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가려진 너의 마음

선미는 송두의 겨드랑이에 오른손을 신나게 꽂았다. 송두의 가방에 달린 바퀴는 ‘도르르’ 소리가 경쾌하게도 마구마구 굴러가고 있었다.

“2층이 더 탐나기는 했는데 말이야. 1층도 나름 괜찮아. 마당이 바로 보이니까 더 안정적인 느낌이랄까? 아침에 잠에서 깰 때마다 소나무가 눈을 마주쳐 주는 그 기분, 정말로 고향 마을에 있는 느낌일 거야!”

송두와 함께 살게 될 집에 대해 묘사를 하는 선미의 얼굴이 한없이 밝았다. 송두에게 집의 장점을 설명하는 이 멘트는 부동산 중개인 아줌마에게서 들은 내용이었다.

“2층은 왜 안 됐어?”

소나무와의 아이 컨텍이 아직은 그다지 그립지 않은 송두는 햇살이 가득 비추는 2층을 부러운 듯 바라보았다. 선미가 그 마음을 알아챘다. 그러나 별 수 없었다.

“그래, 내가 며칠만 먼저 이 집을 찾았더라면 2층을 계약했을지도 몰라. 근데 내가 왔을 때는 이미 2층에 살 사람이 정해진 뒤였어. 하지만, 이 가격에 이만한 집 찾기가 어디 쉽겠니? 물새는 곳 없을 만큼 튼튼하지, 지하철역에서 15분만 걸어오면 되지, 그것도 언덕배기 아니고 평지지. 그래서 1층이라도 얼른 계약금 넣은 거야.”

중개인에게서 들어 두었던 정보가 선미의 입을 통해 다시 흘러나왔다. 송두가 빙그레 웃어 주었다.

“그래, 잘했어. 1층이어도 남향이니까 해는 잘 들겠지, 뭐.”

그러나 송두의 바람대로 1층의 일조량은 충분하지 않았다. 오후에 찾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집은 앞에 서 있는 3층 건물의 영향으로 정말로 딱 2층까지만 해가 들고 있었다.

“해가 뭐 그리 중요해. 해 들면 숙면 취하기도 힘들지, 피부도 새까매질 거야. 너와 나에게는 이 집이 딱이야, 딱!”

선미가 얼른 긍정의 말을 내뱉으며 열쇠꾸러미에서 현관문 열쇠를 찾기 시작했다. 중개인에게 받은 열쇠꾸러미에는 꽤 많은 열쇠가 함께 엮여 있었다.

“아니, 도대체 현관 열쇠가 어느 거야? 이름표도 안 붙여 놓고, 정말 너무하네! 어떻게 집안 열쇠가 다 이렇게 똑같이 생길 수가 있지?”

좀처럼 맞는 열쇠를 찾지 못하고 선미가 불평을 해댔다. 선미가 열쇠를 찾느라 애를 먹는 동안 송두는 집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처음이다. 태어난 곳을 떠나 이사를 하는 것! 설레는 마음과 두려운 마음이 동시에 들어 송두는 절로 깊어진 숨을 몰아 내쉬었다. 선미의 말대로 마당에 있는 소나무가 정겹긴 했다. 그러나 언제나 양지바른 곳을 좋아하는 송두는 못내 아쉬웠다. 너럭바위처럼 해가 잘 드는 곳을 이곳 서울에서는 찾을 수 없는 걸까? 아쉬운 마음에 올려다본 2층은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열린 창문 안으로 저 하늘의 햇살이 다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 같은 광경에 송두의 입술이 불뚝 튀어나왔다. 같은 건물인데, 누릴 수 있는 일조량이 극과 극이었다. 한걸음만 더 빨랐다면 저 집에 살 수 있었을 텐데…! 그런 마음으로 다시금 열쇠를 찾는 선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정수리에 무언가가 떨어진 느낌이었다. 송두가 의아한 마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런 송두의 온몸이 경직됐다. 아니야, 아니야! 그러지 마! 그러지 말라고! 마음속의 외침을 내뱉기도 전에 한두 방울의 물을 떨어뜨리던 대야에서 다량의 물이 쏟아져 내렸다. 대야가 어떤 손에 의해서 기울어지는 모습을 발견했지만, 송두는 놀라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꺄아악! 송두야!”

촤르르 쏟아진 물소리에 놀란 선미가 돌아보고서는 비명을 내질렀다. 송두는 그야말로 물벼락을 맞았다. 머리부터 신발까지 흠뻑 젖은 채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이것 보세요!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여기 사람이 맞았다구요!”

선미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2층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선미는 송두의 손을 거칠게 잡고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 맞을 때는 그래도 좀 따뜻한 기운이 남아있었는데, 어느새 물기는 찬기를 머금고 송두를 떨게 만들고 있었다. 선미는 2층 현관문 옆에 있는 초인종을 사정없이 눌러댔다.

