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장 미노의 계획 VS 찬영의 계획

곧 대회가 시작되었다. 사회자 선생님이 두 사람의 다리에 샅바를 매어주자 두 사람은 바로 서로의 샅바를 잡았다. 서로의 입김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져 있는 상태였다.

상황을 이용해 찬영은 억울함을 항변했다.

“치사해, 강미노.”

“그러게 왜 도발하세요.”

“네, 뜻대로 안 될 거야.”

“과연 그럴까요?”

호루라기 소리가 고요한 가운데 울려 퍼졌고 사람들은 긴장하여 두 사람의 경기에 집중했다.

미노는 찬영의 생각보다 허술한 방어 자세에 살짝 당황했다.

씨름해 본 거 맞나?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말을 한 건지.

자세는 둘째 치고 선생님에게서 그 어떤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바로 힘찬 기합과 함께 오른팔을 잡고 몸을 돌려 찬영을 업어서 넘겼다.

“으아아아앗.”

찬영은 손 쓸 틈도 없이 모래 위로 던져졌고 앞을 보니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미노의 얼굴이 보였다.

황당하겠지.

짧은 순간이었지만 찬영은 씨익 웃었다.

뭐지 저 웃음은?

미노는 더욱 당황해 고개를 갸웃하다 누워있는 찬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찬영은 손을 잡고 일어서는 척하더니 비명을 지르며 다시 드러누웠다.

“아이쿠 허리야.”

미노가 일으켜 세우려고 손을 잡아당기자 더욱 고통스러워하며 소리를 질렀다.

“아이쿠 내 허리. 허리가 나간 거 같아.”

놀란 사회자 선생님이 찬영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허리가 나간 거 같아요. 대회 진행 힘들 거 같아요.”

“그, 그런가요?”

이 무슨.

미노는 어이없고 기막혀 찬영을 내려다봤다. 허리가 나갈 정도로 세게 던지지 않았는데 무슨. 뜻대로 안 될 거라더니 분명 꾀병이다.

찬영이 사회자 선생님의 부축으로 겨우 일어나 엉거주춤한 자세로 모래판을 나가자 희주가 찬영에게 튀어갔다.

“괜찮아요. 선생님?”

“괜찮아.”

희주는 고개 돌려 오빠를 째려봤다,

“씨이, 무식하게 힘만 세서는.”

찬영의 팔을 잡은 사회자 선생님 대신 부축했다.

“제가 양호실 모셔갈게요.”

“그래 줄래?”

찬영은 황망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미노에게 다시 한 번 씨익 웃었다. 원래 아픈 척하려고 한 것도 맞지만 문제는 진짜 허리를 다쳤다.

저 무식한 놈.

사회자 선생님 역시 미노를 마치 대단한 헤라클레스를 보듯 쳐다봤다.

“거참, 살살 좀 하지.”

“선생님 그게 아니라.”

상황을 설명하려다 미노는 말을 멈췄다. 윤찬영 선생님이 엄살을 부려요. 라고 할 수가 없었다. 정말 다쳤을 수도 있고. 저 웃음으로 봐서는 분명 꾀병 같기는 한데. 심증일 뿐.

그렇게 오늘의 엄청난 파란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미노는 대회 상금으로 농협에서 나온 쌀과 라면, 쇠고기 양지 세 근을 자전거에 싣고 집으로 갔다.

*

찬영은 희주의 부축을 받아 양호실로 왔다. 괜히 호기부리다 이 무슨 망신인지. 몸도 풀지 않고 바로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양호실로 들어오니 텅 비어있었고 엉거주춤 침대에 누우니 살 것만 같았다.

“뭐하러 오빠한테 덤벼서는.”

“내가 덤빈 게 아니고. 미노 학생이 도전해 온 거지.”

말해 뭐해.

찬영은 뻔히 보고도 저런 말 하는 희주를 이해할 수 없는 듯 쳐다봤다.

“네, 오빠 보통 아니다.”

“한동안 아픈 바람에 지금 저 정도지. 안 그랬으면 선생님 허리가 문제가 아니라 몸이 절단 났을걸요.”

“미노가 그렇게 운동을 잘해?”

“당연하죠. 받아들이는 감각 자체가 달라요. 앞으로 그 인간 수작에 절대 넘어가면 안 돼요.”

남매 맞나? 아니면 사이가 안 좋나? 친오빠를 저런 식으로 말하다니. 생각해보니 윤은자도 만만찮았다. 그저 웃겼다.

“있어 봐요.”

희주는 양호실 여기저기를 뒤져 파스를 찾아 들고 왔다.

“벗어 봐요.”

“뭐? 왜?”

“파스 붙이게요. 왜 깜짝 놀라?”

찬영은 몸을 살짝 일으켜 베고 있던 베개를 어린양처럼 끌어안았다.

“내가 알아서 붙일 테니까. 두고 너 집에 가.”

“허리를 어떻게 붙이려고.”

그런가? 그래도 둘이 있는데 옷을 벗기에는 좀 그런데.

“알아서 할 테니까 두고 가라니까.”

“되게 앙탈 부리네.”

“뭐? 앙탈.”

희주는 억지로 찬영의 셔츠를 벗기려 들었고 찬영은 기겁했다.

남매가 쌍으로 또라이.

결국, 아픈 허리 때문에 반항을 포기하고 허리 위쪽으로만 셔츠를 올리는 것으로 합의하고 누웠다. 단지 등을 보여주는 건데 괜히 창피했다.

오빠는 병 주고 동생은 파스 붙여주고. 그래도 고마웠다.

