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　가는 봄이여 '새는 울고 '물고기 눈에는 눈물 』''1652년 봄.''그날 아침의 하늘은 유난히 청초했다. 4조룡 금사자수가 박힌 홍룡포를 의젓하게 입고 인정전으로 향하는 세자의 눈에는 그 하늘이 세수를 마친 빈궁의 얼굴마냥 말갛고 어여쁘니 그저 슬그머니 웃음 지을 뿐이다. 이른 아침인데도 이미 어수선한 궁궐은 조용하기만 했던 평소와 다르게 활기찼다. 세자도 왠지 기분이 들떠서인지 발걸음이 춤추듯 가벼운 중이다. '풍악을 준비하느라 악기를 손보는 악공들과 마지막 춤사위를 살피는 귀여운 무동들이 보인다, 전국에서 올라온 귀한 재료로 준비한 산해진미를 사방에 차리느라 발을 재게 놀리는 나인들도 곁을 지나간다. '바쁘게 움직이다가 세자와 마주치자 그네들이 고개를 숙이며 볼을 물들이는데 그는 그저 흐뭇하게 웃어준다. 가여운 그네들은 그 웃음 하나로 하루 종일 달음질하는 심장을 부여잡다가 까만 밤이 되어서 꿈속에서도 그를 찾으며 설레어 할 것임을 정녕 저 사내는 모르고 있단 말인가! '허나, 이팔청춘 나인들이 아무리 원하고 그리워하면 무엇 하리. '월궁항아가 하강한다 해도 당대 최고의 미남자라고 소문난 지금의 세자의 눈에 들 리가 없음은 궁궐 전체가 알고 있었다. 그만큼 세자의 빈궁 사랑은 지나칠 정도로 지극했다. 오죽하면 아버지인 주상이 불러 아내사랑도 과유불급이라며 농담을 하며 무안을 주었겠는가.'결국 저렇게 흐뭇하게 웃어줄 수 있는 것은 어여쁜 빈궁 마마 때문이라는 것을 아는 나인들은 그저 세자의 모습을 보면 가슴만 부여잡을 뿐이었다.''“마마. 신첩에게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허허. 빈궁이 내게 드디어 소원을 말해주는구나. 내 그렇게 청해도 아무 말 없더니. 이제 보니 빈궁 속내도 엉큼하구나.”'지난 밤, 장지문 틈새로 들어오던 달빛을 한 몸에 받으며 운우지정을 나누고 세자의 품안에서 숨을 고르던 빈궁이 처음으로 소원이라는 것을 말하던 차였다. 짐짓, 분한 어조로 빈궁을 다그치면서도 세자는 품안에 있는 가녀린 아내의 몸을 더 강하게 끌어안으며 빈궁의 삼단 같은 머리칼에서 그녀의 향취를 들이마신다. 부부의 연을 맺어 맨살을 부빈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건만 여전히 빈궁의 목소리는 아기 새의 솜털처럼 떨린다.'“들어주실 런지요.”'“빈궁. 내가 장난을 좀 쳤기로서니 진심으로 화낸 것이 아닌 줄은 알지 않소! 내 빈궁의 음성마저 떨게 하다니. 못된 부군이군. 미안하다. 내 인의예지에만 어긋나지 않는다면 오늘 밤의 저 달빛이라도 훔쳐 내보겠건만. 후후후. 내 빈궁을 위해서라면 뭔들 못하겠는가?”'“소첩. 궁에 들어오기 전에는 한양에 적을 두고 있었으나 실은 유년시절 고향이 관동 땅인지라 이렇게 달빛이 환한 밤이면 고향이 그리워 한숨을 절로 쉬곤 하옵니다.”'“허허, 그랬구려. 빈궁이 우의정대감의 양녀인 줄은 알고 있었으나 고향이 관동임은 또 금시초문이네. 게다가 세자인 이 몸에게 시집 와 어디에도 자유로이 갈 수 없는 몸이 되었으니 그동안 그대가 속앓이가 심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