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오후부터 주룩주룩 내리는 비가 넓은 운동장을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 앞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맨 뒷줄에 앉아 한 손으로 턱을 궤고 창문에 부딪히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서영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비가 올 거라며 아침에 이모가 챙겨 준 우산을 받아들고는 신발을 신기 위해 잠시 신발장 위에 올려놓았는데, 깜빡하고 챙겨 나오지 않은 것이다. 날씨는 우중충했지만 4교시 수업이 마치는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만 해도 비가 내리지 않아 걱정을 한시름 놓았었다, 하지만 점심시간이 지나고 5교시 수업이 시작될 무렵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집에 어떻게 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그때, 서영의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인물이 있었다. 그 인물은 바로 아무도 모르게 3년째 가슴에 품고 있는 남자 송윤후였다. '서영의 부모님은 시골에서 과수원 농사를 짓고 계셨다. 부모님은 그녀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에 있는 이모에게 그녀를 맡겼다. 시골에서 학교를 다니는 것도 좋지만, 기왕이면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우라는 이유에서였다. 윤후는 서영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그녀가 살고 있는 이모 댁의 옆집으로 이사를 왔다. 그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들은 1학년 때 우연히 같은 반이 되는 동시에 짝꿍이 되어, 남들이 연인으로 오해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180센티미터가 넘는 키에 잘생긴 외모, 그리고 남자답게 잘빠진 몸매를 고루 갖춘 윤후이기에 여학생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친구라는 이름으로 항상 윤후와 붙어 다니는 서영은 저절로 여학생들의 미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윤후는 우산 가지고 왔으려나?”'서영이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며 작게 중얼거렸다. '딩동댕동.'그때, 5교시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들렸다. 조용하던 교실 안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서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짝꿍인 지은의 어깨를 두드렸다.'“왜?”'펜을 쥔 손을 놀리며 열심히 무언가를 연습장에 끼적거리던 지은이 고개를 들어 서영을 바라보며 말했다.'“8반에 같이 가자고.”'“윤후한테?”'“응. 우산 가지고 왔나 해서.”'“그러게 왜 우산을 신발장 위에 놔두고 오냐? 벌써부터 깜빡깜빡하면 어떻게 해?”'지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녀에게 말했다.'“현지은. 쉬는 시간 10분인 거 알지? 수업 끝나고 윤후 먼저 가면 네가 나 집까지 바래다 줄 거야?”'“얘는! 오늘 비까지 와서 얼마나 추운데, 그런 말을. 어서 가보자. 윤후 수업 끝나자마자 딴 데로 튀기 전에.”'서영은 얄미운 말을 뱉어내며 자신에게 팔짱을 끼는 지은을 가늘게 치켜뜬 눈으로 흘겨보다가, 윤후의 반인 8반으로 향했다. 서영이 7반이니까 다른 반이라 해봤자 말 그대로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인 바로 옆 교실이었다. '8반 교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쉬는 시간이라 교실 안에는 몇몇 학생들이 짝을 이루어 수다를 떠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러나 교실 안을 아무리 둘러봐도 윤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