“다 됐다.”

“고마워. 듣기로는 아버님이 동주 물류 CEO라고 들었는데 여기 왜 내려온 거야?”

“오빠가 몸이 많이 안 좋아서.”

“말도 안 돼?”

“제가 말했잖아요. 오빠 진짜 멀쩡하면 선생님 절단 났다고. 괜히 한 소리 아닌데. 축제 시작하자마자 허리나 다치고 참.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내일부터 선생님 자전거로 등교시킬 거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도 마.”

찬영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가자.”

*

다음 날 아침.

희주는 오빠보다 먼저 자전거 선점해 아침도 먹지 않고 은자네 집으로 갔다.

은자네 식구들은 이른 아침에 희주가 자전거를 끌고 찾아오자 당황했다.

은자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은자 엄마는 재빨리 은자를 깨우러 방으로 갔다.

“은자야, 친구 왔어. 잠깐 나와 봐.”

은자는 비몽사몽 짜증을 내며 밖으로 나왔고 희주가 마당에 서 있자 역시 당황했다.

“어쩐 일이야?”

“선생님 허리 다쳐서 모시고 가려고.”

식구들 모두 뭔 소린가 싶어 눈을 끔벅거리며 희주를 쳐다봤다.

“네가 왜?”

“어제 그러겠다고 약속했어.”

“있어 봐.”

은자는 구시렁대며 맞은편 찬영이 자는 방으로 갔다.

쟤는 도대체 무슨 생각 하는 애인지. 진정한 개 또라이다, 싶고.

우르르 몰려나왔던 식구들은 일제히 각자의 방으로 갔다.

은자 엄마는 부엌으로 가다 혹시 몰라 돌아섰다.

“아침은 먹었어?”

“아뇨.”

아침도 안 먹고 뭐 저런 엉뚱한 애가, 찬영이 학교에서 여자애들에게 인기 많다고 들었는데.

순간 웃음이 나와 픽 하고 웃었다.

“어차피 축제라 수업도 없을 텐데. 아줌마가 차려주는 밥 느긋하게 먹고 가.”

“네.”

희주는 아줌마가 부엌으로 들어가자 자전거를 몰고 은자를 따라나섰고 은자는 찬영의 방문을 두드렸다.

“오빠, 나와 봐. 우렁 각시 왔어.”

인기척이 없자 다시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더 크게 소리 질렀다.

“일어나라니까.”

찬영은 시끄러운 소리에 실눈을 떠 눈만 꿈뻑거리며 방문을 쳐다봤다.

윤은자, 이 아침에 왜 저러는 건지, 비몽사몽 하다 다시 베고 있던 베개를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은자는 더욱 신경질적으로 문을 벌컥 열었다.

“일어나라고, 이 오빠 놈아.”

찬영은 실눈을 뜨고 은자를 쳐다봤다.

“왜?”

“우렁 각시 왔다니까.”

은자는 찬영이 눈을 뜬 것을 확인하고 투덜대며 희주를 힐긋 쳐다봤다.

학교 가는 게 급한 것도 아닌데. 10시까지 가면 되는데 7시도 안 돼서 남의 집에 오다니.

뭐가 그렇게 급해서.

다시 한 번 희주를 째려보고 자신의 방으로 갔다.

찬영은 뭔 소린가 싶어 엉거주춤 일어나 자리에 앉았다, 어제보다 허리는 더 아프고 똑바로 서는 거 자체가 힘들어 기어서 방문까지 가 밖을 내다봤다.

밖에는 희주가 서 있었다.

“옴마야.”

희주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손으로 눈을 가리자 잠시 멍하게 쳐다봤다.

왜 저러지?

곧 머리를 긁적이며 시선을 아래로 떨궜고.

아뿔싸.

몸은 아무것도 걸쳐져 있지 않고 오직 팬티 하나만 그것도 빨간 팬티, 어쩔 줄 몰라 처음에는 손으로 위를 가렸다가 다시 아래를 가리고 급히 문을 닫았다.

“으아악.”

쟤 여기 왜 있는 거야?

언제 아팠냐는 듯 벌떡 일어나 우왕좌왕 옷걸이에 걸린 바지를 꺼내 다리를 억지로 집어넣다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이쿠.”

허리를 부여잡고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이런 시베리아 허스키 개나리 십장생 같은 아오, 진짜.”

그 와중에 거울을 보니 머리가 새집이라 침을 손바닥에 묻혀 쓱쓱 정리했다.

“쟤는 또라이야. 또라이 중에 상 또라이.”

대충 옷을 갈아입고 허리를 부여잡고 마당으로 나왔다.

시계를 보니 6시 50분이다. 일러도 너무 이른 시간, 도저히 한숨이 안 나올 수가 없다.

“결국에 왔네?”

찬영의 벗은 몸을 봐버린 희주는 볼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뭐 나름 뜻밖의 수확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부끄러웠다.

“제가 온다고 했잖아요.”

“어떡하냐? 허리가 많이 안 좋아서 오늘 쉬기로 했는데.”

“정말요.”

“내일도 쉬어.”

“내일은 안 돼요.”

시무룩한 표정으로 찬영을 쳐다봤다.

그 중요한 날에 하필, 선생님에게 보여주려고 얼마나 연습했는데.

“내일은 왜.”

“저희, 내일 댄스대회 나가는데.”

“그런가? 저녁 5시지? 그 시간까지는 맞춰서 갈게.”

“진짜요?”

희주는 너무 좋아하며 아이처럼 방긋방긋 웃었다.

“그렇게 좋아.”

“네, 선생님은 더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