였다. 말끝마다 공주를 붙이는 건 카트리나의 습관이자 빅토리아에 대한 조롱이었다.

고귀한 신분으로 천한 개가 되어 있음을 상기 시켜 주는 조롱.

“잠시 차나 한 잔 하죠.”

카트리나가 침실 한가운데 마련된 소파로 빅토리아를 안내했다. 먼저 상석에 앉은 카트리나를 뒤따라 빅토리아가 자리에 앉았다. 빅토리아가 자리에 앉자, 카트리나가 기다렸다는 듯 가까이 다가온 시녀에게 일렀다.

“그것이 좋겠구나.”

시녀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며 멀어졌다. 시녀가 사라지자 고개를 돌린 카트리나가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빅토리아를 바라보았다.

“왕자의 결혼이 결정되었어요.”

그녀의 하나뿐인 동생이자, 인질로 잡혀 있는 샤를의 결혼이 결정되어 있다는 건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빅토리아는 내색하지 않았다. 무표정으로 앉아 있는 빅토리아를 카트리나가 잠시 쳐다보았다. 여전히 빅토리아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그저 건조했다. 카트리나의 미소가 짙어졌다.

아마도 그 웃음은 빅토리아를 충성심 강한 사냥개로 만들었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일 터였다.

“대귀족의 여식은 아니지만, 명망 높은 집안에서 곱게 자란 분입니다. 아마 공주께서도 마음에 드실 거예요.”

명망 높은 집안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지.

하나, 그 여성은 카트리나의 정부 중 하나인 백작가의 여식이었다.

이미 프레센의 모든 권력은 카트리나가 손에 쥐고 있었고, 왕자는 카트리나의 계획대로 허수아비 왕이 될 거였다.

‘결혼식을 올리고 난 뒤, 이어지는 짧은 여행 중에 샤를은 죽게 될 테지.’

마차의 결함과 같은 아주 사소한 것 말이다.

샤를의 장례식에서 카트리나는 역겨운 거짓 눈물을 흘리며 그의 죽음을 슬퍼할 거였다. 그러곤 때가 되었다는 듯 그녀 스스로 왕위에 오를 거였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말이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시녀가 트레이를 끌고 다가왔다.

시녀가 장미가 그려진 도자기 찻잔 두 개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뒤이어 주전자를 집어 든 시녀가 빈 잔에 차를 따라 주었다.

쪼르륵.

맑은소리와 함께 빈 잔에 붉은 물이 반쯤 찼다. 빅토리아는 시녀가 따라 주는 붉은 물로 잠시 시선을 내렸다. 스멀스멀 공중으로 올라오는 연기 아래 붉은빛의 물이 맑게 빛났다. 차에서 눈을 떼지 않던 빅토리아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카트리나를 마주했다. 순간 빅토리아의 눈가에 묘한 열기가 스몄다.

불안한 열기였다. 카트리나의 눈썹 한쪽이 말려 올라갔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요, 공주?”

카트리나의 말에 답하지 않은 빅토리아가 잔을 들어 올렸다. 그때까지도 빅토리아의 시선은 카트리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묘한 기시감에 카트리나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와 동시에 빅토리아가 잔을 입으로 가져다 댔다.

그런데…… 잔을 입에 대기 직전, 빅토리아가 웃은 것도 같았다.

지독한 체벌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기쁜 일이 있어도 웃음 따윈 없다는 듯 무표정을 고수하던 그 빅토리아가 웃는다고?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들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뒤늦게 찾아왔다.

카트리나가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빅토리아가 거침없이 차를 들이켰다. 도대체 뭘 하는 건가 멍하니 바라보는 그때, 빅토리아가 울컥, 붉은 덩어리를 토해냈다. 동시에 시녀가 소리를 질렀다.

“꺅!”

카트리나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무슨 장난을 치려는 것이야.”

장난이라.

큭, 웃음을 터트린 빅토리아의 입에서 다시금 핏덩어리가 터지듯 흘러나왔다. 소름 끼치도록 붉은 피를 아무렇지 않게 손등으로 닦아낸 빅토리아는 추악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하는 카트리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 이후로 말입니다.”

그녀의 입에선 계속해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붉은 피로 더러워진 입술로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빅토리아를 카트리나가 낯설게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분명 일이 일어난 게 분명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카트리나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얼빠진 얼굴로 피를 토해내는 빅토리아를 쳐다볼 뿐이었다.

빅토리아는 그런 카트리나를 안타까워하며 테이블을 돌아 가까이 다가섰다. 어느새 한 뼘 가까이 다가온 빅토리아가 손에 힘을 주어 카트리나를 끌어당겼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카트리나를 비웃으며 빅토리아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당신은 이제부터 불쌍하고 가녀린 공주를 독살한.”

