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부드러운 말투와 함께 이미봉 여사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의해 오늘도 랑의 얼굴을 포근하게 감싸주던 강렬한 붉은 색의 오리털 이불은 휘리릭, 바닥으로 처량하게 떨어졌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일어나라, 딸아.”'뺨에 와 닿는 스산함에도 랑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했다. 하루 이틀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투정을 부려도 소용이 없다는 걸 아는, 지극히 똑똑한 처자의 행동으로 두 손을 가슴 부분에 가지런히 모으고 반듯하게 누워 그녀는 차분히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사랑!”'일찍 일어나 먹이를 물어왔을 새들도 이 여사의 찢어질 듯한 소리에 다른 집으로 이사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름을 부르셨으니 당신의 이름도 불러드리는 게 인지상정.'“이미봉 여사님!”'랑은 침대에 누워 눈은 뜨지도 않고 나라의 독립을 부르짖는 사람처럼 목청을 높여 엄마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주먹이 날아오기 전, 재빨리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뛰어 들어갔다. 미봉이라는 이름이 어때서 이름만 부르면 치를 떠는 건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해는 되지 않지만 재미는 있었기에 랑은 심심하다 싶으면 이 여사의 이름을 불러 잘 익은 토마토처럼 붉어지는 엄마의 얼굴을 감상하곤 했다. 아침마다 단잠을 깨우는 모친에 대한 약간의 반발심이 더해지긴 했지만.'“미희라고 부르라고 했지!”'욕실 문 밖에서 이 여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랑은 콧노래를 불러가며 샤워기를 세게 틀어 밖에서 들리는 모든 소음을 차단했다. 미희는 무슨! 흥이다!'촤악, 세차게 쏟아지는 물줄기 사이에 손가락을 넣어 사이사이로 빠져나가게 하면서 랑은 한동안 물장난을 쳤다. 뜨거운 물이든 차가운 물이든 물은 다 좋았다. 투명하게 빛나는 게 거짓이 없어 보여 그 앞에선 검은 속내도 맑아지는 것 같았다. 욕실 안에 뿌연 김이 차오르고 어느 정도 훈훈함이 메워지자 랑은 옷을 벗어 구석구석 닦으며 샤워를 했다. 출근 전 샤워를 하는 게 제일 개운하다. 그리고 하루를 무사히 보내기 위한 자기 암시를 하는 시간이 그녀에겐 필요했다.'“어? 때다.”'뽀드득 소리와 함께 손끝에서 길쭉하고 동그란 때가 올라왔다. 생각해보니 목욕탕을 간 지 오래되긴 한 것 같다. 이왕 때 맛을 봤으니 오늘은 샤워로 끝낼 수가 없을 것 같아 랑은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벅벅 소리가 나게 때를 밀었다. 간지럽고 시원한 게 기분을 야릇하게 만들었다. '탕탕탕.'“사랑! 얼른 안 나와! 너 그러다 지각이야!”'잠시 굵직한 놈을 건지고자 눈에 불을 켜고 살갗을 밀던 랑은 밖에서 들리는 이 여사의 소리에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한 시간 가까이 진행 중인 목욕을 마쳤다. '“얼른 나오라고! 하여간 딸이 아니라 애물단지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