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으로 들어오너라!”'지민이 현관문을 열어젖히자마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할아버지 갑봉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어젯밤 한숨도 못잔 탓에 피곤해 죽을 지경인데, 그는 투덜거리며 스트레스에 절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면서 안방으로 걸어갔다. 문이 활짝 열려있는 방 안으로 들어서보니 온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주말에나 열리던 김씨 집안 가족회의 모양새에 그의 눈썹이 의문으로 휘어졌다. 가지각색의 시선이 일시에 지민에게 날아들었다.'“멀대마냥 서 있지 말고 앉거라.”'갑봉이 엄한 인상과 목소리로 명령했다. 지민은 문가 쪽에 앉아서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가족들을 훑어보았다. 팔봉이 다문 입 새로 쿡쿡 웃음을 터트리자, 의지가 몰래몰래 남편의 허벅지를 꾹꾹 찔러댔다. 수민이 겁먹은 눈동자를 굴리며 안절부절못하자, 결의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으로 파이팅을 외쳤다. 유민이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입을 헤벌리자, 지애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막내삼촌의 턱을 탁탁 쳐올렸다.'“옜다.”'이번 가족회의의 목적이 뭔지 도무지 감을 못 잡고 있는 지민에게 갑봉이 누런 봉투 하나를 던졌다. 내용물을 확인하던 그의 손길이 흠칫 굳어졌다. 실랑이하던 속사정과는 다르게 호텔방으로 차례차례 들어서는 듯 보이는 자신과 린의 사진들이었다. 그는 놀라고 당황스런 눈동자를 번쩍 떠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특정하게 시선을 고정하지 않았는데도 수민이 눈에 띄게 기겁하더니 결의 앞으로 자리를 옮겨 두 팔을 뒤로 돌렸다. 보호막에 싸인 결의도 약간은 긴장된 얼굴로 지민을 되바라보았다. 누가 흥신소 업무를 수행했는지 범인을 색출할 필요도 없이 여동생 커플이 알아서 불고 있었다.'제기랄, 저 새끼가 끝내 일을 냈구만! 도대체 언제 날 따라붙었던 거야? 전혀 낌새도 못 느꼈는데……. 젠장, 이린 기집애가 진작 결혼에 동의했으면 이런 식으로 들통 나진 않았을 텐데, 이게 무슨 개망신이냐고!'짜증스런 여동생 커플과 대놓고 비웃기 시작하는 형을 노려보던 지민은 쪽팔리는 얼굴을 푹 숙여버렸다. 갑봉이 조금은 과장되게 한탄을 터트렸다.'“어이구, 어이구, 돌아가며 말썽 피는 손주 녀석들 때문에 내가 골치가 아파죽겠구나.”'“전 이성문제로 말썽 핀 적은 없잖아요, 할아버지.”'유민이 억울하다는 듯 토를 달았다. 분위기 파악 못하는 셋째손자에게 따가운 눈총을 쏘던 갑봉이 이내 고개를 지민에게 돌렸다.'“호텔방에서 얘기만 했네 손만 잡았네 헛소리 늘어놓으면 이 할애비 정말 화낼 거다. 린이한테 책임질 일 했지?”'어젠 아니지만 그 전에 많이 하긴 했죠, 구시대적 질문이지만 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갑봉이 더 단호해진 눈빛으로 그를 다그쳤다.'“설마 어제부로 좋아져서 호텔까지 간 건 아닐 게고, 도대체 언제부터 둘이 사귄 게냐?”'“그냥 저냥…… 한, 5개월 됐어요.”'‘정확히 말하면 좋아지거나 사귄 건 아니구요, 처음으로 잔 날을 따져보니 그쯤 되네요.’란 진실은 숨겼는데도 할아버지 갑봉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하여튼지 니 녀석 속은 알 수가 없단 말이다. 둘이 여차저차 하다 사귀고 있다고 왜 말을 안 했어! 둘이서 그리 된 줄도 모르고 선자리에 내보이고 다녔으니, 린이가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꼬. 또 앞으로 이씨네 식구들은 무슨 면목으로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