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시각, 그들은 바에 앉아 반쯤 비워낸 술잔을 든 채 분위기에 녹아들어 있었다. 은은한 조명과 귀에 감기는 감미로운 재즈 선율이 긴장을 이완시키고 근심을 잊게 했다. '''해인은 그의 침묵에 무조건적으로 동참하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묻지 않고, 알려하지 않는 그녀의 초연함이 오히려 강현을 언짢게 했다. 그녀가 가볍고 얄팍한 사람이면 싶었다. 경박하고 단순해서 아무렇게나 다루어도 마음 쓰이지 않는 여자였으면 싶었다.''제길, 어딘가 약해져 균열이 생긴 게 분명했다. 속히 찾아내 덧막으면 아무 문제없으리라. 강현은 허술해진 부분을 빠르게 수습하며 스스로를 재정비했다. 그러나 해인의 목소리가 귀속으로 깊숙이 스며들자 그는 일시적으로 사고가 정지되었다.''“나…… 당신이 좋아져요.”''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쳐다보던 강현은 픽 웃으며 술잔을 테이블 위에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하, 고마운데.”''진지하게 듣지 않는 분위기였다. 해인은 기죽지 않고 발개진 얼굴로 빙그레 웃었다.''“사랑하나 봐요. 나…….”''그제야 제 말의 파급효과가 감지되는 모양이었다. 해인은 자기가 말해 놓고도 깜짝 놀라 훅 숨을 삼켰다. 그의 눈에 비친 그녀가 어둡고 탁해져 모습을 잃어버렸다.'강현은 한동안 해인을 쏘아보다가 툭 내던지듯 말했다.''“지금…… 나랑 잘 수 있니? 말해 봐. 할 수 있어?”'“강현 씨…….”''충격으로 짙어지는 그녀의 눈동자에 강현은 이내 가볍게 비틀었다.''“싫어? 됐어, 그럼. 일어나. 집에 데려다 줄게.”'“그러고 싶어요. 당신과…… 네.”''무엇이 그녀를 돌진하게 하는지 몰랐다. 단지 강현이 무정하게 말하며 미련 없이 등을 돌리자 해인은 덜컥 겁이 났다.'그가 우뚝 선 채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나, 장난하는 거 아닌데?”'“나도요. 장난…… 아니에요.”''그들은 강현의 빌라로 왔다. 해인은 그가 신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도 한동안 주뼛주뼛 현관 앞에 서 있었다. 강현이 환하게 쏟아지는 거실등 아래서 그녀를 돌아보았다.''“뭐해? 거기 계속 그러고 있을 거야?”''어조는 가벼웠지만 눈빛은 어두웠다. 해인은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그의 집은 넓고, 현대적이고, 세련되게 인테리어 된 고급 주거공간이었지만 어쩐지 금방 이사를 왔거나 또는 곧 짐들을 들어낼 것처럼 느낌이 휑하니 삭막했다. 해인은 주인의 빈 마음을 그대로 드려내는 것 같아 알싸한 동질감이 들었다.''강현이 다가와 그녀 앞에 섰다. 그는 차를 권하지도, 심지어 앉으라고 하지도 않았다. 검게 그늘진 눈동자에 그녀를 담으며 그가 단호히 손을 뻗쳐왔다. 해인은 흠칫해서 자기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저기, 난…… 잘 몰라요.”''두렵고 힘겹지만 수줍고 진지한 음성이었다. 강현은 한 팔로 가만히 그녀를 끌어당겼다. ''“괜찮아. 상관없어.”''그가 정수리에서 눈으로, 뺨으로, 입술을 옮겨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늘게 떨리는 붉은 꽃잎에 혀를 대고 향긋한 그 안으로 축축이 잠겨들었다. ''어느 순간 동작이 거세지고 있었다. 뒤통수와 허리를 돌려 감은 팔에 바짝 힘이 들어갔고, 그녀의 입안으로 침입해 들어온 혀는 사정없이 제 짝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해인은 눈이 커다랗게 열린 채 몸을 꿈틀했지만 그의 힘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전신을 불사를 것 같은 열기가 그녀를 단번에 덮쳐왔다.''강현은 이 여자를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았다. 자칫 그녀를 만지고 키스하는 손과 입술에 약한 마음이 실릴까 초조했다. 그는 잠시의 여유도 두지 않고 그녀의 몸에서 옷을 벗겨냈다. 하늘색 원피스, 크림빛 슬립, 흰색 레이스 브래지어가 차례대로 발치에 떨어졌다.''해인은 미처 당황할 새도 없이 반라의 몸으로 그 앞에 서 있었다. 작은 팬티만 겨우 걸친 채 하얗게 드러난 가슴을 가릴 생각도 못하고 얼어붙어 있는 그녀를 쳐다보며 강현은 타는 욕구로 숨쉬기가 힘들었다. 그는 세차게 그녀를 안아 올려 침실로 들어갔다.''