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나를 미치게 하는 너

운전하는 내내 태겸은 불안과 초조함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달려가다 반파될 것 같이 그의 차는 몸체를 떨었고, 운전대는 요동쳤다.

집중을 하려 해도 시야가 뿌옇게 변해 가고 그는 정신이 혼미했다. 그녀의 사고 소식을 듣는 순간 온몸의 피가 순식간에 증발해 버린 것처럼 하얗게 질렸다.

드디어 시골 병원 응급실의 낡은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주차하는 순간 스프링에 튀어 오르듯 달려 나갔다.

응급실 침대에 그녀가 기대앉아 있었다. 그녀를 확인하자마자 그는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녀는 두 팔을 뻗고 울음을 터트렸다.

“어떻게 된 거야? 얼마나 다친 거야?”

“많이 안 다쳤어.”

“어디 봐. 어디 보자고.”

그녀를 끌어안았던 그는 팔을 거칠게 빼내서 그녀의 몸을 확인했다. 매서운 눈매가 되어 그녀의 몸을 재빨리 스캔했다.

다리에는 깁스를 하고 있었고, 팔과 목, 얼굴에는 크고 작은 생채기를 거즈로 덮여 있었다.

옆에 있던 수미와 선영은 마치 죄인처럼 고개만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는 입술을 깨물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리는 뭐래?”

“금이 조금 갔대.”

“허…, MRI는 찍었어?”

“아니. 엑스레이만 몇 장 찍었어.”

그녀는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했다.

“여기는 엑스레이만 있다고 해서 다리만 찍었어.”

선영이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겨우 전달했다.

이미 엉망이 되어 있는 그녀의 몸을 보고 그는 화가 엄청 나 있었다. 마치 호랑이의 코털을 건드려 놓은 것처럼 무서워 보였다.

민준은 팔과 얼굴에 상처가 불긋불긋 난 모습으로 걸어왔다. 태겸은 신경질적으로 민준을 쓱 보더니 화를 누른 얼굴로 예를 갖춰 고개를 숙였다.

“사랑이 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 아닙니다. 제가 미안합니다.”

“사랑이 데려갈게요. MRI 촬영도 해야 하고, 검사도 해야 하고. 큰 병원 가봐야겠어요. 고마웠어요.”

그는 아주 차갑고 냉정한 말투였다.

“아. 네……. 여기까지 와서…… 면목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민준은 고개를 숙였다. 민준의 고향까지 와서 다쳤으니 마음이 좋지 않았고 더구나 자기 집에서 다쳐서 더욱 미안했다.

태겸은 수납을 하고 응급실로 찬바람을 일으키며 돌아왔다.

“사랑이 데려갈게. 짐은 알아서 챙겨 줘.”

“알았어. 태겸아. 미안해. 우리가 꾸무럭거리는 바람에.”

선영과 수미는 급 공손해졌다. 사랑이 다친 것도 안타깝지만 그의 표정에 기가 완전 눌렸다.

“그래. 그럼 갈게.”

너무도 단호하고 싸늘한 말투를 남기고 그는 그녀를 업었다. 그녀는 그의 등에 기대 엎드렸다. 그녀를 업은 그는 성큼성큼 걸어 응급실을 나왔다.

병원 주차장을 비추는 달빛이 새치름했다. 그는 그녀를 업은 채 꾸짖듯 말했다.

“왜 다쳐?”

“미안해.”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미안해.”

그녀는 등에 업혀 눈물이 주르륵 났다.

어두운 냇가에 처박혀 있을 때, 엄마보다도 먼저 떠올랐던 한 사람, 문태겸.

그의 넓은 등에 얼굴을 묻고 있는 지금, 서러운 눈물이 자기도 모르게 흘렀다.

“울어?”

“흐응.”

“많이 아파? 어디가 아픈데. 말해.”

울고 있는 그녀에게 놀라서 다그쳤다.

“아니. 안 아파.”

“내가 진짜 너 때문에 미치겠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수석에 그녀를 살며시 내려놓았다. 운전석으로 돌아온 그는 실내등을 켜고 그녀의 얼굴을 다시 살폈다.

“아기같이.”

눈물범벅인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가만히 닦아냈다. 서러움이 몰려온 그녀는 다시 또르륵 눈물을 흘렸다.

“5일 못 봤다고 이렇게 되냐. 이게 뭐야 천사랑.”

“…….”

“왜 자꾸 울기만 해. 얼굴이 이게 뭐야.”

화를 내다 겁먹고 있는 그녀의 눈을 보자 화가 가라앉았다.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녀의 얼굴을 들어 입술에 입을 맞추려다 그만두었다. 깊은 한숨 소리와 함께 그는 속상한 표정이었다.

“한숨 자. 많이 놀랐지?”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

“거봐. 내가 뭐랬어? 풀 속에 뭐가 있을지 모른…….”

말하다 말고 그녀를 고개 돌려 보았다.

아뿔싸. 그녀는 입을 삐죽이며 다시 울고 있었다.

“그만 울어. 내가 왔잖아. 하아, 내가 여기 오는 동안 무슨 정신이었나 모르겠다. 나 옷이 다 젖었어.”