“이것 봐요! 문 열어요! 문 열라고요! 아니,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추위에 떠는 송두를 이따금씩 바라보며 선미가 있는 힘껏 고함을 질러댔다. 그런데도 문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참다못한 선미가 주먹으로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선미야. 나 너무 추워. 우선 우리 집에 들어가자.”

송두가 선미에게 말했다.

“가만있어 봐! 내 이런 양심 없는 인간들을 한두 번 만난 게 아니야. 이런 인간들은 따끔하게 혼을 내줘야 다음부터 안 그런다고.”

그렇게 말을 한 선미는 이번에는 닫힌 문에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다. 송두는 한숨을 내쉬었다. 따지는 것도 좋고, 혼을 내는 것도 좋지만 우선은 따뜻한 곳으로 가서 이 추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다행히 선미의 두 번째 발길질이 시작되기 전에 문이 열렸다. 선미는 송두의 손을 붙들고 다짜고짜 문 연 이를 밀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이사 온 첫날부터 물벼락을 맞아 송두의 기분은 분명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러나 문이 열리는 순간, 눈이 부실 만큼 빛나는 햇살이 송두의 시선을 장악했고, 송두의 벌어진 입은 다물리지 않았다. 문이 열리자마자 피부에 와 닿은 따뜻한 온기는 저 창문 가득 쏟아지는 햇살 때문이 분명했다. 햇볕이 따스하게 비추고 있는 곳에는 넓은 테이블이 있었고, 그 옆으로 키보드가 2대 놓여 있었다. 하나는 피아노처럼 건반이 많았고, 하나는 그보다 적고 작았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세 가지 크기의 스피커가 놓여 있었다. 정 가운데에는 컴퓨터 모니터가 놓여 있었는데, 그 주변으로 이름 모를 기기들이 여럿 더 있었다. 그 기기들이 무엇에 쓰는 용도인지는 알 수 없어도 송두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햇살과 함께 그 모든 장면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보였다. 무엇보다도 저 햇살은 닮았다, 너럭바위의 햇살과! 그러다 송두의 눈에 낯익은 대야가 보였다. 물기가 남아있지만, 이미 비워진 대야가. 저 대야의 물을 창밖으로 내다 버린 인물이 바로 이 사람이란 말이지?

“누구지?”

어이없는 얼굴로 물어오는 남자였다. 송두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송두는 곧 귀청을 찢는 선미의 고함 소리가 터져 나올 것을 예상했다. 아무 잘못도 없다는 듯 천진한 얼굴로 묻고 있는 저 남자에게 선미의 과격한 욕설이 터져나갈 것이다. 송두는 예방 차원에서 미리 미간을 찌푸렸다.

“아, 댁이 이 집에 세 들어 사시는 분이신가요?”

송두는 제 귀를 의심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선미의 상냥한 어투였다. 의아하게 바라본 곳에서 선미의 속눈썹이 재빠르게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지헌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

“꺄아아악!”

욕실에서 샤워라도 하고 있었는지 머리에 거품을 묻힌 준호가 문을 열었다. 요란한 소리를 듣고 급하게 나오느라 단속을 하지 못한 채였다. 선미의 비명소리가 한 옥타브 높게 질러졌다. 욕실 문은 빛의 속도로 닫혔고, 송두는 휴우! 하고 숨을 내쉬었다. 어째 조짐이 예사롭지 않았다.

“여긴 내가 알아서 해결할게. 넌 샤워나 끝내!”

문 뒤에서 자책하고 있을 준호에게 지헌이 이야기했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고 송두와 선미를 살폈다. 선미는 더 이상 그에게 무언가를 따져 물을 의지가 없어 보였다. 친구의 눈매는 이미 앞에 서 있는 훤칠한 이를 가슴에 아로새기기라도 하는 듯 부드러워져 있었다. 분노의 시작은 친구였으나, 실행은 송두의 몫이 되었다.

“보시다시피 날벼락을 맞았습니다!”

흠뻑 젖은 송두를 지헌이 갸웃거리며 쳐다보았다.

“그래서…?”

송두의 입술이 비틀어졌다. 지금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려는 심보인가?

“창밖으로 물을 버리다니요? 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데요?”

송두의 차가운 말에 지헌의 두 눈이 먼저 커졌다. 그러나 그의 얼굴이 참기 힘든 듯 웃음을 터뜨렸다. 선미의 얼굴도 의아함으로 어두워졌고, 송두의 얼굴은 기분 나쁘게 일그러졌다. 당장에 사과가 튀어나와야 하는데, 뜬금없이 웃음보라니!

“이 아저씨가 진짜! 웃음이 나와요, 웃음이?”

“아니, 그러니까, 진짜… 내가 버린 물이 딱 여기로 떨어졌다는 말이야?”

송두의 머리를 가리키던 지헌이 한참을 더 웃었다. 송두는 고개를 내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