낮게 읊조리는 빅토리아의 눈은 차분했으나, 카트리나에 대한 복수심으로 들끓었다. 반대로 이제야 그녀의 목을 물어뜯을 수 있음에 희열했다.

“극악무도한 악녀가 될 것입니다.”

멍하니 듣고만 있던 카트리나가 뒤늦게 빅토리아를 뿌리쳤다.

“너!”

빅토리아는 카트리나를 쥔 손에 더 힘을 주었다. 빅토리아의 손톱 끝이 부드러운 카트리나의 손등을 파고들었다.

안간힘을 쓰던 카트리나의 붉은 눈동자가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빅토리아에게 붙잡힌 팔목을 빼내려 용을 썼으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발악하는 그녀를 비웃듯 빅토리아는 여유로워 보였다. 카트리나를 붙잡은 채 빅토리아가 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기다렸다는 듯 갑옷으로 무장한 마크가 들어섰다. 기사들과 함께 쳐들어온 마크에게 시녀가 외쳤다.

“카트리나 왕비께서 공주님께 독이 든 차를 주시는 걸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수족과도 같은 시녀의 배신에 카트리나가 충격에 빠진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네년이 감히!”

금방이라도 찢어 죽일 듯 노려보는 카트리나의 시선에 시녀가 슬그머니 고개를 피했다.

명백한 배신이었다.

그렇다는 건 지금 여기서 죽어 나가는 건 빅토리아 말대로 자신이었다.

카트리나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

아니,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공주 하나 죽였다고 해서 내게 문제가 될 것 같으냐.”

카트리나가 턱 끝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래, 아무것도 문제 될 것은 없을 것이다. 빅토리아는 자신의 개였고, 감히 주인을 물려고 했으니 죽이면 그만이었다.

공주?

하!

공주는 무슨!

이 계집은 고귀한 공주가 아니었다. 귀족들은 이미 대다수가 자신의 편이었고, 기사들 또한 공주의 기사가 아니었다. 모두 자신의 기사였다.

그런데 이런 무모한 짓을 하다니.

개 노릇 하다가 미쳐 버리기라도 한 건가?

카트리나의 입술이 비틀려 올라가는 그때, 빅토리아가 피식 웃었다.

“공주 하나 죽인 거로 선왕비와 선왕 독살 혐의에 대한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기는 하겠지요. 또한, 당신에게 문제가 되든 안 되든 상관없습니다. 단지 아주 작은 명분을 만드는 것뿐이니까요.”

“…….”

“당신을 죽일 아주 작은 명분 말입니다.”

“그걸 누가 믿겠니, 빅토리아 공주.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마크마저 공주의 것이 아닌데. 참 가련하구나. 지금껏 잘해 왔듯 내게 충성을 바쳤다면 개죽음은 당하지 않았을 것을.”

카트리나가 안타깝게 빅토리아를 보다가 뒤에 서 있는 마크에게 소리쳤다.

“공주가 감히 프레센의 왕비인 나를 모함해 극악무도한 죄를 저지르려 했다!”

마크는 그녀의 충성스러운 신하였다. 그의 손에 잡히는 건 시녀와 빅토리아일 것이다. 정말 가련하게도 말이다.

“당장 끌고 가 탑 맨 꼭대기에 가두어라! 내 직접 공주를 처벌하겠다!”

빅토리아를 거칠게 뿌리친 카트리나가 끌고 가라 명했다. 충직한 기사 마크가 무표정으로 카트리나에게 다가섰다. 하지만 카트리나의 명에 따르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그는 그녀의 뜻과 반대의 행동을 했다. 바로 카트리나를 체포한 것이다.

“마크 너……!”

믿을 수 없다는 듯 마크를 올려다보던 카트리나의 눈에 붉은 핏줄이 솟아올랐다.

“네놈 또한 한통속이었더냐!”

그녀는 온 힘을 다해 마크를 뿌리치곤 그의 뺨을 내리쳤다.

짝!

살이 찢기는 듯 큰 소리와 함께 마크의 뺨 한쪽이 붉게 달아올랐다.

“네놈이 이러고도 살 수 있을 듯싶으냐! 네놈뿐만이 아니라 네놈의 가족들까지 모조리 혀를 자르고 사지를 잘라 늑대들에게 집어 던져 주랴!”

저주와도 같은 카트리나의 외침에도 마크는 묵묵히 카트리나의 팔목을 붙드는 데 집중했다. 카트리나는 절대 지지 않는다는 듯 발악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내가 어떻게! 절대 이렇게는 안 끝나, 절대! 이대로 귀족들이 너희들을 가만둘 것 같으냐!”

“아, 그 귀족. 어쩌지요, 그 귀족들은 이제 곧 목이 잘려 짐승의 밥이 될 텐데.”

빅토리아의 비웃음에 실낱같은 희망까지 끊어져 버린 카트리나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