그는 가슴과 등이 젖은 옷을 잡아당겼다. 그녀는 그가 운전하는 옆모습을 계속 눈물 머금은 눈으로 보고 있었다.

“왜?”

운전을 하다 그녀를 돌아다보았다.

“널 보니까 이제 안심이 돼.”

“나도 이제 안심이 된다, 천사랑.”

그는 오른손을 내밀었고, 그녀는 가만히 왼손을 포개 잡았다.

한참을 달려서 그의 차는 명산 서울 병원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일하는 병원이어서 그녀도 익숙한 병원이었다.

“여긴 우리 엄마가 일하는 병원이야.”

“알고 있어. 여기가 제일 안심이 돼.”

그는 최대한 말을 아끼고 있었다. 그의 선택에 따르겠다는 듯 그녀는 더는 토를 달지 않았다.

“나, 신발 안 가져왔어. 어떡해.”

“업혀. 신발 있어도 업을 거야.”

그는 등을 내밀고 있었다.

“그래도 여긴 보는 눈이 많은데?”

“보면 어때. 빨리 업혀.”

그녀는 살짝 주저하다 그의 등에 업혔다. 그녀를 가뿐하게 업고 그는 병원 현관을 지나 원무과에 접수도 없이 곧바로 MRI 검사실로 걸어갔다. 검사실 앞에 멈춰 선 그는 검사실 문을 노크했다.

“문태겸입니다.”

“아. 네 들어오세요. 준비는 다 돼 있습니다.”

직원은 태겸을 보고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검사실로 들어갔다. 그녀를 검사 기계 안에 눕히고는 자상한 얼굴로 내려다보았다.

“검사 시간이 좀 될 거야. 걱정하지 말고 편안하게 있어. 나 밖에 있을게.”

“응. 알았어.”

기계가 천천히 그녀의 몸을 돌았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에게 정형외과 교수님이 다가왔다.

“문태겸 군. 병원에 다 오고 무슨 일이야?”

“안녕하세요. 교수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VIP 내원이라는 연락만 받고 막 달려오는 길인데.”

그는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듣고 있던 교수님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원장님께는 보고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말아. 그럼 결과 나오는 대로 다시 보자고.”

“네. 감사합니다.”

교수님께 공손히 인사를 하고 그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담당 직원이 나왔다.

“검사는 다 끝났습니다.”

“네.”

그는 다시 검사실로 들어가 그녀를 업고 나왔다. 병원 복도를 지나 현관을 지나 주차장 쪽으로 거침없이 걸었다. 걸으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검사하는 동안 괜찮았어?”

“응.”

“엄마도 안 계시니까. 어쩔 수 없이 우리 집으로 가야겠다.”

그는 씩 웃었다.

“나 옷도 없는데?”

그에게 업힌 채 그녀가 말했다.

“사면 되지. 어서 가자.”

“그냥 간다고? 접수하고 수납하고 그런 거 안 해?”

“안 해.”

“왜?”

그녀는 그의 어깨를 힘주어 잡고 얼굴을 최대한 내밀었다.

“오기 전에 전화로 예약하고 처리했어.”

“아. 그런데 검사실에서도 내 이름 모르던데?”

아차, 순간 움찔해진 그는 얼른 말을 돌렸다.

“가자. 궁금한 거 많은 아가씨. 가면서 얘기하자.”

조수석에 사랑을 내리고 안전띠를 매주었다.

“뭐부터 하지? 옷 사고 속옷도 사고?”

운전석에 태겸이 앉았다.

“혹시, 아버지 명산 병원에 다니시는 건 아니지?”

사랑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응. 아니야.”

놀란 것 같기도 하고, 애매하게 대답하는 그가 이상했다.

“응이야? 아니야?”

“다니셨어. 잠깐. 정형외과 교수님하고 좀 아는 사이라서 부탁드렸어.”

그는 죄를 짓는 느낌으로 거짓말을 했다. 그녀가 진실을 알게 된다면 불편해할 것이 뻔하다고 생각했다. 알려 줘야 하는 날이 오겠지만, 지금부터 마음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게 나쁘다는 걸 잘 알지만,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꺼내기 싫었다.

“아, 그렇구나.”

안도하는 얼굴인 그녀를 보자 그는 거짓말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말해 주어야 할 테지만 한꺼번에 하기는 복잡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떼어내고 말할 수 없는 엄마의 이야기. 전에 피상적으로 엄마를 이야기했지만, 나에게 엄마가 준 상처, 엄마에게 할아버지가 준 상처까지.

그 연결 고리를 어떻게 한꺼번에 말해야 좋을까. 아직 그는 확인하고 설명 들어야 할 부분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미안해 사랑아. 언젠가는 너에게 말할 거야. 조그만 이대로 못 본 척 해줄래. 그래 주면 좋겠어. 미안하다. 지금은 이렇게 소심한 내가. 때가 되면, 그때가 되면……. 너에게 제일 먼저 이야기할게.’

오늘은 그녀 때문에 놀란 가슴이나 진정시키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